영혼의 여정-어린 왕자
어린 왕자.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아름다워서 눈믈이 나오는 책입니다. 어린 왕자를 쓴 쎙떽쥐베리는 작가이면서 조종사였습니다. 1940년대, 사하라 사막과 안데스 산맥 상공의 외로운 하늘에서 장거리 비행을 하는 조종사였습니다. 비행 중 지중해 상공 어딘가 에서 행방불명이 됩니다. 영원히 그분의 품으로 비행해 간 것입니다.
저에게 조종사의 이미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줍니다. 조종사들은 창공을 날다보면 별들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을 지나기도 하지만 난기류를 만나기도 하고 폭풍을 만나기도 하지요. 여러 가지 위험을 감수하고 시련을 겪으면서 황량한 상공을 비행하여 목적지에 도달해야 하는 사명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때로는 푸른 초원을 지나며 은총이 넘치는 강물을 건너기도 하지만 때로는 황량한 사막을 지나기도 하고 깜깜한 밤을 걸어야 할 때도 있지요. 그런 여정 안에서 기쁨과 슬픔, 평화와 고독을 체험하면서 사랑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쎙떽쥐베리의 마음속에 성서의 한 귀절이 떠올라 그의 영혼을 휘감았습니다. 그 귀절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는다해도 그 영혼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그 구절을 깊이 묵상한 후 인간의 영혼을 위한 작품을 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어린 왕자였습니다. <어린 왕자>는 바로 사람들이 영혼을 되찾기를 바라면서 쓴 작품이기에 그토록 우리의 영혼을 매혹시키는 것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잃을 때 모든 것이 힘들어진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에게 빵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랑과 생에 대한 분별과 하느님을 아는 일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예수 승천 대축일 독서에서 우리는 부활하셨던 예수께서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는데 마침내 구름에 싸여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흰옷을 입은 사람 둘이 나타나 말합니다. "그대들은 왜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가?" 무슨 의미입니까?
하느님을 향한 삶의 여정에서 그 목표를 확인하기 위하여 우리는 때로 하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늘만 바라보는 것이 그분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분이 사셨던 사랑의 삶을 살면서 그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린 왕자에 보면 비행사가 나오지요. 작렬하는 태양 아래 무방비 상태로 펼쳐져 있는 사막에서 우물을 찾는 비행사는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걸어야 하는 여정의 모습입니다. 하늘만 바라보면서 그분이 물을 쏟아 주시기만을 바랄 수 없고 우리가 우물을 찾아야 합니다. 어린 왕자는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영혼의 목마름에 대한 해소, 영원에 대한 동경, 사랑에 대한 갈망, 바로 그분 하느님에 대한 추구이겠지요. 제가 오늘 강론에서 어린 왕자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하는 것은 이 <어린 왕자>야말로 어른의 세계에 대한 깊은 물음을 던지면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어린 시절의 꿈을 통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느님입니다. 또한 사랑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하느님과 동의어입니다. 사랑은 마음속에 지닌 어떤 것,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 바로 영혼에 대한 어떤 것입니다.
저는 어린 왕자에서 백미가 되는 부분은 어린 왕자와 여우와의 만남,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라고 생각하기에 그 대목의 일부를 들려 드립니다.
여우가 나타난 것이 바로 그때였다. "안녕." 여우가 말했다. "안녕. 넌 누구니? 참 예쁘구나..."어린 왕자가 말했다. "응, 난 여우야." "이리 와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쓸쓸하단다..."어린 왕자가 제안했다. "난 너하고 놀 수가 없어. 우린 아직 정을 나누지 않았거든." 여우가 말했다. "아! 미안해."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한 후에 그는 덧붙였다. "정을 나눈다는 게 무슨 뜻이야?" "넌 여기 사는 애가 아니구나. 무얼 찾고 있니?"여우가 말했다. "난 사람들을 찾아. 그런데 정을 나눈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건 너무나 잊혀져 있는 일이야.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란다." "관계를 맺는다고?"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렇지." 여우가 말했다. "넌 아직까지 세상에서 흔히 보는 애들과 다를 게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네가 필요 없어. 너도 물론 내가 아쉽지도 않겠지. 나도 세상에 흔한 여러 여우와 다를 게 없는 한 여우에 불과할 거야. 그러나, 네가 나와 정을 나눈다면 서로가 필요하게 돼.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될 것이고 나는 너한테 단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될 테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꽃이 하나 있는데... 그 꽃이 나와 정을 나누었나봐..."어린 왕자가 말했다. .. 중략... 서로 이야기를 나눈 후 "누구나 자기가 정을 준 것밖에는 알 수 없는 거야. 사람들은 이미 무얼 알 만한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그들은 미리 만들어진 것을 상점에서 산단다. 그렇지만 친구를 파는 상인은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친구가 없지. 네가 친구를 갖고 싶다면 나에게 정을 나누어주렴." 여우가 말했다. "어떻게 해야 되지?"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아주 참을성이 많아야 해. 우선 넌 내게서 좀 떨어져서 바로 그렇게 풀밭에 앉아 있어. 말은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그러나 하루하루 조금씩 더 가까이 앉아도 돼..." 이튿날 어린 왕자가 다시 왔다. 여우가 말했다. "같은 시간에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가령 오후 네 시에 네가 온다면 세 시부터 나는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더 행복해질 거야.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몇 시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난 알 수 없을 거야. 의례가 필요한 거란다." "의례가 뭐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건 어떤 날을 그 외의 날과 다르게, 어떤 시간을 그 외의 시간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 이렇게 해서 어린 왕자는 여우와 정을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잘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잘 가. 내가 비밀 하나를 알려 줄게.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잘 볼 수 없다. 알맹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여우가 말했다. "알맹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잊지 않으려고 따라 말했다.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너의 장미에게 정을 나누며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그러나, 넌 잊으면 안돼. 네가 정을 준 것에 넌 언제나 책임이 있어..."
그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영혼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남, 그리고 이어지는 정을 나누는 시간을 들일 때 그때 서로가 서로에게 참으로 소중해집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맺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느님께 시간을 들이지 않을 때 결코 하느님이 나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참으로 소중한 존재가 될 때 나는 하느님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들과 저와 맺는 관계, 서로 정을 나누면서 맺는 관계, 특별히 의례인 미사를 통하여 하느님 안에서 만나는 이 만남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서로가 정을 나누면 서로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아주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지요. 늘 서로의 마음 안에 있는 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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