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새해에도 중국은 글로벌 기업들의 최대 격전장이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한국의 대표적 그룹들도 중장기 성장전략의 핵심을 중국 시장에 맞추고 있다.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의 위치로 도약한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을 대신할 최대 소비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이라는 지구촌 거대시장을 놓고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일 태세다. 동아일보 산업부는 중국 시장에서 세계 초일류 기업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우리 기업들의 새해 각오와 준비 상황을 현지 취재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주문 밀려 식사시간까지 줄여… 하루 23시간 공장 가동
지난해 12월 28일 중국 베이징(北京) 시내 중심가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베이징현대자동차 신파(信發)특약점. 벽에 걸린 이효리의 초대형 사진 밑에서 손님 40여 명이 전시 차량을 구경하거나 차에 타면서 한마디씩 품평을 하고 있다. 옆에서는 도트프린터 2대가 ‘삑삑’ 소리를 내면서 쉴 새 없이 계약서를 출력해댔다. 상담용 원탁 테이블에는 빈 자리가 없었고 1층 바닥에 설치된 실내 연못에는 팔뚝만 한 잉어 수십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 중국, 소비시장 폭발로 ‘춘추전국시대’
근무 직원만 197명인 이 매장을 매일 약 800명의 고객이 찾는다. 하루 평균 팔리는 차는 13∼15대, 많게는 하루에 30대도 팔린다. 이 지점 하오웨이(학偉) 부총경리는 “지난해보다 판매량이 배 이상 늘었다”면서도 밝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는 기자에게 “라이벌 딜러들과의 경쟁이 엄청나다. 베이징현대차가 딜러들에게 계속 좋은 차를 공급할 수 있게 기사를 써 달라”고 당부했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총 1350만 대의 자동차가 팔렸다. 판매 대수에서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으로 부상했다. 2015년까지 중국 내 자동차 수요는 연간 2000만 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자동차업체들에 중국은 이제 생산기지가 아니다. 미래 생존이 걸린 ‘최우선 순위의 소비시장’이다.
1시간에 48대 완성 지난해 12월 30일 중국 베이징현대자동차 제2공장 조립라인에 완성 단계의 ‘엘란트라 웨둥’(아반떼의 중국형 모델) 등이 줄지어 서 있다. 지난해 현대차의 중국시장 판매량이 전년의 배 가까이로 급증하면서 베이징현대차 공장은 생산대수를 시간당 36대에서 48대로 늘리고 작업 시간도 하루 23시간으로 늘렸다. 이 공장은 현재 ‘i30’와 엘란트라 웨둥을 혼류 생산하고 있다. 올해 설 연휴에는 생산능력을 더 확대하는 공사를 할 예정이다. 베이징=변영욱 기자
백효흠 베이징현대차 판매본부장은 “이곳처럼 치열한 전쟁터는 없다. 매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했다. 중국 자동차시장에는 지방의 작은 업체를 제외하고도 자동차회사 50여 곳이 200개 이상의 모델을 팔고 있고 매년 신차가 30∼40종씩 선보인다. 지난해 1∼10월 누적 판매량 1위인 상하이폴크스바겐의 시장점유율은 9%가 채 안 된다.
절대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를 연상케 하는 판세이다 보니 시장 예측도 어렵다. 상하이 베이징 등 고급 차가 잘 팔리는 대도시에서부터 폐차 직전의 차량이 굴러다니는 중부 내륙까지 지역별, 계층별로 시장이 다양하고 복잡하다.
정부 정책이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도 중국만의 특징이다. 지난해 시장조사기관들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고려해 중국 자동차시장 성장률을 6% 안팎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내수 부양책에 힘입어 중국 승용차시장은 48%나 성장했고 상당수 자동차업체의 1∼11월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0∼50% 늘었다. ‘성장률 6%’ 예상을 고지식하게 받아들였던 이치(一汽)도요타는 준비 부족으로 판매량 증가가 9.7%에 그치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 현대차, 외국 회사들 벤치마킹 대상
중국 소비자들이 차를 보는 안목과 취향은 한국 소비자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공승현 베이징현대차 기술센터 디자인부장은 “중국 도로에는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아우디의 모델이 널려 있고 이른바 ‘슈퍼 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며 “여기에다 인터넷으로 최신 정보를 공유하는 등 중국 소비자들의 안목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자동차시장 환경을 ‘하이퍼(hyper) 경쟁’이라고 규정했다. 100개가 넘는 업체 간에 합작과 제휴가 복잡하게 얽혀 라이벌이 누군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엄청난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거대 시장’이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라는 의미다.
이런 하이퍼 경쟁이 펼쳐지는 시장에서 지난해 가장 주목을 받은 회사가 베이징현대차였다. 베이징현대차는 지난해 1∼11월 판매량이 51만여 대로 전년 동기보다 93.8% 급증했다. 합자회사 가운데 최고의 성장률이었다. 시장점유율 순위도 7위에서 4위로 부상했다. 베이징현대차 관계자는 “다른 외국 자동차회사들이 우리의 판매 조직과 마케팅 방식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베이징현대차의 성공비결은 철저한 현지화와 속도전이다. 두 가지 전략은 상품개발 단계에서 생산, 판매에 이르는 전 부문에 적용됐다. 전략 모델로 내놓은 ‘엘란트라 웨둥(悅動)’ ‘링샹(領翔)’ ‘밍위(名馭)’는 각각 ‘아반떼’ ‘5세대 쏘나타(NF)’ ‘EF쏘나타’를 현지화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남성적인 느낌을 강조한 디자인이 특징인데 상품개발 단계에서 소비자 조사를 통해 얻은 결론을 반영했다고 한다.
베이징현대차 지역밀착형 판매조직, 시장 상황 재빨리 대응해 승기 잡아
○ 극한의 경쟁상황에서 한판승부
지난해 12월 29일 찾아간 베이징현대차 제2공장에서는 생산 부문에서의 속도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문이 밀려들자 주야간 2개조가 11시간씩 특근을 하는 것도 모자라 조회시간 10분을 없애고 식사시간을 1시간에서 40분으로 줄여 조당 근무시간을 30분씩 더 늘렸다. 1개조가 11시간 30분씩, 2개조가 하루 23시간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 ‘이렇게 생산을 늘리면 불량이 발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창재 생산관리부 차장은 먼지 하나 없는 바닥을 가리키며 “자동차회사가 아닌 다른 중국 공장도 이렇게 깨끗하고 정돈된 곳은 없다. 품질은 자신 있다”고 강조했다.
베이징현대차는 판매조직도 속도와 현지화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뜯어고쳤다. 시장을 크게 북부와 동부, 중남부 등 3지역으로 나누고 모두 9곳의 사무소를 둬 시장 상황을 재빨리 판단해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수요가 있는 지역에는 딜러점에 준하는 ‘위성딜러점’을 열어 전체 지점을 2년 새 약 150곳이나 늘렸다.
조직을 지역밀착형으로 만든 덕분에 중국 정부의 부양책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다. 중부 내륙 지방의 거대 수요를 적기에 대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베이징현대차는 올해는 판매조직을 동서남북 4개 지역으로 나누고 딜러점을 100곳가량 더 늘릴 계획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베이징현대차가 지난해 성적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차이나 오토모티브 리뷰’의 중스(鐘師) 부편집장은 “베이징현대차는 올해 중국 시장에서 치고 올라오는 로컬 브랜드와 고급 이미지의 선진 자동차회사 사이에서 더욱 심한 경쟁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며 “선명한 브랜드 이미지 확립에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