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 충남지사에 출마한 후보 3인은 모두 천안시에 선거본부를 차렸다.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의 충남도당 사무실도 천안시에 있다.
천안시의 유권자 수는 40만5057명. 충청남도 유권자(159만9250명)의 25%다. 천안은 아산과 맞붙어 있다. 아산시 유권자는 19만5764명. 아산시는 당진군(유권자 11만1513명)과 붙어있고, 다시 당진군은 서산시(유권자 12만1544명)와 어깨를 맞대고 있다. 천안-아산-당진-서산을 충남의 서북부벨트라고 부른다. 서북부 벨트의 유권자는 약 83만3860명, 전체 유권자의 52%가 넘는다. 충남지사 선거의 향배는 서북부벨트에서 누가 이기느냐로 판가름난다는 주장은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서북부벨트 승리의 바로미터는 바로 천안이다.
야유회 가는 관광버스 찾아
5월 11일 오전 8시30분, 천안시 쌍용동 천안컨벤션센터 앞 도로. 관광버스 11대가 도로 위에 두 줄로 정차하고 있었다. 관광버스에는 봄철 야유회를 떠나려는 노인복지종합관 노인회 소속 어르신들이 타고 있었다. 유니폼을 차려 입은 남녀 수십 명이 부지런히 관광버스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옅은 하늘색 점퍼를 입은 사람들은 한나라당 소속으로 천안시장, 도의원, 시의원 출마자들이었다. 노란색 점퍼를 입은 사람들은 민주당 후보자들이었다. 청색 점퍼를 입은 사람들은 자유선진당 소속 출마자들이었다. 이곳에 나온 출마자들 수로 보면, 자유선진당이 15명 이상으로 가장 많았다. 자유선진당 출마자 중에 박상돈 충남지사 후보가 보였다.
박상돈 후보가 버스에 올라가니 바로 뒤에 구본영 천안시장 후보가 따르고, 그 뒤에 도의원 후보와 시의원 후보들이 줄줄이 올라탔다. 비좁은 통로에서 박상돈 후보는 간단한 인사와 함께 “즐거운 여행 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뒤이어 시장 후보, 도의원 후보, 시의원 후보들이 일일이 좌석을 돌며 명함을 건네고 인사를 했다. 이런 모습이 관광버스마다 되풀이됐다. 그 광경이 마치 어미 닭을 졸졸졸 쫓아다니는 병아리들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관광버스 대열의 마지막 11호차에서 내려오는 박상돈 후보를 만났다. 박상돈 후보가 “버스 11대에 전부 올라가 인사하느라 혼났어유~”라고 말했다.
오전 9시가 넘자 버스가 출발하려 시동을 걸었다. 가장 먼저 도로변에 박상돈 지사후보와 자유선진당 후보들이 일렬로 자리를 잡았다. 뒤이어 한나라당 후보들이 대열을 형성했다. 한나라당 후보들 맨 앞에는 성무용 한나라당 시장후보가 자리를 잡았다. 관광버스들이 1호차를 선두로 미끄러 나가자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후보들은 두 손을 들어 크게 흔들었다. 이 자리에는 한나라당 박해춘 후보와 민주당 안희정 후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모르는 분들이 많이 나왔슈”
박해춘·안희정·박상돈 3인 중 천안시와 가장 연고가 깊은 사람은 박상돈 후보다. 박상돈 후보는 충남 연기가 고향이다. 연기군은 천안시와 인접해 있다. 박상돈 후보는 천안중학교와 대전고를 나와 17대와 18대 연거푸 천안을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천안시 사정에 누구보다 훤하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아산군수와 서산시장을 지냈으니, 서북부벨트와의 연고도 각별하다.
박해춘 후보는 금산군 출생이다. 대전고와 연세대 수학과를 나와 줄곧 서울에서 금융·보험 분야의 경력을 쌓아왔다. 삼성화재 상무, 서울보증보험 대표, LG카드 대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우리은행장을 거쳤다. 천안을 비롯한 서북부벨트와의 연관성은 거의 없다.
안희정 후보는 논산군이 고향이다. 고려대 철학과를 나와 정치권에 입문한 뒤에는 민주당 논산·계룡·금산 지역위원장을 맡아왔다. 안희정 후보 역시 서북부벨트와의 연고가 약하다. 대신 안희정 후보는 도지사 출마 준비를 가장 오래 해왔다. 지난해 12월부터 출마를 준비하며 16개 시군(市郡)을 이미 여러 번 돌았다. 안 후보 측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와의 인터뷰나 취재 협조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박상돈 후보는 오전 9시50분, 원성동의 천안침례교회에 갔다. 전도대회 현장에 역시 구본영 천안시장 후보와 함께 나타나 신도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천안침례교회 건너편의 한 편의점. 기자는 캔커피를 마신 뒤 30대의 남자 주인과 대화를 나눴다.
주변에서 충남지사로 누굴 뽑겠다고 합니까. “아직은 생각 안해봤어유, 정말유. 충청도 사람이 그러잖유. 근디 그 사람이 그 사람 아녀유?”
그럼 충남지사 후보 중에서 누가 가장 알려져 있습니까. “그거야 지역당 후보 아니겠어유?”
천안시는 행정구역이 서북구와 동남구로 나뉘어져 있다. 오전 11시 동남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후보자 초청 토론회’가 열렸다. 주최 측이 각당 후보에 초청장을 보냈으나 박해춘 후보는 개인사정으로 불참을 통보해왔다. 토론회는 안희정 후보와 박상돈 후보만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동남구선거관리위원회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60대 택시기사와 대화를 나눴다.
충남지사 후보 중 누가 유리하다고 봅니까.“(웃음) 잘 모르것슈. 모르는 분들이 많이 나왔슈.”
누가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까. “박상돈씨가 이미지가 좋은 분이구먼유. 서민적이구유.”
이 택시기사는 기사에 자기 이름을 절대 쓰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충남지사 선거전은 5월 11일까지 안희정·박상돈 두 후보가 주도해왔다.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초청토론회 이전에 두 번의 방송토론이 있었으나 박해춘 후보는 불참했다. 조선일보가 5월 3일자에 보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충남지사 지지율이 박상돈 후보 21%, 안희정 후보 18%, 박해춘 후보 13%로 각각 나타났다. 이런 지지율은 그간의 사정을 감안하면 아주 자연스러운 결과라 볼 수 있다. 충남에서 ‘박해춘 후보’의 인지도가 매우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13%는 한나라당 지지율이라고 봐도 된다.
안희정·박상돈 선거전 주도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초청토론회에서 세 번째 맞붙은 안희정 후보와 박상돈 후보. 안희정 후보는 시종 자신을 노무현 대통령과 연결해 부각시키려 애를 썼다. 그는 “젊은 나이에 노무현 대통령, 대한민국 대통령을 만들어봤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나라를 이끌어봤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선거 쟁점으로 중앙정치 문제를 끌고와 정치논리로 이슈화하려고 했다. MB의 부자감세 정책이 결과적으로 도 살림을 어렵게 했다는 식의 논리를 폈다. 이에 반해 박 후보는 “부자 감세를 강조하면 사회주의 논리에 빠진다”면서 “모든 걸 중앙정부 책임으로만 돌리지 말라”고 받아쳤다. 박 후보는 지방 현안은 지방행정논리로 풀어가야 한다면서 자신은 중앙정치와 지방행정을 모두 잘 아는 행정전문가임을 강조했다.
박해춘 후보는 5월 11일 오후 2시 선거캠프 개소식을 가졌다. 박해춘 후보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것은 지난 4월 말. 벌써 2주가 지났지만 사실상 선거 운동은 개소식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천안고속버스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선거캠프 외벽에서 ‘1등 충남, 부자 충남’을 내걸었다. 박해춘 후보가 금융, 보험 등 경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개소식에는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송광호 최고위원, 정두언 기획위원장, 정양석 비서실장, 정미경 대변인 등 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했다. 이날 참석자 중 가장 눈길을 끈 사람은 이완구 전 충남지사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였다.
▲ 박해춘 / 안희정 / 박상돈 photo 허재성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박해춘, 이완구 등에 업고 뒤늦게 추격
가장 먼저 축사를 한 사람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였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박해춘 후보가 정치권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경제 분야에서 어떻게 실적을 쌓았는지를 설명했다. 서울보증보험·LG카드 대표이사, 우리은행 행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맡아 어떻게 회사를 살렸고 이익을 냈는지를 실례로 들어 설명했다. 이어 송광호·남경필 의원 등이 나와 축사를 했다. 청중 가운데서 “박해춘” 연호를 이끌어내려 했지만 아직은 호응이 약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이완구 전 충남지사의 축사였다. 이완구 전 지사는 “충청이란 지역의 지방선거는 단순한 지방선거로 봐서는 안된다”면서 열변을 토했다.
“내가 뭐가 아쉬워서 (도지사에서) 나왔겠나. 세종시는 나중에 얘기하자. 내가 그동안 맡은 도정 4년을 계승할 사람, 도정을 맡길 사람은 박해춘 후보뿐이다. 내가 직접 돌아다니며 박해춘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할 것이다.”
이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이완구 짱” “이완구 짱”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충남도당 관계자들은 이완구 전 지사의 ‘박해춘은 나의 계승자’라는 말에 얼굴이 한껏 고무된 표정이었다.
박해춘 후보의 차례가 되었다. CEO로 말하는 것과 정치 집회에서 대중을 상대로 연설하는 것은 어법이 다르다. 박해춘 후보는 정치 초년병다운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말을 더듬거렸고 말과 제스처를 맞추지 못할 때도 있었다. 박해춘 후보는 “제가 말주변은 없지만 고향을 살리겠다는 열정과 노하우는 누구보다 자신 있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완구 지사께서 찾아주어 박해춘은 승리의 힘을 얻었다. 박해춘의 승리는 곧 이완구의 승리이다.” 박해춘 후보는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인천 송도를 가보라. 하루가 다르게 천지개벽하고 있다. 새만금을 가보라. 지금 어떻게 변했느냐. 나는 충남이란 적자회사를 흑자회사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경제 전문가다. 지금 야당은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를 정치선거로 변질시키려 하고 있다. 나는 경제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
박해춘 후보는 안희정 후보와 박상돈 후보에 비해 많은 면에서 준비가 부족해보였다. 반(反)한나라당 정서가 팽배한 가운데 한나라당이 공천한 후보는 인지도가 낮은 상황. 사실 이 정도면 선거는 해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충남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는 이완구 전 충남지사의 공개 지지로 비로소 힘을 얻고 있는 모습이었다. 손규성 대변인은 “그동안 이완구 전 지사가 공개적으로 계승자라는 말을 안해줘서 초조했던 게 사실”이라면서 “5월 27일까지 초접전 상황을 만들어놓고 막판에 역전시키겠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시 민심’에 달렸다
충남지사 선거의 최대 이슈는 세종시다. 박해춘 후보는 세종시 문제와 관련 ‘수정안 지지’ 쪽이다.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세종시 문제가 이슈화되는 것을 꺼리는 눈치다. 박해춘 후보는 “5년 안에 수정안에 따라 세종시를 완성하겠다”는 입장이다.
쌍용동에 있는 박상돈 후보의 선거캠프 외벽에 붙어있는 대형 현수막은 박상돈 후보의 선거 전략의 방향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충남의 자존심, 세종시를 지켜내겠습니다. 깨끗한 도지사, 일 잘하는 도지사’. 박상돈 후보 선거캠프의 본부장은 이양구 한서대 대외협력부총장. 충남 청양 출신으로 대전KBS 총국장을 지낸 인물이다. 박상돈 후보의 선거캠프에는 서북부벨트 출신 인사들뿐만 아니라 충남 내륙지방 인사들까지 많이 드나들고 있었다. 이양구 본부장은 “세종시 문제는 독립 상수이지만 천안함 침몰과 노무현 1주기는 종속 변수”라면서 “충남 지역에서는 세종시 문제에 종속 변수들이 묻혀버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양구 본부장은 박상돈 후보가 2위와의 지지율 차가 나지 않는 점과 관련해 이런 해석과 전망을 했다. “충남 도민의 다수는 정부 여당이 충남 도민을 우롱했다는 정서를 갖고 있다. 무응답층의 80% 이상은 결국 자유선진당에 지지를 보낼 것이다. 그동안의 선거 흐름을 보면 우리 쪽에 호감을 보여줬다. 여론과 시간은 우리 편이다.”
오후 6시, 연기군 조치원읍. 모든 가로등과 전신주에 예외없이 두 개의 깃발이 걸려있었다. ‘행정도시 수정 불가’ ‘행정도시 원안 사수’라고 적힌 깃발은 봄바람에 쉬지 않고 휘날리고 있었다.
조치원역 광장에 설치된 전광판에서는 이런 문구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세종시 추진은 균형발전의 시작이다’ ‘세종시 탄생은 연기군민의 힘으로’…. 도로변에 붙어 있는 모든 현수막은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한다는 내용뿐이었다. 어떤 후보는 대형 현수막에 박근혜 전 대표의 사진을 넣은 사람도 있었고, 박근혜의 이름을 적어놓기도 했다. 연기군에서는 적어도 ‘세종시 수정안 지지’를 입 밖에 낼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격앙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첫댓글 지사님 고생이 절대로 헛되지 않았쓰면 합니다..
다 알꺼야 ~ 이 지사님의 마음을 !
지사님 ! 사랑합니다 ^^
지사님의 진정한 마음을 모든 국민이 알아시기를....
고생하신 만큼의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충청민심이 판정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