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11월18일-1
작은 김장
남편을 출근시키고 바로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으로 갔다. 새벽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간단하게 단장을 마쳤으니 곧바로 김치 담그기에 돌입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는 일기예보에 시골집 텃밭에서 배추, 열무, 무, 당근을 수확해서 한 보따리 가져왔다. 배추는 솎아서 가져왔으니 겉절이나 데치거나 해야 한다. 무는 동치미 담그면 좋은 크기여서 물김치를 담기로 했다.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무로 김치 담그는 것을 보았는데 반달 모양으로 썰어서 소금에 절이지 않고 바로 양념에 무치는 김치였다. 열무는 물이 약간 있게 잡아서 시원하게 담그기로 했다.
마늘을 믹서기로 충분한 양을 갈았다. 텃밭에서 수확한 매운 고추 붉은 것 파란 것을 냉동실에 얼려놓았는데 꺼내서 씻어놓았다. 식은 밥이 있어서 믹서기에 갈았더니 생각보다 곱게 갈리지 않았다. 밥의 양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식은 밥이라 그런지 찹쌀 풀로 할 걸 후회가 되었다.
대파도 다듬어서 놓고 무는 세로로 잘라서 반달 모양으로 썰어놓았다. 열무는 깨끗하게 손질해서 소금에 절여놓았다. 물김치 무는 길게 세로로 자르고 홍고추와 풋고추는 김치에 맞게 길게도 썰어놓고 작게도 썰어놓았다. 사과도 예쁘게 썰고 인터넷으로 귤을 샀는데 크기가 커서 그런지 맛이 덜해서 이리저리 뒹굴고 다닌다. 김치 단맛을 내는 데는 아무 이상이 없어서 껍질을 벗겨서 얌전히 접시에 담아놓았다. 양념거리를 식탁에 다 준비해서 놓고 김치 담그기에 돌입했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창의성이 필요하다. 주부로서 비법이 생긴 것인지는 모르지만 음식 만들 때 순간적인 감각이 나도 모르게 발휘될 때면 내심 놀란다. ‘역시 대단해’ 칭찬해 가면서 음식을 만든다.
오늘도 그동안 20년 가까이 해온 일이라서 그런지 일사천리로 김치를 담갔다. 물김치를 담그는데 사과와 귤 홍고추와 풋고추로 색을 내니까 비주얼이 최고인 김치가 되었다. 반달 모양의 무김치도 유튜브를 보고 처음 따라 해 본 것인데 역시 실망을 주지 않았다. 열무를 살짝 저려서 물기를 빼고 밥물에 양념을 다 넣고 열무를 조심스레 조금씩 넣고 버무렸다. 비주얼이 중요한 나에게 얼려놓은 고추가 단단히 한몫했다. 간도 맞고 보기도 좋고 오늘 김치는 모두 성공이다.
남편이 봄부터 동영상을 보면서 공부한 보람이 있다. 주말마다 시골집 날씨를 점검하면서 씨앗을 뿌리고 거름을 주고 애지중지 키우더니 가을에 어설프지만 나름 풍성한 수확을 했다. 잘 자라준 농작물도 대견하고 농작물을 우리가 없는 시간에도 자라게 해준 바람과 햇볕과 비와 그리고 나비와 벌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배추가 다소 볼품이 없어도 무가 내 주먹만 하게 자랐어도 당근이 실하지 못해도 나에게는 최고의 상품이다. 가방에 잔뜩 넣어서 들어오는 남편 얼굴이 얼마나 의기양양해 보이던지 애들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점심 무렵에 김치 담그기가 끝났다. 다섯 개 김치 통에 담긴 김치를 보니 너무 뿌듯했다. 사진을 찍어서 남편에게 자랑했다. 당신이 애써서 키운 것으로 맛있게 만들었다고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김장하기 전에 ‘작은 김장’을 했다. 배추와 조금 더 자란 열무가 아직 가방에 가득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내일 일어나서 배추김치를 담그고 무가 조금 더 자란 열무로 또 김치를 담가야겠다. 이제 연지못으로 산책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