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17회
“저 있잖아요. 오늘 밥 잘 먹었습니다. 하지만 셔츠 값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냥 나를 생각해 준 것이 고마워서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으니
까요. 그런데 셔츠는 왜 그렇게 집에 모아 두셨어요. 남편이라도 입으시게 해 드리지요.”
그는 그것이 조금은 이상했었다. 손님 때문에 처음에는 간직했다 할지라도 삼 년이나 그 손
님이 오지 않는데 셔츠를 집에 모아두고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여자가
고개를 들고 그의 옆얼굴을 잠시 쳐다보더니
“제게는 그런 셔츠를 입어 줄 사람이 없거든요.”
하면서 고개를 떨어뜨린다. 그는 질문을 잘못 했다는 후회를 했지만 이미 말은 입에서 떠난
후였고 여자의 답을 들은 후였다.
“그랬군요.”
그는 더 이상 왜 남편이 없는지를 묻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남편이 없는 이유는 대충 이혼이
라거나 사별일 것이기에 더 묻는 것은 여자에게 실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저기요. 우리 조금 앉았다 가면 안 될까요? 집에 들어가셔야 하나요?”
“아니요.”
“그럼 저 공원에서 잠시 쉬었다 갈까요.”
그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공원으로 여자를 이끌고 걷는다.
“우리 맥주 한 개씩 더 마셔요.”
“술 취하지 않으셨나요?”
“아녜요. 이정도로는 취하지 않아요.”
여자는 앞서서 공원 가까이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캔 맥주 두 개를 산다.
잠을 자려고 침대 위에 누웠지만 정신은 더 맑아진다. 여자의 붉게 물든 얼굴이 그의 잠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는 일어나 냉장고에서 캔 맥주 하나를 꺼내 딴다. 급하게 따서인지 거품
이 훅 하고 오르더니 캔 주변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는 식탁 앞에 앉아서 한 모금 들이킨다.
가슴이 시원해지면서 정신이 든다. ‘이혼이요? 저는 그런 거 몰라요. 결혼을 해야 이혼도 있는
것이 아닌가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그 여자와 공원으로 간 것이 실수
였다고 생각을 한다. 듣지 않아야 할 말을 들었다는 후회스러움 때문이다. 그는 여자의 말을
들으면서 하마터면 그 여자를 꼭 안아줄 뻔 했었다. 물론 그가 여자를 안아준다 해도 여자 역시
거부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그런 자신의 감정을 누르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만일 평상시였다면 여자의 말을 듣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었지만 그 시간에 그 역시 술에 취한
한 마리의 늑대가 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인 것이다.
“남자들은 흔히 술 한 잔 하면 여자들을 대화의 우선순위에서 가장 앞에 놓는다고 하지요.
그것도 언어적 성적 노리개로 말예요.”
여자는 그들이 앉은 벤치 가까이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술을 마시는 남자 몇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말이었다.
“물론 여자들도 한 잔 마시면 남자들 이야기를 하기는 하지요. 그렇지만 남자들처럼 그렇게 흉
측하게는 말하지 않아요.”
여자는 남자들이 하는 여성의 성에 관한 이야기를 흉측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여자들은 남자
들에 관한 성적인 대화를 하는 것은 흉측한 것이 아니라는 것인가?
“여자들은 그 정도로 말하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서 남자들은 여자의 몸매 뿐 아니라 성적인
행위에 대한 이야기도 서슴없이 하지만 여자들은 그 정도까지는 하지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