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12 / 아테네 -4 2004.02.20 금요일
아테네의 앞바다로
그리스하면 섬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이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그리스와 터어키 사이에 있는 섬들은 전부 그리스 영토이다. 그중 고대 희랍문명의 발상지 크레타 섬을 비롯하여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미코노스 섬,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딜로스 섬, 밀로의 비너스를 만든 순백의 대리석이 유명한 파로스 섬, 푸른 바다가 자랑거리인 낙소스 섬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래서 그리스는 고대 유적과 함께 이러한 섬들을 돌아다니는 크루즈 관광이 대단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리스는 2,000여개의 섬들이 있고 이중에 160여개의 섬에만 사람이 산다고 한다. 그럼 무인도가 그렇게 많다는 얘기네. 유럽의 부호들은 이런 이름 없는 섬들에 별장을 짓고 여름마다 즐긴다고 한다. 지중해의 진면목은 이 에게 해에 떠 있는 그리스의 섬들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 모 선전에도 있지 않은가. 포카리스웨트. 그래서 우리도 포카리스웨트를 외치며 아테네의 앞바다로 배타고 나가기로 했다.
크루즈 관광은 모든 호텔에서 예약이 가능하다. 그리스에는 여러 가지 관광 상품이 엄청나게 많은데 모든 정보가 호텔에 잘 배치되어 있다. 배, 버스 등을 이용하여 몇박 몇일 어디로 갈 것인지에 따라 가격이 당연히 다르게 매겨져 있다. 우리는 1-DAY CRUISE : 3 ISLANDS (POROS, HYDRA, AEGINA)를 택하였고 가격은 성인 80유로(11만원 정도) 13세 이하 어린이 40유로 정도이다. 좀 비싼 듯하지만 저기 에게 해까지는 갈수는 없고 맛배기로 여기라도 가야지. 포카리스웨트를 위해서.
하늘은 구름이 덮여있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호텔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았다. 아 그러나. 하늘은 구름만 잔뜩 껴있는 것이 아닌가. 어제까지 쨍쨍하던 하늘이 갑자기 왜 저모양이냐. 좀 있음 맑아 질 거야. 그런 기대를 하고 아침을 먹고 7시 반까지 호텔로비로 내려간다. 호텔 앞에 있으면 오늘 크루즈 여행을 할 사람들을 실어간다고 한다. 버스가 온다.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다. 근처 버스 터미널에서 잠시 내려 표를 다시 확인하고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항구로 간다. 우리는 계속 하늘만 쳐다본다. 야 그리스 바다는 날씨가 좋아야 제 맛인데. 어구 하늘아 하늘아.
항구에 도착하니 여기저기서 모인 크루즈 여행객들이 많이 모여 있다. 인솔자를 따라 배에 올라탄다. 약간 큰 배에 벌써 사람들이 창가 쪽 좋은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다. 우리도 저 구석 창가 자리를 하나 잡고 앉아 다시 하늘을 본다. 아무 변동이 없다. 어쨋거나 바다로 간다. 위쪽 갑판위로 올라가 배가 떠나는 것을 본다. 점점 멀어지는 아테네 항구. 잘있어. 아테네. 좀 있다 올께.
아테네시의 피레우스 항구
포로스 Poros 섬
배는 천천히 항구를 빠져나가면서 포로스 섬으로 줄달음 친다. 바다는 무척 잔잔하다. 파도가 없다. 스르륵. 그래서 배의 움직임이 거의 없다. 자리로 내려오니 가운데 홀에서는 음악소리가 들린다. 세명의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준다. 그리스 전통음악을 부즈키 음악이라고 하는데 그런 종류인 것 같다. 빠르고 경쾌하다.
쭉 훑어보니 일본관광객들이 꽉차있다. 중년의 부인들이다. 전세를 냈나보다. 완전 일본판이네. 안내방송도 일본어로 해준다. 우이씨. 그래도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꿋꿋해야지. 얘들아. 그러나 애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 없고 벌써 엎드려 잔다. 피곤했나보다. 9시쯤 출발한 배는 약 1시간 반 쯤 항해를 한 뒤 포로스 섬에 도착하였다. 포로스 섬의 항구로 들어가면서 성냥갑 같은 집들이 여기저기 옹기종기 있는 것이 보인다. 약 45분간 자유시간. 포구로 내려가서 여기저기를 돌아본다. 날씨가 그래서 인지 분위기는 그리 인상적이지 못한 것 같다. 아이들도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이 바쁜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조른다. 철없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나와 아내는 바쁘게 이골목 저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저 언덕위로 가서 포구를 한번 보자. 10분 남았다. 빨리 올라갔다 오자. 급하게 언덕 위를 오르려니 숨이 차다. 올라가서 보니 포구가 시원하게 보인다. 아 날씨만 좋았으면.
포로스섬의 집들
포로스 섬의 골목
포로스 섬 언덕
포로스 섬의 항구 모습
선상에서의 점심
시간에 맞춰 배에 올라탄다. 올라가니 제페니스냐고 묻는다. 야 제페니스 중에 이리 잘생긴 사람들 봤냐. 우린 코리안이다. 그러니 저리 앉으라고 한다. 앉았다. 밥 줘. 조금 있으니 아니나 다를까 그전에 아테네 올 때 같은 비행기를 탔던 한국인 신혼부부가 우리자리로 온다. 아 한국분이셨군요. 역시 미남미녀 이십니다. 눈에 확 띱디다. 어디서 왔어요. 왜 왔어요. 어떻게 여기까지. 아 그렇군요. 우린 이러이러 해서 이러저러하게 왔습니다. 자 밥부터 먹읍시다. 금방 친해진다. 신랑이 우겨서 정한 코스가 이스탄불과 아테네라고 한다. 새신부도 올 때는 왜 그렇게 멀리까지 가냐고 그랬지만 지금은 오길 잘했다고 한단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배는 그다음 섬인 이드라 섬으로 스르륵 소리도 없이 흘러간다. 여전히 부즈키 음악은 울려 퍼지고.
이드라 Hydra 섬
이드라 섬은 자동차가 없는 섬이다. 순전히 옛날 방식대로 당나귀나 말로만 짐을 운반한단다. 포구로 배가 들어가면서 보이는 섬의 모습은 포로스 섬과는 다르게 아주 인상적이다. 그야 말로 포카리스웨트 그거다. 하얀 집들, 푸른색의 페인트가 칠해진 창문들. 주홍빛 기와들. 다만 날씨가 그것을 받쳐주지를 못하고 있다. 그러니 바다색도 어둡다. 그래도 이드라 섬은 이쁘기 그지없다. 차가 없어서인지 더욱 인상적이다. 신혼부부님들 구경 잘 하고 오세요. 우리도 배에서 내려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포구 앞에 아담한 교회가 있어 들어갔더니 아기자기한 공간들이 구성되어 있다. 소박하기도 하고 정겹기 까지 하다. 골목길 여기저기에서 당나귀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다만 당나귀의 배설물이 좁은 골목길에 좀 많이 떨어져 있네. 냄새 좋다. 애들은 코를 막고 뛰어간다. 야야 이 냄새가 사람 사는 냄새야. 아 향기롭다. 시골냄새. 한참이나 골목을 헤메어 다닌다. 어는 초등학교에서는 오늘 무슨 연극이 있었나보다. 분장을 한 아이들이 집으로 가는 모양이다. 곤니치와 그러네. 야야 우린 코리안 이라니까. 자식들. 그래도 귀엽다. 야 같이 사진이나 찍자. 찰칵.
이드라 섬 전경
이드라 섬의 교회
이드라 섬의 교회
이드라 섬의 마을 안쪽
이드라 섬의 포구를 내려다 보면서
이드라 섬은 자동차가 없기 때문에 운송수단으로 당나귀나 말을 이용한다.
선상의 댄싱
이드라 섬을 구경하고 에기나 섬으로 가는 사이에 무슨 전통춤을 보여준다고 해서 우리는 홀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 앉아야 잘 보이지. 명당자리를 잡았다. 배가 움직이면서 악사들이 나와 경음악을 연주하여 준다. 그리스 전통음악 부즈끼를 먼저 연주하더니, 우리를 알아보고는 바로 한국음악을 연주하여 준다. 아 고마워라. 그래 그거야. 이 그리스 배안에서 한국노래가 나오다니. ‘만남’을 비롯해서, ‘서울의 찬가’, 그리고 ‘사랑으로’까지 내리 세곡을 연주해 준다. 고맙다 고마워. 아주 마음에 든다. 연주가 끝난 뒤 드디어 무희 두 명이 나온다. 잘생긴 총각하나와 예쁜 처녀가 나오더니 간단한 춤을 춘다. 그러더니 뭐 이 춤을 가르쳐 준대나. 갑자기 내게로 오더니 손을 잡아끈다. 나뿐만 아니라 홀 주변 명당자리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 다 불러낸다. 나와 딸 현정이, 조카 은지 모두 잡혀나갔다. 그래 까짓거 춰보자. 갑자기 배안이 난리가 났다. 잡혀나간 사람들이나 안 잡혀간 사람들이나 웃고, 박수치고 난리다.
그 잘생긴 그리스 총각이 사람들을 세 줄로 세운고 자기는 제일 앞에서 한동작 한동작 가르쳐 준다. 난 어찌나 운이 좋은지 그 예쁜 그리스 처녀와 같이 추게 되었다. 아 좋아라. 아내가 보던 말던 그리스 아가씨의 손을 꼭 잡고 춘다. 한참이나 따라 췄더니 땀까지 난다. 우리가 끝난 뒤 다음 팀 한 번 더 한 댄다. 내가 아내를 떠밀었다. 사모님 한번 땡겨 보시죠. 저 잘생긴 그리스 총각하고 말입니다요. 아내도 무지 운 좋게 그 그리스 미남하고 한바탕 춤을 췄다. 있지 못할 추억이다. 이게 다 여행의 묘미 아니겠나.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흥겨운 그리스 음악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배는 에기나 섬에 도착하였다.
선상의 댄싱교습
에기나 섬의 전경
에기나 Aegina 섬
에기나 섬으로 가면서 잠시 반짝하고 해가 났지만 금새 또 구름에 가려버렸다. 좋다 말았네. 에이나 섬은 아주 커서 옵션으로 섬을 한 바퀴 도는 버스투어를 하기도 한다. 우린 그냥 걸어 다니기로 했다. 포구 앞에 마차가 있길래 흥정을 하고 마차를 타고 섬을 간단하게 돈다. 이랴 이랴. 걸어가기는 좀 먼 곳까지 갈수 있어 좋다. 해변을 따라 오면서 구름 낀 바다를 본다. 아 해만 떴으면 저 바다가 옥빛으로 보일 텐데. 에기나 섬은 워낙 커서 그런지 이드라 섬같이 아기자기 한 맛은 없다.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본 후 우리는 해변에 앉아 나머지 시간을 보내었다. 아이들은 오히려 그게 좋은 모양이다. 색색가지의 조금만 조약돌을 줍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래 신나게 놀아라. 언제 여기 다시 오겠냐. 너희들 신혼여행때나 다시 와라.
에기나 섬의 바다풍경
에기나 섬의 생선시장
에기나 섬 마을 안쪽에 있는 이상한 건물/ 건물의 용도를 모르겠네요.
우리가 탄 배
아테네로 가는 선상에서
해가 기웃기웃 넘어가면서 다시 아테네로 배는 떠난다. 우린 또다시 홀 중앙에 앉았다. 이제 갈 때까지 같으니 춤을 춰도 좋고 맘대로 해라. 각오를 하고 앉는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다시 전통 옷을 입은 세 명의 무희들이 나온다. 이번에는 새로운 아저씨가 합세를 했다. 제일 고참인가 보다. 아까 그리스 처녀도 보인다. 반가워요. 아테네로 갈 때까지 세 명이서 열심히 춤을 춘다. 정말 흥겨운 가락이다. 이 사람들 춤추면서 외치는 것이 ‘오빠’ 이다. 우리말로 하면 ‘앗싸’ 뭐 그런 의미인데 그게 ‘오빠’다. 그래서 우리도 흥을 맞추기 위해 같이 따라해야 한다. 오빠. 앗싸. 오빠. 그렇게 신나게 춤추면서 배는 아테네에 도착하였다. 잊지 못할 추억이다. 흥겨운 그리스의 하루였다. 날씨 빼고.
저녁에는 다시 플라카 지역으로 갔는데 밥 먹고 있는 사이 골목이 소란스러워 나가 봤더니 거리의 악사를 중심으로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있네. 다들 신이 났다. 같이 노래 부르고 박수치고 또 난리다. 그래 그리스는 이런 동네구나. 사람 사는 것 같다. 잘들 논다. 오늘은 하루 종일 그리스 음악에 취하는 구나. 그렇게 날은 저물어 간다.
선상에서 보여주는 그리스 전통 춤
거리의 악사들/ 플라카 지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