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6월18일
근대역사문화공간, 옛 건물 고스란히
해상케이블카 타면 유달산과 바다 '한눈에'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목포 고하도 해상 데크 / 김서영 기자
‘지붕 없는 박물관’. 지난 6월 13일 목포역에 내려 관광 안내책자를 뽑아 드니 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감을 내보일
만큼 목포에는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공간이 많다. 그러면서도 목포는 시간이 멈춘 박물관이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
를 쌓아갈 길을 도모하고 있다. 목포의 과거는 어떻게 미래로 이어질 것인가. 전남 목포시가 품은 이야기를 따라 2박3일
동안 걸었다.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에서 노적봉과 유달산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만난 조형물 / 김서영 기자
■역사가 밴 길 속에서
노적봉에 오르니 근대역사문화공간이 평탄하게 쭉 뻗은 광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오래된 골목은 어떤 이야기를 품었을까.
가장 먼저 조선 중기 명장 충무공 이순신의 일화가 전한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이 봉우리에 노적(짚과 섶)을 덮어
멀리서 보면 마치 군량미를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 해상에서 이를 본 왜적이 ‘저렇게 많은 군량미를 뒀으니 군사는
얼마나 많겠는가’ 생각하게 하여 지레 도망치게 하려는 작전이었다고 한다. 노적봉에서 바다 방향으로는 탁 트여 있기에,
먼바다에선 정말 산더미처럼 쌓인 군량미로 보였을 것 같다.
노적봉 바로 맞은편에 있는 유달산 공원 또한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어 목포와 그의 인연을 기린다. 노적봉과 유달산 공원
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수평선이 아니라 육지가 시야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그 섬이 고하도다. 목포는 조선 수군의 거점
이었기에, 이순신 장군 또한 정유재란 당시 고하도에 머물면서 백성들과 함께 수군을 재건해 전쟁에 임했다. 이 공을 기념
하기 위해 고하도에 1722년 충무공기념비를 세웠다. 동상은 1974년 건립했다.
유달산 공원에서 만난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 김서영 기자
조선시대 목포에는 ‘목포진’이 있었다. 진은 군사상 중요한 지역에 설치하는 기지다. 목포진은 세종 때인 1439년 수군기지로
설치했다. 이후 근대 개항기를 맞이해선 대한제국 관청으로도 사용했으니, 목포진은 목포의 근세와 근대를 잇는 역사공간인
셈이다.
근대역사문화공간을 걸어 내려가니 100년을 넘긴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다. 대한제국 개항기에 설립한 근대 일본식 건물들
이다.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근대역사관 1관(구 일본영사관)은 <호텔 델루나> 촬영지로 유명하고, 근대역사관 2관은
과거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었다. 지금은 예쁜 카페나 민박으로 활용 중인 일본식 상가주택과 가옥을 무심코 지나가
다가도 만날 수 있다. 일일이 찾아다니는 게 별 의미가 없을 정도여서 지도도 접었다. 아예 면(공간) 단위를 문화재
(등록문화재제718호)로 지정한 장소라 그런지 근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세트장 같았다. 그래서 이 일대는 차로 스쳐
지나가기보다는직접 걷는 편이 좋다.
걷다 보면 바다 냄새가 자연스레 밀려든다. 항구도시답게 목포를 대표하는 음식 9가지(목포 9미: 세발낙지·홍어삼합·민어회·
꽃게무침·갈치조림·병어회·준치무침·아구탕·우럭지리)는 전부 해산물이다. 아쉽지만 ‘혼밥’을 하기엔 장벽이 너무 컸다. 나
홀로 여행을 하며 메뉴를 고르다 보면 한식은 종종 밀려난다. 여럿이 푸지게 먹기는 좋지만 혼자 먹기엔 부담스럽기때문.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1인분 주문은 불가능한 식당도 많다. 근대역사문화공간 일대에서도 여행객 사이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을 몇군데 찾아봤지만 1인 손님은 받지 않는다기에 나중을 기약했다.
북항승강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가다 유달산승강장에 잠시 내리면 전망대까지 다녀올 수 있다. / 김서영 기자
■시원한 해상케이블카
목포 구도심을 다니다 문득 고개를 들면 어디서든 유달산이 눈에 담겼다. 그 뾰족뾰족한 정상을 선으로 이으며 분주하게
오가는 빨간 점이 목포 해상케이블카다. 하늘에 떠본 지가 언제였던가. 코로나19 탓에 비행기 근처에도 못 가본 지 오래다.
뜻밖에도 목포에서 케이블카 덕에 모처럼 지상에서 발을 떼고 날아올랐다.
해상케이블카는 북항승강장-유달산승강장-고하도승강장을 잇는다. 탑승객은 일반적으로 북항승강장에서 왕복 승차권을
구입해 중간에 유달산승강장을 거쳐 고하도를 오간다. 이 왕복 승차권으로 유달산승강장에서 내린 뒤 다시 탑승할 수 있다.
잠시 경치를 구경하거나, 체력이 받쳐주면 유달산을 좀더 올라 전망대까지 다녀올 수 있다. 고하도승강장을 나오면 트레킹
코스로 이어진다. 트레킹 코스는 두 방향으로 나뉜다. 하나는 용머리에서 목포대교를 조망하는 코스이고 다른 하나는 해안동
굴을 향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란 별명을 가진 전망대(고하도전망대)를 직접 보고 싶었던 터라 용머리 쪽을 택했다.
전망대에도 엘리베이터가 없고 산책로가 2㎞ 가까이 되기 때문에 계단과 오르막길에 임할 각오는 필요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고하도에 가면 전망대가 나오는 트레킹 코스가 있다. / 김서영 기자
가기 전 케이블카는 해 질 무렵에 타야 가장 예쁜 그림을 만날 수 있다는 조언을 꽤 들었다. SNS에 올라온 ‘인증숏’을 봐도
그래 보였다. 일부러 저녁 즈음에 맞춰갔다. 구름이 많이 끼어 화려한 일몰을 보진 못했다. 그렇다고 다음날로 미뤘다간
비를 만날 뻔했으니, 현지에선 날씨를 봐가며 유연하게 결정하는 편이 낫겠다. 무엇보다도 유달산에서 내려 전망대까지
찍고 오고, 고하도에서도 트레킹을 한다고 가정하면 왕복 서너시간은 족히 걸릴 듯싶었다. 돌아올 때를 고려하면 케이블카
를 너무 늦은 시간에 탑승할 경우 산책길이 어두워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평일에 간 덕에 케이블카를 혼자 누워
타는 호사를 누렸다. 주말엔 줄이 길다고 했다.
경동성당. 신안군 일대 도서지방의 선교활동을 위해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지원을 받아 1954년 건립됐다. / 김서영 기자
■어떻게 살 것인가
목포의 현대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는 목포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1924년 신안군
에서 태어나 1936년 목포로 이사 왔다. 목포진지 부근 골목에 ‘소년 김대중 공부방’이 남아 있다. 목포는 그가 정치에 처음
으로 도전한 무대이기도 하다. 김 전 대통령은 해운업으로 자리 잡은 이후 1954년 목포 제3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이후 서울로 정치무대를 옮겼다.
한때 정치인의 욕망구조란 무엇일까 고민해본 적이 있다. “상대 후보가 못 하는 일을 나는 할 수 있다”, “나를 뽑아달라”고
자신 있게 단언하는 그 ‘자의식 과잉’은 도대체 근거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여전히 답을 찾진 못했다. 뻔뻔함과 자신감
사이를 세련되게 오가는, 오로지 책임감만으로 정치에 임하는 인물은 유달산에서 가끔 발견되는 멸종위기종보다 희귀해
보인다.
목포 삼학도에 있는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엘 가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인을 알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아시아
민주주의와 남북평화에 투신한 공로로 2000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전시 끝자락으로 가면 생전
어록을 추린 코너가 있다. “국민의 애국심과 양심을 믿어야 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 “진정한 용기는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헌신에서 나온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힐링
서적’에서 발췌한 감성 글귀와 별다를 것 없다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유신에 반대해 한때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4차례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그의 인생을 알고 보면 말의 무게감이 와닿는다. 기념관 입구 화분에는 그를 상징하는 인동초가
놓여 있다.
목포가 역사의 도시임을 한눈에 보여주는 이정표 / 김서영 기자
■오래 갈 미래의 도시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을 나와 뒤편의 삼학도공원을 따라 목포역까지 걸었다. 2㎞ 남짓한 길은 SNS에 올라오는 예쁜
거리도 아니고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멈추는 명소도 아니다. 걷다 보니 ‘디젤’을 ‘듸젤’이라고 쓴 간판과 대형마트가 발명
되기도 전에 문을 열었을 법한, 오래된 슈퍼마켓을 만났다. 나이가 지긋한 주민들이 집 앞에 나와 빨래를 널고 이웃과
대화했다.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된 거리는 아니었지만, 마치 목포의 과거를 통째로 보존한 민속박물관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목포는 역사 깊은 도시다. 바꿔 말하면, 나이가 많다. 목포진을 찾아갈 때 할아버지 두분이 나누는 이야기를 스쳐
들었다. 요지는, “옛날엔 한 달, 두 달이 달랐는데 나이 먹으니 이젠 하루하루가 다르다”였다. 구시가지 군데군데 ‘임대
’ 딱지도 없이 비어 있는 상점과 휑한 거리를 보며 목포는 어쩌면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단계에 접어든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곤 하나, 과거에 박제되기만 한 박물관은 매력이 없다. 다행히 최근 해상케이블카와 평화광장의
춤추는 바다분수, 목포해상W쇼가 활기를 더하고 있다. 목포시가 내건 ‘오래 갈 미래의 도시, 슬로시티(slow city) 목포’가
통할 날이 오기를.
삼학도에서 목포역까지는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유달산을 이정표 삼아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겠거니
짐작하며 그냥 걸었다. 여행의 막바지였다. 이번 목포 일정은 날씨도 좋지 않았고, 문을 닫은 곳도 있어 허탕을 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충분했다.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 기념관에서 본 말이 자꾸 떠올랐다. 여행은 역시 어디를 가느냐
보다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끼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 깨달음으로 목포를 기억한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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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로따님~ 감사합니다.
목포는 볼거리 먹거리가 풍부한 곳입니다.
여러번을 가도 또가고 싶은곳이지요.
유달산에 있는 1등바위입니다.
고하도 전망대에서 담은 고하도 테크 맑은날 담았으면 더 멋졌을거에요.
흐린날도 넘 멋졌답니다.
저 멀리 보이는 해상 케이블카~ 저 해상 케이블카를 타고 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