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리(新桃里)는 지형지세가 평탄하므로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여 오래 전부터 곳곳에 소규모의 자연취락이 형성되었는데 이는 가까운 곳에 고려시대의 차귀현이 설치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신도2리의 경우 대정읍지(2014년)에는 이세번이 중종14년(1519) 기묘사화의 화를 입어 대정현 둔포에서 유배생활을 함으로써 소수의 인가가 이 지역으로 유입되어 마을의 시초를 이루니 이를 신도2리의 설촌기원이라고 한다. 16세기 말 주로 어업을 하는 사람들이 뒌개마을 일대에 들어와 거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1588년을 전후하여 유입인구가 더욱 늘어났고 포구 주변에 정착하여 어업을 생업으로 살았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왜구가 자주 출몰하므로 신변에 불안을 느낀 20여호의 주민들이 포구에서 멀리 떨어진 녹남봉 남쪽에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었으니 이들이 신도1리의 유래이다. 신도3리는 1795년경 녹남봉 동쪽에 살던 부(夫)씨가 새남곶 북쪽 들판 오로코미를 거쳐 비지낭케에 정착한 데서 그 유래를 찾는다.
신도리의 옛 이름은 뒌개로, 한자로는 돈포(敦浦, 頓浦)라고 썼다. 뒌개의 뜻은 확실하진 않지만, 지금의 신도2리에 있는 신도리 포구를 이른다. 뒌개 가까이에 있던 마을을 돈포리(敦浦里=뒌개을)라 하였으며, 18세기 말에 돈포리(頓浦里)로 표기했다. 신도리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도원리(桃源里)와 순창리(順昌里)를 통합하여 생겼는데, 새롭게 흥성하는 도원리라는 의미에서 신도리라 한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 초반 녹남오름 일대를 신도1리, 논깍골 인근을 신도2리, 비지낭케 주변을 신도3리로 구분하였다.(향토문화전자대전) 무릉리도 원래는 뒌개에 속했었다고 하고, 1757년에 고산리 수월봉에 세워진 영산비(靈山碑)에도 돈포면(敦浦面)이라고 표기한 것으로 보면 지금의 무릉리에서 고산리 일대까지 돈포면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신도리는 동쪽 멀리 한라산이 보이고 그 외 지역은 평탄한 지세여서 서쪽이 훤히 트인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런 지형 조건을 보(補)하고자 탑을 세운 것이다. 대정읍지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시기는 미상이다. 방사탑은 마을 어느 한 방위에 불길(不吉)한 징조(徵兆)가 비치거나 풍수지리에 의해 허(虛)한 곳으로 들어오는 액운(사악한 기운)을 막으려고 세운 탑이다. 신도2리에서는 서쪽이 허(虛)하다고 판단되어 해안에 2기의 탑을 세웠다. 마을 사람들은 이 탑을 세움으로 해서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현장의 안내판에는 〈서쪽이 허(虛)하다고 판단되어 해안에 2기의 탑을 세웠다. 마을 사람들은 이 탑을 세움으로 해서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탑은 비교적 평탄한 지형에 높이 240cm의 원통형(圓筒形)으로 잡석허튼층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탑 위에는 높이 100cm 정도의 남자형 석상을 세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탑1호
위치 ; 대정읍 신도리 3012-3번지(신도2리 해안도로변)
시대 ; 미상(2005년 전후 재축조)
유형 ; 민간신앙(비보탑)
규격 ; 탑 높이 345cm, 둘레 1130cm, 상부 직경 270cm
석상 높이 120cm, 너비 50cm, 폭 38cm
탑1호는 비교적 평탄한 지형에 높이 240cm의 원통형(圓筒形)으로 잡석허튼층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탑 위에는 높이 100cm 정도의 남자형 석상을 세웠다.(현장의 안내판) 안내판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원래부터 있었던 방사탑이 멸실되었다가 최근에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이 탑(1호=북쪽)은 2006년 여름 태풍에 훼손되어 석상이 밑으로 굴러떨어져 있는 것을 2007년에 보수했다가 2011년에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다시 쌓았다.
탑2호
위치 ; 대정읍 신도리 3125-5번지. 신도2리 해안도로변
규격 ; 탑 높이 190cm, 둘레 960cm, 상부 직경 270cm
석상 높이 120cm, 너비 50cm, 폭 38cm
남제주군 문화유적분포지도에 나온 사진을 보면 ‘신도2리 비지정 방사탑 2호’가 해안도로의 동쪽에 있었는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었다. 원래 있었던 방사탑은 멸실되었다가 2004년에 길 서쪽에 복원했는데 그 때만 해도 탑이 있는 곳은 도로보다 약간 높은 지형이었으나 2011년에는 도로와 같게 평지로 만들고 다시 세웠으며 주변은 공원처럼 조경했다.
《작성 2008.06.15. 보완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