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 작가의 소설집 『붉은 달』(푸른사상 소설선 75번).
인간 내면의 상처를 성찰하는 인물들을 내세워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잊혀가는 사랑과 양심, 자연과 고향의 가치 등을 환기한다. 작품의 인물들은 실패와 상처를 입지만, 절망에 함몰되지 않고 다시 삶을 향해 걸어간다. 인간의 시간 인식을 토대로 한 소설들은 고통받는 영혼들의 성찰을 담은 기록이자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회복의 서사이다.
2026년 9월 22일 간행.
■ 작가 소개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경기여중고와 이화여대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 단편소설 「갈증」으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창작집으로 『유리벽 저쪽』 『길 위에 서면 나그네가 된다』 『제로섬 게임』 『그대 뒤에서 꽃 지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 『꽃비 내리다』 『벚꽃은 바람에 흩날리고』, 장편소설로 『파라도』 『불꽃나무』(상, 중, 하) 『누가 챔피언을 먹었나』 『송자소전』 『장대한 희망』 『미친 해바라기』 『함성』 『생존자들의 환타지아』, 콩트집으로 『웃는 세상』, 수필집으로 『아득한 존재의 숨결』과 국제펜한국본부 번역 시리즈 첫 번째 선정작인 번역소설집 『Paradise Island and Coughing』 등이 있다.
윤동주문학상, 민족문학상, 한국문학백년상, 최우수예술인작가상, 이화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펜문학상, 한국예총예술인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붉은 달은 피와 파괴를 통한 죽음이나 희생을 제시하며, 인간의 변화를 통해 요동치는 운명의 뒤바꿈으로 새로운 시대나 삶의 전환점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또한 신비함과 초월을 통하여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를 예측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문학적으로서의 붉은 달은 인간의 운명, 열정, 희생, 불안을 상징하곤 합니다. 성경에서도 붉은 달은 하나님의 심판, 경고, 그리고 큰 변화의 징조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붉은 달은 단순히 아름다운 천문 현상을 넘어서 오랫동안 인류의 상상력과 신앙 속에서 변화와 경외감을 상징하는 특별한 존재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기에 붉은 달은 하늘의 상처이자 인간 마음속 깊은 곳을 비추는 거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잠 못 이루는 밤이면 붉은 달을 떠올리면서 세상이 잠든 시간이 아니라 영혼이 깨어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소설의 소재를 깊이 생각하곤 했습니다.
■ 작품 해설 중에서
이 인물들은 상처를 입고 실패하며 후회하지만, 끝내 절망에 머물지 않는다. 여행을 떠나고, 자연을 찾고, 사랑을 기억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다시 삶을 향해 걸어간다. 그들은 각각 문학 속에서, 자연 속에서, 가족의 기억 속에서, 고향을 향한 그리움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김선주의 소설은 복잡한 스토리나 파격적인 구성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인간 내면의 상처에 대해 성찰하는 인물들을 내세워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잊혀가는 사랑과 양심, 자연과 고향의 가치 등을 꾸준히 환기한다. 이들 소설은 고통받는 영혼들의 스스로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자 결국 그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회복의 서사’로 읽힌다.
―박덕규(문학평론가)
■ 작품 속으로
순간, 남편의 눈동자가 노을빛으로 물든다. 아득한 우주에 붉은 달이 둥실 떠오른다. 범접할 수 없는 외로움과 슬픔이 가득하다. 부조리로 가득 찬 지엄한 실존의 벽에 부딪쳐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 그 여자는 숨이 턱 막힌다.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알베르 카뮈의 환영이 어른거리고 있음을 그 여자는 또렷이 감지한다.
‘인간은 자기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천재(天災)나 전쟁이 있는 한은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그러나 반항하면서 죽어야 한다.’
그 여자는 남편의 환청을 들으면서 붉은 달에 휩싸인 핏발 선 눈동자를 언제까지나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다.
마침내 그 여자는 손을 들어서 남편의 부릅뜬 두 눈을 애틋하게 감싸준다. 그 여자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비가 되어 하염없이 흐른다. (「붉은 달」, 105~1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