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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왜 미사를 거행하는가?
코로나-19가 가져온 일상의 변화는 어느덧 신앙생활에도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매 주일 형제자매들이 성당에 모여 미사를 봉헌하던 모습이 특별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이 ‘멈춤’의 순간이 우리 믿음의 상태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너무 당연히 여겨왔던 신앙의 선물과 일상의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도록 초대하기 때문입니다. 대면 미사가 중단된 시기에 ‘미사 밖 영성체 예식’을 통해서 성체만이라도 모시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많은 신자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주일 집회가 금지되기도 했던 초세기 박해 때에 “우리는 주님의 성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한 순교자들의 모습을 다시 마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 신앙인은 미사에서 주어지는 하느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성체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영적 갈망을 품고 사는 우리가 신앙의 가장 큰 선물인 미사의 은총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왜 우리는 미사를 거행하나요? 미사는 나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누군가에게는 미사 봉헌이 하루 혹은 한 주간의 생활에 생명을 불어넣는 원천과도 같고, 누군가에게는 내가 지향하는 삶의 정점이 될 것입니다. 어떤 말로 표현하든 미사에서 우리가 체험하는 모든 은총은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의 선물입니다. 그 사랑을 요한복음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가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 걸려 넘어지고 당신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을 알면서도 품으시는 사랑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의 정신이 사랑의 성사인 성체성사 안에 녹아 있습니다.
수난 전날 저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빵과 포도주를 들고 감사의 기도를 바치신 다음 당신의 몸과 피를 제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라고 명하셨습니다. 교회는 이 명령에 충실하여 미사를 거행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를 행하여라”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이것’이 가리키는 것은 단지 예식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예수님께서 성찬례 제정 안에 담으신 당신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행하여라’(요한 13,15 참조).
요한복음이 들려주는 바와 같이 그날 저녁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스승 예수님처럼 자기 자신을 낮춰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라는 것이 성찬례 거행의 정신입니다. 이는 ‘건너감’을 의미하는 파스카의 신비입니다. 나만을 생각하고 나의 이기적인 욕망만을 추구하는 죽음의 삶에서 탈출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생명의 삶으로 넘어가게 하는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파스카를 완성하는 이 근본적인 ‘건너감’을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를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의 기념’이라 부릅니다.
[전례 주년과 성모 공경]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유래와 의미(10월 7일)
상반기에 가장 좋은 달(시절)을 5월 ‘성모 성월’이라 한다면, 하반기에 가장 좋은 달(시절)은 10월 ‘묵주기도 성월’(예전 ‘로사리오 성월’)이라 할 것이다. 묵주기도의 성월은 개인과 가정 성화, 인류 구원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더 열심히 바치도록 권고된 달이며, 특히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은 묵주기도 성월의 중심이라 할 것이다.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의 유래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은 교황 비오 5세가 묵주기도로 승리를 거둔 1571년 ‘레판토 해전’의 날(10월 7일)을 기념하여 축일로 제정하였는데, 그 후 1883년 발표한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수프레미 아포스톨라투스’(Supremi Apostolatus)에 의해 10월이 묵주기도 성월로 설정되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전쟁인 ‘레판토 해전’과 묵주기도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 연전연승을 거듭해 온 터키군은 1571년, 로마를 점령하고 가톨릭을 지상에서 말살시키려고 대 함대를 몰고 이탈리아로 쳐들어왔다. 위기에 몰린 교황 비오 5세는 제후들에게 원조를 청했으나 겨우 하나의 소함대를 편성할 수밖에 없었다. 적의 절반도 못 되는 병력으로 맞서 싸워야 했던 절박한 상황에서 교황은 온 가톨릭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할 것을 호소하였다. 교황은 로마에서 성직자, 신자들과 뜻을 합하여 열심히 묵주기도를 바쳤고, 함대에 있는 장병들도 교황의 호소에 따라 전심으로 묵주기도를 바쳤다.
1571년 10월 7일, 최초의 해전에서 가톨릭의 수 척의 군함은 이미 격침되었고 다시는 싸울 희망조차 없이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전황이 우세하게 되어 마침내 이슬람의 함대를 전부 격퇴시켰다. 당시 신자들과 교회는 그때 거둔 승리가 묵주기도를 바침으로써 성모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즉 묵주기도가 이와 같은 대승리를 가져오게 했고 유럽 전체의 천주교 신앙을 구해준 것이라 믿었다.
이 승보에 접한 전 로마 시민들은 기뻐 환호하였고, 방방곡곡에서 성모님께 대한 감사의 예식이 거행되었다. 그때부터 성모 호칭 기도에 “지극히 거룩한 로사리오의 모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기도문이 삽입되었고, 1572년 비오 5세 교황은 10월 7일을 ‘승리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제정하였다. 바오로 6세 교황은 1967년 터키를 방문하여, 레판토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탈취한 회교도의 국기를 되돌려 주면서,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기념하는 대상은 ‘평화의 신비를 낳으신’ 그리스도이심을 선언하였다.
묵주기도의 기원
우리가 바치는 묵주기도의 기원은 초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기도 대신 장미 꽃다발을 바치기도 했으며, 순교자들에게는 장미관을 씌어드리기도 하였다. 묵주기도의 정확한 유래는 알려지지 않으나 초세기의 은수자들이 죽은 이들을 위하여 시편을 외우면서 작은 돌멩이나 곡식의 낟알을 굴리면서 기도의 횟수를 세는 데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로사리오(Rosario)는 ‘장미 꽃다발’ 혹은 ‘장미 화환’을 뜻하며, ‘로사리오 기도’란 ‘장미 꽃다발 기도’를, 묵주 알 하나는 장미 한 송이를 의미한다. 장미 한 다발, 묵주의 기도는 복음서의 요약이자 인류 구원의 신비, 그리스도의 신비, 교회의 신비, 그리고 마리아의 신비를 요약, 함축하고 있다. 환희, 고통, 영광의 15단 묵주의 기도가 자리 잡게 된 것은 15세기 말경이며, 오늘날과 같은 묵주의 기도는 ‘묵주의 기도의 교황’이라 불리는 비오 5세에 의해 1569년에 만들어졌다.
묵주의 기도는 1830년 이후 세계 각처에서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께서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바칠 것을 권고하시면서 급속히 확산되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1830년 파리에서, 1858년 루르드에서, 1917년 파티마에서 발현할 때마다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바치도록 간곡히 당부하셨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사도적 권고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을 통해 “묵주의 기도는 복음 전체의 요약이자 구원적인 강생에 집중하는 기도며, 그리스도께 대한 끊임없는 찬미이고 순수한 기도”(46항)이라고 정의한다. 그 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2년 10월 16일에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Rosarium Virginis Mariae)를 발표하고, 2002년 10월부터 2003년 10월까지를 ‘묵주기도의 해’로 선포하여 특별히 이 기간에 묵주기도를 더욱 자주 바쳐줄 것을 당부했다.
교황은 자신의 재위 24주년인 이날 발표한 교서에서 묵주기도를 ‘복음의 요약’이라고 부르면서 묵주기도가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를 관상할 수 있는 탁월한 수단이며 평화와 가정을 위한 강력한 기도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특히 환희의 신비와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묵주기도에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활의 다섯 가지 신비를 묵상하는 ‘빛의 신비’를 추가하고, 빛의 신비를 환희의 신비와 고통의 신비 사이에 바쳐 달라고 당부했다. ‘빛의 신비’는 예수님 공생활의 핵심 신비들에 대한 묵상을 통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신비에 대해 빛을 비추어 깊은 이해와 감사에로 이끌어 준다.
이렇게 역대 교황들은 묵주의 기도의 중요성과 함께 묵주의 기도의 은총을 계속 강조해 오고 있다. 교황 비오 10세는 “묵주의 기도만큼 아름답고 은총을 많이 내리게 하는 기도는 없다.”면서 묵주의 기도를 매일 정성스럽게 바치라고 유언했다.
묵주기도는 인생의 시련 중에 인내와 희망 잃지 않도록 도와줘
묵주의 기도를 통해 묵상하게 되는 예수의 탄생(환희), 죽음(고통), 부활(영광)의 신비는 우리 삶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쁨 뒤에 고통이 찾아오고 그 고통 뒤에 영광이 찾아온다는 단순한 진리를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 바로 여기에 묵주의 기도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묵주의 기도는 환희, 고통, 영광이라는 이 ‘삼각 순환고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을 완벽하게 담아내고 있으며, 인생의 시련 중에 인내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묵주의 기도를 드리면서 성모님과 함께 기뻐하고,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수난에 일치하며,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은총을 충만히 얻도록 하자. 그것이 묵주기도의 본질적 목적이며, 여타의 개인적 지향은 성모님께 의탁하며 맡겨드려야 할 것이다.
전례 탐구 생활 (61) 영성체 후 기도
사제와 교우들은 성체를 모시고 나서 잠깐 속으로 기도를 바칩니다. 이때 필요하다면 회중 전체가 시편이나 다른 찬양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백성의 기도를 완결하고 영성체 예식을 모두 마치기 위하여”, 또 “방금 거행한 신비가 좋은 결실을 가져오도록” 사제는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칩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89항). 합당하게 성체를 모시기 위하여 단계별 준비를 지나왔듯이, 영성체 후에도 침묵, 찬양, 기도의 단계를 거치며 우리가 받은 천상 산물에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의 마음과 더불어 성체를 받아 모신 우리가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청하는 내용도 영성체 후 기도에 담겨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대 레오 교황의 말씀을 인용하여 가르치듯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어 받는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받아 모시는 그것으로 우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교회 헌장, 26항).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했을 때 이미 시작된 우리의 변화 과정이 탄력을 받아, 그 지나간 자리에 또 다른 변화를 불러일으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우리가 받아 모시면, 이제 우리 자신이 변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곧 그분의 살과 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빵을 나누어 먹습니다. 이는 우리 자신이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여 흠숭은 결합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더 이상 단순히 우리 앞에 전혀 다른 분으로 서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 안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역동적 힘이 우리 안에 들어오고 또 온 세상을 채울 때까지 다른 이들을 향하여 퍼져 나갑니다. 그렇게 하여 하느님의 사랑은 참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2005년 8월 21일 제20차 세계청년대회 강론)
영성체를 하면서 우리는 영혼의 눈으로, 성찬례가 우리를 위하여 열어 준 새 하늘과 새 땅을 어렴풋이나마 봅니다.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그곳에서는 성찬례 안에서 맛보는 평화와 일치, 사랑과 우애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광경을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아니, 그 안에서 살 것입니다. 그러나 그전까지는 변화된 말과 행동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새로운 미래를 현재에 접목시키고, 우리가 되어야 할 존재를 부분적으로나마 미리 살아가도록 부름받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신 우리는 우리의 나약한 의지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기운을 얻고 성령의 힘으로 격려를 받아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미래로 사람들이 마음을 열게 되도록 영성체 후 기도를 통해 또다시 간청하는 것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이 모든 과정을 “존재의 핵심에서 일어나는 핵융합”에 비유하시며, 오직 “악을 이기는 선의 내밀한 폭발만이 점진적으로 세상을 바꿀 일련의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일으키시는 ‘선의 폭발력’을 의식하며,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치는 동안 우리 삶과 주변에 있는 모든 불일치의 씨앗을 그리스도의 몸의 일치시키는 힘으로 몰아낼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문화사에 따른 전례] 「로마 예식서」(Ordines Romani, 7-10세기)
개별 전례 봉사자들의 단순한 창의성에 맡길 수 없는 전례 거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려면 주례자에게 기도문을, 독서자에게 독서 본문을, 성가대에게 성가집을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에 교회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서로 다른 전례 봉사자들이 질서 있게 전례를 전개하도록 안내하는 전례 예식 지침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당시의 예식 순서를 정확하게 제공하는 책이 ‘예식서’(Ordines)다.
이런 의미에서 예식서는 전례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시대와 장소에 대한 적응 이해를 위한 매우 중요한 매개체로서, 전례 역사에서 중요한 기준을 제공하고 종종 우리가 특정 시대의 신학적 전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컨대 로마의 순회 미사에는, 전에 바쳤던 미사 때 축성된 빵 조각을 입당 행렬 때 함께 모시고 들어가 성찬 전례 때 그것을 성작에 넣는 예식이 있다. 이는 서로 다른 시기에 거행된 두 미사 사이의 연관성을 명확히 드러내고자 함이었다. 이렇듯 로마 예식서는 지금은 행하지 않는 예식이 과거에 어떤 신학적 의미를 지녔는지를 파악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예식서
7세기부터 ‘Ordo’ 또는 ‘Ordinarium’이라는 이름으로 책들이 작성되기 시작하는데, 한국어로는 ‘예식서’라 통칭한다. 특정 교구나 성당, 수도원의 특별한 전례 관습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수도원의 경우 ‘수도원 관례에 따른’이라는 구체적인 용어가 덧붙여진다. 주로 교구의 행정적-법적 규범을 모아놓은 규범집(Capitularia)에 적용하던 것을 이제는 전례적 규범에도 적용했다.
「로마 예식서」의 초기 형태는 그레고리오 교황(590-604년 재위) 시대에 편집되었다고도 하고,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에 작성되었다고도 한다. 이 예식서는 전례가 어떻게 거행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지침들이 적힌 소책자(libelli)에서 유래한다. 이 예식서들은 반복적으로 복제되었는데, 특히 로마 밖의 지역에서 그러했다. 결과적으로 그만큼 자주 원문이 수정되었다. 그 지역이나 지방의 고유성이 고려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사본의 필사 전통이 다양했기에 「로마 예식서」의 본디 형태를 되살리는 일은 쉽지 않다.
「로마 예식서」 비평본
「로마 예식서」는 여러 편집자가 출판했는데, 시대순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카산데르가 1558-1561년, 히토르프는 1568년, 마비용-제르망이 1687-1689년, 그리고 마르텐은 1700-1702년, 그전에 나온 모든 사본을 모아 하나의 시리즈로 출판했다. 1889년에는 뒤셴이 새로운 총서를, 1931-1961년에 걸쳐 앙드리외가 그때까지 알려진 모든 「로마 예식서」의 비평본을 펴냈다.
마비용은 총 15개의 예식서를 선보였다. 반면 앙드리외는 예식서를 50편으로 구분하여 출판하였고, 수많은 필사본을 연구하며 이를 두 범주로 분류했다. 하나는 순수 로마 전례를, 다른 하나는 프랑코-게르만화된 로마 전례를 표현했다. 「로마 예식서」 관련 연구에서 앙드리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구분을 하고 새로운 번호를 지정했는데, 각 부분의 주제와 작성 시기에 대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결과라 하겠다.
열 개의 주제로 나뉘는 「로마 예식서」
「로마 예식서」를 주제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1) 1-10번은 로마 주교가 거행하는 미사, 2) 11번은 세례 예식, 3) 12-14번은 시간 전례에서 바치는 성가와 독서에 대한 규정, 4) 15-19번은 수도원 전례에 대한 규정, 5) 20-33번은 전례주년의 특정 세부 사항들, 6) 34-40번은 주교와 성직자의 서품, 그리고 사계의 날 시기 전례(계절마다 3일씩, 단식하고 금육하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특별히 기도하던 시기-필자 주), 7) 41-45번은 로마에 있는 성당들의 봉헌과 유해 안치에 관련된 관행 설명, 8) 46-48번은 황제의 대관에 관한 규정, 9) 49번은 장례 예식, 10) 50번은 950년 무렵 이후 마인츠의 성 알바노 성당에 있던 규정이다.
여기서 50번은 같은 시기에 생겨난 「로마-게르만 주교 예식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다룬다. 951년에서 972년 사이에 오토 1세 황제는 게르만족 주교들을 수행원으로 하여 이탈리아를 여러 차례 방문하였는데, 그때 이 「로마-게르만 주교 예식서」를 가져갔다.
로마 순회 미사의 입당 예식
순회 미사가 열리는 날이면 교황은 아침 일찍 라테라노 주교관에서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말을 탄 채 성당까지 행차한다. 그 성당은 교황 미사가 거행될 장소로서 전날 미사에서 공지된 곳이다. 한편에서는 고위직 관리들이, 다른 한편에서는 전례 직무를 맡은 부제와 차부제, 시종들이 교황을 수행한다. 그들은 손에 라테라노 궁의 제구실에서 가져온 전례서와 제구, 제대포, 그 밖의 전례 용품을 든다.
순회 미사 지정 성당에 도착하면, 교황은 양쪽에서 의전을 돕는 부제 두 명의 도움을 받아 대성전 앞 제의실로 간다. 아마포 장백의는 입고 허리에 띠를 두른 다음, 목이나 어깨에 개두포를 걸친다. 그 위에 두 벌의 달마티가를 입고 나서 제의를 입는다. 마지막으로 두 개의 표지가 교황에게 건네진다. 제의 위 목에 헐렁하게 둘러 핀으로 고정하는 팔리움과 오른손에 드는 예식용 작은 수건인 마풀라다.
교황이 신호를 보내면 일곱 촛대 위의 촛불이 밝혀지고, 담당 차부제는 향로에 향을 넣으며 성가대는 전령의 지시로 입당송을 시작한다. 맨 앞에 향로를 든 차부제가 걸어가고 그 뒤로 일곱 명의 초 봉사자가 따르며, 마지막으로 부제들과 차부제들이 간다. 그들이 제대를 향하는 중에 차부제 한 명과 시종 두 명은 덮개가 열린 성체함을 교황에게 가져온다.
성체함에는 가장 최근의 교황 집전 미사에서 축성된 빵 조각이 담겨 있다. 이 빵 조각은 성찬 전례의 성작에 옮겨질 것이다. 또한 시종은 교황이 축성한 빵의 일부를 영성체 전에 로마 곳곳의 명의 성당들(tituli)로 가져간다. 그곳에서 사목하는 신부들이 성찬 전례를 거행하면서 성작에 빵 조각을 넣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성체 조각을 통해 시간적 지속성과 공간적 연대성을 드러내려 노력했다.
「로마 예식서」는 많은 이유에서 값지다. 어떤 경우에는 로마 관습과 프랑크-게르만 관습을 분명히 구별해 주고, 기도와 독서 그리고 성가의 점진적인 성문화 과정을 보여 주기도 한다.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지침들과 그 시기 다양한 전례 거행 방법을 제공한다. 끝으로 8세기와 9세기 로마와 알프스 북부 교회의 전례 관습과 생활 방식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문화사에 따른 전례] 그레고리오성가의 발전(9-12세기)
그레고리오성가는 가톨릭의 전례음악이지만 넓게는 서양음악의 원천으로 최초의 고전음악이다. 중세 교회음악의 정착은 그레고리오성가의 제정으로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중세 유럽 국가들의 가장 중요한 종교로 자리 잡으면서 그레고리오 1세 교황(590-604년 재위)은 지역별 예배와 그에 따른 음악을 정비하여 로마의 표준화된 전례 예식에 사용되는 음악을 제정하였는데, 그것이 그레고리오성가다.
600년 무렵부터 각 지역의 다양한 성가를 수집하고 창작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지만 완전한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은 800년 이후부터이다. 그레고리오성가의 정착 과정에서 얻어진 기보법, 교회선법, 성가의 형식, 연주 방법 등은 중세 교회음악의 토대가 되었다.
기보법과 다성음악의 탄생
그레고리오성가는 베네딕토수도원의 노력으로 유럽 전역의 수도원에 보급되었다. 이들 수도원 가운데에서도, 특히 성 갈렌(St. Gallen) 수도원은 그레고리오성가의사본을 소장한 수도원으로 유명하다. 이곳이 소장한 사본에 따르면 그레고리오성가는 800년 무렵 프랑크 지역에서 형태가 완성되었던 것 같다.
이 시기에 이르면서 서양음악에는 기보법과 다성음악이 나타났고, 음악 형식도 서서히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전례 거행에서 단선율로만 연주되던 그레고리오 성가는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다성부음악으로 연주되었다. 이에 따라 그레고리오성가는 점차 변화를 맞이하였다.
초기의 다성부음악은 그레고리오성가를 기초로 만들어졌으나 점차 새로이 창작된 선율과 심지어 세속 선율을 이용하면서 그레고리오성가가 지녔던 순수한 종교적 특성이 쇠퇴하는 경향도
보였다.
악보 전수로의 전환
음악의 기보법이 등장한 9세기 이전만 해도 그레고리오성가는 일정한 악보 없이 구전에 따른 가창 방법으로 전수되었다. 구체적으로는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이 설립한 스콜라 칸토룸(Schola Cantorum)이라는 가창 학교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실베스테르 1세 교황(314-335년 재위과 힐라리오 교황(461-468년 재위) 때 스콜라 칸토룸과 흡사한 교육기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레고리오 1세 교황 때처럼 체계적, 발전적 교육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9세기가 되면서 구전에 따른 가창 방법은 점차 음악의 기보대로 부르는 가창 방법으로 바뀌었다. 초기의 기보 방식은 가사 억양에 따라 단순한 기호를 붙이는 것이었다. 이러한 단순한 기호를 ‘손짓’, ‘몸짓’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네우마’(neuma)라고 불렀다. 네우마는 음표의 내용을 표시하는 선, 점 등을 말한다.
네우마는 노래의 가사 위에 붙여졌는데, 단순히 선율의 음높이가 진행하는 방향만을 제시해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네우마의 음높이를 정하는 데 선을 사용했다. 가장 초기에는 1-2개의 선이 사용되다가 점차 7-8개까지 증가하였으나 아레초의 귀도(980?-1050년?)에 의하여 4개의 선으로 정착되었다. 귀도는 4선보뿐만 아니라 ‘성 요한의 찬가’의 첫 음절을 따서 6음 음계를 창안하였고 이를 통하여 시창 방법도 고안했다. 현대의 계명도 귀도의 6음 음계 구성음인 (ut[do]), 레(re), 미(mi), 파(fa), 솔(sol), 라(la)에서 오늘 모습에 이르게 된다.
세속적 요소의 유입
중세 교회음악은 대부분 성경에 기초하지만 9세기 무렵부터는 성경과 무관한 세속적인 요소들이 유입되면서 여러 변화가 나타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배타적이던 비성서적 요소들이 서서히 전례 예식에 들어왔고, 지역에 따라서는 심지어 비성서적 또는 세속적인 요소들이 장려될 만큼 유입 속도가 빨랐다.
그러면서 북유럽 국가들은 점차 지역 특성에 맞는 음악을 추구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경향은 권위와 전통의 상징이던 로마 성가에도 변화를 주었다. 이러한 교회음악 창작 표현의 확대가 가져온 부산물은 트로푸스(tropus), 세쿠엔찌아(sequentia), 전례극, 콘둑투스(conductus) 등이다.
그동안 중세의 교회음악은 성직자들이나 교회에서 종사하는 음악가들이 주도하고 창작했지만 이 시기에는 교회에 속하지 않은 시인들과 음악가들의 가사와 음악이 교회음악에 활용되었다. 이들의 음악은 반드시 성경에 기초하지 않았고 자유롭게 창작되어서, 비성서적인 부분도 많았지만 음악적으로는 뛰어나고 기존 성가보다 인기가 더 있었다. 물론 이러한 곡들은 대중적이고 세속적인 요소가 많아서 교회음악으로서 문제점을 가져오기도 했다.
새로운 기보법
세쿠엔찌아와 트로푸스는 새로운 음악 형식이 아니라 새로운 기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세쿠엔찌아는 이후 하나의 음악 형식으로 자리 잡아 수적으로 많지는 않아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트로푸스는 13세기에 이르러 완전히 사라졌다. 세쿠엔찌아를 트로푸스의 일종으로 보지만 실제로 그 둘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발생했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트로푸스는 기존 성가에 새로운 가사나 선율을 삽입하는 것을 말하는데, 초기에는 성가의 앞부분이나 끝부분에만 붙였지만 점차 성가의 중간 부분에도 덧붙여졌다. 성가에 삽입되는 방식을 보면, 하나는 기존하는 선율에 산문 형식의 새로운 가사를 붙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사에 사용되는 성가 안에 새로운 선율을, 때로 가사와 함께 끼워 넣는 것이다.
처음에는 미사의 성가 가운데 고유 기도문에만 트로푸스를 사용하였으나 나중에는 통상문에도 사용하면서 범위가 확대되었다. 트로프스는 성 갈렌수도원의 투오틸로(Tuotilo, 850-915년)가 처음 실제적으로 활용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근거는 없다.
세쿠엔찌아란 ‘알렐루야에 부속되어 따라오는 노래’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알렐루야’(alleluia)는 ‘하느님(ia)을 찬미하라(allelu)’라는 말인데, 하느님을 의미하는 ‘야’(ia)를 음악적 용어로는 ‘유빌루스’(jubilus, 환희)라고 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유빌루스인 ‘야’라는 하나의 음절에 많은 음을 사용하여 길고 화려하게 불렀다. 새로운 가사도 삽입되었는데 나중에는 알렐루야에서 떨어져 나와 음악과 가사를 독자적으로 가지는 별도의 노래로 발전하였다. 현재 부속가는 주님 부활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에는 의무이고,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에는 선택이다.
전례 탐구 생활 (60) 영성체 ③ 그리스도의 몸, 아멘!
지난 글에서 분배자가 성체를 주면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면, 영성체하는 이는 “아멘.” 하고 응답하는데, 이 응답은 신앙의 확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성체를 주는 사람이 말하는 대로 “나는 정말로 이 빵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믿습니다.” 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선언과 응답은 성체를 받아 모시는 이에게 객관적인 사실인정을 넘어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다가옵니다.
사제나 비정규 성체 분배자가 우리 앞에서 성체를 들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이 빵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습니까?”라는 질문 외에, 암묵적으로 “당신은 그리스도의 몸입니까?”라는 질문을 받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고, 당신의 형제자매와 친교를 이루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멘.” 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우리의 양식으로 받아 모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성체)을 우리 안에 모신다는 것(영성체)은 그것과 하나 된다는 것, 그것을 모신 다른 이들과 이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어 우리 모두가 함께 세상에서 더욱 참된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자 합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충고대로, 성찬례에서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이 되어야 하며, 바로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을 받아 모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되는 것에 ‘아멘,’이라고 대답합니다. 그 대답으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데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에 ‘아멘’이라고 대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성체할 때 하는 “아멘.”은, 그리스도께서 성부의 뜻에 끝까지 순명하시어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하신 ‘위대한 아멘’의 계속입니다. 이 대답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이루는 친교의 삶으로 들어가겠다는 우리의 각오를 표명합니다.
축성된 빵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올 때 거꾸로 우리 영혼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갑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예수님께서 영성체로 당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행위를 해석하면서 그러한 확신을 나타내었습니다. “나는 다 자란 사람의 양식이다. 네가 다 자라면 나를 먹고 살 것이다. 그러나 음식이 네 몸의 실체가 되듯이 나를 너의 실체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네가 내 안으로 들어와 바뀌어야 한다.” 위대한 중세 신학자인 대 알베르토 역시 이렇게 가르칩니다.
“이 성사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여 우리가 그분 뼈의 뼈가 되고, 그분 살의 살이 되고, 그분 지체의 지체가 되게 한다. … 그때마다 둘은 하나가 다른 하나로 완전히 변하는 방식으로 결합한다. 더 강한 것이 더 약한 것을 자기로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이 양식은 그것을 먹는 사람보다 더 강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먹는 사람들을 바로 그 양식으로 변화시킨다.”
영성체를 하면서 우리는 영혼의 눈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열어 준 새 하늘과 새 땅을 어렴풋이나마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그 새로운 미래를 말과 행동으로 현재에 접목시키고,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미리 경험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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