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시간
『분석과 평가보다 따뜻한 온기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욥기 26: 1-3. 620장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주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도 구원하여 주는구나
3 지혜 없는 자를 참 잘도 가르치는구나 큰 지식을 참 잘도 자랑하는구나
빌닷이 욥을 향해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 어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겠냐고 하였습니다.
욥기 26장 초반에 보면 욥은 빌닷에게
“네가 힘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주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잘도 구원하는구나! 누구의 정신이 네게서 나왔느냐?”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볼 때 빌닷을 비롯한 세 친구의 말은 욥에게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도 현자이며 의인이라고 불리던 자들인데 왜 욥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욥의 상황과 욥의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로받고 싶은 자를 죄인으로 낙인찍고, 하소연하고 싶은 이에게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고 규정하면 얼마나 참담하겠습니까?
우리가 욥의 세 친구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마음으로 느껴지지 않는 말은 그저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우리가 가진 과학, 학문, 철학, 사상 등,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것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욥의 세 친구는 그래서 원인을 파악하고 분석하고 결과를 찾아내서 규정하는 우리의 이성과 과학, 철학과 학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욥에게 필요한 것은 욥을 위로하는 한 마디 말입니다. 그저 묵묵히 욥이 기댈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온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피뢰침이 발명된 시대에 제우스의 우레가 무슨 소용이 있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 친구처럼 우리가 만든 피뢰침들은 편리할 수는 있지만, 우리를 더욱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우리의 공허를 채우고 무의미를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우레에 대한 상상력과 고백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우는 자가 있다면 네가 왜 울고 있고 무엇이 잘못되었고 다시 울지 않기 위해서 너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금 당장 그에게 필요한 것은 흐느껴 울 수 있는, 기댈 수 있는 어깨일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사는 것, 혼자서 너무 빨리 갈 필요 있습니까?
더디 가도 한 걸음씩, 서로 위로하고 이해하며 주님과 함께 가는 믿음의 벗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삶의 적용:원인과 분석보다 때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욱 소중함을 느끼십니까?
마무리기도
엄동설한과 같은 세상 속에서 사랑의 온기를 잃지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