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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탄
일병의 외치는 소리에 상병은 논바닥에 처박혀 쓰러진 이감독을 확인하려다 다가오는 두 여자를 돌아보고 다급하게 말했다.
“두 사람 거기서요! 또 한사람은 어디 있소?”
두 여자의 엉덩이 높이로 허리를 굽혔기 때문에 도치씨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일병이 말했다.
“여자분들 엉덩이에 숨었습니다.”
상병이 말했다.
“일어서세요. 남자가 그게 뭡니까?”
도치씨가 삘쭘하게 얼굴을 들고 말했다.
“숨긴 누가 숨었다고 그래요? 알지도 못하면서?”
두 여자는 그제야 도치씨가 자신들의 엉덩이에 붙어 따라 온 사실을 깨닫고 오진숙이 도치씨에게 말했다.
“도치형부 왜 그렇게 치사해요?”
도치씨가 머쓱한 표정을 짓자 우아영이 오진숙을 톡 쐈다.
“얜? 도치오빠 평소에 허리 나쁜 거 몰라? 허리 아픈데 어떻게 서서 걷냐?”
이어서 우아영이 상병에게 따졌다.
“이런데서 도망가면 어딜 간다고 사람에게 총을 쏴요? 당신은 분명히 우리 감독님을 죽였어요! 이젠 우리 차례네요?”
상병이 어이없는 얼굴로 우아영을 쳐다봤다.
“하! 사람 미치겠네? 공포탄에 맞아 죽는 얼간이도 있습니까?”
“뭐? 공포탄?”
도치씨가 두 여자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민 체 반문했다.
“지금 발사한 것은 공포탄입니다. 목적탄이 아니요.”
두 여자를 밀치고 상병 앞에 당당히 나서며 도치씨가 말했다.
“그런데 사람이 왜 죽습니까?”
상병이 말했다.
“도망가다 넘어진 거겠죠.”
오진숙이 말했다.
“우리 감독님은 절대 넘어질 사람이 아니에요. 총알 안 맞았으면 안 넘어져요. 생긴걸 보세요. 쉽사리 넘어질 사람처럼 보여요?”
우아영도 거들었다.
“그래요. 우리 감독님은 찔러도 피한방울 안 나오는 사람이에요. 총알 맞았으니까 쓰러진 거죠.”
상병과 두 여자 그리고 도치씨가 옥신각신 입씨름할 때 논바닥에서 첨벙거리는 소리가 났다. 모두 시선을 그쪽으로 집결했다.
논바닥에서 첨벙거리며 이감독이 비틀비틀 일어서고 있었다.
일어서는 이감독을 가리키며 상병이 말했다.
“보십시오. 총알 맞고 쓰러진 건지 아니면 공포탄에 놀라 얼간이 같이 기절한 것인지 확인하십시오. 총알 맞은 사람이 일어나는 건 영화 속에서나 있습니다.”
세 사람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머! 어쩜?”
“감독님 왜 저런대?”
“십년감수했다. 하여튼 안 죽었으니 다행이다.”
세 사람은 기가 막힌 건지 아니면 죽지 않은 이감독이 반가운건지 모를 말들을 한마디씩 했고 이감독은 논바닥에서 철버덕거리며 논두렁으로 걸어 나왔다.
두 여자와 도치씨는 논두렁에 선 이감독을 쳐다보며 묘한 기분에 젖었다.
죽었다 살아 온 사람을 본 그런 기분은 아니었다. 왠지 신경질 같은 감정이 목구멍을 넘어왔다.
이감독의 몰골 때문이었다.
얼굴과 옷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지푸라기를 잔득 묻힌 이감독의 초라한 몰골이 마치 쫓겨나 죽은 물귀신 같았다. 멀쩡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사람은 내면보다 외관이 깔끔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똑똑하고 용맹한 사람이라도 외관이 지저분해지면 평소의 인격은 아무 소용없다는 것이 진실인 것 같았다.
초라한 이감독을 쳐다보며 안쓰러운 목소리로 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안 죽었어요?”
“총 안 맞았잖아요?”
“뭐야? 비겁하게? 도망간다고 될 일이오? 지금?”
이감독이 말했다.
“미끄러져 넘어진 거요! 하여튼 미안해요!”
오진숙이 휴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어쨌거나 안도하는 한숨이었다. 우아영도 ‘푸’ 하고 오진숙과 비슷한 한숨을 쉬었다.
두 여자의 한숨 속엔 차마 들어내고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숨어 있었다.
두 여자의 비밀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오진숙은 이감독이 지급해 줘야할 지난달 광고출연료를 못 받게 됐다는 절망감이었고, 우아영이 안도한 것은 다음 주 헌팅 할 CF출연이 펑크 날 줄 알았던 것이다. CF가 펑크 나면 은행 이자도 그렇고 아파트월세도 그렇고 의상할부 값도 큰 걱정이었다. 카드를 막아야 하니까.
허지만 인간은 묘한 것.
일단 모든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안도한 두 여자는 이감독에게 야지 비슷한 말을 했다. 똥 누러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이 이 경우에도 적합할까?
이감독이 총을 맞았을 땐 제발 죽지만 말아 달라. 오진숙은 ‘내 출연료! 내 돈!’ 우아영은 ‘내 CF' 가 우선 간절했지만 이감독이 살이 있다는 확인 이후엔 절박했던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아영과 오진숙이 한마디씩 했다.
“총도 안 맞았는데 쓰러지세요? 아이고 웃겨!”
“완전 액션배우네요!”
얼굴에 묻은 지푸라기를 털어낼 생각도 못한 체 이감독이 상병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상병이 말했다.
“고맙긴 뭐가 고맙습니까? 공포탄 때문에 지금 초소가 발칵 뒤집어졌는데?”
상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무리의 군인들이 포위망을 압축해왔다. 군인들에 완전 포위된 네 사람은 낚시장비를 챙길 틈도 없이 두 손을 번쩍 들고 초소로 끌려갔다.
첫댓글 공포탄에 맞고 쓰러진 이감독을 보고
우아영과 오진숙 사람이 죽는건 둘째고
그놈어 돈 못받을것만 걱정 했다니
애인이고 여친이고 아무 소용 없군요.
여기서 여자를 사귀는 사람 들 정신 차려야 할것 같슴니다.
ㅎ
세상은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사람 목숨이나 의리보다 돈이 먼저죠.
성공하면 모이고 실패하면 흩어지고..떠나고.....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은 겁니다
오늘도 편한날 신나는 일만 가득하세요
점쟁이가 염불에는 정신인 없고 젯밥에만 눈이 어둡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제미있게 잘보았슴니다.
ㅋㅋㅋㅋ
그러게요.
중이 염불을 잘해야지...잿밥에 정신이 팔렸으니...도치씨도 그런 모양입니다.
고운밤되세요
겁먹고 공포탄에 맞아 쓰러진 이감독 5.25때를 연상케 합니다.
제미있게 잘보았슴니다.
5.25때는 제가 직접 경험하지 않아 잘모르지만 하여튼 정신 없습니다.지금도치씨요.
ㅋㅋㅋ
오늘밤도 편히 쉬세요
도치가 여자좋아하고 낚시좋아 하다가
결국은 빈총을 맞으며 여자 엉덩이 뒤에나 숨고
남자의 채면을 깎아버리내요,,ㅎㅎㅎ
네....ㅋㅋㅋ
꼭 젠틀맨님 보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젠틀맨님 사모님한테 쩔쩔맬 때가 연상되네요
결혼하기 전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