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는 자신을 즐겁게 하는데 재주가 없다. 오직 자식이 인생의 전부인듯 집중하였고
그 중에서도 아들 바라기는 해바라기가 무색할 정도였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정서적으로 결이 맞지 않아서 부부가 소통하지 못하고 일생동안 엉뚱한 곳 긁으며 산
부부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미래의 남편이 어떤 취미를 가져도 같이 공감하며 살 수 있도록 수석, 분재, 운동,
박물관 다니기, 등산, 바둑, 등등의 남자들이 선호하는 분야에 조금씩 익혀두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노처녀가 되었고 친구들이 결혼을 하여 자연스럽게 혼밥 혼영 혼쇼핑을 하였다. 무엇이든
혼자 하면 오히려 편한 부분도 있다. 길들이기 나름이다. .
지금은 부부가 자연인으로 사는 세월을 맞았다. 최근들어 남편의 투정이 들린다. 그러고보니
혼밥 혼운 하는 날이 부쩍 늘긴 했다. 퇴직하고 나면 아내와 알콩달콩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나들이를 다닐 줄 알았다는 이야기다.
나는 배려차 주기적으로 같이 운동하고 외식하고 여행하는 정도는 지키는데 원하는 만큼 항상
붙어있을 수는 없기에 스쳐듣고 말았다. 놀랍게도 아이들이 출가를 하고 나자 나의 일이 늘고
써야할 원고량도 많아지고 나를 찾는 곳도 많아졌다. 심심치 않았다. '혼영'도 서슴치 않게 되었다.
사람의 일이란 모를 일이 많아서 스치고 지나가는 말을 놓치면 후회가 따라는 법, 나는
시간이 나서 올림픽공원을 걷기로 했다. 가기만 하면 좋은 곳, 8천보를 걷고 식사를 하러 간다.
나는 번번히 달리 먹고싶고 남편은 그 장소 그 음식이 정해져 있다. "산들해"로 발길을 돌린다.
거부하다가 순간 마음을 바꾸어 남편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커피는 다른데서 마시자고
앞서 말해 두었다.
"여보 스타박스, 잊지 말아요. 선물받은 것 있어요..."
"당신은 음식 맛보다 낭만 찾는게 중요해?"
"그럼, 하나 밖에 없는 내 짝꿍인데...소중한 사람과 소중하게 차를 마셔야지."
이리하여 머신에서 종이컵에 받아먹는 커피를 피하고 스타벅스를 찾아 길로 나섰다.
걸어도 걸어도 스타벅스는 나오지 않고 우리는 잠실역까지 왔다.
'미세먼지나쁨 '속을 마스크 쓰고 걷다가 보니 허리가 아프다. 어디라도 앉고 싶다.
이제는 낭만이고 뭐고 보이지 않는다. 가장 하고싶은 일은 따끈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
허리를 펴주는 일이다. 커피를 포기하고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길을 건너 택시를
탈 여유도 생기지 않았다.
전철 안 의자가 그렇게 고마운 날은 없었다. 어느새 청담역에 도착하여 길로 나오니
건너편으로 스타벅스가 보인다. 남편이 내 손을 끈다.
"거기 가서 커피와 달달한 케익 한 조각 먹으면 낭만이 살아날거야"
"여보 나 파리 생각이 났어. 아이들이 이다음에 엄마 아빠 안데리고 간다고 할까봐
다리를 절름거리며 가장 뒤에서 걸었어, 생각해보니 꼬마 아이들이 엄마에게 힘들어서
징징거리면 이 다음에 안데리고 다닌다는 말 나올까봐 말도 못하고 고생했겠어. 여보.
세상 모든 약자는 힘들어. 나도 지금 힘들어. 낭만이고 뭐고 눕고만 싶어."
이리하여 변덕을 부리면서 낭만을 찾은 것도 나고 낭만을 버린 것도 나다.
결국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쇼파에 널브러져 두어시간 동안 꿀잠을 자고나서 또 밤에도 잘 잤다.
건강해야 낭만이 보장된다.
남편과 함께 일 때는 뭐든 좋게 하고싶다. 함께 머문 자리는 추억의 자리로 둔갑하므로
마구잡이로 살지 않아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하나씩 하나씩 서운함을 해결하고, 미련은 털어내고, 해줄 것은 해주면서 나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느낌도 남편과 대화를 해보았다.
"여보 미안해. 변덕의 주인공이 건강이었어. 미세먼지도 거들었을거야..... 다시 옵시다. "
세상에 늦은 이해라도 이해되면 서운하지 않다. 이해하고 이해받으려면 결과로 나타난
행동이 아니라 왜 그랬는지를 알아차리고 표현해야만 가능하다.
결국 남편은 낭만을 앞세워 커피 한 잔을 마시려다가 때를 놓치고 집에 와서 마셨다.
그래도 구시렁거리지 않고 내가 잠을 설치지 않고 잔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말해 주었다.
노부부의 요 밑으로 고마움이 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