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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 가리지 않고 ‘8년’, 마을 주민도 방관한 학대 | ||||||||||||
괴산 지적장애인 착취·학대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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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지역에서는 장애인 착취·학대가 일어난다. 본지에서 지난 4월에 보도한 김포 개농장 착취사건, 6월에 보도한 경북 안동 착취 의혹 등이 그 예다. 이러한 사건들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둘째, 가해자들이 하나같이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장애인을 거둬 줬다’ ‘먹여 주고 재워 주면 됐지 뭘 더 해주냐’ 등의 행태를 보인다는 점. 셋째, 주변에서 피해자를 직·간접적으로 방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월 1일,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이하 인권센터) 활동가들과 함께 찾아간 충북 괴산도 그런 경우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한 사람이 어떻게 학대 속에서 도움의 손길도 청하지 못한 채 밤낮 가리지 않고 8년간을 착취당했는지 들어 봤다.
제보가 들어온 것은 지난 8월, 괴산군의 한 집성촌에서 한 노인이 근 십 년 째 착취·학대당하고 있다는 제보였다. 내용에 따르면, 월급 한 푼 받지 못하고 농사일, 잔심부름 등의 격무에 시달리는 한편 집주인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욕설 등의 학대를 당한다는 것이었다. 피해자는 이모(64세, 장애등급 없음)씨로, 경증 지적장애로 추정되는 노인이었다. 지역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그가 마을에 온 것은 8~9년 전으로, 친형에 의해 마을로 보내졌다는 것. 그 전에는 3년 동안 파주의 가구 공장에서 일하기도 하고, 서울 등지에서 노숙을 하기도 하는 등 부침이 심한 날들을 보냈다. 가해자 박 씨 부부와 아는 사이였던 이 씨의 형은, ‘먹여주고 재워주기만’하는 조건으로 하 씨를 박 씨에게 맡기게 된다. 박 씨의 집은 절임배추, 고추 농사 등을 하는 농가로, 업무량이 아주 많은 집이었다. 하 씨 뿐 아니라 다른 일꾼들도 고용해, 일이 바쁜 시기에는 2~3명 이상도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이르면 새벽 여섯시부터 늦으면 밤 열두시, 혹은 그보다 늦은 시간까지 격무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 중 (최저임금이라도) 급여를 못 받고 있는 것은 이 씨 혼자였다. 뿐만 아니라 박 씨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이 씨를 상습적으로 욕하고, 때리기까지 했다. 파이프로, 삽으로, 손에 잡히는 대로 박 씨가 때리면, 맞는 것이 이 씨의 일상이었다. 박 씨가 이 씨에게 제공하는 것은 이 씨 형과 약속한 대로 먹고 자는 것뿐이었다. 이 씨는 집 한 켠에 있는 일꾼들 숙소에서 잠을 잤고, 때가 되면 밥을 먹었다. 가끔 돈이 필요하면 박 씨에게 요청했지만, 그나마나도 1, 2만원 정도로 한 달에 5만원 정도도 받지 못했다. 이 씨의 삶은 이후 8년간 그렇게 계속됐다. 일은 원래 맞으면서 하는 거지 지난 1일, 인권센터 활동가, 괴산군청 담당자, 지역 노인보호기관 담당자들과 함께 서둘러 피해자를 찾았다. 그는 다른 일꾼과 함께 밭에 농약을 뿌리고 있었다. 이 씨는 현재 상태에 대한 활동가들의 질문에 “밥 잘 먹고 잘 지내고 있고, 나한테 신경쓰지 마라”며 피하는 반응을 보였다.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요청에도 요지부동이었다. 특히 폭력 사실에 대해 묻자 “일은 원래 맞으면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못 해”라고 답변하며 학대에 익숙해진 듯한 반응을 보였다. 같이 있던 일꾼 송 씨는 “어제만 해도 파이프로 맞았다. 매일 욕먹고, 맞고 해서 보기가 참 안쓰럽다. 나는 돈이라도 받지, 저이는 돈 받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입을 열었다. 송 씨의 말에 의하면 전에도 몇 번이나 같이 서울에 올라가자고, 기초수급자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거절당했다는 것. 설득이 길어졌다. 관계자들이 이 씨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기 위해 설득하는 동안 박 씨가 나타났다. 박 씨는 최근 중풍을 앓아 거동이 불편해진 상태로, 일터에 나오진 않고 있었다. 박 씨는 나타나자마자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보이더니 “이렇게 말 한 마디 안 하고 우르르 몰려와서 일하던 사람들 데리고 가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항의했다. 박 씨가 나타나자 이 씨는 눈에 띄게 눈치를 살피는 듯한 기색이었다. 오랜 설득 끝에 이제 일을 안 해도 된다는 사실은 납득했지만, “박 씨가 허락하면 가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관계자들은 이 씨를 데리고 가야 한다고 법적인 사실을 통보하고, 이 씨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왔다.
총 65가구 중 학대 사실 증언자 없어 그런데 문제는, 이 씨에 대한 신고가 접수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난 2011년 똑같은 제보가 들어온 적이 있었지만, 마을 주민의 진술도 적었고, 학대 정황을 발견할 수 없어 그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이어 지난 2014년에는, 군청에 신고가 들어와 이 씨를 분리해 내려고 한 적이 있었지만 박 씨 부부가 이 씨에게 ‘칼로 찔러 죽이겠다’는 협박을 해서 그대로 남아 있게 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학대 사실이 의심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도, 몇 년 간 의혹만 계속된 이유를 마을 사람들을 탐문하면서 알 수 있었다. 관계자들은 “집성촌인 탓에 서로간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또 이 씨의 성정이 워낙 드세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되도록 문제제기를 안 하는 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작년에 군에서 한번 나왔을 때, 절차상의 실수로 신고자의 인적사항이 박 씨의 귀에 들어가 한바탕 곤혹을 치룬 적도 있다. 결국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는 학대 사실이 있어도 곧이곧대로 신고하기가 쉽지 않다”고 언급했다. 말대로 마을은 총 65가구뿐인 작은 마을이었다. 동네의 어느 곳에 가도 이 씨를 모르는 주민은 없었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대부분 이 씨에 대해서는 안다고 답했지만, 월급도 한 푼 받지 못하고 학대당하며 지낸 사실을 알았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 얘기를 해 줄 듯 하다가도, ‘맞은 것을 본 적이 있느냐’라고 말문을 열면 ‘그런 걸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하느냐’, ‘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현재 박 씨 집에는, 이 씨를 분리하러 갔을 때 있던 송 씨는 보이지 않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서울로 떠났다는 것이다. 고추밭에 가보자, 중국인으로 보이는 듯한 한 일꾼과 김씨의 아내가 밭일을 하고 있었다. 어떤 주민의 경우에는 ‘애초에 이 씨 형님하고 그렇게 얘기가 돼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니까 미리 계약서라도 써 놨어야지. 밀린 임금을 고스란히 줘야 될 텐데. 괜히 박 씨만 피해 보는 거다’라며 가해자 박 씨를 두둔하려는 기색을 보였다. 또 다른 일부 주민들의 경우에는 ‘내가 알아도 어떻게 말해, 아무리 그래도 같은 마을 사람이고 친척인데’라며 사실을 은폐하려는 기색을 보였다. 결국 정황상 마을 주민들이 이 씨의 학대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방관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례 1> <사례 2> 그간 일어났던 착취·학대 사건들과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사례 1>에서 보듯, 착취와 학대를 피해자 스스로 당연시하는 점, <사례 2>에서 보듯 장애인이면 ‘먹여 주고 재워 주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시선들이 이러한 지역 학대 사건들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쉼터로 분리… 밝혀진 것은 일부분 김강원 인권센터 팀장은 “현재 노동위원회에 임금체불 진정을 진행 중에 있고, 추가적으로 밝혀지는 사항에 따라 적절한 개입을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폭행 사실을 특정할 수 없어 학대 사실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점은 다소 문제가 됐다. 하지만 이처럼 학대 신고가 들어왔을 때 즉각적으로 분리 조치를 할 수 있고, 쉼터로까지 연계할 수 있어 하 씨를 학대 상황에서 분리해 낼 수 있었다는 점이 관계자들의 얘기였다. 김강팀장은 “최근 통과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에 이러한 권익옹호기관·쉼터 등의 사항들이 명시돼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라고 언급했다. 또한 “지역 재가장에인들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인식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 여전한 과제다”라고 덧붙였다. 이 씨는 현재 지역 노인보호기관에서 연계한 쉼터에서 지내고 있다. 관계자들은 “이후 노인요양 적용 연령이 될 때까지 쉼터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장애등급 판정을 받고, 주민등록증을 재발급하고, 은행 계좌를 확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인권센터 측에서 추가적으로 상담한 결과, 추가 의혹도 드러났다. 괴산으로 오기 전, 서울에 있을 때 모아놓은 돈과, 괴산에 내려와서 일부 받은 수급비의 행방이 그것이다. 결국 밝혀진 것은 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이 씨는 지금도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은 8년간의 노동 탓이다.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지, 학대 사실이 확인될지는 추가 진술을 해 줄 사람이 나오느냐에 달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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