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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으면 전에 느꼈던 그 감동이 되살아나지 않을 때가 많다. 나이를 먹으며 감수성이 바뀌고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오늘 읽은 책을 미래 어느 순간 다시 꺼내 본다면 또 다른 감동이나 영감을 받을 수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비슬라바 심보르스카(Wisława Szymborska, 1923-2012) : 폴란드의 시인. 1996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동료 시인인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및 타데우슈 로제비치와 함께 현대 폴란드의 투쟁, 즉 제2차 세계대전, 유대인 학살, 소련 점령,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스탈린주의, 계엄령, 민주화 등을 증언했다. 고도의 철학적 문제를 다루려는 욕망과 강렬한 휴머니즘으로 이것을 부드럽게 조율했다.
심보르스카는 1945~48년 크라쿠프의 야기엘로니안대학교에서 문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 그녀의 시는 1945년에 잡지에 처음 발표되었다. 1952년에 첫 시집이 나온 데 이어 1954년에 2번째 시집이 나왔지만, 심보르스카는 이 두 시집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맹목적으로 헌신했다는 이유로 이 시집들을 자신의 작품 목록에서 줄곧 제외해왔다. 소련이 검열을 완화한 뒤에 처음 출간된 시집 〈예티에게 외치다 Wo anie do Yeti〉(1957)는 표제 인물인 설인(雪人) 예티를 통해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그 후에 나온 시집으로는 〈소금 Sol〉(1962)과 〈끝없는 재미 Sto pociech〉(1967) 등이 있다. 〈아마 Wszelki Wypadek〉(1972)의 표제작은 그가 자주 다루는 주제인 우연을 검토하고 있으며 후기 시집으로 〈큰 수(數) Wielka liczba〉(1977), 〈끝과 시작 Koniec i pocz tek〉(1993) 등이 있다.
1953~81년 그녀는 주간지 〈문학생활 Zycie literackie〉에 〈과외 독서 Lektury nadobowiazkowe〉라는 칼럼을 기고했으며, 1980년대에는 〈아르카 Arka〉와 〈쿨투라 Kultura〉라는 잡지에 기고했는데, 〈쿨투라〉는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되는 폴란드 망명 문학 잡지였다. 심보르스카는 16, 17세기의 프랑스 시에 대해 전문지식을 가진 저명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심보르스카는 개인적인 문제에 보편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폴란드의 다른 시인들과 구별된다.
그녀의 시에서는 일상적인 것들이 더 넓은 배경 속에서 철저히 재검토된다. 섬세한 문체는 재치와 깊이와 초연함에서는 고전적이지만, 아이러니와 냉담함에서는 현대적이다. 또한 꾸밈없는 언어가 곁가지를 모두 제거하고 대상을 향해 곧장 나아가는데, 이것은 1950년대 중엽에 동유럽 시문학을 지배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 수법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어조는 잔뜩 비꼬는 대화체인 경우가 많다.
지난 30년 동안 폴란드에서 시집 7권을 발표한 이 은둔자는 기법의 미묘함 때문에 번역하기 어려운 시인이라고 알려져왔으나, 그녀의 시집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나왔다. 영어판 시집으로는 〈소리, 느낌, 생각 Sounds, Feelings, Thoughts〉(1981), 〈다리 위의 사람들 People on a Bridge〉(1990), 〈모래알이 있는 풍경 View with a Grain of Sand〉(1995) 등이 출간되었다.
예전에 읽던 책을 다시 읽으려고 폈는데 도대체 왜 밑줄을 그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좋았다고 밑줄도 긋고 책 귀퉁이에 소박한 생각을 적어 둔 흔적도 있지만 그때의 마음을 도통 모르겠다. 그래도 오랜만에 펼쳐 본 김에 예전에 그어 둔 선 위의 문장들을 천천히 읽어 본다.
어떤 것은 역시 좋지만, 어떤 것은 왜 표시를 해 두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는 지식이 설익어서 이런 걸 좋아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땐 마음이 덜 팍팍해서 이 부분에 감동을 받았던 것일까를 가늠해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나 낯설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한 번 읽은 책들이 새 책으로 보이기 때문에 나쁜 기억력도 축복일 수 있다는 말도 떠오르고.
● 4년 만에 다시 읽는 시집, 낯설어
2022년 10월 고교 수업연구모임에서 폴란드 시인 비슬라바 심보르스카(Wisława Szymborska, 1923-2012)의 ‘끝과 시작(Koniec i pocz tek)’이라는 시집을 함께 읽었다. 심보르스카는 괴테상(1991년)과 노벨 문학상(1996년)을 수상한 국민 작가이다. 두꺼운 시집을 읽고는 마음에 들었던 시를 한 편씩 골라 낭송하고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시는 어려웠고, 읽어야 할 양도 많았지만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시어(詩語)들 속에서 몇몇 구절들은 꽤 좋았다. 시 전체를 좋아하지 못해도 마음에 남은 구절에 밑줄도 긋고, 느낀 점을 빼곡히 적어 두기도 했다. 그런데 그 시집을 4년 만에 다시 읽고 있는데, 여간 낯선 게 아니다.
✺방랑의 엘레지
모든 것이 내 것이지만, 내 소유는 아니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지만,
기억으로 소유할 순 없다.
가까스로 기억을 떠올린들 불확실할 뿐,
머리를 잘못 맞춘 여신의 조각상처럼.
사모코프에 내리는 비는
멈출 줄 모른다.
파리의 정경은
루브르에서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지점까지
가물가물 희미하게 사라져간다.
생마르탱의 가로수 길,
그곳의 계단은 갈수록 페이드아웃.
내 기억 속에서 '다리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고작 다리 한 개와 반쯤 남은 또 다른 다리의 영상,
가여운 웁살라에는
무너진 대성당의 잔해.
소피아에는 얼굴 없이 몸통만 남은
가여운 무희가 있다.
눈동자 없는 그의 얼굴 따로,
동공 없는 그의 눈동자도 따로,
고양이의 동공도 따로,
새롭게 재건된 협곡 위에서
캅카스의 독수리가 날고 있다.
태양의 황금빛은 전혀 사실적이지 않고,
바위는 엉터리 모조품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내 것이지만, 내 소유는 아니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지만,
기억으로 소유할 순 없다.
헤아릴 수도, 저장할 수도 없는 풍경들
미세한 섬유질이나 모래알,
물방울의 개별적인 세밀함은 더한 법.
나는 나뭇잎의 뚜렷한 윤곽 하나
뇌리에 새기지 못한다.
한 번의 눈짓에 담긴
작별을 내포한 환영의 인사
넘치기도 하고, 모자라기도 한
한 번의 고갯짓.
―비슬라바 심보르스카(Wisława Szymborska, 1923-2012)
*엘레지(Elegy) : 슬픔을 노래한 악곡이나 가곡.
*사모코프(Samokov) : 불가리아 남서부에 위치한 소피아주의 도시
*루브르(Louvre) :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옛 궁전이자 박물관.
*생마르탱(Saint-Martin) : 카리브 해 소앤틸리스 제도 윈드워드 군도 북쪽 끝에 있는 섬.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 : 러시아 연방 제 2의 도시. 러시아 연방의 북서부 끝에 있으며,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약 640㎞, 그리고 북극권에서 남쪽으로 불과 7° 정도 떨어져 있다.
*웁살라(Uppsala) : 스웨덴 동부에 위치한 도시이자, 웁살라주의 주도. 스톡홀름과는 7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통근열차로도 갈 수 있다. 스웨덴 루터파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캅카스(Caucasus) :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한 캅카스산맥 일대의 산악지역이다.
지금은 담담하게 읽히는 이 부분이 4년 전에는 무척 큰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여러 표시를 해두고 죽음이나 상실을 애도하는 시라는 ‘엘레지’의 뜻을 적어 두고, 우리가 간직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섬세하게 세상을 보지 못하고 뭉뚱그려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기록을 해 뒀더다. 까마득한 감정의 기억은 기록을 통해서도 떠오르지 않지만, 그 끝 지점에서 시 읽기가 다시 시작됐다. 이해할 수 없는 시들이 많은 것은 비슷하지만, 과거 기록을 안내 삼아 새롭게 힘을 내며 읽어보고자 한다.
읽었던 시에서 시작하는 지금, 끝과 시작이 맞물리고 우연과 필연이 섞이는 인생의 면면을 시를 통해 느껴보고자 한다. 직관적으로 읽으면 바로 이해가 되는 시도 있다. 그러나 오래 들여다보고 음미해야 그 뜻이 드러나는 시도 있다. ‘끝과 시작’에 있는 시들은 거의 후자라고 생각한다. 두툼한 시들 속에서 한두 편이라도 제대로 읽어 가면서 숨겨진 지혜와 의미를 스스로 찾아보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 4년 뒤 다시 읽으면 또 다른 감동을
4년 전에 이 시집에서 가장 좋았던 시는
✺두 번은 없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 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포옹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인생은 우리가 바라던 낭만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어른이 되면 미래가 모두 핑크빛 낭만으로 상상되던 시절이 있다.
그 시절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현실은 차갑고 혹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쩌면 인생은 낭만이 아니라 불완전한 세상을, 불완전한 나를 견디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두 번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실수도 하면서 살아가고,
두 번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두 번이 없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해야 하고,
경험할 수 있을 때 많이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
오히려 죽음을 기억하고,
끝이 있음을 알고 있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고 삶의 조각조각 하나가 아름다울 수 있다.
―비슬라바 심보르스카(Wisława Szymborska, 1923-2012)
시는 유한한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니다. 모든 것이 한 번뿐인 순간들로 이루어진 인생과 훈련도 없이 시작해서 매 순간 새롭게 생성되고 사라지는 삶을 노래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 그리고 나는 매일 새로운 존재이며, 매 순간은 처음이라는 시가 적잖이 위로를 줬다.
시를 읽던 ‘2022년도의 나’와 지금 다시 읽는 ‘2026년도의 나’는 다른 존재일 터, 반복되는 것이 없는 삶이라면 바보 같은 지난 행동을 자책할 필요가 없고 괴로운 일들도 고리를 끊어도 될 것 같다. 조금은 가볍게 새롭게 살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때의 감동이 조금 다른 밀도와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 시집에서 가장 유명한 시는
✺영화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바르타 강가의 떡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더 좋아한다
인류를 사랑하는 나 자신보다 사람들을 사랑하는 나 자신을 더 좋아한다
실이 꿰어진 바늘을 갖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잘못은 이성이나 논리에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 편을 더 좋아한다
예외적인 것들을 더 좋아한다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의사들과 병이 아닌 다른 일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한다
오래된 줄무늬 도안을 더 좋아한다
시를 안 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
사랑과 관련하여 매일매일 기념하는 것보다는 비정기적인 기념일을 챙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에게 아무것도 섣불리 약속하지 않는 도덕군자들을 더 좋아한다
지나치게 쉽게 믿는 것보다 영리한 선량함을 더 좋아한다
민간인들의 영토를 더 좋아한다
정복하는 나라보다 정복당한 나라를 더 좋아한다
만일에 대비하여 뭔가를 비축해놓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정리된 지옥보다 혼돈의 지옥을 더 좋아한다
신문의 제1면보다 그림 형제의 동화를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을 더 좋아한다
품종이 우수한 개보다 길들이지 않은 똥개를 더 좋아한다
내 눈이 짙은 색이므로 밝은 색 눈동자를 더 좋아한다
책상 서랍들을 더 좋아한다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마찬가지로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다른 많은 것들보다 더 좋아한다
숫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자유로운 제로(0)를 더 좋아한다
기나긴 별들의 시간보다 하루살이 풀벌레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
불운을 떨치기 위해 나무를 두드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얼마나 남았는지, 언제인지 물어보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존재, 그 자체가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비슬라바 심보르스카(Wisława Szymborska, 1923-2012)
이렇게 길게 나열되는 ‘더 좋아하는 것’들을 읽다 보면 나는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읽은 것도 잊고 과거도 잊고 매일매일이 새것인 우리가 ‘더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하며 살기를 바란다.
숲속에는 샘물도 있고 진귀한 약초도 있다. 샘물이야 누구나 단박에 알아보지만 약초는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인다. 시도 자꾸만 읽어 내고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의미를 드러내겠다. 시간이 지나 홀랑 까먹더라도 이 순간 새롭게 이해하고 생각하고 감동받는 독자가 되고 싶다. 이 가을 심보르스카의 시를 읽어 보길 권해 본다. 그리고 4년 후에 다시 읽어 보자. 그땐 지금과 다른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기사출처: 동아일보 2026년 10월 20일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조현서 세종고과학교 교사)/ Daum, Naver 지식백과/ 이영일∙고앵자 yil207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