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가 낮게 나는 걸 보니
비가 올려나보다
할아버지의 기상캐스터는
제비였다
뉴스는 보지 않아도
일기예보는 빠짐없이 보시던
아버지의 기상캐스터는
중후한 정장 차림의 남성,
번번히 어긋나는 예보 앞에서
아버지는 가끔씩
제비를 그리워하였다
나의 기상캐스터는
날마다 파션을 바꾸는 여성이다
날씨에 곁들여
구름처럼 천변만화하는
패션과 몸매를 관람하면서
나는 날씨와 오르내리는 주가의
함수관계에 더 관심이 많다
새로 나온 기상보험 상품을
꼼꼼히 뜯어보기도 한다
그 사이, '내일은 비가 오겠습니다'가
'내일은 비가 올 확률이
몇 퍼센트입니다'로 바뀌었다
권위를 버린 대신
첨단과학을 선택한 일기예보.
확률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겸손한 고백인가
확률 너머의 나머지에 대한
불안인가
그 사이 제비를 노래한 내 시는
낡은 것이 되었다
나는 첨단의 현혹에 좀 더
개방적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미래파는 화장품 이름인데
바르면 두드러기가 나요.
세미나 자리에서 그런 말은
도무지 삼가야지 않았을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어쨌거나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일기예보는 조금씩 빗나간다는
것이다
기상위성이나 슈퍼컴퓨터 같은
첨단 장비로도 어쩔 수 없는,
화려한 패션으로 때려 맞추기엔
영 깨름칙한
오래 전에 제비는 기상업계에서
퇴출이 되고 말았지만,
자꾸 어긋나는 날씨 예보가
내게는 어쩐지
업계의 양심선언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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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