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현 대진 시에서 교토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교토 시에 들어서서 유명한 대숲 길과 관광열차 타는 곳으로 가는 도중의 시냇물이 무척 맑고 주변 풍광이 아름다웠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아들 집 방문이었기 때문에 관광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도 세우지 않았고 주마간산 격으로 그저 하루에 한두 곳 대강 돌아보다 그만이었다.
소변이 마려워 들어간 곳이 알고 보니 꽤나 유명한 덴류지(天龍寺)였다. 건성으로 구경하고 돌아 나왔다.
고적의 도시 관광도시 교토 시가지에는 인력거가 굴러다녔다.
천룡사에서 물어물어 관광열차 타는 곳으로 갔지만 이미 만원이어서 포기했다. 일정상 대숲 길도 포기하고 금각사 가기로 했다.
긴가쿠지(금각사 -金閣寺)의 원명은 로쿠온지(鹿苑寺). 중심 건물인 3층 사리전을 금박으로 입혀서 금각사로 통칭. 1397년 건축. 1950년 젊은 행자승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어서 방화. 1999년 다시 완공.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교토에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고 내국인도 많고 수학여행 온 학생들도 많아서 가는 곳마다 북적거렸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금각사로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비교적 옛날 냄새가 나는 목조건물. 오른쪽 트럭 주차장을 주목해야 한다. 일본은 집에 주차장이 없으면 번호판을 내주지 않는단다. 도로가 비좁기 때문에 도로에 주정차 하는 것은 불법. 혹독한 벌금.
좀 넓기는 하지만 그 대신 아무데서나 주정차하는 한국의 무질서도 문제지만, 도시 안의 도로 폭이 좁은 일본도 아주 불편해보였다.
손자 준기와 작별 인사를 나누기 위해 교토 국제중학교 방문. 서울 출신의 인자하고 기품 있고 격조가 높아 보이는 여자 교감선생님이 손수 우리를 안내하여 강당, 교실, 식당 등 여러 곳을 보여주었다.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인인 학생들이 다니는 국제중학교는 국제고등학교와 함께 붙어 있는데 중고등학교 통틀어 학생이 200여명이라 한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는단다.
때마침 체육대회를 준비하려고 전교생이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르고 발맞추어 행진하는 모습이 우리 어린 시절 운동회를 많이 닮아 쓴웃음이 나왔다.
쿄토에서 오사카 간사이공항 신도시까지 고속도로로 달렸다. 63빌딩보다 높다는 256미터의 간사이공항 ‘스타게이트 호텔’ 49층 창밖으로 내다본 신도시의 야경이 휘황하다.
스타게이트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공항으로 갔다.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일본인 할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설문조사를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국토교통부 소속이라는데 한국말도 곧잘 했다.
여행 목적, 여행 장소, 선물 상품, 여행비용 등을 소상히 물어서 내심 감탄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기초조사를 철저히 하는지 궁금하다.
아들이 운전해준 덕분에 무척 자유롭고 편안한 여행이었다. 아들아, 고생 많았다.
인류가 바벨탑을 세우려 하자 깜짝 놀란 야훼께서 사람들의 말을 흩으셨다. 말이 혼란해지면서 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인류의 혼란과 다툼은 계속되고 있다.
오사카 성의 성벽과 해자가 현대식 고층건물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순신 장군, 이토오 히로부미와 안중근 의사, 한국과 불가근불가원의 관계에 놓인 아주 가까운 이웃! 과거를 덮고 미래를 향하여 발전적으로 사이좋게 손을 잡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어디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인가. 지금도 이 나라의 위정자들은 역사교과서를 친일파적으로 비틀려고 꼼수를 부리는 중이 아니던가.
일본에서 배울 점도 물론 많았다. 깨끗한 거리, 아름다운 질서, 예의와 친절, 정확한 신용, 짝퉁을 불허하는 견고한 제품 ---- 이번 여행에서 나는 노인들 일자리 많은 점이 가장 부러웠다. 택시 기사도 노인, 케이블카 운전도 노인, 식당 주인도 노인, 가게 종업원도 노인, 마지막으로는 설문 조사원도 노인.......
그래도 나처럼 두루뭉술하고 엄벙덤벙하고 어설픈 사람한테는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살기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