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진성 여성 족구단을 소개받았을 때 조금 당황스러웠다. 족구를 알고 칼럼을 쓰기 시작한 것이 어언 10년 정도 되어 족구에 대해서 나름 많이 알고 있었다고 자부했는데 생소한 팀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팀을 소개하는 취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팀을 동호인들에게 소개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 취지에 가장 적합한 팀이었지만 이토록 사전 지식이 없는 팀은 처음이었다.
이 팀을 소개해 준 이는 바로 조이킥스포츠의 한가해였다.
'활발하게 활동은 하는데 이렇다 할 성적은 못 내고 있지만 연습도 경기 참가도 엄청 열심히 하는 팀이어서 추천하고 싶어요.'라고 말해주며 주장 이윤경의 연락처를 보내주었고 취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윤경은 취재하는 내내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임해주었고, 적극적으로 답을 해주었다. 족구를 전혀 알지 못했던 아줌마들의 족구 입문부터 지금까지 족구와 함께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들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충주 사과 족구단으로 시작
충주 진성 족구단의 전신은 '충주 사과 족구단'이었다. 2012년 어느 날,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이윤경과 두 친구에게 족구는 운명과도 같이 다가왔다. 자녀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취미활동으로 할 운동을 찾고 있던 이들은 우연히 체육관 앞에서 충주시 족구협회의 김기준 사무국장을 만났다. 김기준 사무국장은 그들에게 '족구라는 운동이 있는데 한 번 해보시겠어요?'라고 물었고, 그들은 '어차피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것 그냥 시작이나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족구를 시작했다. 여느 여자들이 그랬듯이 이들도 족구의 '족' 자도 모르는 상태였다.
며칠 운동을 했는데 충주시 족구협회에서 유니폼과 족구화를 지원해 주겠다고 나섰다. 족구를 하기 위해서 어차피 족구화와 유니폼이 필요했으니 선수들은 내심 '잘 됐다'라고 생각했지만 조건이 있었다. 바로 얼마 뒤에 벌어지는 울진 백암 온천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었다. 족구에 서서히 재미를 느끼고 있었던 상황에서 유니폼과 족구화가 공짜로 생기고, 대회에 참가해 다른 여성 팀들과 경기할 수도 있고, 울진으로 나들이까지 가능한 일석삼조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선수들이 모두 족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합보다는 아줌마들끼리 모여 여행 가는 기분으로 다녀오기로 한 역사적인(?) 충주 사과 족구단의 첫 대회 출전은 예상치 못한(?) 처참한 참패로 막을 내렸다. 제아무리 여행 가는 기분이었고 참가에 의의를 두기는 했지만 상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니 속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이들에게 김기준 사무국장은 '족구는 적어도 3년은 해야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해주며 위로해 주었고, 그때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은 선수들은 족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사실 대부분의 여성 족구팀에는 축구 선수 혹은 태권도 선수 등 운동선수 출신들이 한두 명 정도는 끼어있었지만 이 팀은 테니스 동호회에서 활동했던 선수 몇 명, 필라테스 해봤던 선수 몇 명 외에는 운동 자체를 전혀 하지 않았던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어떤 종목이든 선수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서브로 공을 넘기면 넘어간 공이 다시 넘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은 오합지졸의 실력이었다. 하지만 점차 기본기를 익히고 연습하면서 리시브, 토스에 이은 공격이 성공하는 빈도수가 많아질수록 족구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사실 이들이 족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남편들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족구를 한다고? 네가?', '하면 얼마나 하겠냐?', '족구? 족구가 뭔지는 알아?' 등등 약간은 비아냥거리는 듯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진심은 통하는 법, 이들이 족구에 진심이고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을 느낀 남편들은 이제는 가장 든든한 지원군들이 되었다. 그렇게 절치부심(?) 하며 열심히 운동에 매진한 이들은 2013년 벌어진 문경새재기에서 처음으로 3위에 입상하며 이름을 알렸고, 그해 9월에 벌어진 '전국 여성 족구 최강전'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며 처음으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해체와 다시 모이기를 반복
이어 충주 사과 족구단은 2014년 2월에 벌어진 '전주 한옥배'에서 일반부 3위를 차지했지만 공격수의 부상과 몇몇 선수들이 각자의 사정 등으로 그만두면서 팀을 해체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이 모두 주부이다 보니 출산과 아이 양육 문제 등으로 족구에 매진하기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하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또래의 아이 엄마들이어서 자녀들도 나이대가 비슷해 공감대가 잘 이루어졌고, 무엇보다도 족구로 맺어진 인연이 쉽사리 끊어질 리가 없었다. 족구가 아니더라도 틈만 나면 아이들을 동반해 만나서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하고 수다도 떨면서 함께 족구했던 추억 이야기를 나누며 인연을 이어갔고, 다시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다시 모여 팀을 만들어 지금의 충주 진성 족구단이 만들어졌다.
새롭게 팀을 구성하고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그만두거나 운동을 쉬어야 하는 상황들이 생기면 해체하고 또 모이기를 반복했지만 족구에 대한 열정만은 식지 않았다. 어떤 선수는 만삭의 몸으로 '족구를 하겠다'라고 족구장에 오고 대회장에도 따라다닐 정도로 선수들 모두 족구에 푹 빠져있었다. 해체했다가 다시 모이면 예전의 폼을 되찾는 데 시간이 걸려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이들은 누구보다도 족구를 사랑하는 이들이다.
충주 아줌마들의 반란을 꿈꾼다
그리고 2022년, 2년 만에 김남현 감독과 손학민 코치와 함께 다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복귀 이후에도 23년 사천 대회 3위, 영월 대회 3위, 청원생명쌀배 3위, 안동대회 준우승 등 굵직한 성적을 내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물으니 2024년 전국체전 우승이라고 당차게 대담했다. 냉정하게 현재 상황을 돌아보았을 때, 이 목표는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르겠다. 명실상부한 최강 대구 단디와 함께 울산 위민, 조이킥스포츠가 BIG3를 이루고 있는 여성부에 당차게 도전장을 던진 것이지만 그들의 아성을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고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전진하겠다는 이들의 의지가 엿보이기에 마냥 비웃을 목표도 아니다. 2012년 창단 이후 각자의 사정으로 해체와 모이기를 반복했지만 족구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10년째 팀을 이어오고 있는 모습에서 악바리 같은 근성도 느껴진다.
악바리 같은 근성을 갖춘 충주 아줌마들은 이제 2024시즌을 바라보고 있다. 2024시즌 충주 아줌마들의 반란을 기대해 본다.
주장 이윤경과 1문 1답
Q. 운동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A. 주 2회 정도,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는 대소원 체육관에서 연습하고 그 외에는 야외 잔디구장에서 하고 있어요. 감독님의 지도하에 기본 훈련과 포지션 연습 그리고 틈틈이 개인 연습을 하고 있죠. 자녀들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후 대부분 오전 시간에 운동을 했어요. 가끔 저녁 운동을 나가면 아이들은 옆에서 축구를 하고 우리는 족구를 하곤 했죠. 싫다는 아이들을 억지로 데리고 가기도 하고 가끔은 남편이 봐주기도 했어요. 그랬던 아이들이 이제는 중, 고등학생들이 되어 엄마들을 응원하네요. 지금은 '우리 엄마는 족구 선수에요.'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하니 정말 족구하기 잘했다고 생각해요. 아~! 참고로 우리 남편도 족구 선수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남편에게 족구를 배우고 코치를 받았는데 지금은 제가 남편보다 더 잘해서 오히려 제가 가르쳐 주고 있어요. (웃음)
Q. 운동을 하면서 혹은 대회에 나가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A.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시합을 가는 도중 고속도로에서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갓길에 서 있었던 아찔한 기억이 있어요. 고속도로다 보니 긴급 견인 차량을 불렀는데 생각보다 늦어지더라고요. 그 와중에도 시합에 늦을까 봐 시합 복장으로 '히치하이킹이라도 해야 하나'라고 발을 동동 구르던 때가 생각나네요. 다행히 늦지 않아 시합은 정상적으로 했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정말 아찔했었던 기억이에요.
그리고 작년 영월 대회에서 있었던 일이었는데 시합 전에 연습하던 도중에 우수비 박민자 선수가 다리가 아프다며 교체해 달라고 감독님께 요청했는데 우리의 열정 많으신 감독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누나! 다리 부러진 거 아니지? 그럼 뛰어' (웃음) 이날 이후로 아프다는 소리가 쏘~옥 들어갔답니다. (웃음)
Q. 충주 진성 족구단의 자랑거리?
A. 선수들이 모두 2~30분 거리에 거주하고 있어서 언제든지 만남이 가능하고 번개 훈련 등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김남현 감독님과 손학민 코치님이 작년부터 함께 도와주셔서 나날이 성장하고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멋진 선수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자랑거리입니다.
Q. 팀 내 불화가 있었다면?
A. 나이가 다들 비슷하고 자녀들도 모두 또래이다 보니 공감대가 잘 이루어지지만 각자 성향이 강한 아줌마들이어서 종종 의견이 충돌한 적도 있고, 서로에 대한 지나친 배려로 인해 오해가 있었던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그런 오해들이 풀리니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돈독해졌어요. 지금은 눈빛만 봐도 잘 알고 서로의 가족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 이 정도면 거의 가족과도 같아요. (웃음)
Q. 족구를 해서 좋은 점이 있다면?
A. 처음 대회를 다녀오고 족구도 중요했지만 족구를 통해 각자 다이어트 혹은 힐링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었어요. 10년 정도 지나 돌이켜보니 다이어트에 성공한 선수도 있고, 우울증을 극복한 선수도 있어요. 우울할 틈이 어디 있나요? (웃음) 눈만 뜨면 족구 생각으로 거의 족구에 미쳐있었던 것 같아요. 여담으로 이야기하면 처음에 저를 포함해서 지인들끼리 시작했는데 선수는 6명에 아이들을 2~3명씩 데리고 오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11명 정도되는 3~7세 아이들 때문에 돌아가면서 한 명씩은 어린이집 교사가 되어야 했답니다. (웃음)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또한 우리들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네요.
Q. 여성 족구인으로 설움(?) 같은 것들이 있었다면?
A. 참가팀이 부족하거나 예산이 부족하면 항상 여성부를 가장 먼저 취소시킬 때 정말 속상합니다. 그리고 여성 선수가 흔하지 않다 보니 주위에서 '너 무슨 운동한다고 했지?'라고 매년 물어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너 아직도 축구하니?'라고 물어보는 이들도 있어요. 족구가 하루빨리 전국체전 정식종목이 되어서 군대에서 남자들만 하는 운동이 아닌 여자들도 청소년들도 하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심어졌으면 좋겠습니다.
Q. 2024시즌의 목표가 있다면?
A. '전국체전 우승입니다.'라고 말하면 많은 이들이 비웃을 거예요. 무모한 도전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목표를 크게 잡고 전진하고 싶어요. 내년 전국체전에서는 2박으로 지역 탐방 및 맛집 투어를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웃음)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A. 24년의 모든 전국 대회에 참가할 계획입니다. 시합만큼 좋은 훈련은 없거든요. 대구 단디, 조이킥과 같은 강팀들과 시합에서 자주 맞붙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이긴다는 생각보다는 한 수 배운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들과 당당한 맞수로서 제대로 겨뤄보고 싶어요. 그래서 출전하는 모든 대회마다 입상해서 충주 진성 팀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충주 아줌마들의 저력! 기대해 주세요.
Q. 족구를 하면서 감사한 분들이 있다면?
A. 우선은 가족들이죠. 남편이랑 아이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족구를 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충주시 족구 클럽에 계신 회원분들, 본인들 운동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면 언제나 환영해 주시고, 함께 경기해 주시며 우리가 열족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이만큼 실력 향상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족한 우리들을 위해 항상 힘써 주시는 김남현 감독님, 손학민 코치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더욱 분발하는 팀이 되겠노라고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충주 진성 족구단 선수단 멤버 소개
감 독 김남현
코 치 손학민
공격수 김란경(1981년생, 주부)
공격수 문영애(1983년생, 자영업)
세 터 이윤경(1979년생, 주부)
좌수비 김효진(1980년생, 주부)
좌수비 송수현(1984년생, 프리랜서)
우수비 박민자(1980년생, 주부)
[새싹 멤버](족구입문 1년 미만 선수들)
세 터 김미란(1978년생, 프리랜서)
세 터 고예은(1996년생, 회사원)
좌수비 권혜정(1985년생, 시간강사)
좌수비 조선옥(2000년생, 취업 준비생)
우수비 한은비(2001년생, 취업 준비생)
취재에 응해 주시고 칼럼 쓰는 것을 허락해 주신 충주 진성 족구단 선수단에 감사의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