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키스의 우승으로 끝난 2009시즌 MLB의 평균 경기 시간은 2시간52분이었습니다. 반면에 NPB는 3시간13분, 그리고 KBO는 3시간22분을 기록했습니다.ⓒ 게티이미지/멀티비츠
흔히 미국 야구는 상당히 빨리 진행되는 반면에 일본은 아주 느리며, 한국 프로야구도 만만치 않지만 그 중간 정도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지난 8일 KBO에서 주최한 ‘프로야구 경기 스피드업 세미나’에서 발표한 결과를 보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2009년 기준으로 볼 때 평균 경기 시간이 가장 적은 것은 MLB로 3시간이 안 걸린 반면에 NPB는 3시간13분이 소요됐습니다. 그런데 국내 프로야구 (이하 KBO로 가겠습니다.)는 무려 3시간22분으로 사상 최장 경기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MLB가 2시간52분이었으니 KBO는 경기당 무려 30분이 더 걸린 것입니다. (MLB의 기록이 9이닝 기준이라고 알려졌지만 17일 MLB에 문의한 결과 한국, 일본과 똑같이 연장전도 모두 포함한 기록이라고 밝혔습니다.)
MLB는 경기 시간에 대해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민감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3시간을 넘기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며, 그나마 시간을 더 줄이려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온 힘을 기울입니다.
예를 들어 시즌 중에도 경기 시간이 늘어지면 곧바로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하며 바로잡기도 합니다. 지난 2008년 5월 초 구단주 회의에서는 늘어난 경기 시간이 톱 이슈였습니다. 그해 초반 MLB의 평균 경기 시간은 2시간51분45초로 2006년에 비해 3분34초가 늘어난 것입니다.
MLB 사무국에서는 경기 시간은 무조건 3시간을 넘기면 안 되고, 빠르게 진행될수록 팬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인기 유지에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각 구단에 심판들이 경기 진행과 관련된 규정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할 것이라고 통고하고 협조를 당부했습니다.
이렇게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고 나자 곧바로 효과가 나와 경기당 소요 시간이 즉각 2분 이상 줄었습니다.
MLB나 KBO나 NPB나 경기 시간 촉진 규정은 흡사합니다. 미국의 규정을 보면서 한국의 현실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온-덱 서클(on-deck circle)에서 기다리는 타자에게 홈플레이트 쪽으로 빨리 이동해 타석에 들어서라고 항상 지시해야 한다. -한국도 이 부분은 심판이 잘 이행하고 있습니다.
▲투수가 일단 셋 포지션이나 투구 동작에 들어가면 타임을 인정하지 마라. 만약 타임이 인정되지 않았는데 타자가 타석을 벗어나고 투수가 공을 던지면 그 공은 인플레이로 인정한다. 타자는 일단 타석에 들어서 자리를 잡으면 어떤 이유에서든 멋대로 타석을 벗어날 수 없다. 꼭 타임을 불러야 하는데 심판은 게임이 지나치게 지연된다거나 갑작스런 기후 변화 등 꼭 필요한 경우에만 타임을 인정한다. -가장 잘 지켜지지 않는 부분입니다. 규정은 선수가 타임을 요청하면 심판이 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국내 타자는 타임을 부르고는 거의 임의대로 타석을 벗어납니다. 심판도 거의 100% 그것을 인정합니다. 타자는 반드시 심판의 허락을 받고 벗어나야 하며, 타임이 아니면 투수가 던진 공을 그대로 인정해야합니다. 가장 시간이 늘어지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타석을 벗어난 타자가 시간을 질질 끌 경우 곧바로 경고를 한다. 만약 경고에도 타석에 들어서길 거부하면 구심은 스트라이크 하나를 선언한다. 이럴 때 주자의 이동 등 다른 플레이는 인정되지 않는다. -역시 잘 지켜지지 않는 부분입니다. 거의 공 하나마다 타석을 벗어나는 타자들도 꽤 있습니다. 타임 규정과 함께 강력하게 시행하면 시간을 아주 많이 단축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투수가 12초 규정을 어기면 첫 번째는 경고를 준다. 루상에 주자가 없을 때 투수는 공을 받고 12초 안에 반드시 다음 투구를 해야 한다. 12초 규정을 다시 어길 때마다 원 볼을 선언한다. -이것 역시 적용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MLB에서도 드물게 적용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KBO도 내년부터는 강력하게 이 조항을 실시하겠다고 했습니다.
▲투수 마운드에서의 미팅은 가능한 한 빨리 끝내도록 종용한다. 코칭스태프가 마운드로 천천히 올라갈 경우는 더욱 그렇다. -KBO도 잘 시행되고 있습니다.
▲덕아웃에서 나오는 투수들은 워밍업을 마치고 경기가 신속하게 속개될 수 있도록 이닝 사이에 신속하게 마운드로 이동하도록 종용한다.
▲불펜에서 나오는 투수는 신호가 떨어지면 곧바로 마운드로 이동해야 하며 8개의 워밍업 투구를 신속하게 마쳐 경기가 지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MLB를 보면 외야 불펜에서 마운드로 달려가는 구원 투수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는 아직 조금 부족한 부분입니다.
▲이닝 중간에 타석에 나섰던 포수가 장비들을 입고 있을 경우 후보 포수가 코치가 투수의 워밍업을 도와 빠른 경기 진행을 하도록 한다. -이것은 완전히 정착했습니다.
▲배트보이는 방망이가 부러질 때에 대비해 항상 두 번째 방망이를 준비해둔다. -이것도 KBO에서는 잘 안 되고 있습니다. 방망이가 부러지면 우왕좌왕 시간을 많이 빼앗깁니다.
▲포수 역시 공을 받으면 곧바로 투수에게 던져주어야 한다.
▲그 외에도 장내 아나운서, 운동장에 나오는 음악이나 영상, 그리고 각종 오락 등에 관한 MLB의 규정을 잘 지키는지 심판은 살피고 계속 위반이 나올 경우 MLB는 벌금을 부과한다. -MLB는 일단 경기가 진행되면 요란한 단체 응원이 중단되고 NPB는 응원가를 10초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날 세미나에서는 우리 선수들이 응원가를 다 듣고야 타석에 들어선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그 외에도 다른 의견들이 발표됐습니다.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벤치에서 일구 일구 사인을 내는 행위 자제. (일구당 4.5초)
▲주자 없을 때 12초 이내 투구하지 않으면 경고 후 두 번째는 볼로 판정.
▲주자가 있을 때 타자 타이밍을 빼앗으려고 투구 지연을 하면 첫 번째 주위, 두 번째 경고 후 세 번째는 보크 판정.
▲투수가 로진을 과다하게 묻히면 경고 후 계속되면 볼로 판정.
이상은 심판위원회에서 2010시즌부터 강력하게 시행하겠다는 조항입니다.
문승훈 심판 팀장은 “그 외에도 홈런을 쳤을 때 중계 카메라가 선수에게 너무 밀접하게 접근한다든지, 또는 덕아웃의 선수들이 모두 나와서 타자를 맞이한다든지 하는 것 등 시간을 끌게 되는 요소들이 꽤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조항이 강력히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 외에도 KBO의 경기가 늘어지는 중요한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일단 경기 당 투수의 수자가 가장 많습니다.
한국은 경기당 8.25명의 투수를 투입하고 미국은 7.63명, 일본은 7.31명을 투입합니다. 그리고 평균 사사구도 한국이 훨씬 많습니다. 8.06개의 볼넷과 1.06개의 몸에 맞는 공으로 경기당 사사구가 9.12개니까 매 이닝 한명씩으로 걸어서 나갑니다.
미국은 7.97개이고 일본은 6.85개로 가장 적습니다. 불필요한 투수 교체와 사사구 남발이 프로야구 경기가 늘어지는 큰 요인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개선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적은 투수 교체와 사사구에도 일본의 경기가 오래 걸리는 것은 투수가 12초가 아닌 15초 내에 던지면 된다는 규정이 상당히 작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0년간 변화를 보면 유독 한국야구만 위기 의식을 느껴야할 정도로 경기 시간이 늘었습니다. ⓒ민기자닷컴 |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입니다.
야구는 축구나 농구, 풋볼 등 대부분 팀 스포츠와는 달리 경기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스포츠입니다. MLB의 연구에 따르면 아무리 골수팬들이라고 3시간을 넘기면 지루해하고 경기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영화나 연극, 뮤지컬, 드라마 같은 것은 2시간을 넘기는 것도 드문 현실입니다. 농구, 풋볼 등은 타임아웃이나 해프 타임 등으로 시간이 늘어나긴 하지만 팬들이 집중해야 하는 규정 경기 시간은 1시간 정도입니다.
그래서 팬들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도 경기는 가능한 한 빠르게 진행해야 하며, 경기가 대부분 밤에 열리기 때문에 다음날 팬들의 일상생활을 위해서도 경기가 조금이라도 빨리 끝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근본적으로 프로야구는 유료 문화 상품임을 인식하고 팬에게 보여주는 스피디한 박진감있는 야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번 세미나에서 제시된 것은 고무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최근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환경 문제에도 경기 시간 단축이 큰 영향을 끼칩니다.
NPB는 2008년 ‘그린 베이스볼 프로젝트’를 발족했습니다.
야간 경기가 많은 야구의 특성상 조명의 전력 소비를 강력히 억제해서 에너지를 절약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인다는 것이 목적입니다. 실제로 2007년에 비례해 2008년 NPB는 무려 5분을 단축해 218킬로와트를 절감, 약 105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이면서 밤나무 275만 그루를 심은 것과 같은 효과를 보았습니다.
MLB 야구장 기자실에 앉아 있으면 경기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시간을 발표함과 동시에 경기 소요 시간도 정확히 발표합니다. 언론의 기록지에는 항상 경기 시간이 명확히 기재됩니다.
NPB도 12개 구단 평균 경기 시간을 공개해 경각심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올해 다시 4분이 늘어나긴 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관계자들과 팬, 그리고 언론의 인식 전환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중요한 세미나에 프로야구 감독이 한 명도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이 대단히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KBO의 한 관계자는 “전날까지도 감독님들 모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막판에 한 분이 갑자기 틀면서 그렇게 됐다.”라며 아쉬워했습니다.
경기 스피드업의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바로 감독이기 때문입니다. 팬을 위한 스피디하고 박진감 있는 경기를 펼치겠다는 감독의 기본적인 자세가 있어야 이루어질 수 것이 경기 시간 단축입니다.
심판이 아무리 규정대로 적용해도 감독과 선수들이 규정을 따르고 이행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개선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부작용으로 경기가 더욱 지연될 소지마저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일본과 비교해 유독 국내 프로야구의 시간만 계속해서 늘어난다는 점은 특히 큰 문제임을 현장 관계자들이 인식해야 합니다.
지난 1990년 경기 시간을 보면 한국이 2시간51분이고 미국은 2시간48분으로 큰 차이가 없고, 일본은 3시간10분으로 그 때도 길었습니다.
그런데 1996년 한국이 3시간2분으로 처음 3시간을 넘었고 미국은 2시간 51분으로 3분이 길어졌지만 일본은 3시간7분으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한국은 1999년 3시간7분으로 두 번째 3시간대를 넘긴 후 단 한 번도 3시간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당시 일본이 3시간12분으로 1990년에 한국과 19분 차이 나던 것이 5분 차이로 줄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마침내 한국이 3시간14분으로 가장 긴 시간을 기록했고 미국은 2시간46분으로 오히려 15년 전보다 시간이 줄었으며 일본은 3시간13분을 기록했습니다.
2009년에도 한국이 3시간22분으로 미국보다 30분, 일본보다 9분이 긴 경기 시간을 기록하게 됐습니다.
20년 만에 KBO의 경기 시간이 무려 31분이 늘어난 것입니다. 같은 기간 MLB는 4분, NPB는 3분이 늘었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월드시리즈가 끝난 직후 MLB는 포스트 시즌의 경기 시간이 용납할 수 없는 수준으로 길어졌다며 언론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정규 시즌의 평균 시간도 지난 3년간 2시간51분13초에서 2시간50분38초로 줄었다가 올해 다시 2시간51분476초로 늘었다며 요한을 떨었습니다. 투구 한 개당 걸리는 시간이 26초대 이하가 돼야 하는데 팀에 따라 29초가 넘기도 한다며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공 한 개 던질 때 1초를 줄이면 경기당 5분 이상이 줄어듭니다.
갑자기 다시 2시간대 진입은 무리겠지만 한국 프로야구도 장기적으로 2시간대 진입을 위해 모두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KBO의 한 인사는 정부 관계자로부터 ‘프로야구가 전력 소비가 너무 많으니 연장전을 없애라.’라는 질타까지 받았다고 했습니다. 야구를 잘 모르는 정부 관계자의 말이었겠지만 그만큼 시간 단축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개선의 여지는 너무 많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경기 시간 단축입니다. 6시30분에 시작하는 프로야구 경기가 평균 9시30분 전에 끝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첫댓글 제일 큰건 잦은 투수교체가 제일 크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몇몇감독은 어떤 타자나오면 어떤투수 이렇게 투입해서 잘던지는데도 네다섯명은 기본으로 등판하기 떄문에
민훈기 해설위원님 께서 쓰신 글이네요 넘 길다 프린트 해서 봐야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