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비를 조사 할 때 울산에서 제일 가까운 지역인 경주를 조사 하였는데
조사 할 당시에는 있었지만 공사중 사라진 하마비가 2좌가 있다.
그래서 조사 한 경주 하마비를 나열 하여 본다.
오릉 하마비
박씨의 기원이 된 오릉에 있는 하마비 뒷면에는 한글의 옛글이 있어
다른 용도 쓰이다가 하마비로 만든 것으로 보이니다.
명문은 제일 정통으로 쓰여진 하마비 중 하나이다.
서악서원 하마비
1561년(명종 16) 이정(李楨)을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유신(金庾信)의 위패를 모시며 창건하였고, 1563년(명종 18) 신라의 문장가 설총(薛聰)·최치원(崔致遠)의 위패를 추가 배향하였다.
처음은 선도산(仙桃山) 아래 서악정사(西岳精舍)로 창건하여 향사를 지내오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0년(선조 33) 서원터의 초사(草舍)에 위패를 봉안하였다. 1602년 묘우(廟宇)를 신축하고 1610년 강당과 재사(齋舍)를 중건하였다.
서악서원 이름에 비해 글씨가 희미한 하마비 서악서원입구에 있으나 차를 타고 가면 못 볼수 있는 하마비
김유신 하마비
하마비를 보려먼 묘 입구를 제대로 찾아야 하나 지금은 중간에서 묘를 올라 가니
못 보는 하마비
월성군 하마비
월성군 하마비는 밥 먹으로 가다가 우연히 본 하마비 최근에 세웠지만 언제인지 므롬
정조 어필 하마비
임금의 글이 있는곳은 반드시 하마비를 세우게 되는데 대부분 집경각 하마비로 말하나
어필하마비로 말 하여야 한다.
숭혜전 하마비
연구 할 때 있었으나 공사 중 잃어버린 하마비
누구를 탓 하랴~~~
옥산서원 하마비
五賢인 회재 선생을 모시는 서원 하마비
길이 나면서 논뚝에 있었으나 지금은 서원 입구에 있음
구강서원 하마비
제일 많이 방문하였으나 있는지 몰랐다가
종친이 알려주어 본 하마비
구강서원은 원래 고려 공민왕 때 이제현의 영당(影堂)으로 세운 것을, 1686년(숙종 12)에 서원으로 다시 세웠다. 하지만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고, 1904년 지방 유림이 복원하였다. 매년 2월 하정(下丁)과 8월 하정에 향사를 지낸다
석씨 하마비
월성 원자력 앞에 있는 하마비
임금이 말해 하마비를 세우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동강서원 하마비
1695년(숙종 2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손중돈(孫仲暾)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서원 옆에는 사찰도 있어 사찰하마비 인가 아니면 동강서원 하마비 인가
위치에 따라 하마비의 용도 달라질 것인가
국당마을 하마비
가면없고 연구 할 때만 잠시 보였다가 영원히 보이지 않는 하마비
경주에는 11개의 하마비가 있지만 2좌는 행방불명이다.
비록 지정된 문화 유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켜야지
잃어버리면 어떡하노
경주의 하마비는 국내에서 2번째로 많은 하마비를 가진 도시이다.
옥산 이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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