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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일상수행의 요법(日常修行-要法)
1. 심지(心地)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自性)의 정(定)을 세우자. 2. 심지는 원래 어리석음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어리석음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혜(慧)를 세우자. 3. 심지는 원래 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그름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계(戒)를 세우자. 4. 신과 분과 의와 성으로써 불신과 탐욕과 나와 우를 제거하자. 5.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자. 6. 타력 생활을 자력 생활로 돌리자. 7.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을 잘 배우는 사람으로 돌리자. 8.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을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리자. 9. 공익심 없는 사람을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 |
일상수행의 요법은 실천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내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원불교의 사은사요, 삼학팔조의 교법을 가지고 인격을 함양하고 대타적으로 이 사회에 어떻게 내가 역할을 하면서 낙원세상을 할 것인가 나타나 있습니다.
경의편 9장 사요의 주지를 설명하시기를 자력 양성은 자력과 타력을 병행하되 자력을 본위로 하자는 것이 그 주지요, 지자 본위는 지와 우가 근본적으로 차별이 없으나 지자가 선도하게 하자는 것이 그 주지요, 타자녀 교육은 자기 자녀 타자녀를 막론하고 국한 없이 가르쳐서 교육을 융통시키자는 것이 그 주지요, 공도자 숭배는 공과 사를 결함 없이 쌍전하되 공도를 우선으로 하자는 것이 그 주지니라. |
일상수행의 요법 1,2,3,4조는 자기 관리입니다. 수행 부분입니다. 5조는 사은 전체를 묶어서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6조는 “타력생활을 자력생활로 돌리자.”입니다. 5조는 감사생활이죠. 이 감사생활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사요입니다. 그것이 바로 6,7,8,9조입니다. 감사생활을 실천하려고 할 때 먼저 의뢰생활이 아닌 자력생활로 하자는 것이죠. 또 자력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잘 배워야 합니다. 잘 배웠으면 어느 정도 자력이 길러지지만 확실한 자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가르치면서 더 큰 자력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공익의 세상이 되는 것이죠. 가르치는 것이 바로 공익심입니다. 그래서 자력생활을 함으로써 내가 복이 있어지고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통해서 지혜가 있어집니다. 그리고 공도자(公道者)를 숭배하기도 하고, 공도생활을 하면서 복이 있어지는 것이죠. 6,7조는 자력이고, 8,9조는 대타적인 불공(佛供)이 됩니다.
배우는 불공과 가르치는 불공의 관계는 상호보조의 관계입니다. 진짜 잘 배우는 것은 가르쳐야 확실하게 됩니다. 배우기만 하면 명료하게 요약을 못하고 비교 분석을 못해요. 하지만 가르치면서 질문도 받고 명료해지고 확실하게 체를 잡을 수 있습니다.
삼세인과로 보면 지혜가 있는 것입니다. 지혜는 복의 근원입니다. 복은 지혜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이 사회도 원만한 사회, 제대로 된 사회는 복과 혜가 맞아야 합니다. 타력생활은 인권이 평등한 복이고, 배우는 것은 지식, 가르치는 것은 교육, 공익은 생활 속에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 평등의 세상, 균등의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 간다면 사회를 위한 삶뿐만 아니라 나도 가장 행복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만약에 내 자식만 가르치고 남의 자식은 가르치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안 배우는 사람은 자력이 길러지지 않죠. 그래서 이기적인 생활을 하면서 내 자식을 폭행하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적으로 시방이 일가이고 한 가족입니다. 인과적으로 보면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이 결국 지혜 있는 사람이 됩니다. 공익심 있는 사람, 자력을 갖춘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평등, 균등 세상, 낙원 세상입니다. 더 들어가면 복혜가 구족한 사회, 복혜가 구족한 개인이 가장 이상적이죠.
여러분은 무엇이 많고 무엇이 부족해요? 제일 못하는 것 이야기해보세요. 학생 법회 볼 때 돌아가면서 일상수행의 요법을 외우게 해요. 일주일 동안 9조 가운데 제일 잘 한 것 한 가지씩 말하고 그리고 제일 못한 것 한 가지씩 말하라고 하면 이야기해요. 내가 어느 분야에서 “강점이 있는가?” “어느 분야를 더 보충해야 하는가?” 에너지를 더 써야 하는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을 부리고 쓸 때는 그 사람의 적성과 능력, 장점을 가져다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행은 반대입니다. 수행은 내 장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은 내 장점의 에너지는 잠깐 보류하고 나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바로 수행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부분을 채워야 하는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뻔하죠. 잘 안 배운 사람 무식할 것이고 안 가르치는 사람은 주변의 인연도 없을 것입니다. 잘 가르치면 내생에 몸을 바꾸고 나왔을 때 서로 좋은 인연이 되겠죠?
저도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대종사님 법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저를 통해서 출가자가 조금 나왔을까 생각해봤어요. 전생의 인연이 클 것입니다. 전생의 인연들이 와서 다시 또 가는 것입니다. 내가 잘 배우고 잘 가르치는 것이 나 혼자 잘 배우고 잘 가르치는 것에 끝나지 않고 다음 생과 인연이 되어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사요 결어 세상을 고르는 길 = 평등세계 = 전반세계(氈盤世界) 전 인류가 잘 살기로 하면 → 이 세상이 골라져야 할 것이요, 세상이 골라지기로 하면 → 사람사람이 먼저 자력을 세워야 하고, 배워 알아야 하고, 또 의무적으로 가르쳐 주어야 하며, 공도주의를 실현하면 → 인류의 생활이 무위이화(無爲이化)로 골라질 것이요, 교육이 골라지면 → 지식이 골라지고, 지식이 골라지면 → 인류의 인권(人權) 또한 골라져서 자연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전반세계(氈盤世界)가 이루어질 것이다. |
잘 가르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왜 안 가르치려고 할까요? 안 해봐서? 몰라서? 무엇 때문일까요? 우리가 가르치는 것은 첫째 나를 가르치자는 것이고 둘째는 가까운 자녀, 가족 그리고 내 주변으로 역할이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가르치는 것은 잘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주변에 확대되는 것이 타자녀(他子女) 교육도 되는 것입니다. 나를 가르치는 것도 가르치는 것이고, 주변에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결국은 이 세상에 한사람이 잘 살고 못 살고는 결국 “그 사람이 어떻게 배웠느냐?” 어떻게 교육을 받았느냐하는 것입니다. 인격의 90%는 교육입니다. 견문을 안 넓히고 밥 먹는 데 돈을 많이 쓰는 집이 있어요. 그러면 비전이 없어요.
결국 사요(四要)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잘 사려면 세상이 함께 잘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각자 각자가 자력을 세워야 하고 자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잘 배워서 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을 잘 배울 수 있는 가르침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의무적입니다.
원불교 교도는 반드시 의무 장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직접이든지 간접이든지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침에서 최고의 가르침은 종교(宗敎)입니다. 그 가르침을 교육하고 훈련하면서 교화가 되는 것입니다. 교화가 가장 범위가 큰 것입니다. 교화는 훈련시키는 것이면서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타자녀 교육도 교화(敎化)입니다. 역대 성자들이 가장 관심이 교화입니다. 교화가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가장 문명하게 하고 잘 살기 위해서는 교화가 되어야 합니다. 교화가 되지 않고 돈만 벌고 먹고 사는 것만 하다보면 결국에 잘 안됩니다.
진실함을 먼저 배우지 않고 제대로 배우지 않으니까 머리로 하려고, 학벌로 하려고, 돈으로 하려고, 명예로 하려고 합니다. 진실을 떠나서 돈과 권력을 향해서 가게 됩니다. 대종사님께서 앞으로 지은 것은 당대에 받는다, 그것도 30년 내에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노태우 30년 내에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권력만 있으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안 되겠죠. 서양은 “노블레스 오블레주”라는 말이 있죠. 진짜 지도자가 되고 명예를 갖추려면 그만한 실천하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돈만 많고 권력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우리 공부를 하시는 분들은 대종사님의 사상을 생각해서 원불교의 좋은 문화를 하나씩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대산법어 제9 동원편 10장. 부처님의 5대주의 ① 주아주의(主我主義): 스스로 세상을 책임지는 주인이 되어 살자 ② 무아주의(無我主義): 현실의 나는 참 나가 아니므로 거짓 나를 놓고 영원한 참 나를 찾아 살자 ③ 중도주의(中道主義): 모든 일에 넘치거나 부족함이 없이 중도를 잡아 살자 ④ 평등주의(平等主義): 평등한 성품 자리는 너와 나도 없고 친소도 끊어진 자리임을 알아 현실의 모든 차별심을 놓고 원만 평등하게 살자 ⑤ 자비주의(慈悲主義): 전 인류와 일체 생령이 한 가족임을 알아 공존공영하는 큰 사랑을 고루 베풀고 살자 |
교육 평등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평등주의라고 해요. 부처님의 오대주의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평등주의가 있습니다. 본래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평(平)이라는 것은 고르다는 것입니다. 고르다는 것은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모두 평등하지만 하나만 차별을 두자고 하셨어요. 지우(智愚) 차별입니다. 지우 차별은 두되 남녀도 평등, 인권도 평등, 기회, 종교, 국가 등 모두 평등이라고 하셨습니다. 성품자리는 너도 나도 없고, 친소도 없고, 현실의 차별심에 속지 않아서 무차별의 차별자리를 원불교인은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평등주의가 실현되려면 먼저 고루 가르치는 교육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평등주의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타자녀 교육은 결국은 주변에 대타적인 가르치는 불공(佛供)이지만 결국은 내 자신이나 이 사회에 불공이 되는 것입니다.
8.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을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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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을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리자입니다.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보다는 가르치기 싫어하는 사람이 조금 더 명확한 것 같아요. 가르친다는 것은 배운다는 뜻의 효, 회초리로 쳐서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회초리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막대기, 마음이라는 뜻이 될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는 배우기를 참 좋아하고 또 가르치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아니면 배우는 것도 귀찮고 가르치는 것은 “더욱이 내 알바 아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 있으신가요? 교화를 해보셔야 합니다. 교회 다니는 분들은 교회 나간 지 2주 된 분도 전도하고 다니십니다.
가르칠 교자는 “본받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나한테 설교 하지 마.”, “나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라고 한 적 있으세요? 가르치는 것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자가 우자를 가르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셨어요. 사실 내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넣어주는 가르침도 있지만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자성의 지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마음을 본인이 알 수 있도록 확인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르침 중에 최고의 가르침은 믿음을 나아가서 자기 안에 엄청난 지혜 광명이 이미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가르침입니다.
◆ 대의 : 각자가 수시로 외워 마음에 대조하여, 자기 자신을 잘 가르치고, 가족을 가르치고, 나아가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 세상을 두루 잘 가르치는 교육평등의 사회를 만들자. |
일상수행의 요법 8조는 수시로 외우셔서 자신도 주변 가족도 더 나아가서 국한을 벗어나서 두루 가르쳐서 세상을 평등낙원 세상, 지혜의 세상으로 만들어가자는 것입니다.
① 위로 배우고 아래로 가르치는 사람이 되자. 지자는 우자(愚者)를 가르치고 우자는 지자에게 배우는 것이 원칙적으로 당연한 일 |
1번을 보세요. “위로 배우고 아래로 가르치는 사람이 되자.”라고 하셨습니다. 지자는 우자을 가르치고 우자는 당연히 지자에게 가르침을 받으라고 나오죠.
옛날에 보시면 양자를 들이죠. 아니면 씨받이를 해서 기어이 대를 이어서 가르쳐 주려고 했죠. 그것은 씨족, 가족주의입니다. 원불교는 공도주의(公道主義)이고 일원주의(一圓主義)이고 전체주의입니다. 결국 모두가 공적인 나와 너는 다르지만 하나이면서 둘인 이 원리를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나눔의 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면서 둘인 이 자리를 깨달아야 하고 이 자리를 쓰고 배우는 것이 타자녀 교육입니다.
가르치는 것이 또 배우는 것입니다. 요즘 의무교육이 많죠. 하지만 의무교육도 맹목적이 많죠. 또 주로 도학(道學)교육보다는 과학교육만 하죠. 어떤 사상이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가르치는 것은 잘 배워야 가르치는 것입니다. 정산종사님 세전에 보면 교육에 대해서 나와 있습니다.
정산종사 법어 세전. 교육에 대하여 교육은 세계를 진화시키는 근원이요 인류를 문명케하는 기초니, 개인 가정 사회 국가의 성쇠와 흥망을 좌우하는 것이 교육을 잘하고 잘못함에 있다 할 것이니라. 사람이 비록 만물 가운데 가장 영특하다 하나 교육의 힘이 아니면 능히 그 최령의 자격을 이루지 못할 것이며, 가정 사회 국가 세계가 비록 이루어져 있을지라도 또한 교육의 힘이 아니면 능히 유지 발전을 보지 못할 것이니, 그러므로, 사람의 일생에 기초가 되는 태중의 기간으로부터 나고 자라는 여러 기간을 통하여 반드시 태교와 유교와 통교의 모든 도가 잘 베풀어져야만 가정 사회 국가 세계에 유용한 사람이 될 것이니라. 또한 교육에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 부문이 있나니, 하나는 과학 교육이요 하나는 도학 교육이라, 과학 교육은 물질 문명의 근본으로서 세상의 외부 발전을 맡았고 도학 교육은 정신 문명의 근원으로서 세상의 내부 발전을 맡았나니, 마땅히 이 두 교육을 아울러 나아가되 도학으로써 바탕되는 교육을 삼고 과학으로써 사용하는 교육을 삼아야 안과 밖의 문명이 겸전하고 인류의 행복이 원만하리라. |
첫째는 어디나 세상을 진화시키고 인류를 문명하게 하고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것이 결국 교육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안 될 때 망조가 든다는 것입니다. 교육이 백년대계라고 했습니다. 눈앞에 현실만 보고 단견으로 생각하는 집단은 교육을 하지 않아요. 당장 먹고 사는 것 만합니다. 지도자들도 인재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교육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20, 30년이 넘게 걸립니다. 20년 30년 바라보고 투자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자기 자식이 아니고 그렇게 합니까? 자기 자신만 넘어서면 자기가 맡은 회사, 교당, 교구에 잘 투자하지 않습니다. 말은 합니다. 모두 말은 인재를 키우고 잘 가르쳐야 한다고 합니다. 원불교에 인사도 교육관련 인사는 1순위로 신청하고 데리고 갈 수 있어요. 그런데 진짜 관심이 있다는 것은 실제로 인사도 가야하고 그곳에 예산도 가고, 시상, 보상이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예산도 시상도, 보상도 없으면 말뿐일 것입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것은 시기가 일생내내입니다. 따라해 보세요. 교육은 영생(永生)교육입니다. 계속 시대는 변화하고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교육에 과학과 도학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4페이지입니다. 교육을 보면 첫째는 성품입니다. 둘째는 습관입니다. 세 번째는 환경입니다. 성품은 본래 못된 것이 없습니다. 성품은 무선무악(無善無惡)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습관에 길들여지고 어떤 환경에서 길들였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성품을 깨쳐서 단련하는 것이 중요하고 습관을 고치는 것, 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교육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맹모 삼천지교(孟母 三遷之敎) : 교육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이르는 고사. 맹자의 어머니는 ① 처음 묘지 근처에 살았는데 어린 맹자는 묘지 파는 흉내만 하며 놀았다. ② 그래서 맹자 가족은 시장 근처로 이사를 했다. 시장으로 집을 옮기자 맹자는 또 물건을 팔고 사는 장사꾼 흉내만 내었다. ③ 당황한 맹자 어머니는 다시 서당 근처로 이사를 하니 마침내 아들이 책을 읽는 흉내를 내자 어머니는 비로소 만족했다는 것이다. 삼천지교와 더불어 맹자 어머니의 자녀교육방법과 관련하여 ‘단기지교(斷機之敎)’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한대의 유향이 편찬한 《열녀전》에 전해지는 것이다. 맹자는 집을 떠나 먼 곳에 유학하게 되었는데, 그가 공부를 다 마치지 않고 도중에 돌아오자, 맹자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틀을 잘라버림(斷機)으로 아들 맹자의 경솔함을 실천적으로 꾸짖었다. 이 일화에서 ‘베틀을 끊어 가르친다’는 ‘단기지교(斷機之敎)’ 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했고, 여기서 ‘결단(決斷)’이란 단어가 파생되었다. |
이 중에 맹자 어머니는 환경을 강조했습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고 했습니다. 천(遷)자가 옮길 천자입니다. 맹자 어머니께서는 3번 옮기면서 자식을 교육시켰습니다. 다 아시죠? 처음에 묘지 근처에서 살았어요. 그랬더니 애들이 염하는 것을 따라하죠. 어머니가 안 되겠다고 하고 이사를 하셨습니다. 둘째 시장으로 이사했습니다. 시장에 뭐가 있어요? 먹을 것이 많죠? 장사꾼들은 졸릴 때 빼고 눈이 다 살아있습니다. 적극적이죠. 가만히 있으면 망합니다. 장사를 하는 곳으로 갔더니 맹자가 물건을 파는 장사꾼 흉내를 내죠. 또 어머니께서 안 되겠다고 하시고 옮겼죠. 서당 근처로 옮겼습니다. 서당 근처로 갔더니 이제 책 읽는 흉내를 낸다고 합니다.
맹자이야기 그만하고 여러분들은 어디로 가세요? 아파트 값 올라가는 곳으로 가나요? 공기 좋고 지하철 역 근처, 교당은 멀어도 상관없죠? 월초기도 안 나와도 괜찮죠? 환경이라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교화를 해보면서 결혼해서 이사를 가요. 교당에서 멀어져서 신심이 더 살아나고 공부심이 더 살아난 사람은 거의 못 봤습니다. 거의 다 강급(降級)합니다. 중요한 것이 성품이고 습관의 힘도 있지만 환경의 힘입니다.
집에서 부모님이 리모컨을 가지고 책 보라고 하면 책을 보나요? 그 아이가 무엇을 보고 배우겠어요? 또 맹자가 공부하다가 오니까 맹자 어머니께서 그것을 보고 베틀을 다 잘라 버렸어요. 그러면서 공부하다 말면 “이 베틀도 짜다 만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맹자를 돌려보냈다고 해요. 요즘은 교육학, 심리학이 잘 발달이 되어 있어서 책도 많이 나와 있고 연구도 보면 좋아요.
인도품 45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자녀를 가르치는 데에 네 가지 법이 있나니, 첫째는 심교(心敎)라 마음에 신앙처를 두고 바르고 착하고 평탄하게 마음을 가져서 자녀로 하여금 먼저 그 마음을 체받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행교(行敎)라 자신이 먼저 실행하고 행동에 법도가 있어서 자녀로 하여금 저절로 그 실행을 체받게 하는 것이요, 세째는 언교(言敎)라 매양 불보살 성현들과 위인 달사들의 가언(嘉言) 선행(善行)을 많이 일러 주어 그것을 기억하여 체받게 하며 모든 사리를 순순히 타일러서 가르치는 것이요, 네째는 엄교(嚴敎)라 이는 철없는 때에 부득이 위엄으로 가르치는 법이니 이는 자주 쓸 법은 아니니라. 그러므로, 한 가정에서 자녀를 가르치되 어머니 태중으로 비롯하여 성인(成人)이 되기까지 이 네 가지 법을 아울러 쓰면 착한 사람 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
어린 아이들에게, 보통 사람들에게 대종사님은 4가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첫째가 심교(心敎)입니다. 출가자, 예비교무님들이 감상담 하는 것을 보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집에서 자식을 위한 기도, 정성스럽게 기도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식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마음으로 온갖 신앙을 하는 심법(心法), 그러면서 그 신앙이 마음에서 우러나오고 인정이 넘치면 그것은 하나의 중요한 가르침이 됩니다. 법회 끝나고 집에 가시면 누워 있는 자식들을 보면서 잘 처신해야겠죠. 마음의 안 드는 사람을 “어떻게 마음으로 대할 것이냐?”가 심교입니다. 그 것을 어떻게 대할 것입니까? 생각 없이 멈추지 않으면 말이 그냥 나옵니다. 그런 누워 있는 자식들에게 나는 법회 봐서 이렇게 좋은데 자식은 무엇을 하냐고 나무라면 자식은 더욱 교당이랑 멀어지겠죠?
다음 행교(行敎)입니다. 행교가 강력합니다. 요새는 정보가 발달이 되어서 자식을 잘 키운 어머니의 책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저도 반성을 많이 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런 아이들을 키운 부모님을 보면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이미 자식을 잘 가르치기 이전에 본인에게 지식과 지혜가 있습니다. 반대로 본인이 배운 것이 없고 지식이 없으면 기준이 낮죠. 먹고 살기 바쁜데 “어떻게 내가 자식을 가르쳐?”고 남편을 원망하는 사람이 많아요. 또 아버지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자식 교육을 어머니에게 전적으로 맡기면 자식이 잘 될 리가 없겠죠.
2018년 3월 26일 한겨레 신문
‘기억과 학습 중추’인 해마 부위에서 어린 시절 이후 사람 뇌에서는 다른 동물과 달리 새 뉴런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네이처>에 발표돼 학계에 관심과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
그 다음 언교(言敎)입니다. 여러분들 어릴 적에 부모님이나 교무님으로부터 부처님, 대종사님, 선진님 이야기 많이 들으셨어요? 그 들은 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어릴 때 들은 것들 다 기억합니다. 시간적으로는 멀지만 기억은 잘 되기도 합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억은 낮아집니다. 시간이 어릴 적 것이 잘 나기도합니다. 5페이지 보면 최근에 신문에 나온 이야기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측두엽에 해마가 있죠. 해마가 문제가 생겼을 때 치매가 생깁니다. 해마가 담당하는 것이 기억과 학습입니다. 해마가 출생했을 때 가장 왕성합니다. 그리고 13살이 되면 거의 역할이 끝납니다. 그 이후에는 감퇴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체격이 작은 아이라고 해서 지혜가 어린 줄 압니다. 사실은 그 반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나이가 먹은 사람일수록 학습능력이 떨어집니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은 부모님께 고마워해야 합니다. 유전적으로나 어릴 때 잘 해주신 것이겠죠.
사례) 타이거 우즈(43세) : 아버지 얼 우즈. 아버지는 아들을 챔피언으로 만들었으나 기본적인 품위도 없는 나르시스트(자기애적 인격장애자, 애착) 외톨이를 만들었다. 부모로부터 가장 기본적인 감사와 미안함 등의 감정을 배우지 못했다. 그러한 자기 중심적 태도가 성공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를 증오한다. 마스터스 기간 중 숙소로 빌린 집 주인에게 인사도 않고 집을 더럽게 사용했으며, 국제 전화를 마음대로 쓰고 돈을 내지 않은 일화 등 섹스 스캔들도 아버지가 했던 것 과 거의 같다. |
그 반대로 타이거 우즈가 한창 잘 나갔을 때 대단했습니다. 중간에 문제가 생겼죠? 아직 회복이 안 됩니다. 타이거 우즈 아버지가 인격적인 것은 내버리고 골프만 치라고 했던 거 에요. 어릴 적에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 기본적으로 “감사하다.”나 “미안하다.” 사과를 못한다고 해요. 그런 사람 있습니다. 사과를 절대 안합니다. 골프 치는 마스터즈 기간 중에 집 주인이 숙소를 빌려줬는데 주인에게 인사도 안했다고 합니다. 가고 나서 집을 봤더니 쓰레기통이었던 거 에요. 그리고 전화비도 엄청 나왔다고 합니다. 인사도 안하고 집은 더럽게 쓰고 통화비도 안내고 가버렸죠. 타이거 우즈는 골프 생각만 한 거 에요. 나머지는 전혀 교육이 안 된 것이죠. 그래서 지금 타이거 우즈가 힘을 못 쓰고 있는 것이에요. 타이거 우즈 아버지의 생활도 엉망진창이었다고 합니다. 일종의 인격 장애가 어릴 적에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네 번째가 엄교(嚴敎)입니다. 엄교는 언제 쓰나요? 사랑으로 해야지 쓰면 안 되나요? 이것이 딜레마입니다. 여러분 중에 한 번도 안 혼나고 큰 사람 있습니까? 사랑만 받았다 있습니까? 대종사님은 엄교도 넣으셨습니다. 철없을 때 엄교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주 쓸 것은 아니라 하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 가끔 대중 앞에서 혼낼 때가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법을 잘 아시는 분들에게 하셨죠. 그럴 때 혼내서 다른 대중을 가르치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초반에는 몰래 불러서 혼내셨다고 합니다.
우리 어릴 적에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해마가 얼마나 초기에 중요한 지를 데이터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3월 26일 한겨레신문에 사람 해마에서 관찰된 뉴런 수에 대해 나온 적이 있습니다. 뉴런의 수가 학습에 중요한 요인입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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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동발달 심리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 인간발달의 기본적인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 - 영유아를 비롯한 아동의 발달심리에 대한 이해는 이간 이해의 기초임 - 생의 초기부터 아동에 이르는 발달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상담심리학의 기초마련 - 상담심리의 기초의 학문이다. 2. 발달 관련 용어의 의미 : 발달을 이루는 세 요소 - 성장(growth): 양적인 것, 커지고 많아지고 넓어지는 증가와 확장 , 몸무게나 키 등.. - 성숙(maturation): 질적인 것, 주로 유전적 정보에 의해 야기되는 프로그램화된 변화 (예: 근육과 신경체계의 성숙, 변성, 초경 등) - 경험(experience): 유기체가 접하는 모든 심리적, 물리적 환경과의 상호작용 (예: 영양섭취, 가족과의 생활 등) 3. 발달 단계 태내기→신생아기→영아기→유아기→아동기→청소년기→청장년기→중년기→노년기 7. 아동발달심리학의 학문적 목표 ① 연령에 따른 발달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기술 ② 발달에 따른 변화를 일으키는 기제가 무엇인지 설명 ③ 변화에 따른 객관적 기술과 원인 설명을 기초로 개인의 발달수준을 진단 ④ 진단한 것을 가지고 아동발달 이해 및 치료하는데 사용 8. 발달의 원리 ① 적기성 : 인간의 여러 발달과업들은 가정 적절하게 획득되어지는 특정한 최적의 시기가 있음, 결정적시기(critical period) : 이 시기를 놓치면 발달과업 획득의 효율성이 떨어짐 예) 대 소변 보는 것, 애착 ② 기초성 : 어릴 때의 발달이 나중의 모든 발달의 기초가 됨 ③ 누적성 : 이전 단계의 발달의 결손은 다음 단계의 발달에 누적되어 발달 결손을 심화시킴 - 2세 이전에 애착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세상에 믿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라는 신뢰 감이 생기지 않게 된다. 사회성 관련 문제가 누적됨 4. 불가역성 : 특정한 발달과업 획득의 최적기를 놓치면 그 후에 보완이나 교정이 힘들어짐. 5. 방향성 : 발달에는 일정한 순서와 방향을 가지고 있음 상부 → 하부 중심 → 말초 단순 → 복잡 - 처음 물체를 집을 때 잘 잡지 못하지만, 좀 더 발달하면 들어올린다. 말초신경 발달으로 인해 소근육이 발달해서 작은 알갱이들을 집을 수 있게 되는 현상. 6. 일정하지 않은 속도성 : 발달은 일생을 통한 계속적 과정이나 영역에 따라 빠르게 혹은 느리게 발달이 이루어짐 7. 개인차 : 각 개인은 인간발달 애정표의 범위 내에서 자기 개인적 시간표에 따라 발달함 - 5~6세 정도의 뇌는 성인의 뇌의 90%이상이 완성 된다. 이런 부분이 먼저 발달을 하는 반면에, 생식기나 신체 이런 것들이 나중에 발달하게 되는 속도가 다르다. 8. 발달 영역간의 연관성: 각 영역의 발달은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해서 상호촉진 혹은 지연을 가져오기도 함 9. 발달과 관련된 쟁점 - 발달에 있어서의 개체의 속성: 능동(개체가 스스로 발달하고자 하는 것)성 VS 수동성(관계없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렇게 되는 것..성숙주의와 비슷, 성숙되면 저절도 발달된다..) - 발달의 과정: 연속성 VS 불연속성(계단식으로 간다는 생각), 양적변화 VS 질적변화 - 발달의 기제: 유전 VS 환경, 성숙 VS 학습 - 발달의 패턴: 보편성 VS 특수성 |
배운 사람이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죠. 제가 자료에 아동발달심리학의 자료를 넣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할 때가 아동기입니다. 아동 때 어떻게 가르쳤는지에 따라서 차이가 큽니다. 원불교도 태교, 유아, 어린이 교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에 맞는 에너지도 쓰고 교구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간을 이해하고 다양성을 알아서 그것에 맞게 배우고 가르친다는 것이 매우 힘든 일입니다.
6페이지에 발달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양적 성장, 질적 성숙, 경험을 통한 발달이 있습니다. 또 신생아, 영아기 아동기가 중요합니다. 청소년기에는 인생의 방향과 직업선택이 중요한 문제죠. 그 전에 기본적인 것이 유아기에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달의 원리를 보면 가장 해당되는 시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대변, 소변을 보는데 부모님들이 성질이 급해서 애기를 몰아 부치면 성격이 조금 이상해질 수 있죠. 심리학에서 “내면아이”라는 말이 있어요. 나이는 30살인데 그 분야에 해결이 안 되면 아이입니다. 겉은 어른인데 내면은 아이입니다. 그래서 어릴 적에 모든 성장 발달 기초가 형성되게 됩니다.
2살 이전에 애착형성이 제대로 안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충분한 사랑과 따뜻한 기운을 받아야 합니다. 이 때 사랑을 못 받은 사람들이 결국 사이코패스가 되거나 엄청난 권력이나 욕심을 향한 여러 가지 행동들이 나타나게 되죠. 그 때 그 기회를 놓치면 나중에 해도 바뀌기 힘들죠. 중고등학교에 많이 써야 하는 것이 아니고 유치원 전에 많이 써야 해요. 중고등학교 때 쓰면 늦죠. 어릴 적 발달의 방향과 순서가 있습니다.
권도편 44장 말씀하시기를 [병자의 맥이 너무 급하면 느리게 하고 너무 미하면 강하게 약을 써서 그 혈맥이 골라져야 병 없는 육신이 되는 것 같이, 우리의 마음 쓰는 데에도 과불급과 편착심이 있다면 그것을 불편 불의한 중도에 골라서게 하여야 병 없는 성질이 될 것이니라. 사람의 성질이 진착하기만 하면 ⇒ 조그마한 경계 하나도 넘어서지 못하는 병이 있고, 활발하기만 하면 ⇒ 너무 허허하여 함부로 하는 병이 있으며, 너무 정중한 사람은 ⇒ 민첩하지 못한 병이 있고, 재주만 있고 보면 ⇒ 경망하고 박덕한 병이 있으며, 뜻이 너무 고상하기만 하면 ⇒ 오만한 병이 있고, 마음이 겸손하기만 하면 ⇒ 향상하려는 용기가 적은 병이 있으며, 원대한 생각만 가진 사람은 ⇒ 작고 가까운 일에 소홀한 병이 있고, 너무 세밀한 사람은 ⇒ 대체와 강령을 잡지 못하는 병이 있으며, 열성이 너무 과한 사람은 ⇒ 걸핏하면 승기자를 미워하는 병이 있고, 뜻 없이 평범하기만 하면 ⇒ 모든 일에 열이 적은 병이 있으며, 위엄만 내는 사람은 ⇒ 온순한 태도가 적은 병이 있고, 너무 온순한 사람은 ⇒ 위엄이 적은 병이 있으며, 성질이 곧기만 하면 ⇒ 사람이 잘 따르지 않는 병이 있고, 뜻 없이 화하기만 하면 ⇒ 청탁을 가리지 못하는 병이 있으며, 너무 강한 사람은 ⇒ 잔인한 병이 있고, 유하기만 하면 ⇒ 모든 일에 결단력이 적은 병이 있나니, 우리는 우리의 성질을 잘 짐작하여 어느 편이든지 기울어지는 병이 있거든 항시 골라 세우는 데에 노력할 것이며, 또는 공부를 하는 가운데 어느 과정 하나에만 편착하거나 사업을 하는 가운데 어느 부분 하나에만 편착하는 병이 없게 하며, 공부를 하는 가운데 사업을 등한시하거나 사업을 좋아하는 가운데 공부를 등한시 하는 병이 없게 할 것이니, 이러한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은 점점 원만한 도를 성취하여 쓸모 많은 사람이 될 것이며 그 성질은 흠 없는 성질이 되고 그 인격은 더욱 완전한 인격이 될 것이니라.] |
다음 페이지입니다. 우리 뇌의 90% 이상이 6세 이전에 발달이 끝납니다. 해마도 13살 이전에 성장을 멈춥니다. 그리고 상호 연관성이 있어요. 해당 분야에 발달이 안 되면 다른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권도편 44장을 적어 놓았습니다. 이 법문을 보면서 사람이 끝없이 배우고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정산종사님이 정말 대단하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으로 말을 했습니다. 성질이 차분한 사람은 어떤 병이 있어요? 경계가 오면 넘어서질 못합니다. 그리고 웃기만 하는 사람은 너무 허허해서 함부로 하고 실수를 많이 하게 됩니다. 너무 정중한 사람은 민첩할 자리에 민첩하지 못합니다. 재주가 너무 많으면 경망할 수 있습니다. 뜻이 너무 고상하기만 하면 자기 잘난 맛에 살고 오만합니다. 마음이 너무 겸손하면 항상 용기가 적고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요. 가르치는 사람은 자기를 가르칠 때나 누군가를 가르칠 때도 이것에 맞게 가르쳐야 합니다. 원대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작은 일은 쳐다보지도 않고 소홀히 합니다. 또 너무 세밀한 사람은 전체를 보지 못하죠. 그리고 너무 열성이 과한 사람은 앞에 잘 나가는 사람을 못 봐요. 자기가 항상 잘나가야 합니다. 뜻이 없이 평범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너무 온순한 사람은 위엄을 세울 자리에 위엄이 없어요. 엄교는 하지 않고 부드러운 것이 좋다고만 생각해요. 그러면 일이 진행이 안 되죠. 어떤 사람을 다스릴 때 부드러울 때는 부드럽지만 때로는 혼낼 때 혼내야 합니다. 성질이 너무 곧은 사람은 주변에 사람이 안 따릅니다. 자기는 옮은데 일이 안 되는 것이죠. 뜻이 없이 화합을 잘 하는 사람은 결국 청탁을 못 가립니다. 자를 때 잘라야 하는데 못 자르죠. 너무 강한 사람은 잔인하고 너무 부드러운 사람은 결단력이 없습니다. 아직도 고민 중입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병이 있습니다. 공부와 사업 중에 공부할 때는 빠지는데 봉공활동 할 때는 열심히 해요. 무결석인데 막상 일은 못하고 모두 한쪽에 치우친 것입니다. 공부할 때는 열심히 하는데 일할 때는 안하고 못해요.
이런 것이 한쪽에 치우친 것입니다. 내가 여기 해당된 것이 있다면 나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상황 따라 성격 따라 다 다른 것입니다.
질문 1) 왜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무었인가? 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누구에게서인가 배운 것이니, 나도 누구에겐가 가르쳐 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요, <의무> ② 내가 참으로 잘 살기 위해서는 세상이 좋아져야 하고 밝아져야 할 것이며, 좋은 세상 밝은 세상을 만들기로 하면 널리 가르쳐야 할 것이다. <연기> ③ 내가 잘 배우기 위해서는 남을 잘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인과> ④ 인과를 가르쳐서 죄업줄이고. 다음생 지혜총명보 다음생 선연 자력양성을 통해 재산상속보다 기부확대 노블리스 오블리주 사례) 땅콩회향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44세) 승무원에게 폭언 폭행 사무장(박창진 49)을 내리게 하고 사무장에게 아직까지도 사과한적 없고, 오히려 팀장에서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시킴. |
우리가 왜 가르치기 싫은데 가르쳐야 해요? 누군가에게 배운 것입니다. 엄청난 주변의 타력을 통해서 실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자기도 누군가에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잘 배웠으니까 잘 가르쳐야 당연한 되돌림입니다. 서로 잘 배우고 잘 가르쳐야지 원인과 결과가 맞물려서 좋은 세상이 되게 됩니다. 내가 잘 가르쳐야 배우고 잘 배워야 잘 가르치게 되죠. 인과(因果)를 가르치면 죄업을 적게 짓고 지혜도 얻고 선연(善緣)이 됩니다. 재산 상속보다도 기부를 확대해야 합니다. 서양에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강하죠. 예를 들었습니다. 오늘 신문을 보니까 자기보다 나이가 5살 더 많은 사무장을 직책이 높다는 이유로 비행기를 마음대로 돌려버리고 마음에 안 든다고 승무원을 폭행했죠. 이 사람이 법정에 서서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이 아직 사과를 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무장은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뉴스에 나왔는데 아직도 보복을 합니다. 아직 제대로 가르치는 문화가 성숙되지 못한 것입니다.
질문 2)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내용) ? ① 사람으로서 알아야 할 것 즉 사람의 구실을 잘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다 가르쳐야 할 것이니, 내가 아는 만큼 가르칠 의무가 있다. ② 도덕, 정사, 과학, 생활, 학술, 상식 등... |
교의품 27장 대종사 선원에 출석하여 말씀하시기를 [이인의화(李仁義華)가 지금 큰 발심이 나서 영업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예회를 본다 선원에 참예한다 하여 그 신성이 대단하므로 상을 주는 대신에 이 시간을 인의화에게 허락하노니 물을 일이 있거든 물어보라.] 인의화 여쭙기를 [어떤 사람이 너희 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원래 불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되는 이치를 스스로 깨쳐 알게 하는 교이니 그 이치를 가르치고 배운다고 하면 될 것이요, 그 이치를 알고 보면 불생 불멸의 이치와 인과 보응의 이치까지도 다 해결되나니라.] 또 여쭙기를 [그 이치를 안 후에는 어떻게 공부를 하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경계를 대하여 요란하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게 하나니라.] |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요? 사람으로서 필요한 것을 가르쳐야겠죠. 여러 가지 있습니다. 교의품에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는가 묻는다면 우리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스스로 되게 하는 것을 가르친다고 하셨고 용심법(用心法)을 가르친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서 하죠. 대종사님께서 작은 것을 크게 만드는 것을 가르친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질문 3) 가르치는 것이 마땅한 줄 알면서도 왜 가르치지 못할까요(원인)? ① 자기가 모르기 때문에. ② 가르치는 방법을 잘 몰라서. <상에 가리거나 근기를 모르거나 기술적 방법을 몰라서> ③ 목전의 욕심에 가려서. <친소에 끌려 너무 잘 가르치려 하거나 자기만 알려는 이기심> ④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진리를 몰라서 믿지 않고 깨닫지 못해서. ⑤ 성불제중·제생의세의 원력이 크지 못하고 철저하지 못해서. ⑥ 게을러서. 이상에 든 원인 외에도 많을 것이나 그 근본적인 것 몇 가지를 들어 본 것이다. |
왜 가르치는 것을 싫어하죠? 먼저 그 관계를 몰라서겠죠.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불공인지 보은이고 감사생활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방법을 모르죠.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릅니다. 목전의 욕심에 가려서 가르치지 못합니다.
영국은 성인이 일주일에 평균 8시간 이상 봉사합니다. 우리나라는 1년 내내 8시간 봉사하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지적 재산을 보호해주고 특허를 내서 보호해줘야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오픈해서 교육도 필요합니다. 한의업계가 그래요. 연구가 되었으면 토론하고 같이 나눠 가져야 하는데 자기만 가지려고 하니까 계속 축소됩니다. 공을 해서 키워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불생불멸의 이치나 인과보응의 진리를 알면 가르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그래요? 나와 둘이 아니기 때문이죠. 쉽게 말해서 불공이나 불사의 이치를 깨달으면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질문 4)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려면? ① 가장 잘 배우는 사람이 되자. 먼저 자신이 알고 있어야 하고,〈이상 지식〉 ② 원력이 크고 철저해야 하며, <성불제중 · 제생의세의 원력> ③ 진리를 확실히 깨달아야 하며〈견성성불〉 ④ 일일 시시로 자기가 자기를 가르치고 먼저 몸으로 실행할 것(솔성요론 8조) ⑤ 시대와 대상에 맞게 가르치는 방법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제중〉 부모-자녀, 스승-제자, 선진-후진. : 청출어람(靑出於藍) 가르치되 배움려하지 않거든 나의 지량과 방편을 돌이킬지언정 그 사람을 허물 말라. 교육의 효과는 단시일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요, 시일을 두고 나타나는 것이니 욕속심 놓고 오래 오래 훈도(薰陶)의 공을 들이자. 유투브, 신문, 방송, 모임공부, |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려면 첫째 잘 배워야 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배우는 사람 이상이 되어야겠죠. 가르치는 사람이 되려면 원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불(成佛)하고 제중(濟衆)하겠다는 것이죠. 서원(誓願), 원력(願力)이 있는 사람은 신념이 있고 열정이 있습니다. 건성건성 대충 때우지 않아요. 편한 것만 선택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서원과 원력이 있는 사람은 신념과 열정으로 할 것입니다. 최고의 교육 중 하나는 사람의 마음에 신념과 열정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좋은 글을 쓰고 좋은 말을 해도 그 사람 속에 신심(信心)과 공심(公心)이 있다면 그 뜨거움이 전달될 것입니다.
효산 법사님께서 교화는 장작불과 같다고 하셨어요. 내가 뜨겁게 타고 있다면 내 주변 사람들은 알아서 타게 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진짜 가르친다는 것은 내가 잘 배워서 내가 잘 쓰는 것입니다. 확실히 진리를 깨달아 알면 잘 가르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또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자기가 자기를 먼저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만 잘 되기 위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의 자기 도덕의 자기 진리의 자기가 습관 업력(業力)의 자기를 이길 때 자신감과 엄청난 힘을 얻게 됩니다.
중용 1장 천명지위성 (天命之謂性) 하늘이 명한 것이 나의 본성이다. 솔성지위도 (率性之謂道) 나의 본성을 따르는 것이 길이다. 생명의 길, 나와 우리들의 삶의 길, 인간이 가야할 길. 수도지위교 (修道之謂敎) 바로 그 길을 닦는 것, 그것이 바로 교(육)이다. 결국 교육의 궁극 목적이란 무엇인가? 바로 나를 찾는 것, 나의 본성을 찾는 것이다. 내가 이 우주의 모든 생명력과 우주의 마음자리를 그대로 가지고 왔다는 걸 깨치지 못하면, 인생이라는 건 한낮 허망하게 사라지는 꿈에 불과하다. |
중용 1장을 소개합니다. 법문이 좋아요. 천명지위성()입니다. 하늘에 명한 것이 바로 성품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일원상(一圓相)이죠. 내 본성은 일원상이라는 말이죠. 정말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솔성지위도라고 했습니다. 그 성품을 거느리는 것이 바로 도라고 하셨습니다. 자기의 본성을 어떻게 잘 쓸 것인가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 그것이 도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 수도지위교라 하셨습니다. 성품을 거느리는 것이 도고 그 도를 닦는 것이 교라는 것입니다. 최고의 교육은 성품자리를 알아서 그 성품자리를 쓰는 것을 교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영어를 하고 수학을 하는 것도 교육이지만 내 안에 이미 갖추고 있는 본성자리를 찾아서 어떻게 잘 쓸 것인가 하는 것이 최고의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이죠. 이것이 교육의 목적입니다.
권도편 13장 선(禪) 결제식에 설법하시기를 [내 절 부처를 내가 잘 위하여야 남이 위한다는 말이 있나니, 자신에게 갊아 있는 부처를 발견하여 정성 들여 불공하라. 불공에는 자기 불공과 상대 불공이 있는 바, 이 두 가지가 쌍전하여야 하지마는 주종을 말하자면 자기 불공이 근본이 되나니, 각자의 마음 공부를 먼저 하는 것은 곧 불공하는 공식을 배우는 것이니라.] |
권도편 13장에 보면 누군가를 가르친다고 이야기하는데 진짜 잘 가르치려면 먼저 자기를 잘 가르치는 것 즉 자기 불공입니다. 이것이 근본이고 우선입니다. 누가 시장 나온다고 하는데 자기도 관리 못하는데 어떻게 시장이 됩니다. 교육감을 나오는데 자기 집안도 관리 못하는데 어떻게 나오나요. 또 시대와 대상에 맞게 가르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짜 잘 가르치는 사람은 자녀도 제자도 자신보다 더 뛰어나게 만드는 것이 잘 가르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교당에서 법회만 보는 것이 잘 가르치는 것일까요? 시대성에 맞아야 합니다. 유튜브나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시대에 맞게 누구에게나 법을 전달할 수 있는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교당에도 잘 해야 하지만 어떻게 일체 생령에게 접할 기회를 줄 것인가 생각해봐야죠.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겠죠. 여러 매체를 이용해서 교화를 해야 합니다.
질문 5) 잘 가르치는 구체적인 방법? 1) 직접 가르치는 길 ① 마음으로 가르치는 것, 자비와 인정이 충만하여 심화·기화·인화로 가르치는 것이며 이 모두가 스스로 성심껏 수도함으로써 밖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修道之謂敎> ② 말로 가르치는 것, 무량법문을 마련하여 법 있는 말로써 걸림 없도록 하는 것이요, ③ 실천으로 가르치는 것, 심신작용이 매양 도에 맞아서 솔선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2) 간접적으로 가르치는 길 ① 정신·육신·물질을 힘 미치는 대로 교육기관이나 교화기관에 합력하는 길 수희공덕, 재능기부, 봉사, 육영회원, ARS... ② 장학기관에 합력하는 길이 있다. 장학회원... 이상 여러 가지의 방법이 있으나 그 마음이 항상 여래 호념의 도에 표준하여 <언제나 알뜰히 아껴주시고, 살려 주시고, 용서하여 주시고, 복돋아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마음> 그 사람의 영생을 능히 구원받을 수 있는 근본적인 것부터 가르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가르치는 방법은 직접과 간접이 있습니다. 직접은 자기 불공을 잘하는 것입니다. 말을 하고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사업으로 말하면 마음으로 자선사업, 교육사업, 교화사업 이 3대 사업이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또 동시에 직접 가르치는 부분이 있으면서 간접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간접적인 방법은 15페이지 뒤편에 나와 있습니다. 일단 정신, 물질, 육신을 힘 미치는 대로 교육기관이나 교화기관에 합력하는 것입니다. 같이 기뻐해주고 축하해주고 박수도 같이 쳐줘야 합니다. 어떤 분이 책을 내어서 그 사람이 온 정성을 다해서 했다면 우리 모두가 축하해주고 기뻐해주는 것도 교화입니다. 재능기부나 봉사도 마찬가지죠.
우리 원불교는 교육기관이 많습니다. 대학교 중고등학교가 28개가 있죠. 원불교가 교화기관도 있지만 직접 교육하는 교육기관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원불교에서 좋은 문화가 돌아가신 분 이름으로 희사를 하는 좋은 문화가 있습니다. 참 다행스럽습니다. 방송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교화사업이 전달이 될까요? 합력할 필요가 있죠. 장학회원도 있습니다. 원불교 장학회도 뒤에 적어두었습니다. 개인, 사회에 많은 장학회도 많습니다. 학사도 마련하는데 많은 분들께서 희사를 하고 계십니다. 언제나 알뜰히 아껴주고 북돋아 주고 기뻐해주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질문 6) 영생을 능히 구원할 수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① 희망과 용기와 신념을 넣어 주는 것. <불지품> ② 불생불명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진리를 깨우쳐 주는 것. <인과품 16> |
질문 6번째입니다. 영생(永生)을 능히 구원할 수 있을 것이란 무엇인가? 그 사람이 이 법을 만나서 용기와 희망과 신념과 열정을 가진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겠죠. 그리고 불생불멸(不生不滅), 인과보응(因果報應)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영생을 구원해주는 것입니다. 제일 급선무라고 하셨죠.
질문 7) 동양인과 달리 서구인들이 장애인을 입양해서 키우는 이유는? 서구인들이 장애인을 입양해서 키우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① 도덕적 의무감 때문인데 기독교에서 기인하는 그들의 도덕은 '남을 돌보는 것이 의무'라 (You are your brother's keeper.)는 성경 말씀을 따르는 일이고, ② 남을 위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사회질서와 관습을 따르는 일이고, ③ 아무리 부와 명예를 얻었어도 남과 나누지 않으면 사회적인 존경을 받거나 상류계층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찰스 디킨슨이 쓴 '스크루지' 이야기에 비유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떼돈 벌어 떵떵거리면서 사는 스크루지를 보고 아무도 성공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부는 얻었을지 몰라도 성공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누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그는 성공한 사람, 사랑 받는 사람이 되었다. 서구에서 남을 돕는 일은 선심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의무다. |
여러분 이상하지 않아요? 외국 사람들은 왜 장애 아이를 데리고 와서 키울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제가 답을 적었습니다. 장애인들을 입양해서 키우는 이유 중 하나는 도덕적 의무감입니다. 도덕적 의무감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남을 돌보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기독교에서 교육 사업이 많습니다. 복지 자선 사업도 많습니다. 과연 원불교는 자선 복지를 의무라고 생각 많이 해요? 자기 선한다고만 하지 않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의 문화인 거죠. 남을 위해서 무엇인가 하는 것이 사회 질서이고 관습입니다. 아무리 부와 명예를 얻었어도 나누지 않으면 상류계층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존경받지 못합니다. 그 중에 스크루지 이야기도 아시죠? 스크루지가 돈을 많이 벌었지만 욕심을 부리니까 인정하지 않아요. 서구에서는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인정하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돈만 벌면 인정해주죠. 남을 돕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셔야 해요. 기독교에서는 돕는 것 자체를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원불교 교도가 교당에 다니면서 유지비를 내고 학사에 희사(喜捨)하고 기부하는 것에 당연히 알고 참여해야 합니다.
질문 8) 무관사에 동하지 말라고 한 것과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리는 것 이 사이에서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른데 넘어서 어떻게 중도를 지켜나가야 할까요? 세상에 나온 모든 책을 다 볼 수 없듯이, 먼저 그 근본 이치를 알아서 적용해가면서 본인의 해당 분야의 책을 주로 읽고, 점진적으로 분야를 넓혀 가야 효과적일 것이다.
‘정신세력의 확장’도 자기의 처지와 힘에 맞게 하되 동·정간, 영·육간, 자·타간, 일과 이치의 여러 여건과 상황을 봐서 그때 그때 결정하되 점차 큰 서원으로 확대시켜가야 한다.
‘피경(避境)’이나 ‘무관사에 동하지 않으며’는 내적 힘을 키우는 핵심에 에너지를 집중하기위해서 때론 공부심으로 하는 ‘피경(避境)’을 말하며, 특히 정전 법위등급의 법마상전급에 나오는 ‘무관사에 동하지 않으며’는 주로 내면에서 일어나는 온갖 마구니와 싸우는데 에너지를 더 써서 정신 수양의 힘을 기르기 위함이며, 자기의 책임을 이행하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지, 대타적인 불공인 누군가를 ’가르치는 불공’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디까지가 무관사에 부동이며, 어디까지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리는 돌리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어서 지자나 스승과 문답이 필요하되 중도가 그 답일 것이다.
자기 힘에 맞게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리자’ 것을 하는 것을 의무로 알고 직·간접의 방법을 통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
“개인적 성향도 다른데 어떻게 중도를 지켜야 할까요?” 질문을 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관사(無關事)에 동(動)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안으로 자신의 수양력을 키우라는 것입니다. 법마상전급에 있죠. “내면에서 일어나는 온갖 번뇌 마구니들과 싸우는데 에너지를 집중하고 밖으로 에너지를 쓰지 마라.” 는 것이 무관사에 동하지 말라는 이야기죠. 법(法)과 마(魔)의 싸움을 철저히 해라는 것이 무관사에 동하지 말라는 이야기고 적극적으로 가르치라는 것은 조금 달라요.
기준이 바로 사람 따라 다르고 자신의 능력과 깨우침과 자신의 형편과 여건에 따라 다른 것이죠. 어떤 사람은 무관사 부동(不動)을 넘어선 사람이 있고 아직 힘이 없어서 에너지를 못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무관사 부동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죠. “무관사 부동을 해서 힘을 길러서 다음 단계로 가르치자.”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질문 9) 권위와 권력과 리더쉽의 관계는? 권위(權威) : 아우토리다드 아우게레(Autoridad augere) Autoridad : 권위. augere : 증가시킨다. 성장시킨다. 권위(權威) :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 인정받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신. 권위(權威)는 생각과 행동의 단단한 기반이어야 한다. 권위에 바탕한 권력을 행사하게 하는 리더쉽(leadership) 권력(權力) : 남을 지배하여 복종시키는 힘.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게 행사하는 강제력. 권위주의(權威主義)는 권위는 상실하고 권력만 행사하려고 함 배움 = 배어들다. 가르치려 말라 (아하!~ 그거 알고 있었는데......)하게 하자. 솔선수범으로 우러나게 하자 --> 가르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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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권력과 배움입니다. 권위는 증가시키고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권위는 남을 지위하거나 통솔하고 따르게 하는 힘이죠. 그것은 실력에 기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권위에 바탕에서 권력을 행사해야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위에 바탕에서 권력은 좋은 것이죠. 권위를 잃어버린 실천력이 없는데 권력만 하려고 하는 것이 권위주의입니다. 이것은 좋지 않습니다.
배움이라는 소리는 배어들게 하는 것입니다. 진짜 가르친다는 것은 성품을 가진 본인이 어떻게 거느려 쓰는 것인가가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내가 외부의 지식을 많이 받는 것이 다가 아니라 내 자성의 본래 이치를 알게 하는 가르침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 안의 보물 공원정(空圓正)의 보물을 가지고 왜 그렇게 사느냐 물은 적이 있죠. 교육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과학은 채우는 것입니다. 도학은 비우는 것입니다. 그런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위해서 염불을 하고 일기를 쓰고 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것들이 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처칠 이야기를 써놓았습니다. 2차대전 중에 방송연설을 했습니다. 히틀러는 주로 밑에 사람이 써준 글을 읽었는데 처칠은 자기가 썼습니다. 솔직 담백한 연설이 되니까 2차대전 승리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자기체크표
최근 몇 년 사이 가르친 것, 지원한 것 | 현재 가르치고 있는 것 현재 지원하고 있는 것 | 앞으로 가르칠 계획인 것 | 유념조항 | ||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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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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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보세요. 자기 체크표에 최근 몇 년 사이에 직접 간접적으로 지원한 대상을 써보시고 현재 지원한 것은 무엇인지 써보세요. 그리고 앞으로 가르칠 계획도 써보세요. 그것을 유념조항으로 잡으세요. 저를 보세요. 일상수행의 요법을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리자고 외우는 것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직간접의 불공을 의무조항으로 할 것이냐가 더 중요하겠죠. 집안도 잘 되려면 배우고 가르치는데 잘 해야 하고 이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장에 보면 개인이 할 의무장학, 세계 국가, 교단이 할 의무장학이 있습니다. 제가 학사를 하는 것 또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 유학 온 학생에게 장학을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 교단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부동산이 난리난 적이 있었죠. 회장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급여도 깎지 않고 백악관가서 회사 지원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학사를 할 생각을 했습니다. 기업의 회장이라는 사람이 자신은 손해를 안 보려고 하고 지원해달라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자기희생이나 자신의 나눔이 없이 어떻게 지도자 위치에 설 수 있겠습니까? 한국 문화에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죠. 동의하세요? 좋지 않은 문화겠죠? 어떤 단체는 배우고 가르치는 곳에서 성장을 합니다. 특히 지도자는 가르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좌산 종사 - 배움 ․ 가르침의 道 1. 개인이나 단체나 참 성장, 발전은 배우고 가르치는데서 촉진된다. 2. 배우지 아니하면 지자(智者)가 될 수 없고, 가르치지 아니하면 지도자(指導者)가 될 수 없다. 3. 솔성(率性)과 인륜도덕(人倫道德)으로부터 학문(學問)․기술(技術)․정사(政事)․생활(生活)․상식이 모든 분야 마다 나보다 나은 이에게 다가서서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4. 나보다 부족한 곳에는 다가서서 가르쳐야 한다. 자기만 알고 가르치지 않는 것은 빚을 지음이다. 맑히고 깨우치고 바루어 주는 가르침을 베풀어 가야 한다. 5. 만일 우월자(優越者)에게 상대심(相對心)을 가지고 대하며 미치지 못함을 보고도 방임(放任)하거나 비난만 하는 것은 공부인(工夫人)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6. 배우는 것도 공부심으로 해 보고 가르치는 것도 공부심으로 하는 사이에 큰 공부가 열리고 큰 역량이 터진다. 7. 옛 성인(聖人)도 ‘오직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을 뿐’이라고 하셨다. 『학불염(學不厭싫을염) 교불권(敎不倦게으를권)』 8. 투현질능(妬賢疾能: 어진자를 시기하고 능한자를 미워함)은 자기 일신도 보전하기 어렵고, 호현요선(好賢樂善: 어진자를 좋아하고 착한자를 좋아함)은 천하사(天下事)도 능히 감당해 낸다. 9.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는 자타피차(自他彼此)가 없고, 남녀노소(男女老少)도 없고, 선악지우(善惡智愚)도 없고, 상하좌우(上下左右)도 없고, 부귀빈천(富貴貧賤)도 없다. 10. 배우기 위하여는 자기의 신분이나 선입견들을 백지로 돌리고 일단사 배우기 만을 주장해야 한다. |
가르치지 않는 것은 빚지는 것입니다. 또 가르치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아주 큰 죄업입니다. 성인들은 가르치는 것을 게으르지 않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상이 피차가 없습니다. 원불교에서 의무장학을 하면 교육평등이 되어서 어느 단체나 개인이 좋은 인연으로 집단지성이 살아나서 서로 돕고 낙원세상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배울 줄 모르고 가르칠 줄 모르고 무식하게 어둡게 산다면 얼마나 서로 안타깝습니까? 오늘을 통해서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 게을러지지 말자,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의무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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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정이 생겨서 늦게 올린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초벌 타이핑해주신 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밀운교우님! 고생많으셨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오~ 밀운 교우님 고생 많으시네요 감사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밀운교우님 감사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