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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의 누벨바그철학자 에드가 로맹은 “드라마는 스타를 만들어내지만 천재는 쫓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단언컨대, 그가 김희애라는 배우를 만나지 못했기에 하는 말이다. 성실한 배우로서의 견고한 이미지에 ‘여성들의 워너비’ ‘국민 누나’ 그리고 ‘패션 아이콘’까지, 새로운 물결에 몸을 맞긴 채 진화 중인 유일무이한 여배우, 김희애를 밀라노에서 만났다.
2014.06.30
“저희 <밀회>의 이선재와 오혜원을 응원해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현재 오혜원으로 살고 계신 여러분들, 오혜원이 되고 싶은 젊은 친구들에게 저희 드라마가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 좋겠습니다.” 이번 백상예술대상에서 패셔니스타 상을 받은 김희애의 수상소감은 수많은 ‘오혜원 레플리카’들의 정곡을 찔렀고 가슴을 쓸어 내리게 했다. 어쩌면 그중 하나일지 모를 나도 “작가는 대중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원해야 하는 것을 쓴다”는 에코의 말을 문득 떠올렸다. ‘작가’ 자리를 ‘배우’로, ‘쓰다’ 대신에 ‘연기하다’로 대치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니 팩햄(Jenny Packham)의 화이트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김희애는 “안 그럼 혼내줄 거야.”라는 자기 패러디로 ‘와아’ 하는 웃음과 묵직한 박수를 함께 끌어냈다. 의도치 않게 이번 백상 무대 자체를 이 담백한 당부의 말로 기억하게 하는 노련함을 발휘한 것이다. 이틀 후, ‘개념 수상소감’이 한창 회자되고 있을 무렵, 김희애는 발렉스트라의 뮤즈가 되어 밀라노에 있었다. 당연히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밀회>를 아직 반이나 남은 올해의 최고 드라마로 이미 낙점한 이유이자 “우리에게는 김희애라는 여배우가 있다”고 안도하게 만드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패셔니스타 상을 받은 무대에서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생각을 하셨어요?
예쁜 옷 입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야 하나요?(웃음) 저도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많은 이들이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멋진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까, 연연하잖아요? 정작 자신이 뭘 원하는지, 뭘 생각하는지 모르고 그냥 인생을 후딱 살아버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 자신을 포함해서 반성도 많이 했어요. 한 번뿐인 인생인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드라마를 본 분들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했어요.
<밀회> 마지막 장면에서 오혜원이라는 여자가 구원을 받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 듯한 느낌이었는데, 이번 수상소감에서도 비슷했어요. 상의 종류와는 별개로 그 자리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사실 상은 그 전에 많이 받아봤잖아요. 그저 공감한다는 것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부부 사이도, 부모자식 간에도 그렇고 서로 마음을 알아준다는 게 너무 고맙지 않아요? 다 위로가 되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그저 불륜이라고 치부해버리는데, 의도한 대로 보아주신 분들이 계셔서 감사했죠. 게다가 안판석 감독님과 정성주 작가님이 모두 상을 받으셨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에요? 보통은 스태프 분들이 배우들 자리에 병풍처럼 계시기 마련인데. 따로 밥 먹고 술 마시는 것도 좋지만 애쓰신 두 분을 위해 최고의 순간을 그 역할로서 함께한다는 것도 의미 있었어요. 게다가 좋은 옷 입고 시상식 가는 것 자체도 즐거운 일 아닐까요?
아직 오혜원과 김희애 사이에서 두 여자를 잊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들이 많은데, 본인은 좀 벗어났나요?
저도 힘들었어요. 이제 끝이구나…. 종영파티 날, 다들 섭섭하니까 새벽 세 시까지 수다 떨고 전 아침 비행기로 제주도를 갔거든요. 한잠 못 잤지, 마음은 섭섭하지, 정신적, 육체적으로 막 공황 상태가 와서 힘들었어요. 그래서 한라산을 한두 번 다녀왔어요. 자연이 주는 치유가 이런 거구나 싶더라고요. 조금 슬펐고, 지금은 조금 나아졌어요.
<밀회>는 불세출의 드라마였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40대 여자와 가난한 20대 남자의 격정 멜로였고, 로열 패밀리와 ‘줄줄이 사탕’ 인간들이 악다구니 치며 ‘정치’ 하는 꼴을 그린 사회극이었으며, ‘사랑’이 어디에서 발현하고 ‘사랑하는 사람(愛人)’이 어떻게 삶을 전복시킬 수 있는지 증명하는 심리극이었다. 감정이든, 인생이든 눈 감고 모른 척했던 것들을 직시하라고, 고민하라고 독려했다. 그건 ‘강남 아줌마의 교육열’이라는 기이한 풍경과 불현듯 찾아온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 사회 이슈와 감성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빚어낸 안판석-정성주 콤비의 전작 <아내의 자격>에서의 충격적인 경험과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드라마 사에 길이 남을 두 작품에 공히 김희애가 있다.
안판석 PD는 어느 인터뷰를 통해 <밀회>의 미학을 배우들이 완성했다고 극찬했다. “특히 김희애가 너무 잘해서 화면에도 변화가 생겼다. 여러 구도로 인물을 보여주리라 했는데, 김희애의 연기를 보고 그냥 인물을 바라보기로 했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스토리가 잔잔할지언정 캐릭터 심리는 스펙터클하다는 것인데, 역설적이게도 배우들의 움직임은 크지 않다. 영우가 혜원에게 마작 패를 던지거나, 선재가 혜원을 안아주거나, 두 사람이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피아노 환상곡’을 치는 모습 정도가 선명하게 기억나는 ‘행동’이다. 그 대목에서 주저 없이 본질로 접근하는 김희애의 힘이 증폭한다. 대리석 같던 오혜원이 금 가고, 조각이 떨어져 너덜너덜해지고, 그리하여 오히려 되살아나는 과정을 목소리나 눈빛으로 무어인의 수학 실력처럼 섬세하게 전하는 덕분에 늘 숨죽이고 집중해야 했다. 혜원의 치맛자락 끝만 쫓아갔을 뿐인데, 내 마음은 이미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안판석 PD, 정성주 작가와의 재회도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드라마를 풀어내는 스킬을 떠나서 그냥 정성주 선생님은 최고예요. 다방면에 깊이도 있으시고, 내공도 엄청나죠. 멋있게 쓰려고 한 것도 아닌데, 대사도 길지 않은데 다 함축되어 있어요. 느끼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느끼하지 않게. 물론 좀 힘든 대사도 있었죠. “무섭게 혼내줄 거야.” 이런 거.(웃음)
특급칭찬이야, 이건요?
아니, 그건 너무 좋았어요. 오혜원에게 이선재는 판타지예요. 나도 피아니스트였는데 손이 아파서 꿈을 포기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저의 스무 살 시절이나 다름없는 어린 남자를 만난 거예요. 처음 본 어린 남자에게 받은 그 큰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게다가 그 애가 안 가겠다고 떡 버티고 있어요. 그 이상의 대사가 어디 있겠어요. 저도 완전히 빠져서 연기했는데, 심장이 막 쿵쾅거리더라고요. 대본에 지문은 없었지만 제 마음에, 그 순간에 내키는 대로 했어요. 아팠을 거야.(웃음)
김희애라는 배우를 잘 알고 쓴 것처럼 캐릭터와 매치가 잘 되었어요. 그런 걸 의식하셨을까요?
처음엔 예전의 저를 놓고 쓰셨어요. 어수룩한 허당 오혜원에 가까웠어요. <아내의 자격>에 나오는 윤서래의 다른 버전 같은. 그런데 첫 번째 리딩 후 감독님 제안으로 완전히 바뀌었어요. 남자와 맞서도 기죽지 않고, 선생님으로도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로. 1회에서 코트 안에 속치마 바람으로 나타나잖아요? 그게 오혜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어요. 하지만 달라지죠. 한성숙 이사장이 “대표 자리 싫어?” 묻는데 그 자리에서는 우아하게 받아치다가 집에서 크림으로 얼굴 닦으면서 혼자 곱씹잖아요. “그럴 리가.” 그렇게 야망 있는 여자로 바뀐 거예요. 원래 대사는 “그럴 리가요.”였어요.
유아인과 호흡을 맞출 때 무엇이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보통 다른 배우들과는 슈팅 전에 대사를 맞춰 봐요.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른데, 합의되는 연기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 더 창의적일 때가 있거든요. 유아인은 후자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번도 사전에 연기를 맞춰보지 않았어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도 되고. 선재가 할 일이 많았잖아요. 피아노도 쳐야 하고. 나 같음 정신없을 것 같은데 침착하게 잘해내더라고요. 어쨌든 뭔가 마음이 놓였어요. 눈을 보면 알아요. 흔들림 없는 자신감이 느껴졌어요.
교도소에서 선재에게 “모든 걸 잃게 해주어 고맙다. 떠나도 된다”라고 할 때 눈물이 다 났어요. 개인적으로 명장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다 좋아했지만 특히 검찰에 자진출두하기 전 짐 정리하면서 회상하는 장면. 집 곳곳을 다니면서 처음 선재를 만나고, 피아노 함께 칠 때를 기억하는데 가슴이 아팠어요. 배우로서도 그런 연기를 제대로 할 만한 드라마를 만나는 게 쉽지 않아요. 이 순간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싶을 정도로 빠져들 수 있는 작품 말이죠.
김희애는 밀라노에서도 부지런했다. 아침 7시 반이나 8시면 어김없이 식사를 했다. 타이트한 블랙 티셔츠에 로맨틱한 풀 스커트를 입고 나타나기도 했고, 마린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화이트 팬츠를 매치하기도 했다. 셔츠와 데님, 슬립온이 어우러진 공항 패션이나 마크 제이콥스의 티셔츠에 데님 팬츠, 스카프에 페도라까지 곁들인 그녀의 패션은 자꾸만 눈길이 갔다. 그녀는 유명 브랜드 숍보다는 길거리의 취향 좋고 작은 숍들을 더 좋아했고, 볼사리노 매장에서 마음에 꼭 드는 모자를 샀으며, 갤러리를 찾아 클림트 전시를 보고 코모 호수를 산책했다. 그림을 보면서 다 자란 두 아들의 이야기도 하고, 철없는 미혼 스태프들의 이야기도 찬찬히 들어주었다.
패셔니스타 상을 수상한 건 밀라노에서의 시간처럼 즐거운 추억일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무척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한데, 물리적 나이와 젊음이 여배우, 아니 여자의 아름다움의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토크쇼에서 직접 생수 병을 들고 운동법을 소개해도 김희애에게는 관리 잘 받은 여배우가 젊음을 과시하는 듯한 뉘앙스가 없다. 그건 연기든, 생활이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미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패션이란 산책하고, 전시 보는 것과 비슷한 취향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만나게 된 또 하나의 기회이자 선물, 발렉스트라와의 백 콜라보레이션은 그녀를 ‘어른 여자들의 워너비’에서 뮤즈로 등극시키고, 패셔니스타에서 패션의 아이콘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사건이 될 것이다. 가방에 이니셜을 새기고, 케이티 홈스 등과 함께 브랜드의 역사에도 기록될 그런 사건 .
공항 패션도 화제가 되었어요. 평소 어떤 패션 스타일을 좋아하세요?
군더더기 없고, 튀지 않고, 미니멀하고, 세련된 거. <밀회>에서도 클래식하고 베이식한 스타일로 갔는데, 화면에서는 더 멋스럽게 나오더군요.
오혜원의 캐릭터를 만들면서 옷 스타일까지 치밀하게 염두에 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혜원의 삶이 옷과 잘 매치되었어요. 누군가는 ‘펜슬 스커트를 철갑처럼 둘렀다’고 표현했더군요. 별다른 디렉팅이 있었나요?
아뇨, 전혀. <아내의 자격>부터 저를 믿고 알아서 입으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좀 사는 집 여자 캐릭터다 하면 무조건 튀게 입는 게 싫증이 나더라고. 저 옷 무슨 브랜드냐, 하고 너무들 관심 가져주시니 아무래도 배우도 예쁘게 입고 싶은 유혹이 문득문득 들거든요. 그래서 이 옷이 멋있겠다, 가 아니라 그중 정답이 뭘까 먼저 생각했어요. 의사가 이탤리언 정장보다 가운 입었을 때 훨씬 더 멋지잖아요.
패션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이 옷 입은 것 같은 느낌은 경계했다는 건가요?
그런데 또 그런 게 있어. 나도 늦바람이 불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도 옷을 잘 입었으면 좋겠어요. 드라마 보면서 공부도 좀 하고, 좋지 않아요? 일할 땐 편하게, 갖춰 입을 땐 갖춰 입는 게 자신감 있어 보여요. 남자들이 깔창 깔면 아무리 다리가 길어 보여도 하나도 안 멋있고, 때와 장소에 맞지 않게 과하면 안쓰럽고 그렇잖아요. 물론 자기 실패도 있어야 하고, 그러다가 자기 색도 찾겠지만.
이번 계기로 배우로서의 이미지에 패션 아이콘으로서의 이미지가 더해진 느낌이에요.
처음에 <아내>라는 드라마를 하면서 정윤기 씨를 알게 됐는데, 그땐 협찬도 어렵고 그냥 입기 바빴어요. 그런데 점점 역할에 맞춰서 옷을 입고,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도 재미있더라고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점점 자신을 알아가는 것 같고. 더 나이 들어서는 또 어떻게 변할까 기대도 되고.
<밀회>와의 시간이 여느 때와 좀 달랐던 것이 비단 패션뿐만은 아닐 것 같은데요.
자유로워졌다고나 할까? 좋은 엄마, 좋은 며느리, 좋은 배우가 되어야지. 이러면 아이도 힘들고, 상대방도 힘들어요. 일단 나 자신이 살고 봐야죠.(웃음)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니 행복해지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동안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괜히 혼자 연극하고 그런 게 있었던 거죠. 착한 척하려고 한 건 아닌데 왠지 그렇게 안 하면 안 될 것처럼 세상이 만들기도 했고. 그러면서 세월은 흐르고 빛나는 청춘은 지나가고. 그게 안타까워요. 지금이라도 나 자신에 더 집중해야지, 생각하게 만든 거예요, 오혜원이.
철학자 에드가 로맹은 “드라마(영화)는 스타를 만들어내지만 천재는 쫓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김희애라는 배우를 만나지 못했기에 한 말이다. 김희애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사를 시공간으로 꿰뚫는 독보적 존재다. 실제가 이미지를 압도하는 거의 유일한 여배우이기 때문이다. 남자배우들에 비해 여배우들의 존재감이 덜한 건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 이상으로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희애에게도 이미지는 있다. 화장품 CF로 확정된 우아하고도 도도한 이미지는 그러나, 배우로서의 행보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실체란 토크쇼에 나와 고해성사를 털어놓는다고 생기는 것도, 한두 작품 히트 쳤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자주 보고, 자주 감동시키고, 자주 소통하면서 생긴 견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거다. 그러니까, 24살의 그녀에게 연기대상을 안긴 <산 너머 저쪽>(1991)부터 전국 후남이들의 전폭적 응원을 이끌어낸<아들과 딸>(1992), 청춘남녀의 찐한 멜로<폭풍의 계절>(1993), 진화한 팜므 파탈을 만난 <내 남자의 여자>(2007), 철두철미한 이미지에 휴머니티를 불어넣은 <아내의 자격>(2012)까지, 김희애의 시간은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 동시대 한국 여성들의 초상을 그려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시간들. 특히 <아내의 자격>의 윤서래는 ‘마이너리티의 감수성, 약자의 아우라를 가진 것은 배우로서의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진짜 잘된 작품은 스타일이 사라져야 한다”는 말처럼, 적어도 배우 김희애에게 연기 스타일은 없다.
연기에 몰두하기 위해 개인적인 일상까지 컨트롤한다든가, 특별한 노력을 하는 편인가요? 몰입하려고 노력하죠. 최대한 저를 없애려고. 그게 가장 이상적인 연기겠죠. 저를 잊어버리는 거. 제가 남아 있으면 벌써 눈동자에 보여요.
워낙 연기 잘하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죠. 어떤 연기가 잘하는 연기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그 연기 잘한다고 생각하는 게 싫어요.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고. 아, 내가 연기 좀 하지? 노래 좀 하지? 연출 좀 하지? 글 좀 쓰지? 이런 게 망조인 것 같아요. 그래서 신인들이나 어린 아이들의 연기까지 보는 거예요. 어떤 연극 배우 연기를 봤는데, 정말 잘하는 거예요. 어우, 나 창피해. 나도 저렇게 하고 싶어. 자극 받고, 반성하고, 배우고, 그게 재미있고. 이게 오래 가는 길 아닐까요? 난 굵고 싶지 않아요. 짧게 가고 싶지도 않고.
최근 70~80대까지 연기를 하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유아인도 그렇고, 젊은 배우들 보면 계획이 있는 것 같아요. 난 그런 게 없었어요. 아, 왜 이렇게 날 부르는 거야, 촬영장만 오면 시간도 안 가고 그랬어요. 우울하고 재미없고. 사람들과 부딪치는 것도 싫고, 웬만하면 관두고 싶고. 30대는 애 키우다 보니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고. 그런데 이젠 여기가 내가 있을 자리 같고,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아요. 나이가 더 들면 대본 외우는 것도 힘들어질 텐데, 조금이라도 더 젊었을 때 일을 많이 해야 할 것 같고. 내가 배우의 길을 가겠구나 싶어요. 문제는 본인에게 있는데 그걸 해결하지 않고 도망만 다녔구나 반성했죠.
‘제8의 전성기’라고들 하던데, 혹시 이후의 전성기도 기대하고 있나요?
그건 행운이겠죠. 인생은 모르는 일이고요. 전 광고를 찍을 때도 마지막일지 모르니 잘해드려야지, 해요. 메이크업 하는 분이 내가 20년 동안 그 얘기를 했대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일이 더 애틋해지고, 뭔가 고마워져요. 그러다 기회가 선물처럼 찾아오고. 정말이지 인생은 놀라움의 연속이에요.
앞으로 어떤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죠. 잊어주세요.(웃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와도 좋고. 저 사람, 이번엔 이런 모습이네? 이렇게 재미있게, 부담 없이.
어떤 배우로 기억에 남고 싶으세요? 후배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좀 더 길어지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요. 얼마든지 더 즐길 수 있는 나이이고, 배우의 세계는 더 그렇죠. 한편으로는 그냥 싹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더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기억되지 않는 배우 말이에요. 하지만 분명한 건 있어요. 자기 분야에서 오래오래 일하는 것이 살아 있는 거고, 건강하다는 거고, 그것이 곧 진화라는 거.
밀라노로 떠나는 날, 김희애는 공항에서 <무한도전> 몰래카메라 해프닝을 거뜬히 소화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녀는 스스로 웃음의 소재가 되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듯 보였다. 사실 김희애의 유머감각이 <아메리칸 허슬>로 아카데미 상을 거머쥔 제이미 아담스 못지않다는 건 20년 전에 발휘한 능청스러운 불어 실력(‘남과 여’)만 떠올리더라도 납득할 수 있다. 특유의 위트로 <무한도전> 멤버들과 ‘물회’의 주인공 김영철을 쥐락펴락하는 그녀는 명실상부 ‘따라 하고 싶은 언니’에서 ‘만나고 싶은 누나’가 되었다.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는 팬 층이 그녀를 기다리게 된 것이다. 이는 20년 만에 출연한 영화 <우아한 거짓말>에서 국수와 함께 눈물을 삼키는 엄마 역할에 김희애의 용기가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얘기와도 같다. 곧 김윤석, 한효주, 정우 등과 함께 ‘쎄시봉’을 영화화한 <쎄시봉>에 출연한다는 그녀는 앞머리를 어떻게 할까, 스태프들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문득 그녀를 오래 지켜본 안판석 PD의 말이 떠올랐다. “진짜 천재는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기 머리로 생각을 하고 자기 입으로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이다. 인간이 유일하기 위해 줄넘기를 백만 번씩 할 필요도 없고, 그저 자기 자신이기만 하면 된다. 자기 자신으로서 진실되기만 하면 유일무이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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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홈페이지에 모든 화보와 기사가 이렇게 빨리 풀린건 첨 봐요 ㅎㅎㅎ
와 ㅎ 감사해요!!! 멋찌시다~
역시빠르세요~ㅎㅎ 카톡플친으로 바자친구했더니 오픈됐더라구요ㅎㅎ
어제 구입해서 정독했는데 정말 빠르네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사를 시공간으로 꿰뚫는 독보적 존재. 실제가 이미지를 압도하는 거의 유일한 여배우!! 제가 하고 싶은말을 이렇게 완벽하게 표현하셨네요..
사진도멋지고 인터뷰도 특급이에요.
여자가 봐도 넘 멋진데요^^ 감탄이 절로 나요
우왕ㅋㅋㅋㅋ빠르십니다!!
봐도봐도 좋네요..
멋지다는 말 훌륭한 배우라는 말 남기고싶네요
멋진 배우 훌륭한 배우 우리 오래오래 해먹어요ㅋㅋㅋ진국 배우 김희애 응원할께요
쎄시봉기대할께요 대박나세요
와우~~~
몇번 다시 읽어도 좋은거 같아요. 위로가 되는 인터뷰라 마음에 더 와닿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