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율기(律己) 제3조 제가 (齊家)
12. 집안에 애첩(愛妾)을 두면 부인은 질투하기 마련이다. 행동이 한번 잘못되면 소문이 사방에 퍼지니 일찍 부정한 정욕을 끊어 후회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질투 없는 부인은 드문 것이다. 수령이 근신하지 않고 혹 애첩을 두게 되면 곧 하동(河東)에서 사자후(獅子吼)가 일어나고(주1), 강좌(江左)에서 주미(麈尾)를 들고 달리기를 재촉하게 되고(주2), 창갱(鶬羹)으로도 치료하지 못하고(주3) 아미(蛾眉)가 먼저 깎여질 것이다(주4).
작게는 집안이 시끄러워지고 크게는 관부(官府) 바깥까지 떠들썩해진다. 불행히도 소문이 안사(按司)(주5)에 알려지면 곧 그의 고적(考績)에 쓰기를 ‘뜻은 본디 다스리기를 원하지만, 일에는 해괴한 소문이 들린다.〔志固願治 事或駭聽〕 ’ 할 것이다. 천하의 수치가 이보다 더 큰 것이 있겠는가. 수령은 잘 헤아려서 스스로를 그르침이 없도록 해야 한다. 본래 국법에 금하는 일이니 집안의 불상사로만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진(晉)나라 사막(謝邈)(주6)이 오흥 태수(吳興太守)가 되었는데, 그의 처 치씨(郗氏)는 천성이 질투가 심해서 사막이 첩을 얻자 원망한 나머지 절연하는 글을 보내왔다. 사막은 문하생 구현달(仇玄達)이 자기 처를 위하여 지어 준 것으로 의심하고 구현달을 내쫓았다. 구현달은 손은(孫恩)(주7)에게 도망쳤다가 마침내 사막을 해쳤다.
[역주]
[주-D001] 하동(河東)에서 사자후(獅子吼)가 일어나고 : 아내의 질투가 극히 심함을 말한다. 송(宋)나라 진조(陳慥)의 일이다. 그의 아내는 하동(河東) 유씨(柳氏)의 딸로 성질이 악하고 질투가 심하였는데, 진조가 손을 청하여 잔치하는 자리에 기생이 옆에 있었다. 유씨(柳氏)는 막대기로 벽을 치며 소리를 질러 손들이 모두 돌아가 버렸다. 소식(蘇軾)이 이를 기롱해서 “忽聞河東獅子吼 拄杖落手心茫然”이라고 시를 지었다. ‘하동(河東)’은 그 부인의 성이 유(柳)임을 빗댄 것이고, ‘사자후(獅子吼)’는 진조가 부처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였으므로 불가(佛家)의 문자를 쓴 것이다. 《蘇軾 寄吳德仁兼簡陳秀常詩 注》
[주-D002] 강좌(江左)에서 …… 되고 : 진(晉)의 승상(丞相) 왕도(王導)의 아내 조씨(曹氏)는 질투가 심하였는데, 왕도가 그를 매우 꺼려서 몰래 별관(別館)을 지어놓고 여러 첩을 살게 하였다. 조씨가 그것을 알고 별관으로 떠났다. 왕도는 첩들이 욕을 당할까 염려하여, 수레를 메워 가되 늦을까 염려한 나머지 잡고 있는 주미(麈尾)의 자루로 소를 두들기며 달려갔다고 한다. 《晉書 卷65 王導列傳》 《淵鑑類函 人部 6 妒婦1》 강좌(江左)는 강동(江東)으로 육조(六朝) 때의 수도. 주미(麈尾)는 사슴 꼬리로 만든 먼지떨이. 선승(禪僧)이나 노장(老莊)을 숭상하는 이들이 말할 때 쥐고 흔들었는데, 진(晉)나라 때에 노장을 숭상하여 이야기할 때 주미를 쥐고 흔들었다.
[주-D003] 창갱(鶬羹)으로도 치료하지 못하고 : 부인의 질투병을 고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양 무제(梁武帝)가 시녀(侍女)를 사랑하자, 부인 치씨(郗氏)는 그것을 보고 질투한 끝에 병이 났다. 어떤 신하가 창경(鶬鶊) 고기를 먹이면 그 병이 나을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먹였더니 치씨의 질투병이 반쯤 나았다 한다. 《淵鑑類函 人部6 妒婦 3》
[주-D004] 아미(蛾眉)가 …… 것이다 : 부인의 질투를 뜻함. 당(唐)나라 때 방유복(房孺復)의 아내 최씨(崔氏)가 질투가 심하여 여비(女婢)가 화장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여비의 눈썹을 깎고 푸른색을 칠해 주었다 한다. 《淵鑑類函 人部6 妒婦 3》
[주-D005] 안사(按司) : 감영(監營)을 말한다. 원래 중국 안찰사(按察使)의 관사(官司)인데, 안찰사(按察使)는 순찰사(巡察使)를 고친 이름으로 소관 주현 관리의 선악(善惡)을 살피고 풍속과 정교(政敎)를 조사하여 주문(奏聞)하는 일을 맡았다. 조선조에서는 관찰사(觀察使)에 해당한다. 관찰사는 1년에 두 차례씩 수령의 치적을 고사(考査)하여 중앙에 보고하였다.
[주-D006] 사막(謝邈) : 진(晉)나라 효무제(孝武帝) 때 사람으로 자는 무도(茂度)이다. 성질이 강경하였다. 벼슬은 시중(侍中)을 거쳐 오흥 태수(吳興太守)로 있다가 반군 손은(孫恩)에게 붙잡혀 살해되었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謝邈》
[주-D007] 손은(孫恩) : 진 안제(晉安帝) 때의 반장(叛將)으로 자는 영수(靈秀)이다.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정동장군(征東將軍)이라 하고, 그의 무리들을 장생인(長生人)이라 하였다. 뒤에 유유(劉裕)ㆍ신경(辛景)에게 패하여 죽었다. 《晉書 卷100 孫恩列傳》
房之有嬖。閨則嫉之。擧措一誤。聲聞四達。早絶邪慾。毋俾有悔。
婦人不妒者。或鮮矣。牧之不謹。或置嬖妓。卽河東起獅子之吼。江左促塵尾之驅。鶬羹不療。蛾眉先刻。
小則閤中鏖躁。大則府外喧轟。不幸聲徹于按司。卽書考曰。志固願治。事或駭聽。天下之恥。有大於是者乎。牧宜商量。切勿自誤。本係國禁。不唯家難是懼也。
晉謝邈爲吳興太守。妻郗氏。性妒。以邈娶妾怨懟。與書告絶。邈疑門下生仇玄達。爲妻所作。乃斥去玄達。玄達奔孫恩。遂害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