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년전에 길희성 선생님이 동서양의 경전들을 공부하며 사색하는 심도학사를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퇴직하자마자 삽십여년 살았던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강화로 이사했다. 강화에 아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거의 매주 금토일 심도학사에서 숙식하며 전국각지에서 온 도반들과 공부하는 것이 좋았다. 길선생님의 심도있는 지식과 열정 그리고 매끼 식사를 제공해 주신 사모님의 헌신은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몇년간 기독교 불교 힌두교 유교 노장사상 천도교등의 경전들을 공부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리고 진리를 사랑하는 도반들과의 사귐은 큰 기쁨이었다. 전재산을 희사하여 심도학사를 만들고 열정적인 강의를 하신 길선생님과 힘든 내조를 마다하지 않은 헌신적인 사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특히 위중한 병을 앓고 계신 길선생님의 쾌유를 기도한다. 십여년전 처음 길선생님을 만났을 때 강화로 오셔 심도학사를 만든 이유를 물으니 평생 주로 머리로 하느님을 알려고 했는데 이제 몸과 마음으로 하느님을 더 깊히 알고 싶다고 하신 말씀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런 심도학사의 머슴이라도 되고 싶어 강화로 이사왔는데 역할을 제대로 하지못해 선생님께 심려만 끼쳐드린 것 같아 송구스러울뿐이다.
강화에 와서 내가 애쓴 또다른일은 모르면 남이지만 알면 이웃사촌이라는 생각으로 강화도 이웃사촌을 만들어 수년간 촌장으로 접대부 역할을 한 것이다. 아침부터 나가 밤 열시까지 누구든 오시면 잘 모시고 대화를 나누고 접대를 하는 일은 피곤하기도 했지만 즐겁고 보람있는 일이었다. 그 때의 삶을 어느 귀촌인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날마다 일기를 써서 이웃들과 공유했다. 지금 다시 읽어도 가슴이 뛴다. 아무튼 그 때의 인연으로 강화에는 평생 마음과 삶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이웃들이 있다.
맞벌이하는 딸이 손녀를 봐달라해 이년간 서울살이를 했다. 나는 하진이 등하교나 학원 다니는 일을 도우면서 사랑스런하진이와 즐거운 일이 많았다. 인생에서 참으로 행복한 순간은 저절로 사랑이 솟아나는 것임을 하진이와의 만남을 통해 절감했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가끔 글을 써서 이웃사촌카페에 올렸는데 하진이가 크면 작은 책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
딸과 사위랑 작은 집에서 이년이나 함께 사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착한 딸과 사위 아내의 헌신 그리고 무엇보다 기쁨과 사랑 덩어리인 하진이 덕에 서로 감사하며 잘지낼 수 있어 좋았다. 할 일이 없어 수없이 나가 어슬렁거렸던 한강의 산책길이 그리울 것 같다. 보고 싶어 자주 아른거릴 사랑스런 하진이!
이제 드디어 다시 강화로 이사. 별일 없으면 죽을 때까지 여생을 보내게 될 강화. 무엇보다 다시 보게될 강화의 이웃들 생각에 가슴이 설레인다.
다시 나가게 될 이웃사촌의 여러 모임들도 그립다. 독서모임 강화도 백북스, 큰나무카페에서 하는 영화모임과 음악 모임, 강화도나들길과 등산모임, 탁구. 스크린골프, 당구 모임, 심도학사의 각종 강의 프로그램, 무엇보다도 조광호 신부님의 동검도 채플 모임등에 참석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사실 강화로 이사오며 제일 기대되는 것은 강화의 아름다운 숲과 들길 해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의 별명은 어슬렁이다. 무릅수술도 했으니 다시 걷는 행복을 마음껏 누려야지.
솔직히 말해 강화로 돌아오니 해방된 느낌이다. 서울살이는 영혼의 기운을 약화시킨다. 사람은 그 영혼이 팔팔해야 인생에서 제일 귀한 순수한 사랑을 마음껏 할 수 있다.
다시 너무 바빠질까 그게 좀 걱정이다. 빨빨거리고 다니며 공연히 시끄럽고 먼지만 일으키는 것이 무엇보다 노인이 피해야할 일이다. 어디 가나 가르치려하지 말고 가능한한 고요와 침묵을 지키고 미소와 평화를 잃지 말라. 잘 경청하고 마음 속으로 깊히 교감하고 만나는 이웃들을 하느님 모시듯 하라. 이것이 강화로 들어가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나의 선언문이다.
첫댓글 촌장님,
다시 강화로 오셔서 반갑기 그지없고 무한 고맙습니다.
두 분의 배려가 넘치나이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심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