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의 사진들을 보며...이삿짐을 꾸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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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德亭 康英寧
묵은 먼지 속에 지난 세월의 모습들이 참으로 많이들 있습니다.
미국 오자 마자 주일 날 내내 배가 아프다며 낑낑거리는 아들
비싼 의료비를 염려한 아들의 인내는 맹장염이 복막염이 되어 고생했고
다시 3개월 뒤엔 아내의 뇌종양 수술...
그리고 일년 뒤 불의의 교통사고에 의한 어머님의 죽음..
어머님 모시고 가족들과 함께 하려고 왔던 미국 생활은 처음 부터 모진 시련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말도 서툴고 문화도 다르며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이곳에서
그래도 가끔 고국에서 찾아온 동기들이 얼마나 반갑고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김상현,김택영,왕정일,박동헌 등 친구들이 동부인 하여 단체로 다녀갔고
이어서 이철섭,서준희,정수진,전상섭,이유상,박성주,정영륜 등 많은 친구들과의 미국서 만남이 있었습니다.
서대홍의 수술을 지켜보며 이젠 건강히 살아 주리라 믿었건만
불과 얼마후 그 동기의 장례식을 동기들이 치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롱아일랜드 대서양 바다 근처 이름 모를 공원 묘지에 묻혀있지요.
친구 자식들이 유학을 와서 부모대신 가끔 안부 전화 하던 즐거운 추억들..
이유상의 딸 희림이 이철섭의 아들 성훈이 김상현의 아들 원찬이 정수진의 딸 윤주 이주형의 딸 윤화 민창현의 딸 수진이 전상섭의 아들 창훈?(이름이 가물거립니다.) 박경재 아들... 그리고 정영륜의 딸(가연이??) 등등...
이렇게 친구들 만나고 자식들과 통화하며 이국에서의 아픔과 외로움을 이기며 견디어 왔습니다.
2004년 잠시의 불미스러운 일로
난생 처음 채워진 수갑의 차가움에 이 사건을 정리하고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8개월을 재판 받으며 결국 무혐의 처리로 일단락 되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과 내 스스로에 대한 참을수 없는 굴욕을 견디며...
턱없이 올라버린 운송비로 거의 모든 것을 버려둔체 몸만 가야 할것 같습니다.
가전제품도 전기가 안맞고 (물론 승압기를 사용해 쓸수도 있지만 그만한 가치가 없을것 같습니다.)
가구는 덩치가 커서 비용이 엄청 나오고 결국 입다 벗어 놓은 옷가지와
대부분 책을 도소관에 기증하였지만 그래도 몇몇 책가지와 사진 첩등만 챙긴체...
가장 마음 아픈 일은 이젠 다 커서 지 앞가름 할 나이라지만
언제나 볼수 있고 만날수 있던 하나 아들을 이곳에 두고 가는 부모 마음입니다.
잠시 유학을 떠나 있는 것이랑 이곳에 살아가는 자식이랑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도 건강 하기에 마음 먹으면 언제든 오 갈수 있다지만
언제나 우리네 삶은 그리 녹녹치 않음을 잘 아는 나이니까요..
며칠 후면 집을 비워주고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돌아 가야 합니다.
요란히 떠들수 있는 얘기도 아니고 집 매매의 과정이 너무나 길었기에 이제서야 내 속내를 털어 놓습니다.
한국의 돌아가 주말이면 그리웠던 산들을 찾으며 친구들과 자주 조우 하려 합니다.
가보지 못한 한철이도 찾아 보고 아들처럼 대해 주시던 규철 모친도 찾아 뵙고... 지난 여름 마지막 뵌 상현 부친 묘소에도 가렵니다.
병중에 계신 정수진 모친 병문안도 드리고 싶고 아들 먼저 보낸 성관이와 소주도 한잔 하고 싶습니다.
269 친구들의 물주전자 챙겨주고 박봉두 교수의 아름다운 가게에서 봉사도...
마음이 약해서인지 하늘만 쳐다봐도 눈가가 젖습니다. |
(부산에서 펌..)
26산케 명예회원 강영녕 친구의 귀국을 반기며..
고국에서의 앞날에 축복 가득하기를..
6/18 道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