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 시대의 일곱째 날과 우리 시대의 일곱째 날과는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질문 :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은 안식 후 첫날 곧 일요일에도 예배를 드린 것 같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니"(행20:7). 이 본문에서 "떡을 떼려 모였다"는 뜻은 초대 교회 예배의식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시대에 사도들은 일요일에도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다는 겁니다. 이것으로 안식일 논쟁은 일요일이냐 토요일이냐의 율법적 혹은 형식적인 것이 돼서는 안 되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안식일 논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사실인가요?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행 20:7).
정확한 역사가로 정평을 받고 있는 누가는 부활 후 30여 년이 지난 A.D. 63년경까지의 사도 교회 역사를 기록한 사도행전에서 적어도 84회 이상 안식일이 준수되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반면, 첫째 날인 일요일에 관한 언급은 이곳 한군데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처럼, “자기의 규례대로” 드로아에서 안식일을 보내고 “안식 후 첫날(토요일 저녁)”에 모였습니다.
그 모임은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특별히 모인 성만찬을 겸한 송별집회였습니다. 행 20:6-13절의 전체 문맥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피곤한 유두고가 창에서 떨어지는 일화가 나옵니다. 일요일 아침부터 그날 밤까지 말씀을 나눈 것이 아니라 토요일 저녁부터 밤중까지 계속한 것입니다.
⑴ 안식 후 첫날은 토요일 밤
새 번역 성경: “토요일 밤에, On Saturday night”(NEV).
⑵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이방인이면서도 유대력사용(눅 23:54-56 참조)
성경이 말하는 하루의 개념은 “저녁부터 그 다음 날 저녁까지”입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5).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 (레 23:32).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은 금요일입니다. 그 사건에 대한 누가의 기록을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금요일 : “이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눅 23:54)
“그날은 안식일을 준비하는 금요일이었는데 안식일이 곧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현대인의 성경, 눅 23:54)
안식일 :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눅 23:56)
일요일 : “안식 후 첫날 새벽에…무덤에 가서” (눅 24:1)
예수님은 금요일 오후 3시경(막 15:34, 유대시간 9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을 금요일 밤이라 하지 않고 안식일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금요일 오후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서부터 일곱째 날(안식일)이 되는 것입니다.
금요일은 성일(聖日)을 예비하는 날이요, 토요일은 성일이고, 일요일은 성일 다음 날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사건은 십자가와 부활이고, 중요한 날은 안식일입니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 사건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날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그날은 안식일 전날, 곧 안식일을 준비하는 금요일이었다.” (현대인, 막 15:42)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 20:8)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눅 24:1)
⑶ “안식 후 첫날(μια των σαββατων)”이라는 말은 유대력의 용어
로마력을 썼다면 dies solis(일요일)이라는 용어를 썼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안식 후 첫날,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 예비일(금요일), 안식일. 이렇게 날짜계산을 했습니다. 안식일은 그들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이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눅 23:54-56).
안식일이 거의 되는 시간은 언제입니까? 금요일 저녁입니다. 마찬가지로 안식 후 첫날은 토요일 저녁부터 시작합니다.
(4) 송별집회
사도 바울은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는 계획에 따라 급히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안식 후” 곧 토요일 밤에 다시 모여 성만찬을 겸한 애찬을 나누며, 말씀을 자정이 넘도록 들었는데, 이렇게 밤늦게까지 모인 까닭은 이튿날 날이 새면 바울이 떠나기 때문에 특별집회로 모인 것이었습니다(행 20:7.8).
그 다음 날 바울은 육로로 32km 길을 걸어 앗소로 가서, 뱃길로 먼저 가 기다리던 누가 일행을 만나 여행을 계속하여, 미둘레네 → 사모 → 밀레도에 수요일에나 목요일쯤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하여 특별집회를 해 심금을 울리는 설교를 했습니다(행 20:14-38).
(5) 안식일 준수
이와 같은 문맥을 이해할 때, 사도는 안식일에는 결코 길을 떠나지 않고, 자기 규례대로 신자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곧 “안식 후…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20:7) 밤중까지 특별집회를 했고, 밀레도에서는 주중인 수요일이나 목요일인데도 다시 에베소의 장로들을 위해 특별 집회를 한 것입니다.
이 두 집회가 모두 그렇게 촉박하고 간절했던 이유는, 그것이 바울의 마지막 여행으로 다시는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행 20:37,38). 그러므로 문맥에서 분명하게 사도 바울이 여행 중에도 철저히 지킨 날은 안식일이며,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은 여행을 떠나는 평범한 날이었음이 분명합니다(교회역사가, Augustus Neander).
일요일을 준수하는 탁월한 교회사가인 네안더도 사도행전 20장의 사건이 일요일을 성수했음을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아래와 같이 솔직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 구절은 전적인 확증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도의 촉박한 출발이 이 작은 교회로 하여금 형제애가 넘치는 송별 식사를 위해 모이게 했을 것이고, 이 경우 특별한 축제가 아니었을지라도 사도는 이때에 그의 마지막 말씀을 전달하였을 것이다.”
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