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여헌 학술대회'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이덕홍, 이하 한중연)은 지난 3월 23일 연구원 대강당에서 조선 인조시대 영남 유림의 대표자로 꼽히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여헌 장현광의 삶과 학문세계>
여헌은 인동(현재 구미)을 중심으로 350여명에 이르는 문인들을 기른 대학자였으나 그의 진면목은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다
여헌(旅軒) 장현광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무렵인 조선 선조-인조 시대에 영남사림의 영수로 활약했다.
퇴계 이황(李滉.1501-1570)이 54세일 때 태어났으며, 율곡 이이(李珥.1536-1584)보다는 18세가 어리다.
여헌은 이른바 반정을 명분으로 내세운 쿠데타에 의해 광해군이 쫓겨나고 인조가 즉위하자 김장생(金長生.1548-1631), 박지계(朴知誡.1573-1635)와 함께 전격적으로 발탁됐다.
권력기반이 취약한 쿠데타 세력이 이들을 끌어들이려 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이 명망이 높았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여헌은 역학과 성리학에 정통했을 뿐 아니라 인동(仁同.구미)을 중심으로 영남 일원에서 350여명에 달하는 문인을 길러냈다. 이에 힘입어 정묘호란 때는 정경세와 함께 영남호소사에 임명되기도 했으며 이후 벼슬은 의정부 좌찬성에 이르렀다.
경북 구미에는 지금도 여헌 종택이 남아있다. 이곳 소장 여헌 관련 고문서 2천여 점 일체가 2004년 한국학중앙연구원(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기탁됐다.
이에 ‘한중연’은 이들 기증 고문서 자료를 중심으로 여헌의 삶과 학문세계를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23일 오전 10시 ‘한중연’ 대강당에서 개최했다.
이 자리는 종래 사상사에 치중된 여헌학 연구를 역사, 정치, 교육, 문학 등으로 확대한다는 취지를 표방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민대 정만조 교수는 '15-16세기 영남학파의 계보와 여헌 장현광의 학적(學的) 기반'을 통해 여헌의 사상이 다른 영남학파와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형성됐음을 논하게 된다.
이전에는 여헌 사상을 별다른 스승 없이 그 스스로가 독특하게 구축한 결과물로 보았으나, 정 교수는 당대의 학적 관계망에서 여헌 사상을 살필 것을 주문한다.
박병련 ‘한중연’ 교수는 여헌이 품은 정치사상의 특징을 고찰하면서 그것이 그 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분석한다. 지금까지 그의 정치적 신념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연구가 없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김학수 한중연 전문위원은 기증 고문서를 대폭 활용해 여헌과 그 문인집단의 학맥을 고찰하며 곽진 상명대 교수는 여헌 시문학의 특색을 문학론의 관점에서 추적한다. 정순우 ‘한중연’ 교수는 그의 공부에 관한 이론과 강학(講學) 활동을 살핀다.
이번 학술대회는 그의 집안에서 생산되고 수집된 각종 고문서가 요긴하게 활용됐다는 점에서 향후 여헌학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첫댓글 이런분이 계셔는지 지금에야 알았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