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비참한 광경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마치 부서진교각에 달라붙어 이동하고 있는 개미들 같았지요.”
6·25전쟁의 비극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는 사진 ‘대동강 철교’를 찍은 전 AP통신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95)의 증언이다.
이 사진으로 1951년 퓰리처상을 받았던 데스퍼를 22일 미국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에서 만났다. 그의 집안에 들어서니 벽에 걸린 6·25전쟁
사진들과 한국 전통 문갑, 고려청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데스퍼는 ‘대동강 철교’ 사진을 가리키며 “나는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아
영예를 누렸지만 사진 속의 많은 한국인은 아직도 큰 상처를 갖고 있을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51년 1월 혹독한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평양. 데스퍼는 유엔군이 중공군 인해전술에 밀려 퇴각하고 있을 무렵 그들과 함께 대동강을 건넜다. 부교를 띄워 강을 건넌 군인들 틈에
끼어있던 그는 부서진 대동강 철교 위를 주목했다.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난생 처음 보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황급히 강 남쪽 둑에 올라
철교 난간에 ‘개미떼같이 붙어 있는’ 피란민 행렬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머리나 등에 짐을 진 사람도 많았다. 그들 중 상당수는 다리
난간 위에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강 아래로 떨어져 죽어 갔다. 강 북쪽에는 다리에 오르지 못한 수천 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셔터를
누르는 데스퍼의 손은 얼어붙었지만 정신만은 또렷했다.
그는 “45년간 사진기자를 했고 그중 10여 년은 제2차 세계대전 등 끔찍한 전쟁터를 돌았는데, 그날 같은 장면은 정말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퇴각 도중 눈 속에서 얼어 죽은 피란민들도 숱하게 촬영했다. 눈 속에 숨구멍을 뚫어놓은 채 동사한 아이들, 총을 맞아
쓰러진 엄마 품에서 놀고 있는 아이 등…. 그는 “군인들을 쫓아가야 하는데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 밖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전 사진들이 그의 서재 곳곳에 걸려 있거나 쌓여 있었다.
“6·25전쟁의 비극은 당사자인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역사다. 특히 이로 인해 생긴 1000만 이산가족의 문제는 하루빨리 풀어야 할 숙제다. 한국은 물론 미국에도 한국계 이산가족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을 위한 대화 창구가 속히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북한은 국제사회에 당당히 나와 이 문제 해결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그는 “휴전 무렵 한국을 떠날 때는 한반도가 온통 찢기고 파괴된 상태였지만 25년 후 다시 방문했을 때는 정말 몰라볼 만큼 발전해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 “이후 두 차례 더 한국을 방문했는데, 한국의 빠른 발전상과 아름다운 모습에 그저 감탄만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손수 차를 운전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좋다. 증손자들이 집에 오면 이들과 손잡고 나들이가는 것을 즐긴다. 나갈 때는 카메라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조인스닷컴 / 워싱턴지사=전영완 기자]
6·25전쟁 당시 AP통신 종군 사진기자였던 막스 데스퍼가 자신이 찍은 ‘
대동강 철교’ 사진을
가리키며 혹독했던 피란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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