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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행, 가장 부산스러운 카페 여행
찾아가는 발걸음은 항상 두근거린다. 마음에 담아놓은 그곳, 불현듯 찾아가고 싶어지는 날이 있다. 첫눈에 반한 메뉴를 두어 가지 고르고 나오기를 고대하는 시간이 좋다. 정성 어린 디저트와 마실 거리, 마음에만 담았던 공간이 기억에 새겨지는 그 순간이 좋다.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는 어쩌면, 떠나고 싶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떠나온 먼 곳의 누군가 혹은 부산에 있지만 멀리 떠날 수 없는 그곳의 당신, 그리고 이곳의 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가장 부산스럽지만, 부산하지 않은 카페 여행지.
게스트하우스를 처음 접한 것은 제주 출장에서였다. 출장을 마치고 여행 겸 며칠 더 머무르게 된 제주의 남쪽 마을. 저녁 내내 풋내를 풍기며 쑤어낸 귤 잼을 곁들인 스크램블과 토스트, 진한 드립 커피를 챙겨 들고 옥상으로 향했다. 멀리 보이는 낮고 푸른 옥빛 바다, 지난밤 제주 막걸리를 함께 먹으며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쳤던 새로운 사람들. 많은 풍경들이 그 게스트하우스에 함께 남아 나를 참 오래 간지럽히고, 또 제주앓이를 하게 했다.
외국인들이 여행 올 때 가는 곳 정도로만 생각했던 게스트하우스는 그 후로 내게, ‘여행’의 또 다른 발음이 되었다. 그러니 이 남포동의 굽이진 골목길에 위치한 [카페 잠]이 여행처럼 느껴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지금은 커다란 신발 가게가 되었지만,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미화당’이라 불리는 미화당 백화점의 뒷길 작은 언덕배기 골목에서 오르막을 오르면 막다른 길이 나와야 어울릴 것 같은 좁은 계단 오름에서 [카페 잠]이 보인다.
[카페 잠]은 1층에 카페를, 2층에는 이름 그대로 잠을 청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환하게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카페 곳곳이 눈에 들어온다. 홍대에서부터 ‘게스트하우스 잠’을 운영했다는 마스터의 손때가 묻은 책과 소품들이 오래된 건물과 어우러져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아련함이 느껴진다. 디지털 카메라보다는 필름 카메라가 더 어울릴 것 같은 묵은 색감들이 편안하다. 그 카페에 스르르 잠에 취한 듯 빠져들었다.
카페는 직접 만든 디저트와 가벼운 요깃거리를 내어놓는다. 아침에는 밀크티를 진하게 우려 우유를 타 먹는 영국식 데일리 밀크티와 직접 만든 리코타 치즈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담백한 스콘이 나오고, 저녁에는 상큼하면서도 끝 맛이 알큰한 와인에이드와 한 스푼 떠먹으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에 빠져드는 티라미수가 나온다. 부산에 살지만, 이곳에 한번 꼭 머물러 어둑해질 무렵까지 톡 쏘는 와인에이드를 마시고, 햇살이 비치면 일어나 오전의 [카페 잠]을 느끼고 싶다.
카페에서 나오는 계단은 용두 오름길의 초입이었다. 그 길을 오르면 풀향 그윽한 용두산 숲길을 마주한다. 산 아래 남포동이 내려다보이는 산복도로를 타박타박 걸어 다시 그곳으로 향한다. 어쩌면 부산 사람도 알지 못했을 가장 부산다운 길. 그 시작에 [카페 잠]이 있다.
“여름에 부산 사람들은 광안리, 해운대 안 가지. 전부 타지 사람들 아이가.” 한여름 불볕더위에 광안리를 가자 하면 다들 손사래를 치며 그렇게 이야기한다. 하긴 바닷냄새 나는 어디든 사람이 넘쳐나고, 길 한번 잘못 들었다간 해수욕장을 마주한 채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니 그럴 수밖에. ‘조금 더 먼 바다’에서 숨통을 트이고 ‘조금 덜 바다’인 곳에서 사람을 만난다. 부산 사람들은 여름이면 그 바다와 멀어진다. 선선해지면 올게, 하고.
광안리 바닷가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골목길. 우연히 길을 걷다 마주한 입간판에 고개를 들었다. 오래된 하얀 건물 2층에 붙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생생한 간판 뒤로 낡은 음악학원 글씨가 아직 선명하다. 그 이름, 발음만 해도 입안 가득 새큼해진다. [프루티], 그 카페의 이름이었다.
얼굴만 마주했을 뿐인 그 카페가 왜 그리 선명하게 남았을까. 햇볕이 참 좋은 날, [프루티]를 다시 만났다. 계단을 올라 카페로 들어서자 다른 세상에 온 듯 환한 카페가 반겨주었다. 밝은 그레이톤의 바닥과 벽, 그 사이로 액자처럼 배열된 나무 테이블. 푸른 나무들이 한여름 오아시스처럼 청명하다. 꾸미지 않은 듯 새하얀 타일을 붙인 바 안에는 여리여리한 사장님이 꼭 맞춘 듯 어울린다.
투명하게 빛나는 그릇과 갖가지 예쁜 접시가 여자의 로망을 깨우고, 키친 안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카페를 더욱 상큼하게 했다. 이렇게 예쁜 카페가 숨어 있을 줄 상상이나 했을까. 처음 만난 날, 카페는 오픈 준비 중이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찾아왔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손님이 새삼스러운 풋풋한 공간이 어쩐지 기분 좋다. 숨겨놓은 보물을 찾은 기분이랄까. 그것도 그날 보물찾기 중 가장 으뜸인 보물을!
[프루티]는 신선한 재료로 매일 다른 브런치를 내놓는 브런치 카페다. 어떤 날에는 볶은 채소와 감자튀김을 곁들인 샌드위치가 나오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에는 닭고기를 넣어 담백하게 구운 치킨프리타타를 내놓기도 했다. 나의 첫 만남은 조금 더 이색적이었다. 아직 메뉴판이 나오지 않아 “브런치로 준비해 드릴까요?” 라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한 것이 주문의 전부였다. 허브를 띄운 시원한 물 한잔과 함께 먼저 내어준 것은 쿠키와 말린 크랜베리, 무슬리와 고구마 말랭이 같은 것을 담뿍 올린 홈메이드 요거트. 상큼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요거트에 함께 구워 나온 곡물 빵을 곁들이니 제법 든든해져 이것만으로도 허기를 조금 면할 참이었다.
직접 만든 것이 분명한 달지 않은 딸기잼과 버터를 번갈아 발라먹으며, 멀리 솔솔 풍기는 고소한 냄새로 메뉴를 상상했다. 빨간 접시 위에 올려진 오늘의 브런치는 에그 베네딕트. 부드러운 곡물 빵 위에 블루베리 콤포트와 촉촉하고 고소한 베이컨 위로 부드러운 계란과 풍성한 홀랜다이즈 소스가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을 자극한다. 상큼한 산딸기를 곁들인 샐러드와 오븐에 구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감자요리가 곁들어졌다. 에그 베네딕트의 계란을 살짝 건드리니 톡- 하고 노른자가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다. 신선한 계란과 어우러진 [프루티]의 브런치는 프랑스 가정식처럼 꾸미지 않은 듯 투박하면서도 건강을 생각한 자연스러움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카페 창가에서 햇살이 가득 더해진 그 풍성함이란!
그 카페의 더치베이비가 궁금하다. 가장 뜨거운 날, 광안리 피서객을 피해 그 골목으로 살큼 우리만 아는 여행지로 숨어들어야지. 시원하고 진한 아메리카노와 오븐에 구운 팬케이크인 더치 베이비에 산뜻한 제철의 과일과 생크림, 달콤한 아이스크림, 그리고 한여름 광안리 바다 내음을 한 스푼 얹어서. 나만 알았으면 좋겠다는 못된 심보가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러니, 우리만 가요. 가장 부산스럽지만, 부산하지 않은 그 카페 [프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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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진짜 부산가고 싶어유 ㅠ.ㅠ
어제 오고선 또 ㅎㅎ
저도 데리고 가시지요 ㅎ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