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추석에 어디 다녀오셨어요?” “아니 가긴 어딜 가.”
“그럼 누구 찾아오신 분 있으셨어요?” “오긴 누가 와. 나야 늘 이렇게 혼자지.”
“그래서 우리가 왔잖아요.” “그렇네 고마워라.”
명절 후 첫 방문 때 인사 끝에 여쭤보고는 괜히 고독을 확인시켜드렸나 싶다. 웃으며 너스레를 떨긴 했지만 아무도 없는 홀로살이의 얼마 안 남은 시간을 살아가는 어르신의 처지에 가슴이 철렁한다.
비탈길은 우리가 오르기에도 숨이 턱에 차오르는데, 그 길 구석구석 단칸 쪽방에 어르신들이 산다. 여름이면 태풍이 오고 폭우가 쏟아진다. 날씨가 험하다고 어르신들의 허기가 없어지진 않는다. 반찬 배낭을 메고 빗줄기 속에 비탈길을 오르내리는데 온몸은 샤워한 듯 젖고 마스크 속에서 숨이 가빠 단내가 난다. 다리는 끊어질 것 같다. 그래도 정신은 육체를 이긴다. “아유, 이 비 오는 날 힘들 텐데 고마워요.” 그 한 마디에 숨이 수월해지고 다리가 든든해지는 걸 느낀다.
가족이 같이 있어 혼자가 아닌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 삶이라고 더 나을 구석은 없어 보인다. 아들이 당뇨병 중증이라 며느리와 손자는 떠나고 홀로 단칸 쪽방에서 아들을 돌보며 사는 할머니, 딸이 두고 간 장애 손자를 키우는 할머니, 덩치가 산만한 지적장애 아들을 돌보는 할머니, 바퀴벌레가 가득한 방에 사시면서 자식 자랑이 끊이질 않는 할머니…. 리스트를 써 내려가는 것만으로 가슴이 뻐근하고 아프다. 어려운 어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엔 이런 분들이 흔하다.
“계세요? 어르신, 반찬 가져왔어요.” 귀가 어두워 못 들으시는 탓인지 아니면 일어서기조차 힘든 무릎과 허리 탓인지 문을 한참을 두드려도 답이 없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한참 만에 인기척이 나고 어르신이 힘겹게 기어 나와 문을 연다. 빛이나 바람이 드나드는 것은 사치에 가까울 만큼 깜깜한 방안에 습기가 가득하다. 악취가 진동하는데도 자랑부터 하신다. “우리 아들이 박사야.”
이조차 내리사랑이라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지만 역시 자식 사랑은 그런 것이다. 이 동네서는 홀로 자신의 몸만 간수하며 살면 차라리 홀가분하고 행복한 분이지 싶다. 그만큼 어려운 처지에 혹처럼 매달린 자식들이 있다. 여든을 넘긴 연세에 얼마나 힘이 들까 보는 마음은 조마조마하지만 정작 당신은 자식 없는 삶이 더 힘들다고 여기시는 듯하다. 그나마 자식 입에 밥 한술이라도 떠 넣어 줄 수 있는 것이 흡족한 어미의 삶이 이어진다.
부모와 대화가 안 된다고 호소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변하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져 살아가는 우리 세대의 부모들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꼭 부탁을 한다. “무슨 언짢은 대화가 오가더라도 맨 앞에 꼭 한 마디하고 시작해. ‘부모님이 저 사랑하시는 것 잘 알아요’라고. 부모의 내리사랑은 인정하고 대화를 해주면 좋겠어.” 물론 요즘 시대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강변하는 부모와 대화를 하기가 얼마나 힘이 들까 십분 이해가 가고 남지만, 처절한 내리사랑을 많이 보는 나는 이렇게 한마디를 해줄 수밖에 없다.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셨다. 우리는 부모의 육신을 통해 그 생명을 내 몸으로 받아온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사랑도 끝없는 내리사랑이다. 그렇게 사랑을 주셔도 죄 많은 인간은 그걸 모른다. 기도를 안 들어 주신다고 마치 조건부 흥정하듯 하느님을 원망한다. 잘한 것은 내 공이고 못한 것은 하느님이 베풀어주지 않은 탓이라 한다. 고해성사 때마다 같은 잘못을 고백하고 또다시 잘못을 저지른다. 뻔히 죄인 줄 알면서도 유혹을 쉽게 받아들인다. 이렇게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이 끝이 없고 예수님이 십자가로 대신 벌을 받으셨어도 아직도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는지 모른다. 그래도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야말로 제일 으뜸가는 내리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