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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웹진 《동시빵가게》 33호 만나보기-->
잔잔한 음악과 함께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며
주옥 같은 시들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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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를 쓰면서 가장 가슴 뛰었던 순간(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시가 완성했을 때보다 시가 될 어떤 것을 발견했을 때 기쁩니다. 발견의 기쁨으로 시를 쓰고 있지 않나 싶은데요. 내 안에 호기심이 녹슬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가슴이 뜁니다.
어느 봄날입니다. 벚꽃을 유심히 보다가 수술을 세어 보았어요. 꽃마다 수술의 개수가 다르더라고요. 집에 와 벚꽃 수술의 개수를 알아보다가 벚꽃에도 화식(花式)이 있음을 알았지요. 화식도(花式圖)에는 꽃의 부위마다 명칭이 있습니다. 암술 꼭지는 암술머리인데 수술머리는 ‘꽃밥’이라고 부른대요. ‘꽃밥’이라니. 이 말이 너무나 이쁘고 좋아서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은 기쁨에 시를 썼습니다. 수술들이 꽃밥을 머리에 이고 암술에 청혼하는 그림이 스치면서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이후 이루어질 수 없는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린 〈꽃밥 청혼〉이라는 이야기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청소년 소설 《모모를 찾습니다》에 실렸는데요. 호기심 어린 관찰이 시가 되고 소설이 되었습니다. 이건 분명 행운입니다. 이런 행운도 찾으면 반드시 만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호기심이 자꾸만 고개를 내밀면 좋겠습니다. 호기심 벨을 수시로 누르는 내가 되기를 염원합니다. 그리하여 자주 설레기를 고대합니다.
2. 인생 영화를 고르신다면?
인생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최민식 배우가 꼽은 영화이기도 한데요. ‘인생은 아름다워’(1999년)집니다. 최민식 배우의 인터뷰를 보고 바로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보았습니다.
“간단하지만 하기 어려운 이야기, 동화처럼 슬프고 행복이 담긴 이야기이다.”
영화 시작 부분의 내레이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끝납니다.
“이것이 나의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희생한 이야기. 그것이 아버지가 주신 귀한 선물이었다.”
이 내레이션이 나올 때 긴 터널을 빠져나와 햇살을 만났을 때처럼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동시에 아버지가 남긴 선물에 목이 멨습니다.
나는 ‘동화처럼’이란 구절로 이 영화를 더 특별하게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 동화 같다는 말이 주는 환상성과 아름다움. 비열하게 닥친 비극을 아이에게만은 희극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아버지. 극한 상황을 견딘 긍정의 힘. 시대의 비극마저 코미디와 사랑으로 바꿔 버린 가족을 보며 오래 먹먹했습니다. 절망의 순간마저 게임으로 인식시켜준 아버지의 선물은 동화 그 자체였습니다.
로베르토 베니니는 감독이자 주연이었는데 그의 코믹한 연기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웃겨서 웃는데 동시에 꺼이꺼이 소리 내 울며 본 영화입니다. 이런 이중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영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3. 시인에게 시란 무슨 의미일까요?
제가 시를 쓰는 건 사랑하는 일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일, 그대를 사랑하는 일. 기쁨을 기록하는 일, 슬픔을 다독이는 일. 아픔을 쓰다듬는 일. 노래로 새기는 일. 가끔은 그 노래를 흥얼거리는 일. 주저앉았을 때 혓바닥으로 내 손등을 핥는 강아지가 되는 일. 고양이처럼 옆에 가만있어 주는 일.
‘제일’이라고 말할 때 그 1. 즐거운 1. 좋아서 하는 1. 첫째가 되는 1. 마음이 하는 1. 그런 1. 1글자. 시!
4. 자신의 시 중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으시다면요? 그 이유도 말씀해주세요.
강연 갔을 때 꽤 여러 곳에서 이 질문을 받는데요. 제가 사랑하는 시는 ‘노랑노랑’이라는 시입니다.
2연 4행의 짧은 시인데요.
노랑노랑 유채꽃
무엇 땜에 피었나
노랑노랑 노랑나비
숨겨주러 피었지.
-‘노랑노랑’ 전문(동시집 ‘동시는 똑똑해’ 수록)
저는 제주 우도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우도봉에 오르면 한쪽으론 태평양이 눈 앞에 펼쳐지고 한쪽으론 노란 유채꽃이 손수건처럼 널렸습니다. 봄이 봄이 노랗기만 했지요. 그 장면은 제 무의식 어딘가에 깃발처럼 꽂혀있었나 싶습니다. 찰나에 이 시가 온 걸 보면요. 제주 사람이라는 나의 뿌리를 알려주는 시이기도 하고 동요처럼 운율이 살아있고 짧아서 기억하기 쉽고 그림처럼 떠올리게 되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노랑 유채꽃은 자신도 잠깐 피는 가녀린 존재이면서 더 가녀린 노랑나비를 걱정합니다. ‘노랑나비가 잡아먹히면 어쩌지?’ 그런 측은한 마음으로 인해 유채꽃은 노랑을 한껏 피워올립니다. 더 노랗게 노랗게. 노랑나비를 꼭꼭 숨겨주려고 노랗게 노랗게.
나아가 유채꽃도 노랑나비를 숨겨주러 피잖아. 나는 왜 이 세상에 왔을까? 이 세상에 온 이유가 분명 있을 거야. 그래. 나는 글 쓰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왔으니까 잘 써야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에 대해 성찰하는 시이기도 해서 좋아합니다.
▪약력:
2002년<<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달리기 시합’으로 등단,
그동안 낸 책으로 청소년시집 『외계인에게 로션을 발라주다』,『지구를 굴리는 외계인』,『마디마디 팔딱이는 비트를』,『실컷 오늘을 살 거야』 시 창작 안내서 『놀면서 시 쓰는 날』,
동시집 『영어 말놀이 동시』,『예의 바른 딸기』,『동시는 똑똑해』, 『오늘의 주인공에게』
동화 『이야기 할머니의 모험』,『우리 삼촌은 자신감 대왕』,『마음 출석부』,『한글 탐정 기필코』,『얼큰 쌤의 비밀 저금통』 인문 교양서 『공부를 해야 하는 12가지 이유』 그림책 『바다로 출근하는 여왕님』,『동백꽃이 툭,』 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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