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콕을 하고 있으니 온 몸이 근질근질하고 좀이 쑤신다.
더구나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샤워와 목욕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이래가다가는
암만해도 코로나 불루가 찾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해외에도 못 나가고 있으니 밖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굴떡 같다.
오늘 아침에는 십이삼여년전 독일 여행중에 베를린 길가에서 사 먹었던 케밥 생각이 났다.
케밥(Kebab)은 '꼬챙이에 끼워 불에 구운 고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쇠고기나 양고기를 큰 꼬챙이에 꽂아 활활 타오르는 불에 구운뒤 빵 사이에 넣어 먹는 터키의 전통 음식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닭고기나 생선을 사용하기도 하는 데 터키인들은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고 있기 때문에 돼지고기는 먹지 않는다. 케밥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고 가격도 저렴하여 학생들이나 관광객들한테도 인기가 있다. 케밥은 속에 넣는 고기와 생선의 종류에 따라 수백 가지가 넘지만 터키의 대표적인 것 두어 가지만 소개해 보면 아래와 같다.
*도네르(Doner)케밥: '고기를 돌려가며 굽다'라는 의미의 도네르 케밥은 팔 길이만한 쇠꼬챙이에 납작하게 눌러 만든 동그란 모양의 고기를 층층이 끼운 뒤 화덕 위에 세워서 돌려가면서 구워낸다.화력이 바깥부분에 집중되므로 고기는 바깥부분부터 익는다.천천히 돌려가며 구우므로 고기 안쪽의 기름기가 아래로 쫘악 빠져서 고기 맛이 담백하다. 손님이 원하면 즉석에서 칼로 슥삭 베어 내어 접시에 담아 주거나 종이컵에 넣어준다. 잘 구워진 고기와 함께 양파와 당근,도마토 등 야채를 피데(우리나라 전 같은 터키의 빵)에 싸서 먹는다.
*시시(Shish)케밥:터키어로 '꼬챙이'를 의미하는 시시 케밥은 길다란 꼬치에 다양한 재료를 꽂은 뒤 구워낸다. 고기와 함께 파프리카,양뱌추,파 등 다양한 야채를 곁들여 굽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꼬치와 비슷하다. 다 구워진 케밥은 밥을 깔아서 내거나 혹은 다양한 채소를 곁들여 내기도 한다.
*코프테(Kofter)케밥: 다진 고기에 각종 양념과 야채를 넣어 완자로 만든다는 뜻의 '코프테'를 사용하는 케밥으로 각종 재료를 함께 넣고 뭉쳐서 만든 미트볼과 비슷하다.
부산에서는 케밥을 파는 데가 부산대학 인근과 피프광장 그리고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해운대에 몇 군데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맛집을 찾는 사람이면 어느 집이 제일 맛이 있는지 직접 찾아가서 먹어 봐야 하겠지만 나는 부산에서는 케밥을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지하철2호선 해운대역에서 해수욕장으로 가다보면 재래시장 입구 부근에 외국인이 꼬챙이에 고기를 끼워놓고 파는 것을 본 적은 있다.
각설하고, 개밥이라고 해서 개만 먹는 밥이 아니다.
배를 탈 때 촌놈이 미국 항구에 입항했을 때였다. 1971년도였으니까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서부 콜롬비아 강을 따라 하루쯤 올라가면 포틀란드시가 나온다. 배가 하역작업을 하는 동안 상륙하여 수퍼마켙에 생필품을 사려고 나갔다. 그때만 해도 집식구들 선물로 립스틱이나 딱분만 사다주어도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라할 때였다. 한국에선 구멍 가게만 보다가 그렇게 큰 수퍼마켙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영어를 잘 모르는 선원들은 통조림을 몇개 사와서 저녁에 술판을 벌리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까 수퍼마켙에 나가서 펫트코너에서 개와 고양이 밥을 사와서 안주로 먹고 있었던 것이다. 개밥인 줄도 모르고서.
배가 한국에 입항하게 되면 당시에는 세관원이 배에 상주하였다. 입항시에 선원들이 돈을 얼마씩 거두워서 세관원에게 갖다 바쳐야 집에 갈 때 외제 비누라도 한 장 선물로 가져 갈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볼펜 한 자루도 못가져 나가게 했다. 말하자면 선원들을 밀수꾼으로 보고 감시하기 위해서 배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이었다. 매식사때마다 선원들의 부식비로 식사를 하면서도 반찬 맛이 어떠니 갑질을 했다. 당시 상황을 잘 그린 어떤 선원 한 사람이 동아일보 논픽션에 '개밥'이라고 써서 당선이 되기도 하였다. 여기서 개밥이란 선원들이 입항시에 잘 봐 달라고 돈을 얼마식 거둬 주는 돈을 말하는 것이었다. 개밥을 주면 상륙할 때 커피 한 벙정도는 눈감아 주었다. 개밥으로 걷힌 돈은 관세청장까지 올라간다는 소문도 있었다.
선원들은 사랑하는 가족품을 떠나 사시사철 바다 위에서 파도와 싸운다. 수출품을 실어 나르는 산업의 역군으로서 또한 에너지 수송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원인데도 대접은 못해줄 망정 잠정밀수꾼으로 보다니 말이나 되겠는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이 땅에 유조선으로 원유나 LNG선으로 천연가스를 실어오지 않는다면 국내 산업은 사흘도 못가 올 스톱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전쟁이 나면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누가 실어 나르겠는가?
한 번은 미국에서 짐을 싣고 인천으로 입항하게 되었다. 새벽에 입항하게 되어 가족들을 인천으로 오라고 미리 집으로 통보를 하였으므로 부산에 사는 사람들은 전날 인천으로 올라와서 여관에서 자고 새벽부터 부두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세관원들의 거들먹거리는 골이 보기 싫어 미국에서 출항하기 전에 집에 가져갈 선물을 하나도 사지 않고 개밥도 주지 않기로 하였다. 그랬더니 외항에서 입항 수속을 하는 데 한 시간이면 족할 것을 점심때가 넘을 때까지 시간을 끌었다. 심지어 백열구 전구 갯수까지 하나하나 세면서 보고서에 적힌 갯수와 실제 갯수가 틀린다고 트집을 잡았다. 가족들은 추운 날씨에 이제나 나올까 하고 부두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겨우 수속을 마치고 가족을 만날 수가 있었다. 개밥을 준비하지 않아 괘심죄에 걸렸던 것이다.
첫댓글 부산에 입항한 어느 배에서는 세관 서치반들이 하도 심하게 굴고 밥 내놔라! 하고 선장자리에 앉아 거만을 떨자 참다못한 해양대 출신 3등항해사가 식칼로 세관원의 허벅지를 질러버린 사건도 있었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