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오도 황장목(黃腸木)숲
여수 금오도는 황장목 해송과 사슴 목장이 있었던 보물섬이었다.
비렁길로 유명하지만 황장목 해송의 천연군락지로 더욱 명성이 나 있었다.
조선의 조정에서는 궁궐과 지방 관청을 축조하기 위하여 목재를 철저히 관리했다.
따라서 여수 금오도는 황장목 숲은 보배중의 보배였다.
역대 왕들은 이 거대한 수림을 보호하려고 황장봉산으로 지정하여 관리하였다.
고종황제는 금오도의 황장봉산을 명성황후에게 하사하고 민비의 사궁인 명례궁에서
이곳 해송 숲에 사슴목장을 만들어 관리하였다.
금오도는 거무섬(巨茂島)이라고도 한다.
숲이 크고 무성하다는 뜻이다. 이곳에 400년 이상의 수령을 가진 검은 해송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1864년 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할 때 금오도 황장목을 베어다가 썼던 것이다.
그만큼 금오도의 해송 황장목은 단단하고 썩지 않아서 궁궐 기둥이나 건축자재로 금강송 춘향목 이상으로 가치가 있었던
목재였다. 명성황후의 사저인 명례궁에서는 봉산지기와 방목관 1명과 사육사 3명을 배치하여 숲과 사슴을 보호하였다.
황장목은 속이 노란 소나무로 목재나 관을 만들 때 많이 사용하였다. 그
런데 금오도 해송은 겉은 검지만 속살은 노랗다. 그래서 황장목이라고 하였다.
1860년대만 하여도 금오도엔 400년 이상 수령의 황장목이 3만여 여 구루나 있었다.
궁중에서 일정량을 채벌하여 두포 항을 통하여 한양으로 운반 되곤 하였다.
금오도 해송은 해풍에 시달려 자란 탓인지 질이 단단하고 염분이 많아 썩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무성한 대부산 황장목 숲엔 꽃사슴이 300여 두가 서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보물 같은 황장목이 어느 날 다 베어지고 산림이 황폐화 되면서 꽃사슴마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2. 황장목(黃腸木)숲과 꽃사슴은 어디로 갔나?
명례궁의 주인 명성 황후는 왕실 재산으로 금오도를 관리하면서 꽃사슴 목장을 경영하였다.
따라서 금오도 사슴목장은 명례궁에서 관리한 유일한 국영목장이었다.
그러나 1894년 이후 황장목과 꽃사슴이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거북섬 금오도의 황장목과 사슴은 명성황후를 죽인 이주회란 놈이 채벌하여 일본에 팔면서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그가 죽은 후에도 일본은 군비 조달을 위해 재목이 될 만한 황장목을
모두 베어갔다. 그 비극의 역사를 살펴본다.
1884년 청국을 등에 업고 세도정치를 하는 민씨 일가를 제거하기 위하여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이 일본을 끌어들여 개혁을 단행하다가 3일천하로 끝났다.
김옥균. 박영효가 처형당하고 이에 동조했던 이주회 등이 일본으로 도망을 갔다.
일본으로 도망간 이주회가 사무라이 흑룡단에 가입하여 기회를 노리던 중에
다케다 한시 란 중을 만나 조선의 금오도로 몰래 들어온다.
일본은 고종황제를 독려하여 전국의 봉산에 해금령을 내리고 자원 채취에 들어간다.
금오도 황장봉산도 해금된다. 이때 다케다 한시는 이주회를 이용하여 금오도 연안 어업권과 황장목 채벌사업을 벌인다.
말은 금오도 개간 사업이라고 하지만 채벌사업이었다.
다케다 한시가 조달해 준 돈으로 금오도로 들어온 이주회는 봉산이 해제된 금오도에 농지개간 사업을 시작한다.
육지의 부랑인들을 불러들여 농지를 개간한다는 명목으로 황장목을 벌채하였다.
이렇게 벌목된 황장목은 일본으로 수출하여 막대한 돈을 번다.
다케다 한시는 황장목 채벌과 동시에 황금어장을 독점하여 남해안 어업권을 장악하여 엄청난 돈을 번다.
이때부터 ‘여수에서 돈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시작되었다. 전국의 노동자들이
금오도 벌목 원으로 들어와서 벌목과 어부 일을 하여 그들 역시 엄청난 돈을 벌어나갔다.
3. 이주회는 동학군 정벌과 명성황후 살해범
금오도에서 황장목 채벌과 황금어장 사업으로 돈을 번 이주회는 새로운 변신을 시작한다. 1
1895년 동학농민 혁명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일본군이 개입으로 관군이 동학군을 제압하고 전봉준, 김개남 장군의 죽음으로 동학혁명은 실패로 끝난다.
60만 동학군이 와해되고 남은 동학군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진주, 순천, 장흥, 해남에서 마지막 교전을 벌였다.
이때 일본의 스쿠바 함정이 동학군을 정벌하려고 3,000명의 일본군을 데리고 여수 금오도에 정박한다.
이주회가 함장인 구로오가를 찾아가서 동학군 정벌의 선봉장이 되겠다고 나선다.
구로오가 함장은 그를 앞장 세워 동학군을 정벌한다. 마지막 전투는 순천에서 이루어졌다.
이주회는 동학군 장수들의 목을 베어 와서 구로오가에게 바쳤다.
김인배 장수 등 20여명의 목이 잘려 당시 여자도로 올라와 정박한스쿠바 함선으로 보내진다.
이주회의 개입으로 동학군은 섬멸 되었다.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국방 차관이란 벼슬을 얻어 한양으로 입성한다.
그리고 명성황후 참사에 선두지휘 하였다. 그와 일본의 낭인(떠돌이 사무라이)들이 합작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했는데 일본은 그가 황후를 시해 했다고 발표 하였고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4. 황장목 산림을 복원하자.
금오도 비렁길을 걸으며 가끔 늙은 해송을 볼 수 있고 대부산엔 작은 해송들이 자라고 있다.
황장목 새끼들이다. 이 해송을 천연기념물로 정하여 잘 보호 육성하면 앞으로 100년이면
우리 후손들이 사용할 황장목 해송이 나올 수 있다. 여수시와 산림청은 이에 대한 보호책을
철저히 세워야 할 것이다.
그 언젠가는 비렁길을 걸으며 황장목 숲속에 뛰노는 사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수출신 소설가 김용필>
여수인터넷뉴스에 실린글을 전화로 양해 얻어 올렸습니다.
첫댓글 참. 가슴아픈 사연이 있는금오도 로군요. 그저 비경에만 심취했는데....
힘은 들었지만 멋지다.. 아름답다...는 이야기가 끊임 없이 나왔던 다시 찾고 싶은 곳
제주도 올레길 보다 더 좋다는 마음이 나는 왜 드는지.....
언젠가는 꼭 한번 더 찾을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