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갸우뚱거리는 안과의
'도대체 알 수가 없네
'왜? 많이 나쁘냐
'아니, 오른쪽 눈은 괜찮은데 왼쪽 눈 결과를 판독할 수가 없네
'무슨 말이냐
'이런 데이터가 나올 수가 없는데
너, 지금 보는데 큰 문제는 없으니 두 달 후에 다시 검사하자
오늘 체크한 결과의 판독이 안된다는 말이다
다시 두 달 후에 검사하고 그때는 경험 많은 교수 의사가 볼 것이라고 한다
작년 봄부터 벌써 네 번째 검사인데 원인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네가 볼 때 수술이 필요할 만큼 안 좋다는 말이냐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다음에 데이터를 한 번 더 확인해야겠다
약물 몇 방울 떨군 후
몇 가지 검사하고 사진 네댓 장 찍고는 또 두 달 후에 보자고 했다
부글거리는 화를 지그시 누른다
9시 약속이었는데 벌써 정오를 넘겼다
동공이 확장되었으니 운전이 가능한 정상 동공으로 되돌아오려면 여기서 또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모처럼 맑은 날씨
그래도 바람은 거세다
선글라스를 끼었는데도 햇살이 거북한데
하늘에는 구름이 재빠르게 흐르고 있다
그만 훌훌 털어버리고
저 푸른 하늘에 선명하게 보이는 흰 구름처럼 눈빛만 보아도 통하는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라 우울하다
2.
아내의 전화
'지금 여기 코스코 카운터야
카드 갱신이 안됐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거요,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다
'무슨 소리야, 작년 연말 함께 코스코 시장 갔을때 갱신한 것을 당신도 알잖아
'아이고 몰라, 익스파이어 됐다고 하니 우얄꼬
지금 카트에 잔뜩 물건을 담았는데
일단 쇼핑해야 하니 연회비 납부해야 할것같아, 나중에 체크해 봐요
작년 연말 아내와 함께 코스코 시장에 갔을 때
사무실에 들러 카드 갱신을 했다
가게 주소를 집주소로 바꾸고
연락처도 셀폰으로 바꾸고
일 년간 적립된 포인트가 이백육십 불이 넘는다고 해서
아직 크레딧 수표를 못 받았으니 다시 발행해달라고 했었는데
아내 전화를 받고 바로 확인해보니 통장에서 연회비가 빠져나가지 않았다
벌써 두 주일이 지났는데
여직원이 사무착오를 일으킨 모양이다
이 노무 동네 도대체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부글부글 화가 끓는다
그만
훌훌 털어버리고 눈빛만 보아도 통하는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3.
옆집이 지하실을 꾸미는지
며칠째 인부들이 트럭 두어 대를 매일 집 앞 도로에 주차했다
작업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지만
남의 집 차고 앞 도로 정면은 비워 두어야 한다
옆집에 이야기하는 것보다 인부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 성싶다
'이보시요, 당신들이 내 집의 차고 앞 정면 도로에 주차하면 드나들기에 불편해요
내 집앞은 비워 두시요
딸아이가 한마디 했다
'아빠, 그 사람들이 그럼 어디다 주차를 해
'무슨 소리야, 도로가 텅텅 비웠는데
남의 집 차고 앞에 주차를 안 하는 게 상식이지
'애, 관둬라, 너네 아빠 성질을 몰라서 그러니
그만
훌훌 털어버리고 눈빛만 보아도 통하는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4.
다음 주부터 일을 시작하니 M95 마스크를 수령하라는 메일이 왔다
의료용 마스크가 아닌 우리의 KF94 같은 종류다
하루에 한장씩인 이주일의 분량인데
전염병이 시작된 게 벌써 이년이 되어가지만 이제야 이런 종류의 마스크를 처음 구경했다
틈새 없이 꼭 끼이니 의료용 마스크보다 나아 보이기는 하는데
공기로 전파된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이것으로도 완벽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강력한 정부 지침이라지만 이곳의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아직도 여전히 의료용 마스크가 대세다
고국 뉴스에서 비치는 우리는 대부분 KF94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이던데
어째서 이렇게 고국보다 뒤떨어졌을까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부족한 셈인가
아니면 전부 자기 잘난 맛의 자유라는 것인가
그만
훌훌 털어버리고 눈빛만 보아도 통하는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5.
마스크를 수령하고 되돌아오는 길
복잡한 교차로다
신호등 대기 중에
중앙선 인도 끝자락에 여인이 배가 고프다는 피켓을 들고 있다
'나는 돈이 없어요, 그래서 배가 고파요
하지만 나는 도둑질을 하지 않아요
문득 가방 속에 동전 몇 닢 있는 것이 생각나
탈탈 털어서 여인에게 건넸다
이제는 가게도 접었으니 이런 동전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좀처럼 하지 않는 행동
뜬금없이 여인에게 동전을 건넸다
이토록 매서운 추위에 떨고 있는 여인이 안타까워 보였기 때문인가
아니면 소설 속의 문구가 떠올랐기 때문인가
'자비로운 사람은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조금 하고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크게 하고 전혀 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지요
장기간에 걸친 법정 소송으로 인한 폐해를 묘사한 소설 - 블릭 하우스, 황폐한 집
찰스 디킨스의 말이다
대한민국이 이제는 일본보다 실질소득이 앞선다는 말도 있던데
그러면 어릴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극일은 이미 달성했다는 말이다
불현듯
그만 훌훌 털어버리고 눈빛만 보아도 통하는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6.
달무리가 떴다
무척 오랜만인 맑은 날씨가
어쩐 일인지 이렇게 밤까지 맑았다
우중충한 날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스산하기만 한 긴 겨울에 선물같이 찾아오는 맑은 날씨는 공연히 설레게 만든다
맑았다가 이내 흐려지는 게 보통인데
오늘은 밤까지 맑아서 종일 보송보송한 마음으로 지냈다
달무리 지면
비가 온다는 말이 있는데
내일부터 기온이 급강하한다는 일기예보이니
눈보다 무서운 얼음비가 내리면 큰일이다
우얄꼬
또 그만 눈빛만 보아도 통하는 곳이 생각난다
7.
딸아이의 생일이다
아내는 선물할게 마땅하지 않다며 며칠 고민 끝에
한국의 자게가 새겨진 조그마한 보석함을 주문했다는데
2월 중순에 배달이 가능하다는 메일을 받고는 켄슬 했다고 한다
그래도 딸아이의 얼굴을 조각한 것을 선물할 수 있어 다행이다
단출한 가족이니 아이의 생일이 무척 쓸쓸하다
이 녀석아
너도 가족을 꾸려야 할 때가 훨씬 지났는데, 라는 말이 그만 나올 것 같아 조심했다
또 그만 눈빛만 보아도 통하는 곳이 생각났다.
8.
늦은 저녁이다
왜 이다지 무엇에 얽매이고 집착을 하는 일상인가
그래서 마음의 밭을 갈아보고자 하지만 옹이처럼 박힌 상실감은 어쩔 수 없다
홀로 남겨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덧칠했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먼지를 쓸어내듯
마음의 티끌을 쓸어낸다
홀연히 떠날 수는 없는 일
눈빛만 보아도 통하는 그곳이 이제는 정녕 바라는 곳일 수도 없다
이곳이 선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 여기고
고즈넉이 사는 법이라 여기고 싶다
이 긴 겨울 지나면
봄이 올것이고
낙숫물 떨어지면
흙바닥엔 동그랗게 물방울이 구를 것이다
낙숫물 떨어져
초록이 물들고
그래서 또 다가올 가을에는 단풍이 더욱 짙게 물들 것이고 ...
첫댓글
눈빛만 보아도 통하는 곳으로
되돌아 가고 싶은
그런 때가
어디 단풍들것네 님 뿐이겠습니까.
우리는 어디든
자신을 이해해 주고
내가 뭔가 꿈꿀 때
나를 지원해 주는 그런...
하지만,
그런 것을 이루는데는
나 자신이
남의 눈빛을 알아보는
능력도 필요하지요.
'자비로운 사람은 두부류가 있습니다'에
새겨 넣어야 겠습니다.
고마워요, 단풍들것네님~
콩꽃님
댓글 말미에 고맙다고 하셨는데, 제가 고마운 짓을 했나요 ~~ ? ㅎㅎ
네 고맙습니다, 마음만 그렇지 이제 눈빛만 보아도 통할것 같은 곳도 막상은 낯선데가 되었을겁니다.
오늘은 완전 우울모드입니다 ㅠㅠ
@단풍들것네 그럼, 고맙다는 말 지울까요?
자비로운 사람은 두부류가 있습니다. 의 말을 잇자니
그리 되었습니다.ㅎ
양갈래 두 마음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느껴봅니다.
눈빛만으로 통하는 세상이 있어야 하겠네요.
갑자기 눈이 불편하여
망막 시술도 했고 그 후에 더 불편하여
대학병원도 갔는데
노안이라고 진단받고 인공눈물을 종일 들고 삽니다.
동공확장검사가 불편감이 있던데
무탈하시기를 기도드릴게요.
네~ 양갈래 마음입니다
망막시술은 큰 수술일것 같은데요
저도 당분간 사용하라며 루비러컨트 윤활유를 주더군요, 우울모드입니다~~ㅠ
@단풍들것네 호탕하게 웃으세요.
큰소리로 목청 돋구어
노래부르세요.
눈빛만봐도 통하는 곳으로 어여 오세요 ㆍ
뜨끈한 국밥 한그릇 대접하겠습니다 ㆍ
ㅎ 고맙습니다
따뜻한 댓글이 뜨끈한 국밥처럼 구수합니다 ~~
불편한 점이 더러 있지만
거기나 여기나
산다는 건,
살아 낸다는 건
매한가지 아닐까 싶어요.
짙은 향수에
독자의 마음도
괜스레 울컥해집니다.
ㅎ
울컥하시면 안되지요
자주 뵙기로 해요
노사연씨 우람한 체격인줄 알았는데
지금 유투브의 15년전 모습을 대하니 참 곱네요
곡이 좋아 한참을 듣고 있어요
(못내 아쉬운 이별이
어느새 그리움 되어
설레이는 더운 가슴으로
헤매어도 바람일 뿐
끝내 못잊을 그 날이
지금 또 다시 눈앞에
글썽이는 흐린
두 눈으로 둘러봐도
하늘일 뿐
아 나의 사랑은
때로는 아주 먼 곳에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곳에
던져버리고
싶을 뿐
하지만 저쯤 멀어진
그리운 우리의 사랑
대답이 없는
너의 뒷모습
이 마음 다시 여기에)
@단풍들것네
제 노래방 선곡 1순위곡입니다.^^
@보라리스 열심히 배울테니 다음에 같이 함 불러 봅시다~~ ㅎ
@단풍들것네 공수표 날리시면 아니되옵니다.
기대할게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얼마전 수필방 신년 음악회 티켓 기부 하셨다고 하길래
뭔가 이상해서
촘촘히 살폈습니다
완전 귀국 하신것 같더군요, 맞나요?
그랬다면 용기있는 결정을 하셨네요
ㅎ
좋은 날 되라구요 !
뭐가 좋은날이 있을런지 ~~ 에혀.
몇 구절이 아음에 와 박힙니다.
눈만 보아도 마음까지 읽어내는 세상에 오세요.
아니 와이프 애들 놔두고 최소한 왔다갔다 정탐이라도
하시면 마음이 조금 풀리실까 ㅎ
올 한해도 건강하게 즐겁게 사시라는 말 밖에
더 할 말, 좋은 말도 없네요. 화이팅 !
그러고 싶지만
막상 묵을데가 여의치 않아요
제가 한국에 있을때는
해외 친지들이 마구 방문해서 며칠이고 묵었던 모습이 저는 그렇게 싫었어요
저는 이제 부모님도 안계시니 더욱 그렇습니다
형제들도 나이들면 제각기 생활이 있는데 ~~
조만간 출국이군요, 한국식품 많이 장만 하셨나요
좋은 남편,
좋은 아빠로 잘 살고 계시구만요.
툴툴거리시는 것도 멋이려니 합니다.
단풍님의
여유로운 일상을 느끼네요.^^
오잉~
심란해서 죽겠다는 글인데
넘의 글을 요리 무심하고 무성의 하게 대하시다니~~
다음에 진짜 징징거리는 글 올립니다 ~~ ㅎ
지금 달무리 떴는데 무지하게 춥네요 ~
아이고 이거 참!!
복잡한듯 간단한듯 한 심경의 일단
입니다^
근데 그 글을 써 넣는 방법이 참 좋읍니다요
마치 시를 적어 넣듯^
근데 제가 보기에는 너무 생각이 많으신듯?
해 보여요! 휴~~
ㅎ 조금 그런 마음이라 징징거리게 되네요
네, 생각도 많아지고
여건도 복잡하고 해서
이래저래 조금 심란한 밤입니다 ㅠ
매사 순순히 풀려도 때론 짜증이 나던데요~
네, 짜증나도 순순히 풀리면 좋겠습니다
오래 세워둔 자동차 시동이 걱정될만큼
오늘 아침은 엄청 추운 날씨라 웅크려집니다
작년에 시동이 걸리지 않아 고생을 했거던요
띠뜻한 물에 샤워나 할까 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ㅎ 남여 눈 맞을때 짜릿했는지 그것도 이젠 가물가물해요~
맞아요 많이 춥네요
한달정도 쉬었는데
막상 출근하는 다음 월요일부터 강추위 엄습이랍니다
1,2월이 가장 춥긴하지요
여밀어도 안되요, 추위는 ~
남도 항구도시 고딩동기가
미국생활 30년 만에 단신 귀국했습니다
어쩌려나 걱정속에 바라보니
서울에서 몇 군데 엔지니어로 당기더니
이후 제주 서귀포 내려가
전공대로 직장잡아,
놀러오라고 난리 칩니다.
미쿡의 가족은 어쩌고 재산은 ? 향후는?
모든것이 궁금하지만
그는 오늘도 톡 합니다.
니 안내리 올끼가 ?
그분 대단하군요
용기있는 분입니다
잠깐 심란하지만 이내 괜찮아 집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젠 만성이 되었으니
제주에 역이민자들이 많다고 하데요, 땡큐~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오랜만에 오셨네
그렇지요, 카페 코박고 지내다 어떨땐 뜸해지기도 하고 그런거지요
사는게 대부분 그럴겁니다, 저도 자주 그렇습니다
이제 흐릿하고 탁해진 눈빛보다는
그냥 댓글 답글로 주고 받는게 나을듯도 싶고
전에 이야기 했던 기다리는 여심 새겼는데
통 안뵈이길래 자랑을 못했네요 ㅎ
한번 구경 해보소, 잘 새겼는지~
낙숫물 떨어진 자리 동그랗게 물방울 구를 것이며
초록물이 들고 가을이면 다시 짙게 물들것이라는 단풍들것네님의 글을 읽으면서 머물러봅니다 감사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긴 겨울이지만 이내 초록빛 물드는 계절이 오겠지요
낙숫물 ~....
먼, ~먼,~ 어린시절 , 기왓장 골따라 흘러내리던 낙숫물이 그립습니다~^^*
ㅎ 그리운 소리지요
이즈음에는 빗소리보다 눈이 많은 계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