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칠까?
아들에게 매 맞는 아빠와 영어두뇌 (상)
영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영어 또는 영어에서 유래한 낱말
들이 참 많습니다. 영어를 모르면 불편하죠. 영어는 ‘편하지 않은 것(dis+ease)’ 즉
병(disease)이 생기지 않도록 해줄 뿐만 아니라 평균 소득도 더 높여준다고 합니다.
글 - 박순
아들에게 뺨을 맞았습니다. 눈에는 불이 가슴에도 불이 일었습니다. 또 다시 아들에
게 입을 얻어맞았습니다. 다행히 이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서글펐습니다.
어린 아들이 아빠를 그렇게나 싫어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왜 저는 아들에게 매 맞
는 아빠가 되어버린 걸까요?
제게는 아들이 둘 있습니다. 첫째아들은 언어에 민감한 편이었습니다.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았는데 영어로 말을 걸면 고개를 홱 돌리며 이상하다는 시늉을 했습
니다. 그러던 녀석이 생후 15개월이 되자 친근하게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던 아빠의
뺨을 후려갈겼던 것입니다. 30개월이 된 녀석은 동화책 <올리버 트위스트>의 제목
을 멋진 영어발음으로 한껏 굴려서 읽어 보이는 아빠의 입을 주먹으로 쳤습니다. 우
리말식으로 제대로 ‘트!위!스!트!’라고 한 글자씩 읽어야 한다면서요.
명색이 대학 때는 영문학, 대학원에서는 영어교육학을 전공했고 10년 넘게 영어를
가르쳤고 뇌과학 책을 몇 권 썼다는 저도 그런 꼴을 당하고 보니 눈물이 날 지경이더
군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저도 속마음은 두 눈에서 불을 내뿜으며 어린
아들 녀석을 굴복시키고 영어를 우겨넣고 싶었지요.
그러나 깨끗이 단념했습니다. 단, 영원히는 아니고 마음속으로 정해 놓은 때까지 만
이었지요. 그게 언제까지였을까요? 답은 잠시 후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겉으로 드러
나는 영어교육을 단념했다는 것이지 아예 영어에 대한 모든 시도를 접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언제부터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쳐야 하나요?
이 질문은 제가 강의할 때 엄마 아빠들이 가장 궁금해들 하시는 질문이었습니다. 기
준점을 잡아 놓으면 마음이 든든할 텐데요, 우선 몇 가지 기본 지식이 좀 필요합니다
.
첫째, 모국어는 언제나 하나랍니다. 막시밀리언 벌리츠라는 사람은 50개 언어에 통
달했답니다. 아라비안나이트의 번역자 리처드 버튼은 35개 언어에 능통했고요. 이
언어천재들은 도대체 몇 개의 모국어를 머릿 속에 담고 있는 것일까요? 답은 한 개입
니다. 가장 자연스럽고 무의식중에 생각할 때 사용하는 언어인 모국어는 언제나 하
나예요.
둘째, 모국어는 언제부터 결정될까요? 이에 관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었습니다. 태어
난 지 하루 밖에 되지 않은 미국 아기 40명, 스웨덴 아기 40명을 대상으로 문(Moon)
이라는 학자가 모국어와 외국어를 들려주었습니다. 하루배기들은 말로 제 생각을 전
하지 못하니 입에 젖꼭지처럼 생긴 장치를 물려주었습니다.
문(Moon)의 신생아들 모음 듣기 실험 장치
세상에 나온 지 하루(평균 33시간)밖에 안 된 미국 아기들은 스웨덴어를 들려주었더
니, 그리고 스웨덴 아기들은 영어를 들려주었더니 정신없이 젖을 빨더랍니다. 왜 초
등학생들도 불안하면 손가락을 빨지 않습니까? “하루살이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데 아기들은 하루만 살았어도 외국어 무서운 줄 안다는 겁니다!
이 아기들이 딱 하루 만에 모국어를 마스터했을 리는 없죠? 그러니 모국어는 엄마
뱃 속에서부터 거의 결정되어 나온다는 뜻입니다. 또 워싱턴대학교 패트리샤
쿨(Patricia Kuhl)은 TED Talks에 나와서 생후 1년 정도면 모국어 말소리 인식 능력
이 거의 완성다는 강의를 했지요. 정통 뇌과학 교과서에도 쿨의 연구결과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만큼 과학계에서도 인정받는 주장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아무리 빨리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해도 우리 아이
들에게 영어는 어차피 외국어라는 겁니다. ‘스타트렉’이나 ‘스타워즈’ 같은 영화에
서 외계인들은 아주 낮거나 아주 높은 소리로 말하죠?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 같은
외국어는 말소리라기보다 무서운 ‘소음’처럼 다가가는 것은 사실 당연합니다. 그러
니 제가 맏아들에게 좀 얻어맞고 서운했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던 이유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