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6.7. 5) 전도서 1:1-18
무엇이 유익한고?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오늘 말씀은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입니다. 그는 "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합니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차지 못하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 전도서는 마치 허무를 노래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헛되다( meaningless)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아도 존재 의미, 삶의 의미를 못 찾으면 헛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헛되고 헛되다’. 부정의 부정은 강한 긍정입니다. 헛된 것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헛되지 않은 유익한 삶을 살 수 있는가 교훈을 주는 메시지입니다. 세상에는 앞만 보고 열심히 살다가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열심히 안 살아서가 아니라 삶의 철학이 없고,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태양이나 강물이나 바람이나 자연만물 어떤 것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은 미물이라 할지라도 그냥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시편 19: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시19:1). 매일 매일 반복해서 뜨고 지는 것 같아도 태양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있고, 궁창도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의미를 알면 별 하나 하나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평생 열심히 수고하며 살았는데 아무런 열매도 없다면 얼마나 허망하겠습니다. 오늘 전도자가 말하는 세가지 헛된 일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에 반하여 어떤 삶을 살아야 유익한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즐거움도 헛되다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2:1 ) 솔로몬은 왕의 위치에서 하고 싶은 모든 쾌락을 다 즐겨보았습니다. 사업을 크게 하고, 좋은 집을 짓고, 포도원을 심고, 못을 파고, 노비를 많이 두고, 앞에 있던 모든 자들 보다도 소와 양 떼를 많이 가졌고, 은 금과 왕들의 보배도 많이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처와 첩들도 많이 두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눈이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않고,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수고로 얻은 타고난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보니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 같고, 해 아래서 무익하다고 고백합니다. 인간이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잘못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행복하고 즐겁게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1%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만 살 수 없는 것일까? 이것이 내 인생이란 말인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지만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의미 있는 목표도 없이 일에 대한 철학도 없이 그냥 열심히만 살았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깨달은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의미 없이 단지 육신의 관능적 쾌락을 쫒는 삶은 아무리 화려한들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소유, 관능적 쾌락을 쫒는 삶은 단지 자극적인 것뿐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즐거움의 결과는 헛되고 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말은 왕으로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본 사람의 고백이라 더욱 신빙성이 있습니다. 주님은 믿음의 사람들이 항상 기뻐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주님이 주시는 재물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고, 자연 속에 들어가서 창조의 세계를 만끽하며 즐겁게 살 수 있고, 가족들과 서로 사랑하며 행복게 살 수 있습니다. 전도서 9:9절을 보면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찌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그렇습니다. 세상 사는 날 동안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옷도 입을 수 있고, 좋은 차도 탈 수 있고, 여행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중심이 주님을 떠나 더 귀한 생명의 말씀보다 육신의 쾌락과 소유욕에 빠져 산다면 그것이 즐겁고 재미가 있을까요? 육신의 정욕은 탐욕의 죄가 되고, 손으로 잡은 것들은 결국 썩고 쇠하고 부패하고 남는 것이 없다면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1:21절을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평생에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일이든 즐겁게 놀든지 의미가 있고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 영광’이란 목표와 ‘주안에 사는’ 삶의 원칙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 4:4을 보세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분명히 성경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합니다. 제가 선교단체 개혁 후에 색소폰을 배우고, 등산을 하고 트래킹을 좋아하고, 독서를 좋아하고, 바다를 자주 가는 것을 즐겨워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삶은 ‘주 안에서’의 삶의 철학을 갖고 하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독서를 하기 때문에 즐겁고 좋은 것입니다. 그 자체만의 즐거움은 오래 못갑니다. 바다도 처음에 가볼 때 “와 ” 하지 다시 가고 또 가면 거기가 거기입니다. 산도 마찬가지입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습니다. 좋은 곳도 계속 가면 시시해집니다. 다시 또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곳을 찾아야 합니다. 100대 명산 정복 등산 동호회. 이런 것 많습니다. 제가 지난 번에 이런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돈 벌고 출세한 후에는 어떤 삶을 계획하나요? 세계 일주 여행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온갖 관광지를 다 가보는 여행사 가이드가 제일 행복할 것입니다. 그런가요? 그런 여행은 피곤합니다. 여행도 누구랑, 어떤 철학을 갖고, 어떤 의미로 가는가가 중요하지 그냥 돈벌러 가면 노동입니다. 의미가 없으면 저는 공짜로 가라고 해도 안갑니다. 해마다 6월이면 전국에 수국 축제가 열리는데 팽나무 십리 도초 수국을 저는 제일 좋아합니다. 올해도 갔습니다. 그런데 여러 번 가보니 처음의 감격이 떨어집니다. 해마다 안 가본 새로운 곳을 물색하는 것도 피곤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같은 곳이라도 신선하게 접근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독서를 하면서 배우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가면 똑같은 세상이라도 늘 새롭게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 영광, 주 안에서의 원칙을 잊지 마십시오. 먼저 주님 뜻대로 살고 있는가? 나의 하는 일이 주님께 영광이 되는가? 나의 이 삶을 주님이 기뻐하시는가? 내 영적 성장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것이 분명하기만 하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책을 읽으면서 자연과 더불어 일상의 삶 속에서 즐겁게 유익한 삶을 살 수 있고, 나만의 유익하고 멋진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도 행복하게 사는 삶의 원칙을 제시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마음대로 하라! 이대로 하면 우리는 모든 순간의 삶을 즐겁게 살 수 있고, 어떤 길 위에서도 천국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많은 지식도 헛되다 전도서 1:18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전도자는 마음 가운데 담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자신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열왕기상 4장을 보면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나 그는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노래는 일천 다섯을 지었고, 또 초목을 논하되 레바논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또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를 논했습니다. 그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 중에서 그 지혜를 들으러 왔습니다. 우리 인생은 평생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 아는 것은 힘이 되고 지식은 사실 유익합니다. 그런데 왜 지혜와 지식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합니까? 지식의 참 의미를 모르고 머리에 쌓기만 한다면 번뇌와 근심만 더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물욕뿐 아니라 지식욕도 있습니다. 많이 아는 것에 대한 욕심과 지적 자랑입니다. 그런 지식은 나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편협한 사고에 묶어놓고, 결국 지식 과부화에 걸려 망하게 합니다. 언젠가 한 서울대학원생이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원인은 공부가 너무 힘들어서라고 합니다. 그렇게 머리 좋고 공부 잘해서 서울대 간 사람이 자살까지? 다른 길을 생각할 수 없었을까? 다른 대안은 없었을까요? 그러나 오직 한가지 서울대학을 목적으로 지식 쌓는 공부를 했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만두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보기에 체면이 있고.. 사유의 시선이 너무 짧다 보니 더 이상 생각할 여지도 없고 살고 싶은 의욕이 없엇을 것입니다. 사실 지식에도 도가 있습니다.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에는 책임도 따릅니다. 아는 만큼 실천하고 실행해져야 진짜 지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식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입니까? 결국 남 주기 위한 것입니다. 물은 흘러야 맑은 것처럼 내 지식도 이웃으로 사회로 흘러가야 맑아집니다. 배운 것을 나눈다는 실천적 지식만이 기쁨과 행복을 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공부도 하지만 그런 공부는 무거운 짐과 의무가 됩니다. 이제는 더욱 호흡이 깊은 인생 공부가 필요합니다. “내가 즐거워하는 것, 내가 배우는 지식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실용 지식인가?” 늘 질문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참 지식을 얻는 길이고, 그런 지식은 인생의 깊이를 더해주고 세상을 유익하게 합니다.
슈바이쳐 박사는 독일에서 태어나서 많은 공부를 한 사람입니다. 신학박사 철학박사, 문학 박사 등 많은 학위를 따고, 또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독일에 있었다면 아주 큰 일을 할 사람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모든 명예와 부 지식을 버리고 어느 날 갑자기 아프리카 밀림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배운 모든 지식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자 그곳을 택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당신 같은 사람이 왜 아프리카에 가느냐 여기 있으면 정말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하였지만 그는 병들고 굶주린 영혼들과 함께하며 치유하고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할 일이며 책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소유한 지식을 문맹한 이들을 위해 쏟아부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공부한 것이 아니라 남을 주기 위해서 공부한 것입니다. 그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서 스웨덴으로 가는 기차를 탔을 때 기자들이 취재하기 위해서 올랐습니다. 당연 1등 칸에 있을 줄 알았던 그가 없었습니다. 2등 칸도 없고 3등 칸에서 그를 만났는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앉아서 그들의 진맥을 보아주고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놀래서 물었습니다. 박사님 왜 여기 계십니까? 왜요? “나는 언제나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습니다.” 그렇게 그는 인류를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지식을 쓰며 살아야 하는지 귀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렇게 많은 말씀을 공부하고 배우려 합니까? 하나님을 잘 알려고 하고 실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아도 하나님을 모른다면 빗나간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정확히 알아야 지식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사랑과 긍휼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그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지식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실천으로까지 알아가는 것이 참지식입니다. 성경 백 번 천 번 읽는 것보다 다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한 말씀이라도 실천하고 생명과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면 우리는 지식을 얻고 배우는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는 자가 될 것입니다. 3. 수고도 헛되다 전도서 2: 23을 보시기 바랍니다.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도자는 내가 해 아래서 나의 수고한 나의 모든 수고를 한한다고 하였습니다(2:18). 이는 그 수고의 열매를 이을 자가 지혜 자일지, 우매자일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평생 수고하여 모은 재물을 맡은 자가 분열을 일으키고, 형제간 다툼과 분쟁의 소지가 된다면 오히려 해가 되고,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결국 전도자는 사람이 해 아래서의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의 소득이 무엇이냐고 자문합니다. 데카르트 철학자처럼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는 것입니다.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해서 많은 열매를 얻었는데 결과 슬픔뿐이고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한다면 이것이 과연 유익한가? 생각해보십시오. 세상을 보면 실제로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이런 문제로 가족 우애가 풍비박산 난 집안이 얼마나 많은지?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이 맞습니다. 평생 수고만 하고 정작 본인은 쓰지 못하고 죽는 안타까운 사람들도 많습니다. 무조건 열심히 일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 수고해야 하는지 삶의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고가 헛되지 않으려면 잘 벌 뿐 아니라 잘 써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한 목표!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썩지 않는 영원한 나라를 위해 쓸 수 있는 방향성이 있어야 합니다. 돈도 재물도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썩습니다. 그러나 유익한 곳으로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면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24절은 결론적으로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최고의 즐거움은 영혼의 즐거움이며 그런 즐거움은 하나님의 손에서 난다고 합니다. 근본 즐거움의 출처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을 누려야 헛되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5:58절 말씀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다 지나가도 주님을 위해서 쓰는 수고와 물질, 주님의 이름으로 섬기는 것들만 헛되지 않고 유익한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한 여인이 향유한 옥합을 깨어 드렸을 제자들을 허비했다고 하였지만 주님은 허비가 아닌 나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여인의 한 일도 함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기회만 되면 주를 위한 좋은 일에 투자하여 수고가 헛되지 않아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각자가 삶을 사는 동안에 주님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우리 우주교회의 지체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함께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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