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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바둑잡지를 보다 미수(米壽)를 앞둔 사카다 에이오 9단이 한 대담에서 말한 다음 한마디가 오래 눈길을 붙들었습니다. 저는 현재 한국기원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바둑발전연구회의 멤버로 참가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금제에 관한 이 글은 이러한 공적인 직책을 떠나 유창혁 일개인의 의견임을 먼저 밝힙니다. 제 직분과 관련이 있는 기관이나 기구의 입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한명의 프로기사로서 개진하는 사견임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지난해 10월 26일자 중앙일보에 상금제에 대한 제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후 상금제는 바둑계의 논란거리가 되었고 싫든 좋든 그 중심에 제가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앙일보에는 지면사정 때문인지 자세한 내용은 안 나오고 짧게 “시장원리의 필요에 따라 상금제가 필요하다”라는 취지의 보도와, 하나의 사례일 뿐이었는데 64강 상금제 안을 구체적인 예로 들다보니 본의와 달리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았던 듯했고 실제 이로 인해 적지 않은 비난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차라리 제 취지를 상세히 설명함으로써 오해를 불식하고 이번 계기를 통해 우리 바둑계의 위기를 공감하고 모두 머리를 맞대고 발전적인 쪽으로 공론을 모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먼저 상금제와 대국료제에 대해 간략히 설명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일본은 일본기원과 관서기원을 합치면 기사가 무려 600명이 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국료제를 고집하면 새로운 기전을 만들기도 힘들고 기존 기전의 규모를 키우기도 어렵습니다. 일본의 바둑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스폰서들이 기전 예산 증액에 난색을 표한다고 합니다. 스폰서 입장에서야 기전을 주최하는 것은 홍보가 주된 목적일 텐데 예선대국은 홍보도 안되고 버려지는 돈으로 보일 것입니다. 기사가 늘어나면 날수록 대국 수와 대국료는 늘어날 것이고 예산증액은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기전 집행부에만 의지하고 탓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때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할 때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바둑의 정점은 10년 전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는 점차 하향 추세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이는 제가 일선에서 어린이바둑 보급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뼈저리게 느끼는 바입니다. 바둑을 배우는 학생이 3분의 1 정도로 떨어졌고 프로 지망생은 더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우리 바둑이 세다고 착각합니다. 여전히 세계최강을 유지하고 있으니 외관상 아무 문제없어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는 10년전 피크 때 바둑을 배우기 시작한 애들이 지금 성적을 내는 것일 뿐입니다. 앞으로 5년만 지나면 다 빠져나갑니다. 새롭게 배우는 애들이 날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곧 힘들어질 겁니다. 바둑전문도장의 경영상태도 어려워지고 있고 바둑교실도 서울이 80여 곳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기업이 초청하는 바둑행사에 나가보아도 30~40대 바둑애호가는 드물고 거의가 50~60대들뿐입니다. 한국기원 집행부는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보급 일선의 체감온도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입니다. 제가 비난을 무릅쓰고 상금제를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침체를 타파하기 위한 한 방안인 것입니다. 상금제에 대해 심히 우려하는 분들도 현행 대국료 제도가 문제 있다는 건 다 공감하십니다. 바둑계가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도 파악하고 계십니다. 단지 방법론의 차이에 따른 시각차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제도 개혁을 해야만 모두가 사는 길인지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 또한 프로기사이며 이미 전성기를 지나 젊은 후배들에게 밀리고 있는 처지에 있습니다. 선배, 동료들의 마음을 모를 리 없습니다. 만약 상금제가 일부에서 말하는 ‘고려장' 같은 제도에 불과하다면 저 또한 그 피해를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상금제가 적어도 현행 대국료제보다는 훨씬 낫고 좋은 여건을 조성해줄 것이라고 자신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없는 것이기에 이처럼 공론화하여 그 폐해를 최소할 수 있는 보완책과 더 좋은 아이디어를 구하고 모색하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상금제로 갔을 때 얻게 되는 장점에 대해 몇가지 열거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습니까? 기전 규모도 전반적으로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설령 커졌다한들 기사 수가 늘어나니 대국료는 결과적으로 줄어든 꼴입니다. 이러니 스포츠스타들은 10억, 20억이 우스울 정도로 몇 곱절 뛰었는데 우리 바둑계의 톱스타는 그때나 지금이나 몇 억이 최고입니다. 저 같은 경우 짜릿한 맛이 조금도 없습니다. 솔직히 프로기사조차 요새는 도전기나 되어야 관심을 기울이고 대국을 들여다볼 정도입니다. 우리 같은 선수들도 이럴진대 팬들은 더 심할 것입니다. 천편일률적인 대국료제로는 기전의 재미와 팬들의 관심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상금제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는 분들은 “상금제 되면 뭐가 좋아지느냐? 상위랭커들만 좋은 일 아니냐”는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는 소외되는 기사들에 대한 보완책이 전무할 때의 얘기입니다. 이에 대해 몇가지 방안이 나왔고 본격적으로 논의는 하였으나 기사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과정을 거치지 않은 단계의 안에 불과하기에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밝히기에는 시기상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프로기사들과 바둑계의 실무자들이 심도 있게 다루어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며 그때 다시 한번 바둑팬들께 알릴 기회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는 일본의 예를 봐도 명확해집니다. 일본의 바둑이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것은 다른 원인도 있겠지만 현행 대국료 뼈대로는 뭔가 개혁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집행부나 실무자들이 앞장 서 개선해야 하는데 위험부담 안는 걸 무서워하니 점점 더 힘든 상태로 밀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도 사정이 나을 것은 없다고 봅니다. 일본이나 중국에 비하면 그래도 우리는 개혁을 감행할 수 있는 더 유리한 조건과 유연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국내 기전을 오픈하면 일본은 당분간 공부하는 기사 중심으로 참가할 테지만 중국은 많은 기사들이 올 것입니다. 자연 중국에 기전이 홍보될 것이며 국내는 물론 외국까지 홍보효과를 누리는 만큼 스폰서도 더 투자할 것입니다. 이때는 바둑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기업들도 눈길을 돌려 기전 주최를 저울질할 것입니다.
대국료제 하에서도 대국료 수입이 미미한 기사는 보급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상금제로 바둑시장이 활력을 얻는다면 바둑지망생이 늘고 보급의 길이 다양해질 것이니 일자리도 늘어날 것입니다. 상금제 전환에 따른 변화로 당장은 힘들지 몰라도 나중엔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개혁이란 소수의 피해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혜택을 입는 다수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에 따른 다수의 대승적인 양보-특히 성적을 내고 있는 젊은 기사들의 양보의 자세도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소수든 다수든 개혁의 큰 틀에서는 서로에게 득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상금제는 아마바둑의 활성화와 연구생 부분도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상훈 2단의 돌풍에서 보았듯 실력 있는 연구생들의 정체도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뒤늦게 재능이 터지는 재목도 있는 법인데 이들에게도 숨쉴 여지, 희망을 주어야 활력 넘치는 바둑세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좀 과장하여 말한다면, 다 죽은 기전이고 재미도 없고 관전하는 맛도 없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가 주장하는 상금제가 100% 맞다고 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시장을 키우고 좋아지게 하기 위해선 현행 대국료제로는 힘들다는 것이고 상금제로 과감히 변신하는 것이 더 발전적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되는 폐해를 최소화하고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기사들에 대한 복지 대책 등 제도적 보완에 대해 수면 아래에서만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공론화하여 바둑계가 다 함께 지혜를 모으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상금제에 대해 어떤 부분 문제를 제기하고 보완책을 제시한다거나 이보다 더 좋은 안이 있으면 기꺼이 따를 것입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 의견일 뿐 구체적인 그림은 바둑계가 공동대처할 부분입니다. 진짜 논의를 많이 해야 할 안건이고 찬반 양론이 거셀 제안이겠지만 “기본적으로 개혁해야 하는 건 맞다”고 느낀다면 더 늦기 전에 결심하고 가야할 것입니다. 제가 늘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무관심이며 특히 걸어온 길보다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많이 남은 젊은기사의 무관심은 불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회에 상금제에 대한 허심탄회한 논의를 바라며 반대를 위한 반대보다는 발전적인 토론과 고민이 이루어지길 희망합니다. -2008년 정월에 유창혁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