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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이 장사 왕서방 명월이한테 반해서 띵호와 띵호와 돈이가 없어서도 띵호와 밥이나 먹어해도 명월이 잠이가 들어해도 명월이 띵호와 띵호와 병들어 누워해도 띵호와
돌아가신 원로가수 김정구님이 히트시킨 노래가 생각 난다.
"제기럴 나도 왕씨로 태어 났으면 요로코롬 살지 않았을 텐데..."
잠시 여기서 우리가락 한 소절 듣고가자.
-슬 기 샘-
그리움이 울창한 숲 길에
물 안개 피어나는 그 숲 길로
그대 생각하며 하늘을 본다
내 그곳에
중국에 있는 왕씨와 우리나라의 왕씨는 조금 다르다.
왕가대원 정문
면산에서 내려와 차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하면 왕가대원을 만날 수 있다.
왕가대원 앞의 문묘
얼마전 가인님이 이곳을 지나가셨을 때는 이곳 구경을 하시며 상세하게 설명했던
왕가대원 선전그림 정문 앞에는 노동절을 맞아 연휴에 일요일인 탓인지 많은 사람들이 대기한다. 왕가대원은 '민간의 자금성(쯔진청)'이라 불리며
총면적 4만5000㎡ 터에 113개 정원과 1118칸의 방이 잘 보존돼 있다. 담벼락과 정원, 대문, 건축물 하나하나가 우아하면서도
집안을 한 번 돌아보는 데만도 족히 4~5 시간은 걸릴 정도라고 하니
이곳 산서성 일대에는 옛날 진상 부호들의 대저택이 5채나 있다.
왕가대원 정문
흔히 대원(大院)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큰 집이란 말이다.
왕가대원 지붕들 중국산시성 태원에서 3대 대원이라하면 상가대원, 교가대원, 그리고 왕가대원이 있다. 그중에 유명한 것이 규모와 역사로는 상가, 교가는 그 규모가 제일 작으나
상가대원 정문
우선 상가대원은 산시 어차현 동양진 차망촌에
상가대원 누각
교가대원은 산시성 치현 교가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콩국을 팔아 거부가 된 우선 눈에 띄는 특징은 성채와 다름없는 주택 구조다.
교가대원
‘홍등(紅燈)’은 중국의 유명 감독 장예모가 연출하고 부잣집으로 팔려온 여성 궁리가 첩살이를 하다가 결국은 닫히고 닫힌 폐쇄적 구조의
홍등을 이곳 교가대원에서 촬영했다.
역시 찻잎 판매와 금융업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교씨 집안 사람들이 지은 대저택이다. 그러나 규모는 왕가대원보다 작다.
상가대원 내부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외부, 외부에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한 성채와 보루(堡壘)의 건축이다.
왕가대원의 담 높이는 평균 10m로 자금성의 그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
멀리서 본 왕가대원 담장은 용을 상징
그 또한 모두 사람이 거의 들여다 볼 수 없는 담으로 가려져 있다.
이런 집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건축 심리는 우선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다.
완벽한 폐쇄형 구조다. 집이 곧 성이요, 성이 곧 집인 셈이다.
낯선 사람의 침입을 막고, 나아가 그들과 때로는 생사를 걸고 싸워야 한다는 각오일 것이다.
그래서 배타(排他)와 경계(警戒), 나아가 ‘나’ 아닌 ‘남’과의 다툼 의식은
용천 뒤로 보이는 왕가대원
낯선 외부의 존재가 나를 위협할 때는 다툼,
북명청시대의 대표적인 가옥인 왕가대원은 크게 동과 서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지금도 계속 증축이 되고 있어서 그 규모는 마치 성과 같아 사람들은 이를두고
왕가대원 응접실
왕가대원은 청나라 때 4대 명문가의 하나인 정승 왕씨(靜升王氏) 형제가 지은 대 저택이다.
두부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던 약 600년 전의 왕실(王實)이라는 인물이 선조로,
왕가대원 하마석 앞
"자! 인원점검 하겠습니다. 모여 주세요"
"이곳이 왕가대원인데 들어가면 화살표 방향으로 쭉 따라가시면 됩니다."
왕가대원 조벽 앞
"그러고 30분 후에 모이는 곳은 이 조벽 앞입니다. 늦지 않게 모여 주세요" 그렇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우리의 가이드 선생이 왕가대원에서 한, 두 마디의 말은
왕가대원 내부 물동이
보통의 건물들이사합원(四合院, 쓰허위안) 형태이고 정원 가운데에는 물독이 하나 놓여 있다.
사합원은 폐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랑캐들의 침략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도적들과 그들의 지배하에 놓인 적도 여러번 있었다.
왕가대원 거실 한 쪽에 온돌이 있다.
나라의 흥망성쇠에 따른 변란은 많은 시기에 돈이 많은 부호들은 따라서 높은 성곽과 같은 담장이 필요하고 주위에 자신을 보호해 줄 많은 인척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성벽으로 가는 길
이처럼 여러 주위환경과 중국 화북지역의 매서운 추위와 황사바람 등이 높은 담장을 요구 해서
저택 전체 모습은 왕(王)자 형태로 되어 있으며 곳곳에 많은 뜻이 숨겨진 디테일한 장식과 조각이 흥미롭다. '희희(喜喜)'자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한다.
원숭이 조각
자주 등장하는 돌조각중에는 원숭이가 복숭아를 들고 있는 조각이 있다. 학이나 박쥐 등도 우리의 눈길을 끈다.
왕가대원 굴뚝
그런데 우리의 유능한 가이드 선생의 발걸음이 무척 빠르다. 무슨 특별한 방인가 하고 들여다 보니 다른 방과 별다른 차이는 없다.
서태후가 하룻밤 잔 방
정말 천하를 호령하던 여걸 서태후 자희가 이처럼 초라한 방에서 목숨을 구걸하며 잠을 자다니....
방 하나하나에 사연이 숨어있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텐데 우리의 안테나께서는
우리의 안테나 아찌 "에이... 다음 번에는 가인(佳人)님처럼 혼자와서 천천히 찬찬히 봐야지"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두덜대며 돌아서서 혼자 중얼거린다.
여기가 이층올라가는 곳입니다.
"여기가 2층입니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이런 멘트뿐이니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다.
딸의 방으로 추정
"엉터리 이야기라도 지어서 우리에게 전해주면 좀 좋아?"
사합원의 정원
하기야 이곳을 온종일 다녀본다한들 모든 집을 드나들 필요는 없을 듯 싶다. 각각의 모습이 다른것이 없다.
이곳은 정말 사진작가들의 좋은 놀이터가 될 수 있다. 나는 누구처럼 좋은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사진을 찍지 못한다.
왕가대원 우물 용천
왕가대원은 크게 동과 서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여행객들은 먼저 고가애를 먼저 둘러보고 난 후 고가애와 홍문보를 잇는 운교를 건너가서
왕가대원 조벽
고가애(高家崖) 쪽 대원을 들어가는 입구 앞쪽에 조벽(照壁)이 하나 세워져 있다. 민간에서는 사자가 들어간 조벽을 많이 세웠다고 한다.
이 조벽의 문양을 보면 원형 안에 두 마리의 사자가 여의주를 두고 희롱하는 모습이다.
골목에도 조벽을 세웠다.
대원을 걷다보면 좁은 골목 끝이나 문을 들어올 때 이것도 일종의 조벽이라 보면 무난할 것이다.
문앞 등 놓는 곳으로 추정
그렇기 때문에 외부와 단절된 상황에서도 자체적인 생활방식으로 살았을 것이다.
용을 상징한 담장
이 왕가대원을 구경하며 딴 가이드들에게 들은 재미난 이야기는
그래서 대원의 형과 동생의 집을 살펴보면 나이 많은 형의 집의 문턱이 동생의 집보다 더 높으나,
심지어 2층으로 올라가는 난간이나 문턱 옆 양쪽 바닥 등에도 드나드는 사람마다 꼭 한 번씩 쓰다듬어 주었는지 반들반들 윤이 났다.
등용문을 상징
흔히 등용문을 상징하는 조각품도 있고,다산을 상징하는 조각품도 있다.
운교
고가애와 홍문보를 잇는 것은 운교(雲橋)다.
노동절이라 많은 관광객이 몰렸다.
홍문보 입구로 들어서서 걷다가 오른쪽으로 꺽어서 올라가면 버드나무잎이 하늘거리는 것이 꼭 우리를 환영해 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왕가대원 누각
이곳은 집안의 연로한 어르신들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왕가대원 성벽 위
성벽을 따라 시계 반대방향으로 성벽을 반 바퀴 돌은 후에
왕가대원을 빠져나오는 거리에는 길거리 음식을 팔고 있는 행상인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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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생생한 여행기 쌩유^^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중국의 갑부는 땅크기만큼 거대한가 봅니다. 300년동안 이루엇다하니 어떤 왕조보다 긴 역사입니다. 사진과 글 감사합니다.
음악이 김영동 음악이내요 오래된 음악이지요
어쩨던 잘보았읍니다. 한번 가봐야지 중국은 어디를 보나 다 매력이 있어요
따거 건강하시죠?
우리의 자유방임주의 안테나 가이드 얼굴을 보니 다시 4월의 그날들이 그리워집니다.
이따 사진이나 다시 찬찬히 들여다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