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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열리는 이야기나무] 은땡이와 고양이 |
글:이상교
그림:박영미
나는 처음엔 고양이를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엄마가 시장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데려왔다는 새끼 고양이는 조금도 예쁘지 않았습니다. 가칠가칠해 보이는 털이 밤가시처럼 쪽쪽 뻗어 있고 눈에는 눈병 때문에 눈곱이 잔뜩 끼어 있었습니다.
엄마는 동물병원을 찾아가 젖이 떨어지지 않은 새끼 고양이에게 먹이는 우유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 눈병약도 사 가지고 와 하루에 다섯 번씩 넣어주었습니다. “엄마, 이 새끼 고양이 우리가 길러요.” 누나가 먼저 새끼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새끼 고양이는 앞발 한 개로 우리를 톡톡 치곤 했는데 그 모습이 우습고도 귀여웠습니다. “이름은 ‘코점이’라고 해요.” 누나는 이름 짓는 데 선수입니다. 새끼 고양이의 콧등에 나 있는 가만 점을 보고는 코점이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코점이라는 이름은 새끼 고양이에게 잘 어울렸습니다. 코점이를 기르기 시작한 지도 벌써 일 년 반이 지났습니다. 나는 친구들이 강아지나 토끼, 햄스터, 이구아나 같은 애완동물 이야기를 할 때면 코점이 얘기를 했습니다. “또 고양이 얘기니?” 친구들이 핀잔을 주어도 코점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도 예쁘고 귀엽기 때문이었습니다. 코점이에 대해서 나는 할 얘기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날도 열심히 코점이 얘기를 늘어놓던 중이었습니다. “고양이들은 긴 끈 같은 거면 다 좋아해. 바느질실을 삼키기도 하거든.” 장은땡이 내 말에 끼어들었습니다. 원래 이름은 장은동인데, ‘은땡이’라고 부릅니다. ‘은땡이도 고양이를 키우나 보지?’
고양이들이 긴 끈 따위를 좋아하고 바느질실을 삼키기도 하는 걸 아는 아이라면 전에 고양이를 키웠거나 아니면 지금 키우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코점이도 정말이지 바느질실을 30㎝쯤 삼켜 잡아당겨 꺼낸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고양이는 꽃나무도 좋아해.” 은땡이가 말했습니다. “너희도 고양이 기르니?” 마지못해 물었습니다. “응, 두 마리.” “꽃 중에서도 안개꽃을 제일 좋아하지 않니?” 그 말은 물으려다 그만두었습니다. 고양이 이야기를 자꾸 하다가 은땡이와 친하게 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친구들이 은땡이와 친한 것으로 알게 될 일도 못마땅했습니다. 은땡이, 장은땡이는 지체장애여서 휠체어를 타고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은땡이와 그래도 잘 어울리는 편인데 나는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은땡이가 왠지 꺼림칙했습니다. 바로 쳐다보게도 안 되었고, 공연히 말도 건네고 싶지 않았습니다.
‘몸이 이상하니까, 이상한 생각만 할 것 같아.’ 휠체어를 타고 달팽이처럼 천천히, 꿈질꿈질 움직이는 것을 쳐다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은땡이가 아는지 모르는지, 은땡이의 별명은 ‘달팽이’입니다. 나는 학교에서만은 코점이 얘기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를 대신해서 은땡이가 고양이 얘기를 했습니다.
“어제, 우리 고양이는 새끼를 못 갖게 하는 수술을 받았단다.” 코점이도 그 수술을 받았습니다. 나는 듣지 않는 척하며 모두 들었습니다. 은땡이네는 고양이 돌보는 일들은 은땡이가 다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집은 사료 주기, 모래 갈아주기를 엄마가 도맡아서 했습니다.
‘느릿느릿 달팽이가 어떻게 고양이 모래를 치운다는 거지?’ 그런 은땡이에 대해 이상한 생각 한 가지가 들었습니다. ‘혹시, 일어설 수도 있으면서 공연히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 아닐까?’ 은땡이가 휠체어에서 일어선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고, 그럴 리 없는 일인데도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일어서지도 못하는 애가 얼굴이나 옷차림이 저렇게 말끔한 거지?’ 은땡이의 머리카락은 언제 보아도 방금 헹궈 말린 듯 나풀나풀 했습니다. ‘나 같으면 움직이기 귀찮아 더럽게 하고 있을 것 같은데…. 아마 이도 닦지 않았을 거야.’
어느 때 보아도 벙글벙글 웃는 얼굴인 것도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코점이는 여전히 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학교에서도 코점이만 생각하면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작은 나비가 꽃 위에서 나폴거리는 것을 보아도 코점이가 생각났습니다. 바닷가로 체험학습을 떠났을 때, 작은 새끼 게가 손가락을 세게 깨물려 했습니다. 그러자 코점이가 생각났습니다. * *
“새끼들은 어디 있어요?” 나는 아빠 친구인 아저씨께 물었습니다. “네 마리는 어미가 데리고 있고, 한 마리는 저기 보이는 종이상자 안에 있단다.”
아저씨 말에 종이상자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종이상자 안에는 처음 코점이를 데려왔을 때처럼 작고도 털이 보스스한 새끼 고양이가 오도카니 앉아있었습니다.
“그 새끼 고양이는 왜 어미를 안 따라 나간 거지?” 아빠가 아저씨께 물었습니다. “멀쩡했는데 높은 데서 떨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다친 것 같아. 뒷다리 둘을 다 못 쓰고 질질 끌며 다닌다네.”
아저씨는 다친 새끼 고양이를 용하다는 벌침 집으로 데리고 갔다왔다 말했습니다. 벌침 집에서 새끼 고양이를 끈에 묶어 두고 열흘 동안 벌침을 맞게 해, 그나마 조금 걷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먹이도 혼자 힘으로 구하지 못할 텐데, 어쩌나? 이 산골에서.” 아빠가 걱정했습니다.
“어렵지만 차츰 적응해 나가게 될 걸세. 지금도 오줌은 꼭 밖에서 누고 오는 걸.” 아저씨는 종이상자 안에서 새끼 고양이를 꺼내 바닥에 내놓았습니다. 고양이는 뒷다리 둘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열심히 기었습니다. 코 언저리가 하얗고 이마가 노란 빛인, 눈이 동그랗고 맑은 새끼 고양이였습니다. “아빠, 우리 새끼 고양이 한 마리만 데려가요. 네?” “글쎄, 어떤 놈을 고를지 이따 어미가 새끼들을 데리고 오면 보고 고르렴.” 아빠가 말했습니다. “아빠, 이 고양이로 데려가면 안 돼요? 내가 운동을 시켜서 코점이하고 같이 ‘우다다다’ 뛰어다니게 만들 거예요.”
아저씨는 새끼 고양이에게 벌침을 몇 번 더 맞게 하고 다음에 데려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코점이에게 말했습니다. “며칠 뒤면 네 동생 고양이가 올 거야. 그 고양이는 몸이 좀 불편하거든. 그렇다고 네가 뭐, 특별히 도와줄 건 없어. 혼자서도 다 잘하니까.” 코점이는 내 말을 알아들은 듯 분홍 장미꽃잎 같은 얇은 혓바닥을 낼름 내보였습니다. “네가 할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놀아주는 것뿐이야. 그 고양이는 자기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여기지 않아. 조금 더 불편할 뿐이라고 생각하지.”
코점이가 알아듣게 말하는 동안 은땡이가 떠올랐습니다.
‘은땡이에게 우리 집에 새로 올 고양이에게 ‘은땡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겠다고 말하면 그러라고 할까?’ 어쩐지 그래도 괜찮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그것을 묻는 것만으로 장은땡이와 나는 친구가 되었으니까요!*
공동기획:소년조선일보 주니어 김영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