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의 며느리이자 소현세자의 아내, 강빈 병자호란 패전 후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지만 우수한 조선의 물품으로 무역을 전개하고 조선 포로들을 해방시켜 농장을 경영한다. 수많은 조선인들의 희망을 일구어낸 여성 CEO, 강빈 그녀는 새로운 조선을 꿈꿨다.
그러나... 잇따른 남편의 죽음과 사산, 강빈에게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는데... 강빈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 KBS 이선영 아나운서, 강빈 역으로 첫 연기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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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선 여성 경영인 강빈. 그러나 남편 소현세자는 의문의 죽음을 맞고, 자신 또한 시아버지인 인조에게 사약을 받는 비련의 여인이다. ‘한국사 傳’의 강빈 역을 KBS 31기 이선영 아나운서가 맡아 열연 했다. 이선영 아나운서는 현재 ‘주주클럽’, ‘투데이 스포츠’에서 활발한 진행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녀가 한국사 傳에서 펼치는 첫 연기 도전!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강빈이 다시 살아난 듯 실감 나는 연기를 펼쳐 제작진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데... 이선영 아나운서의 활약을 전격 공개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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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빈 강씨, 그녀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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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1595~1649)의 며느리이자 소현세자의 아내인 강빈(민회 빈 강씨). 강빈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사료에 기록된 강 빈은 조선시대의 여성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언행과 결단력으로 수많은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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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빈, 심양관의 여성 CEO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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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빈과 소현세자를 포함한 조선인 192명은 중국 심양관에 거주하며 힘겨운 인질 생활을 시작했다. 유목민족으로 군사력은 강하지만 문화적 수준이 떨어졌던 청나라는 조선의 물품을 필요로 하게 된다. 심지어 청 왕족인 팔왕(八王)마저 면포, 수달피, 백자 등의 밀거래를 요청 하는 상황! 강빈은 이런 상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청나라인과 활발한 거래를 시작하고, 이후 심양관은 일국의 주청 조선 무역대표부가 된다.
소현세자는 청 황제의 수행으로 심양관을 비우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강빈은 세자의 역할을 대신해 조선에 보내는 장계까지 직접 챙기며 심양관의 실질적 경영자, 여성 CEO가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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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빈, 조선판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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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의 거래로 상당한 부가 축적된 심양관. 그러나 생각지 못한 위기가 닥친다. 청이 심양관에 식량 공급을 중단하고 직접 농사를 지어 생계를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인질 생활의 장기화를 염려한 조선 관리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빈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강빈은 청나라에 끌려온 조선인들을 속환해 농장에서 일하게 하고,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 생산성을 높였다. 조선의 우수한 농사기술은 해가 거듭될 수록 큰 수확을 이뤄, 심양관에는 한해 필요한 양의 3배가 넘는 곡식이 쌓이기에 이르렀다. 강빈은 심양관의 재력을 바탕으로 청에 끌려온 수백명의 조선인 포로들을 해방시키며 조선판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어 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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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샬과의 교류 - 천주교와 과학기술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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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자, 강빈과 소현세자도 북경으로 거주지를 옮긴다. 세자는 자금성 근처에 있는 남당(南堂)에서 예수회 소속 천주교 신부이자 천문학자인 ‘아담 샬’과 깊은 교류를 맺게 된다. 아담 샬은 세자와 강빈에게 천주교 교리와 천문학, 서양의 최신 과학기술을 전하고 천문, 산학, 성교정도 등의 책과 여지구, 천주상 등을 선물로 주었다. 소현세자와 강빈은 서양 책과 물건들이 조선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뻐하며 중국인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조선으로 귀국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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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죽음, 감금과 사산, 그리고 사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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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5년, 인질 생활 8년 만에 돌아온 강빈과 소현세자. 그러나 인조의 반응은 차가웠다. 청의 힘을 빌려 왕의 자리를 넘보려 한다는 정치적 라이벌 의식을 느낀 것이다. 결국 귀국 2달 만에 소현세자는 돌연 죽음을 맞는다. 독살로 의심되는 의문의 죽음이었다. 그러나 인조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조사를 덮어 둔 채, 국법을 어기고 원손(소현세자와 강빈의 아들) 이 아닌 봉림대군(소현세자의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 준다.
그 뒤, 인조의 칼날은 강빈을 향했다. 아녀자로서 바깥일에 깊숙이 개입했으며, 왕을 독살하려 했고, 중전을 뜻하는 ‘내전’의 칭호를 사용했다는 점 등 의 이유를 들어 강빈을 역적으로 몰은 것이다. 결국 강빈은 후원 별당에 감금되고 만다. 당시 임신 상태였던 강빈은 결국 아기를 사산하고, 궁궐에서 폐출됐다. 인조는 신하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빈에게 사약을 내린다. 시대를 앞선 여성 경영자의 죽음이자, 조선 역사의 슬픔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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