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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2 1)
나라 안에 종교인가? 종교 안에 나라인가?
‘현 정권은, 현 정치는 강도라’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그게 그렇습니다. 나는 ‘현 정권이라’ 그런 말 한 일 없어. 옛날로부터 오늘날까지 동서고금을 말할 것 없이 정치란 그런 거란 말이야. 나는 뭐 현 정치라니, 그 사람이 일부러 질문하는 척 하면서 날 걸고 넘어가려고 그랬는지, 제 생각에 또 있는지라, 그렇게 나왔는지, 난 반드시 그렇게 악의로 해석하고 싶지 않아. 아마 제 마음에 그러니까 ‘현 정부는 그럼 강도란 말인가?’ 이런 생각에 그랬겠지요. 그건 내가 현 정권이라고 그러지를 않고 전반적으로 동서고금을 할 것 없이 정치란 본래 그런 거다. 그렇게 말을 하는 거라, 그러고 보니까 그 사람 말했는지 내가 말하다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심정은 그렇다 그 말이에요.
나는 분명히 말합니다. 뭐 이런다고 해서 모가지에 당장에라도 칼이 들어오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말을 하면 날더러 비국민이라고 그럴는지 몰라요. 비국민이라고 그러거나 뭐거나 간에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러니까 나는 뭐 그런 오해를 받을 줄 알고도 난 분명히 잘라 말합니다. “정치란 도둑들이다!” 그러고 했습니다만, 그런데 오해 받습니다. 내 마음이 안 그렇다고 해도 오해 받습니다. 오해 받을 줄 알면서도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말하는 게 말이지 이렇게 말하면 오해하겠는데, 그래 그만둔다면 뭐 예수님 그럼 한마디도 입 닫고 아무 말씀을 못하였겠지. 그 사람은 오해할거야. 그 사람의 오해하는 것까지 네가 책임질 것 없지 않느냐, 그러면 그 사람이 오해했으면 그건 그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책임을 질 것이고, 내 마음에 그 사람이 오해할 줄을 미리 생각을 하고, 내 말을 이렇게 줄여서 말이야. 물을 타가지고 그럴 필요 없다 그 말이야.
그러니까 그런 걸, 그런 심정을 가지고 이제 잘라서 말을 한다, 그러면 항간에 이런 소리 저런 소리가 들려. 일본시대 말년에 그런 소리 많이 돌아갔습니다. ‘나라 안에 종교가 있는 것이냐? 종교 안에 나라가 있는 것이냐?’ 말도 안 된 소리야. 말도 안 된 소리. 나라 안에 있다면 그게 종교라는 거 어디 있어요? 어쩌나 저 신약에 있는 소리가 분명하잖아? ‘우리가 사람의 명령에 복종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겠습니까?
이 세상에 소위 주권자라 하는 사람과 이렇게 대립할 정도에 있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물론 뭐 저 어리석게 말하는, 나 자신에 말로 하면, 내 집에 가면 늘 이따금 하는 소리입니다만, 어리석게 말대답을 잘못해가지고 죄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그때 신사참배 문제 있잖아요? 나도 그때 감옥에 무심코 들어갔는데, 입에다 뭐라고 일본형사가 와서 “당신 성경에 뭐라 그랬지? 믿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된다고 그랬지?” 그러는 거 뭔고 하니 으레 ‘지옥간다’ 그럴 테고, 내가 가령 ‘지옥간다’고 그런다면, 그럼 “일본 천황은 그럼 어떻게 되지” 분명히 그렇게 물을 줄 내가 압니다. 그러면 그때 말이야 “천황도 지옥가지요” 그러면 “이 자식, 너 불경죄다” 그러고 이제 몰아넣을 터이고, 그런 줄 알면서 내가 왜 거길 내발로 기어들어 가냐 그 말이야. 그래 성경에 뭐라 그래? 성경에 두 가지 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그랬습니다. 또 한 말은 “하나님이 마지막엔 모든 사람을 무슨 재주로든지 다 구원하신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걸리질 않는단 말이지. “에이, 그런 협잡종교가 어디 있나?”(웃음) 그리고 이제 말을 해, 그런 적도 있습니다.
그런 줄 알면서 일부러 어리석게 걸릴 필요는 없지만 말이야, 설혹 이 문제가 꼭 따져서 물어서 된다, 그런다면 별 수 없지. 나는 지옥이란 거 있다 생각 안하니까 말이지. 지옥이 정말 있지 그런다면, 안 믿으면 지옥가지, 천황 아니라 천황 할아비 같은 것도 지옥 가게 생겼지, 그럼 뭐 거기 무서워서 말이야, 거기 무서워서 내가 이 말을 하고 죽는 것이 좋을까? 여기 그런 뜻이 대답을 해, 우리 교회를 건지는 거, 우리나라를 좀 건져서, 조금 사람이 많이 죽지 않게 하는 것이 좋을 거야. 뭐 이런 따위의 해석으로 하면 이제 거기 들어가지 안 들어갈 리가 없겠지. 그럴 때에 어떡하겠냐 그 말이야. 이러니 현대 문제가 있는 거야. 그런 경우에서 분명히 대답 준비되어 있어야 돼.
나라를 위한 종교 아니에요. 종교를 믿지 않으면 모르지만 종교를 믿는다면 하나님 밑에 나라가 있지. 그건 이 세상 나라하고 충돌되지를 않아. 충돌되는 것같이 생각하는 데가 그 어리석은 거지 말이야. 그런 점이 오해돼 그러는 거지 말이야. “뭐 종교도 국가 있고 종교 있다.” 그런 소리나 하려면 무슨 종교랄 거 있어요? 하나님이 그럼 국가에서 제정하는 법에 따라서 하나님 노릇하고 그런다면 하나님 나 안 믿겠어. 그걸 믿어 뭐하려고. 나만도 못한 거.
나는 이 세상에 소위 나라의 대통령이 나만도 못한 사람인줄 알아. 그러니 내가 나만도 못한 사람의 제재를 받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제가 분명해야 돼요. 평상시에 흐리멍덩하게 두지 말고 말이야. 내 믿는 종교에 문제가 될 때에 말이야. 나라도 버리겠나? 안 버리겠나? 나라도 버릴 각오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절대 복종한단 말 안됩니다.
허나 간혹 문제가 뭔가 하니 나라가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안에 나라가 있지, 거기 내게 절대 충돌이 되질 않아. 그런 점에 있어서는 간디 같은 사람, 간디, 세계적으로 위대한 사람이에요. 인도 사람이 신으로 모시기까지 했습니다만 분명합니다. 진리와 인도가 문제가 되는 경우에 ‘나는 차라리 우리 인도를 내버리고라도 진리를 지킨다! 허나 인도 내놓고 진리라는 거 없다.’ 그러니까 된 거.
속의 속, 참을 보자는 게 종교
나라라는 게 뭐, 나라가 뭐랍니까? 이제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다 빼앗아간다고 그러지만, 그게 어떡하는 거지 일본사람한테 가 있으면 빼앗아간 거고 우리나라 사람한테 있으면 있을 겁니까? 난 조금도 다르다고 믿지 않아요. 진리로 다스리면 우리나라지만 말이야. 누가 왔든지 간에 진리로 안 다스리고 도리에 어그러져 다스리면, 우리나라와 백성 다 빼앗긴 사람이지, 있긴 어디 있단 말이요? 우리 영토가 어디 있단 말이요? 종교란 건 껍데기를 보지 말고 속의 속에 참을 보자는 게 종굔데 말이야.
종교 믿는 사람들 외양 엉터리로, 엉터리로 나마라도, 그래도 우리나라 한 것이 ‘타협을 하고 타협을 하고, 절을 하고라도 그런 거 유지가 돼야지 되지’ 이런 따위의 생각을 하려면야 종교라 할 거 어디 있어요. 그런 거라는 거 다 뭐냐? 종교 정치 분리해 가지고 종교는 종교 따로, 정치는 정치 따로 이렇게 생각하면 몰라. 종교가 종교로 되기 위해 정치가 정치이기 위해서 분업시대니까 그것은 기능이 다르기 위해 이렇게 나왔지만, 그 참에 있어 둘이 서로 둘일 리가 어디 있어요?
똑같은 것이 이리로 나오면 종교 되고, 이리로 나오면 정치되고, 무슨 그런 자릴 발견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런 자릴 발견하자는 데가 그 종교 믿는 데지. 안살림과 밖 살림이 문제가 서로 다르지 않다. 그런데 안과 밖과 충돌이 되는데 그럼 사람은 뭔고 하니 아무래도 구복이 원수가 돼서 그래. ‘어느 정도 안살림을 희생 하고라도 바깥이 남아 있어야지’ 이렇게 생각하자는 게 이 일반 생각이 그런데, 그건 어린애 생각이고 인간이 훨씬 잘하는 건 뭔가 하니, 밖을 희생하면서라도 안을 살려야지, 그게 정몽주 성삼문이요 박팽년이요, 보통 말하는 그리스도, 사도에까지 안 가더라도, 이 세상에서 소위 도리를 지킨다든지, 배웠다는 사람은 나라가 어디에 있냐?
나라가 흙에 있냐? 나라에 사람에 있냐? 나라가 그 마음에 있지 않느냐? 한 사람이라도 그 나라 속에 참은 참이면,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라 하는 거, 분명히 아는 사람이 다 죽고 하나 남아 있어도 그 나라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는 게 소위 옳은 일에 죽었다는 사람이고. “어, 사람이 되면 어쩔 수 없지, 다 먹어야 살지 않아요? 다 입어야 살지 않아요? 그렇게 하고 살아나서 또 그 다음에 봐요 하고 볼일이지, 죽어서야 어떻게 합니까?” 그런 소리하려면 종교랄 거 뭐야? 우리를 위해 그런 얘기할 거 없지 않아요?
그러면 이 시대가 어쩌면, 이런 점이 타락이 되겠소. 그러니까 겉으로 나타나 보이기에는 삼선이요 뭐요, 그까짓 것 그런 문제야 너희는 그런 문제는 생각도 말고 공부만 하면 좋지 않냐? 그러지만 밑으로 캐고 캐고 들어가면, 어째서 이렇게 되느냐? 이런 게 기본적인 문제가 되거든. 이 세상에 어찌 옳은 거 그른 거 있는데, 옳은 걸 옳다고 그러고, 그른 걸 그르다고 해야 되는데, 왜 옳지 않은 것이 행세가 되고 옳은 것이 왜 맨 거꾸러기냐?
이 젊은 마음에 그거 문제가 돼서 그렇지. 무슨 누가 대통령이냐? 아무든지 누가 대통령한다면 관심이 어디 그리 있을 거 어디 있어요? 젊은 마음은 젊은 마음대로 살려고 하지 않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나라 정치한다는 사람도 그렇지, 아, 저 종교계 지도한다는 사람도 그렇지, 교육에 지도한다는 사람도 그렇지, 흐리멍덩하게 그게 그렇게 해야 여기서 살아간다고 그렇지. 그 산다는 게 그게 무슨 뭐 사는 거냐? 구차하도록 아주 이런 생각을 하면, 아주 우리가 참 어려운 관계에 있지. 대단히 책임 중대한 시기에 섰습니다.
지금 외양으로 보기에 별거 아닌 거 같고 ‘그 사람들 괜히 그런다’ 그러지만 무슨 생각을 한다 하면 참 시비를, 시는 시고 비는 비고 가려서 내 목숨이 관계되는 한이 있더라도, 종교는 왜 믿는가 하니, 이게 목숨이 아니다. 이게 없어지더라도 그 안에 있는 게 그게 목숨이지, 이게 목숨이냐? 이건 아무 때에 가도 70을 살았어도 떨어지고, 80을 살았어도 떨어지고 칼에 맞아도 떨어지나, 병에 앓다 떨어지나 마찬가지다. 죽으면 그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거 아닌 그 걸로도 끝나지 않는 생명이 확실히 있다! 그걸 믿는 데가 종교지. 그걸 믿는다면 그 어느 게 더 중요한가? 예수님이 온 천하를 주고도 사람이 그 생명을 잃으면 뭣이, 그 생명한테는 이거 아닌데 헐럭헐럭, 이걸 두고 한 말이 아닌데 절대 예수님 말씀이 그런 거 아니야. 온 천하를 얻고도, 천하로도 바꿀 수 없다는 건 영원한 생명, 그걸 두고 하는 거지. 그걸 잃어버리면 소용이 없다. 그러니까 자기는 그대로 시험하지 않았어요?
그래 내 몸뚱이 가져가겠으면 가져가! 그것도 그러나 즐겨 내놓고 싶지는 않아. 다른 사람들 일부러 그런 고통에 다 일부러 몰아넣고 싶지는 않아. 그러니까 아 ‘이제 떠나게 해주십시오. 될 수록은 떠나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뜻이라면 기어이 당신이 그렇게 해서야 되겠다면 내가 내 뜻대로 할 수가 없지요.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오’ 하는 데가 정말 참 종교지. 그러게 이 사람들이 가장 미워했던 점이, 가장 미워하고 걱정했던 점이, 저 사람 평화주의인데 말이야, 대적 앞에 있어도 반항도 하지 말자는 사람인데, 저따위 소리 듣고 말이야, 사람이 기적 행한다고 와와 따라가면, 나라고 뭐고 밑천도 못 건지지 않아?
가야바의 생각을 높이 평가해 거기 섰다 그 말입니다. 그렇다 해도 인정을 할 수 없다 그 말입니다. 뭐 시기하는 마음에서 그랬다 그래, 가야바 나쁜 줄 누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내놓는 구실이, 저 자식 뭐 우리보다도 제가 목사인가, 목사들은 전부다 그래 죽인 것이 아니라, 자 저사람 죽었다 그러면 다 저리로 따라갈 터이요, 저기를 따라가면 로마 사람이 와서 우리나라를 다 없앨거다. 그러니까 한 놈 없애고도 우리 전체가 살아나면 되지 않나? 그게 아니야.
전체를 위해 한 사람은 죽어도 좋다?
그다음에 이제 그 논리는 어떤가? 전체를 위해서 한 사람은 죽어도 좋다는, 그 논리는 그럼 어떤가? 그것도 안 되는 말. 사실로는 한 사람으로 인해서 전체가 살아나지. 그건 옳습니다. 또 전체를 살리기 위해서 한 사람이 필요하다면 내놓지요. 하지만 그 한사람은 누구냐? 가량 한사람이 죽어서, 죽을 필요가 있을 때에 그 사람을 누가 죽이겠나? 그걸 생각을 해보시오. 여기 가량 거지라, 형편이 없는 거지라, 옛날모양으로 으레 나라를 위해서 사람 잡아 제사한다고 그래가지고, 누굴 잡아 제사를 하지?
그전 같으면 사람 중에 제일 맏아들 골라서 잡아 제사했습니다만, 지금 세상이니까 아무거나 하나 잡아다 거지라고 해서, 그 거지 잡아 목을 어느 놈이 떼겠나? 누구더러 떼 가라 그랬겠나 그 말이야. 내가 내손으로 떼면 모르지 누구 다른 사람들은 잡으라고 그럴 수가 없지 않아요? 이게 공론으로 내놓고 말을 하니까 “어유, 전체를 위해서 필요하면 한사람 죽어도 좋지 않냐” 그 죽이는 하수인은 누구냐 그 말이야. 누가 할 수 있냐 그 말이야. 그렇게 생각해봐요.
또 그러고 그 사람이니 또 어디 옛날 말에 그랬습니다. 유유성인이야 오직 성인이야만 남을 사랑할 수 있고 남 미워할 수도 있다. 왜? 성인의 사사마음에서 하는 것이 아니니까 벌을 주어도, 그래 벌을 주어도, 죽여도, 죽으면서도 나무러워 하지 않게끔 되어야 성인이라는 거야. 이론으로 보면 그건 그럴 수 있어요. 왜 그런고 하니 저 삼국지, 여러분이 보면 거기 가다보면 참 눈물 나지 않아요?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 제갈량(諸葛亮)이 마속(馬謖)의 모가지 베는 제갈량이가 마속을 참, 자기 후계자로 아주 그 유능한 장군으로 보았거든, 아 그랬는데 요 자식이 죄 저지르고 공명이 시킨 대로 안 해서 그만 그 큰 싸움을 실패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사람으로 말하면 아까워. 이다음을 맡기려고 했지만, 그런 사람이지만, 이거 전체 군대가 되갈려면 할 수 없지. 그래 나서서 모가지를 자르지 않아요. 그래 눈물 뿌리고, 마속을 왜? 전체를 살려야 하겠기에. 그러면 아마 마속도 그래 “나 죽어 마땅합니다.” 뭐 그러고 죽었을 거야요. 제갈량을 미워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사로이 미워하는 거 아니라 전체 때문에. 이런 일은 어느 정도 있을 수 있지만, 인간에게서는 없습니다.
그게 누가 감히 죽여! 저 사람은 전체를 위해 저 하나는 희생이 돼도 괜찮다. 죄인이라고 그럽시다. ‘죄인이니까 저거 하나는 없어도 괜찮다’ 고 그 사람을 누가 능히 죽일 수 있나? 죽일 자격이 없어. 그러니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돌로 때려라’ 그러니까 하나씩 하나씩 술렁술렁 빠져나갔다고 그러지 않아요? 그게 옳은 일일 겁니다.
근데 세상은 이렇게 아주 악하게 되니까, 지금은 뭐 그걸 죽이면서도 나라일하고 큰소리 뻥뻥 치고 그러지 않아요? 전쟁이 나는 거 얼마나 참혹한지 전쟁에 나가면 ‘이겼다’ 그러고 일본시대에도 사람 잡아놓고 간 잘라내서 먹고, 아휴! 전쟁이란 사람의 마음이 잘못돼서 ‘내가 큰일하고 있거니’ 그러고 그런 짓들 해요. 못할 일. 감히 하수인 노릇, 하수인 노릇도 못하지만 좀 더 생각을 한다면, 한 사람이 죽으면 전체가 산다고? 죽어서 전체가 산다고? 그 한 사람을 누구를 뽑겠어요. 나 자신을 스스로 뽑으면 모르지만, 다른 사람을 누구도 할 수가 없지 않아요? 누구라 하겠어요?
그러니까 예수라는 이는 자기가, 자기가 필요하다면 자기가 그걸 당했지. 하지만 이건 앉아서 ‘한 사람이 필요하니깐 저 자식 죽이자!’ 그게 어찌, 그게 무슨 도덕입니까? 종교입니까? 그런 말에 속아선 못 쓴다. 그런데 그러한 게 우리가 가야바가 예수 죽일 공모를 하면서 ‘아 그놈 민중을 현혹시키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전체 일이 잘되긴 위해선 그놈 하나 죽으면 되지!’ 여러분이 너무 종교적인 생각만 하지. 그것도 모른단 말이요. ‘한 사람으로 전체가 살아나고, 나라가 구원이 되는데 뭘 꺼리고 있어. 용감하게 죽일 거지.’ 말이 그 말이거든. 그러니까 아, 참 좋소. 참 용한 생각이요. 그러고 찬동을 해서 예수를 죽이기로 가결한단 말이요.
2천 년 전에 그런 말을 오늘날 하면 어쨌지? 오늘날 그런 일 없나? 없는 게 아니라 더 많이, 수도 없어 한다하는 말이 되지 않았소? 왜 다수를 위해서는 소수 놈들은 아무렇게 돼도 괜찮다는 거야? 그러니까 나라일 한다고 하면서도 여당만이라도 수만 되면, 야당 그것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고, 없이도 그저 아무것 다하지. 그런 게 그런 심리가 그게 다 뭐냐? 다수를 위해선 소수는 상관이 없다 그랬지만, 이 세상 논리에서 그래.
이 하늘나라에서 논리는 안 그렇습니다. 그건 유교도 그렇고 불교도 그렇고 기독교도 다 종교라는 건, 사람은 하나도 무시해선 안 된다는 거야. 사람은 하나도, 천지 바보라 해도 사람은 하나도 무시해선 안 된다는 거 해오는 말이 뭔고 하니 ‘악한 담엔 그놈은 죽여 버려도 좋지 않습니까?’ 난 거긴 아주 반대입니다. 이 기독교인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난 아주 맘에 싫습니다. 상당히 열심 있다하는, 심지어 목사로 있는 분들도 그러지 않소? “아 공산당은 그냥 둬 안 됩니다. 아 그거 뭐 선생님 설교해야 되는 줄 압니까? 그놈들 안 됩니다.” 아마도 그런 태도 그런데 나는 그건 그렇게 안 돼. 아, 그건 예수님이 옳다 생각해. 왜 어찌해 그러냐? 그러면, 난 내식대로 말하면 그래요. 악한 놈이라 그러자, 악한 사람이라도 죽여 가지고 없앤다? 악하다는 게 어디 있냐? 그게 이 육체에 있지를 않거든. 그놈에 살이 악합니까? 뼈다귀가 악합니까? 심정이 악하게 생겼습니까? 악한 게 그 마음에 있지. 이게 있질 않거든, 마음을 칼로 자르면 잘라집니까? 그게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 말이야.
나쁜 정신은 강한 정신만이 이긴다
몸은 죽여서, 몸은 죽이면 말을 못해. 그러나 죽었다 안 그래. 난 그럽니다. 사람의 속에 이 생각이라는 거, 영이라는 게 들어있는데 말이야. 내가 칼로 저거 악한 사람의 모가지를 자르면, 그놈의 혼이 내 가슴속으로 쑥 날아 들어온다고. 내게로 안 들어오면 내 아들 속으로 들어와! 틀림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악한 것을 어떻게 하면 없애나? 선으로만 없애게 생겼지. 선이 아주 분명이 있지 않아요. 물질은 물질끼리 이게 더 굳으냐? 저게 더 굳으냐? 이 돌이 굳으냐? 저 돌이? 이건 맞부딪쳐보면 알아요. 그러면 굳은 돌이 만만한 돌을 부숴버리지. 이 쇠와 저 쇠가 어느 게 강하냐? 그러면 떡쇠하고 강쇠하고. 그다음에 강쇠가 떡쇠를 잘라버리니까 그건 알지.
물질은 이걸로 됩니다마는 정신은 물질로는 할 수가 없어. 그게 이제 쇠는 쇠끼리 하고 물은 물끼리 하고, 우열을 가리려면 그래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정신에 나쁜 것은 강한 정신이 나와서 이겨야지. 폭력으로 해서 모가지를 잘랐다고 해서 없어진 줄 아는 것이 정신이 뭔지를 전혀 모르는 거야. 그 옛날 사람은 그 점은 확실히 우리보다 나아요.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 원통하게 죽으면, 그게 원통한 귀신이 돼서 이 우주로 싸다닌다고 그래요. 그걸 원귀라고 그래요. 그건 미신적으로 생각했지만, 옛날에 체제로 생각하면 그건 미신적이지, 그러나 뜻을 생각을 하면 절대 미신이 아니에요. 절대 미신이 아니에요. 원통하게 죽었으면 그 원통하게 죽은 귀신이 천하에 떠돌아다니나요? 떠돌아다닐 뿐만 아니라, 사람 사람에 가슴속에 굉장히 많은걸 눌러대 가지고, 한 놈 죽이면 열도 되고 백도 돼서, 사람 사람 가슴속에 들어가요.
가령 말이야 데모대가, 순경이 데모하는 학생이 미워서 하나 죽였다 그러자. 학생 하나는 죽었지만 말이야, 데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그래 죽였거니, 참 그 어리석은, 얼마나 어리석으면 학생들을 곤봉으로 때릴 만큼 어리석겠소. 그게 어리석지 않고는 정치 못하는 거야. 철저하게 정신이 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야. 정신은 폭력으론 안 없어져. 안 없어질 뿐만 아니라 점점 더 더해진다고. 그걸 알아야 돼. 그 말은 내식으로 표시하면, 강도 도둑놈 칼로 잘라 죽이는, 강도는 내가 했소 하고 뛰어든다면, 여기 바로 내가 강도질 했다 그 말이야. 공산당 죽이면 공산당의 정신이 내속에 들어와 내가 공산당 됐다 그 말이야. 죽인 다음에, 죽이기 전에 벌써 들어와서 내가 그 짓을 한 것인데, 말할 것 있어요?
그런 줄은 알면 하나님 멀리 있다 믿지 말고 여기 내 속에 있다, 천당이 멀리 있는 것 아니라 이 내 속에, 또 지옥이 여기, 천당이 이속에 있다고 꽉 믿으면 그런 것을 감히 할 수가 없습니다. 내 속에 여기 있는데 멀리 가서 기다릴 것 없어. 그런 점을 종교가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옛날 모양으로 ‘천당은 저기 위에, 지옥이 저기 밑에’ 이런 식으로 하니까 아직도 멀다 그 말이야.
그래서 현 도덕에 있어서 이 종교가 아무 맥을 못 춰. 실력이 없는 증거 갖고 산 신앙으로 하면 못하는 거. 그런 점에 있어 예수님 그렇게 안 생각해. 사람값이, 한 사람 값을 절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 사람도 없이 해가지고는 안 된다, 그러기에 하늘나라에서 지극히 적은 자 하나라도 위에서, 냉수 떠놓고 향불 붙이고, 그 아이 하나를 영접해도 그럼 차라리 세상에 나지 않은 게 좋다하리만큼 발표하는 게 아흔 아홉보다 잃어진 하나가 더 귀해서, 그런 것이 다 종교의 세계와 정치의 세계가 어떻게든 다르다하는, 종교는 속에 세계, 정신은 껍데기, 그 껍데기의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그래 하지만, 지금 이렇게 따로 따로 있을 것이 아니라, 그 껍데기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속에 것을 참작을 해서 그 정신을 살려가면서 하게끔 돼야 된다 그 말이야.
그런 게 지금 달라진 건데 이천년 전이나 지금으로 생각하면 우리도 이 문제를, 우리 가슴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을 예수를 고소를 해요. 저것대로 두었다간 우리나라 다 망하겠으니까, 한 사람이 죽더라도 전체가 살아야지 하는 그런 말로 어느 정도 좀 종교적인 뭣을 무시를 하고라도, 좀 타협을 하고라도, 나라가 현실이 되려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소? 그런 생각에, 그게 아니냐? 꼭 같은 시간이냐? 그 말입니다. 그렇게 그런 점에 있어 우리가 인간적인 꾀를 부려가지고 마음이 이렇게 돼갔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우려고 하지 않아. 하나님이란 어드런고 하니 도와주길, 간디의 말을 빌어하면 말이야, ‘절대 겸손해지지 않으면 하나님은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 겸손이 뭐 어떻게 겸손하나? 자기 발밑에 있는 티끌보다도 더 자기를 낮은 걸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러게 할 수 없는, 아주 헬프레스(helpless), 할 수 없는 지경에 가지 않으면 하나님 도와주지 않는다는.
그 우리 생각대로 말이야 꾀를 부려서 말이야. 공산당한테 피하려면 요렇게 대답을 하면 피할 거다. 공산당 치하에서도 교회를 유지해 갈려면 이렇게 하면 될 거다. 교회가 유지해 갈려면 어느 정도 이렇게 해야 되지 않아? 그런 따위 수작을 가지고 될까? ‘생각 있으면 네가 해봐. 난 그럼 할 것 없다’ 하고 저기 물러서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힘이 돼. 이 현대가 아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을 못하는 건, 하나님이 도와주려면 왜 도와줘? 자기네 생각대로 제 것으로 해보겠다는데 왜 도와줘! 지나치게 걱정을 해. 신앙이란 뭔고 하니 걱정하지 말라 그 말이야. ‘살고 죽는 것은 나한테 있으니까, 너는 옳으냐? 그르냐를 분별해서 옳은 것으로, 옳지 않은 것을 안 하는, 옳지 않은 것과 싸워가는 거. 그것 네 할 일이고, 그다음에는 살고 죽는 것은 내게 달린 거다.’ 아주 꽉 맡기라는 거야.
인간의 죄가 온통 몰려서 저렇게 되었구나!
근데 이 현대의 크리스천은 신통이 맡길 것은 안 맡기고 안 맡길 것은 갖다 맡기는, 갖다 맡기는 목숨은 안 맡기고 말이야. 죄는 다 맡아 주십사! 그건 말이 안 돼. 거꾸로 에요. 맡기는 건 살고 죽는 건 맡기라 그 말이야. 그건 내 일인데도 아니다 그 말이야. 내 생각에 그래. 너는 인간으로 나간다면 선악이 있는 거니까, 선을 하고 악을 하지 않는, 목숨이 남아나더라도 그건 해라 하면 상급은 네게 있다. 그럼 또 거꾸로, 이건 뒤집어서 말이야. “아이 뭐 우리 사람이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다 해 주셔야지.” 그렇게 하고 도덕적 책임에서 면제가 된 것처럼, 말은 안 해 그렇지만, 실지로 그렇지 않소? 그렇게 되면 무력해.
그래 뭐 따지고 말하면 그런 원인이 다 쌔와서 쌔와서2) 오늘날 저 사건이 납니다. 학생이 잘못인지, 순경이 잘못한 건지, 어쩌나 누가 잘못하건 참혹한 일인데, 아무 문제없이 그 어드런 평지에다 풍파를 일으켜가지고, 이렇게 적어도 우리가 보기에도 틀려먹은 정치를. 기동대 가는 거 보면 불쌍해. 아주 신이 나서 무슨 적국이라도 치러가는 것처럼 말이야 그 어떻게 하죠? 그러면 참 이놈의 나라가 옛날식으로 말하면 하나님 저주하든가 그러면, 저주할 리가 없지 하나님께서. 기구를 말하면 그렇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 그런 것이 왜 까닭 없이 생겼을 리가 없어요. 이유가 있어. 지금 나 확실히 믿습니다. 나 이 시간에 이제 이만한 말하나 이만큼에 증거 하는 것은 내 힘대로 되는 거 아냐. 과거에 있었던 아브라함인지, 이삭인지, 단군인지, 엘리야, 누군지 몰라. 허다한 사람들의 기도가, 너 그래도 옳은 거 옳다 그래야지 하는 그런 게 내 온 것이 요 자리에서 요식대로 요만 하고 내와서 하지. 내가 내 힘대로 하는 거 아무것도 없지. 내 것은 어디 있어? 그래 누구라도 옳은 말에 증거를 하는 건, 과거에 옳은 것 위해 기도했던 사람들 기도가 몰켜서 되는 거.
능히 사람을 죽여서 사람을 왜 사람을 왜 죽이겠어요. 과거에 무슨 그 악독한 짓 했던 그것이 한데 무슨 철저히 몰켜 가지고 사람을 죽일 거야. 순사가 최루탄을 학생에 쏠 때에 저도 모르게 과거의 악에 결산을 하고 있는 걸 거야. 그럭하고 심판을 받으라, 그 생각하면 무섭지 않소?
그러니까 남의 일은 어찌했던지 우리 마음에다가 생각하면 오늘날 사회에 이런 현상 나는 것이, 쌓이고 쌓이고 우리나라만 아니라 세계 전체적입니다. 모든 게 합작해서 알 수 없는 신, 우리 인간의 지혜로 도저히 그걸 풀어 분석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런 게 뭐 알 수 없이 몰켜서 이렇게 된 결과로 이런다. 폐병 하나가 들리는 게 나만이 잘못해 들린 거 아니에요. 이 세상에 가지가지 잘못이 다 합해서 어떻게 돼서 나라고 하는 사람에 폐병이 떨어져서 온 거지. 나만이 무슨 죄를 지어 그랬겠소?
그런 걸 뒤집어 말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라고 그랬구나!’ 그건 광명면에서 보니깐 그렇지만, 그 대신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려고 그러는 대신에, 그 반대를 말하면 ‘인간들의 죄악이 온통 몰려서 그렇게 됐구나.’ 그 애비의 죄도 아니고 아들의 죄도 아니다. 죄라면 이 세상 인류 전체의 죄지. 그럼 거긴 현재 그렇게 대답을 했는데, 그럴 겁니다.
그러니까 이 현실문제도 그렇다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가 너무 반성을 못하고 있어요. 그런 문제가 수천 년 전, 예수 곧 죽이려고 하는 때도 아주 허울 좋게 그런 구실을 빌어가지고, 나라를 건지려면 한 사람쯤 죽여도 괜찮지. 그래도 그 양심을 이렇게 새겨가면서 했다 하는 거. 그들도 그렇게 하면서도 양심이 편한지 못했을 것입니다. 평안치 못하지만, 그렇게 억지로 구실을 붙여가면서, 우리 있는 것이 악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건지기 위해서 우리 부득이 그런다, 요렇게 그 ‘눈 가리고 아웅’하는 수작을 해가는 그런 거. 이 현대의 정치는 다 그래 다 고런 요렇게 가리우고 요렇게, 그런 게 저는 이미 속은 사람이니까 말할 것 없으니까. 하나, 이 민중이 속아. 그럭하고 어떻게 속아서 악을 하는 놈은 어드런고 하니, 사람이 안 보았으면 그래. 안 보면 뭔고 하니 제발 속아주었으면 그러지 않아요?
그 이상한 인간이 내 거는 것이 안 된 소린데, 악한 일을 하는데 세상에 악 안 들키면, 제발 속아주었으면 남 속이는 일이 나쁜 저도 알긴 알지만, 제가 악을 할 때에는 저하는 악을 눈 감고 몰라주었으면 그러지. 사람을 죽이고도 제발 몰라주었으면, 제발 바보 같으면 좋겠다. 그런 법이 어디 있냐? 그런 게 허락이 안 돼요. 작게 보니깐 그렇지 크게 보면 틀림없이 심판이 내립니다. 그런 점 몰라서 그런 것을 일반 국민의 가슴속에 깨워 주어서, 깨워 주어서 오지 않았어도, 그런 게 와 있다하는 걸 절실히 느낄 수 있게끔 하자는 게 이 종교의 책임입니다.
우리 피차에 책임이 거기 있습니다. 목사만 할 게 아니라 지금은 누구나 평신도의 시대가 아니요? 그 옛날에 목사지. 지금은 평신도의 시대니까. 이것을 쓸 시대엔 민중이란 건 아무것도 없이 말이야. 여자는 더구나 이름이 없어 여기 보면 십계명 만들 때에도 여자는 당초 들어가지도 않았어. 뭐 거의 여권이 없으리만큼. (녹음22, 3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