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

[경산]

어제 슈퍼마켓에 들렀더니 청과물매장에 “추억의 紅玉”을 팝니다.“

라고 붙어 있어 아련히 어릴 적 상념에 잠긴다. 
 

나의 고향 대구는 과거 사과의 명산지이었고,

우리 집에도 부친이 물러 받은 사과나무만 3,000주의 커다란 과수원이 있어

한 주당 10-15평을 계산하여도, 그러니까 총 4만평이 넘었다.

부친이 서울에서 공부하느라 별로 값도 제대로 못 받고 팔았었는데.

얼마 전 그 곳을 지나다 보니까 새로운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어,

아마도 평당 몇 백만 원은 할 터이나 지금 그걸 계산하면 무얼 하리오. 
 

그 후 또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불과 백 여주의 작은 과수원을 마련하였고

과수 농사짓는 법을 곁눈으로 보았다. 
 

사과는 초여름에 나오는 이와이, 요즈음 아오리는 껍질색이 푸르고

가을의 붉은 홍옥, 이외에도 붉은 색의 스타킹, 파란색의 인도, 황금색의 골덴,

껍질이 두꺼워 저장해 두었다 겨울에 먹는 국광,

나중에 나 온 무지하게 큰 일본 개량종인 세계 제일 등이 있다. 
 

그러나 소출이 적어, 당도가 약해, 저장성이 떨어져 등등으로 밀려났고

관리가 힘이 들어 키 작은 왜소종으로 대치되어 최근에는 거의 대부분이 일본 수입종인 쓰가루와 부사로 통일되어 버렸다. 
 

산지도 밀양 얼음골, 양산, 경북의 경산과 영천, 영주 등이었으나,

지구의 온난화로 북상하여 예산, 풍기, 영주 봉화, 심지어는 영월까지도. 
 

외국의 사과는 빛깔 좋고, 모양이 좋으나 맛은 별로이다.

따라서 가공 식품이 많아 쥬스, 술, 잼 등으로 먹지요.

기회가 생겨 산디에고 서쪽 사막도시 쥴리안의 사과 케이크도 먹어 보았고,

프랑크푸르트 작센 하우젠의 사과와인(apelvine)과 돼지 뒷다리 찜도 맛보았다. 
 

영국 속담에 “An apple in a day”. 하루에 사과 한 개씩만 먹으면 건강해서

의사도 필요 없다는 것. 
 

과수원의 四季를 알아보면. 
 

봄

입춘이 지나 아직도 추운 겨울의 끝자락.

나무에 물오르기 전 농부들은 사다리에 올라가 전지하느라 바쁘다.

으쓱한 곳에는 동면을 끝낸 뱀들이 똬리를 틀고 있고

어느 날 사과 꽃이 구름처럼 피면 벌과 나비들이 날라 든다.

날씨가 추우면 밤사이 나무사이에 횃불을 놓기도 하고

기후가 나빠 受粉이 실패하면 나무에 올라가 붓으로 人工受精.

여름

전지 때 잘라 놓은 나무더미 뒤 풀숲에는 몰래 토끼가 새끼를 기르며.

사과나무마다 허물을 벗고 나간 매미껍질이 붙어 있고,

매미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하다. 
 

이때쯤이면 온갖 벌레들이 사과와 나무에 덤벼들어

농부들은 코를 수건으로 감싸고 살충제 분무하느라 땀 흘리고.

긴 장마에 반드시 따라오는 사과가 썩어 들어가는 병 때문에

농부의 주름은 깊어진다.

몇 그루 심어둔 조생종, 과거에는 이와이,

요즘은 아오리를 내다 팔아 푼돈을 마련한다.

낙과와 돈이 급해서 대충 익은 것을 따다 팔 때 풋사과가 된다.

그러나 가을 이전의 사과 맛은 마치 보졸레 누보와 같이 산뜻하나 깊은 맛은 없는 것이. 과수원 집 아이들은 상품가치 떨어지는 낙과를 한 광주리 가득 따서 마루에 두dj 오며가며 먹다보면 하루에 수십 개를 먹어 치운다. 
 

과수원(시집 “栗木에 바람 불다”에서 임 영조 지음). 
 

유월 햇볕 뜨거운 과수원에는/상견례를 막 끝낸 풋내기들이

평화로운 집회를 열고 있다. 
 

... 지나보면 알리라/앞날이 아직 창창한 자는/한여름 햇빛과 천둥 번개 속에서 얼마나 부대끼고 견뎌야/비로소 단물이 드는가를. 
 

가을

하루하루 햇볕을 받아 붉어만 가는 사과

하늘 높게 고추잠자리 한가롭게 나르고

딸기나 호박이 넝쿨 속에 숨을 죽일 때 태양을 받드는 사과는

가릴 것 없이 당당하게 온 몸으로 햇볕을 쪼인다. 
 

곗돈 붓듯이 일년 내내 돈을 넣다가 가을에 한꺼번에 목돈을 번다.

가지가 휘어지도록 매달린 사과는 과거에는 한 그루에서 5관들이 20상자씩

수확을 하였다.

가을의 사과는 역시 홍옥.

이는 껍질이 얇아 저장성이 떨어지나 새콤달콤한 맛은

어느 사과와도 비교할 바가 없다. 
 

사과도 사람같이(시집 “하늘과 구름사이”에서 정 미순 지음). 
 

여름을 넘어/서기위해 
 

풋내 나는 감정을 달고/당신에게 씁쓸함과

싱거움이 되었을 지에/햇살 받아 나를 들여다봅니다. 
 

세월을 따라/나이를 만들어 가며/익어가는

열매도/사람 같아/붉을수록/싱싱한, 
 

달고 시원한/당신의 열매가 되기 위해/햇살로 살균하는 풋내. 
 

흙벽돌로 지은 저장고에 국광은 들어가고,

요즈음은 질소 충전된 현대식 저장고에 보관한다고 하나 본 적이 없다. 
 

58년인가 가을, 서울에 어머니와 같이 왔다가 깜짝 놀랐다.

효자동 구멍가게에 사과를 닦아서 반질반질하게 해서 진열해 놓은 것.

갓 딴 사과는 엷은 파라핀 막으로 덥혀 있어 이것이 보호막이고

우리는 쓱쓱 소매에 문질러 그냥 먹는데. 
 

겨울

저장고에서 내어 온 국광을 깨물면 시원하고 달콤한 과즙이 별미가 아니었던가? 까치밥 하나 꼭대기에 홀로 달려 있는 사과나무는 움 속에 붉은 정열을 감추고 텅 빈 과수원에 대오를 맞추어 열병식을 하고 있다. 
 

사과 한 알에도 농부의 땀과 정성, 그리고 자연의 조화가 숨어있음을 감사하며. 
 

마지막으로 사과 따기 좋은 때는?

주인이 없고 개가 묶여 있을 때이나 대개 경북지방은 탱자나무 울타리에

틀림없이 무섭고 커다란 개가 지키고 있어 함부로 쉽게 따지 못한다. 

[마이클]

우리도 부친께서 문막면 후용리에 2만평 정도의 사과 과수원을 운영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쯤.... 사과 농사 지으면, 농사 짓는 사람 가족은 썩은 사과만 먹게됩니다. 우리도 그랬으니까요.... 우리는 주로 후지를 심었는데, 후지사과에 맛을 들이면 홍옥의 육질이 마음에 안들게 됩니다. 더구나 국광은 껍질이 두꺼워서 요즘은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