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拜上)
이월 둘째 주 토요일이었다. 서울로 올라가 공부하던 큰 녀석이 배필을 만나 혼례를 치렀다. 며느리는 서울서 사회생활을 한다만 사돈댁은 멀리 목포였다. 두 집안 중 한 쪽에서만이라도 교통편을 고려해서 예식은 목포에서 올렸다. 나는 집안사람과 초등학교 적 친구들 중심으로 간소한 걸음을 다녀왔다. 먼 길이기에 예식 당일 늦은 시간 귀로까지 마음 조이고 신경이 많이 쓰였다.
하객들이 돌아오는 길에 진주 근처 식당에서 저녁 식사까지 대접했다. 이른 아침부터 먼 길 마다 않고 동행해 주신 분들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접빈에 소홀함 없도록 세심한 준비를 해도 혹시 부족함은 없었는지 사뭇 저어하다. 예식을 끝낸 이튿날 나는 축의를 보내주신 분들을 잘 챙겨 기록해 두었다. 축의를 간접으로 보낸 분들에게도 한 끼 식사 값 정도 감사 인사장과 같이 보냈다.
창원 시내에서 은행지점장으로 있는 한 친구는 같은 은행의 목포 부지점장을 예식장으로 보내 축의를 전해왔다. 예상하지 못한 낯선 하객의 방문이기에 더더욱 고마웠다. 길이 멀다고 걸음하기 어렵다 보니 우편환으로 축의를 보낸 분들도 있고 내 급여 통장의 계좌로 입금 시킨 경우도 더러 있었다. 아마 이 경우는 학교 행정실에다 전화를 넣어 내 통장의 계좌번호를 알아내었지 싶다.
축의를 보낸 분들에 대한 신세는 세월 가면서 내가 갚아야할 빚이었다. 그래도 고마움에 대한 감사 인사는 제 때에 해야 할 처지였다. 인쇄소에다 의뢰한 그럴 듯한 인사장을 만들지 못했다. 내가 가끔 지어 보는 칠언으로 된 한시 한 수로 갈음했다. 그것도 종이를 아끼려고 복사지에 출력해서 잘라 넣었다. 우편환이나 급여 통장 계좌로 입금한 분은 에이 포 용지 한 장씩 뽑아 썼다.
사회적 지위도 높지 않고 남들 앞에 내세울 것 없는 나에게 분에 넘친 축의를 보내준 분들이 고마웠다. 나는 감사 인사장만 봉투에 넣어 보내기는 도리가 아닌 듯하였다. 우편물 발송 규정엔 현금을 내용물로 넣어 보낼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만 나는 이를 무시하기로 했다. 인사장을 네 등분으로 접에 그 가운데 만 원 권 지폐 한 장을 끼워 봉하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었다.
큰일 마치고 출근한 월요일이었다. 수업을 한 시간 끝내고 나오니 휴대전화에 문자가 세 통 와 있었다. 예식이 지났는데 뒤늦게 전해진 축의가 있었다. 한 분은 우편환이 집으로 배달된다는 내용이고 두 분은 급여 통장으로 축의금이 들어간다고 했다. 황송하고 송구할 따름이었다. 나는 인사장을 접어 답례 봉투를 발송하려 했다. 그런데 그 중 한 분은 이미 축의가 접수된 분이었다.
예전 근무지에서 만난 동료가 장학사로 전직해 나갔는데, 나는 그분한테 청첩장을 보내지 못했더랬다. 그런데 그 장학사는 간접으로 축의 봉투가 왔고 계좌 이체로도 축의가 와서 나는 의아했다. 혼사 며칠 전 나한에 간접으로 봉투를 전해준 지인에게 전화를 넣어 보았다. 내가 청첩장을 보내지 않다 보니 그들끼리 전달에 혼선이 생겨 같은 사람이 이중으로 축의금이 오게 되었다.
나는 지인을 번거롭게 해 죄송하다며 양해 구하고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내라 했다. 곧바로 중복 접수되었던 축의금은 즉시 되돌려 놓았다. 그래 놓고 보니 또 하나 궁금한 게 있었다. 역시 청첩장을 보내지 않은 분이 통장으로 입금된 축의금의 경우였다. 십여 년 전 어느 여고에서 근무하다 헤어져 그새 아무런 연락 없이 지냈다. 나는 그분에게도 인사장을 접어 감사의 답례를 보냈다.
나는 점심시간에 우체국을 다녀오다 문득 떠오른 한 생각이 있었다. 십년도 넘게 아무런 교류가 없던 그분과 동명이인인 시인이 있었다. 그 시인의 거주지는 서울인 것으로 짐작되는데 나는 그분에게도 청첩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통장으로 입금된 축의금은 둘 중 누가 보낸 것인지 확인하기가 난감했다. 이미 관내 어느 학교 근무하는 분에게는 감사 인사장까지 발송된 상태인데. 12.02.13
감사(感謝)
오가장남혼례식(吾家長男婚禮式) 저희 집 큰 아이가 올린 혼례식
왕림축의양수합(枉臨祝意兩手合) 보내주신 축하 뜻 두 손을 모아
일월영측불망각(日月盈昃不忘覺) 날 가고 달 기울어도 잊지 않고
귀댁대사필보답(貴宅大事必報答) 선생님 댁 일 때 꼭 갚겠습니다.
壬辰 新春 朱五暾 田姬子 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