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요한복음 13:21-22)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수도사들의 식당에 예수님과 제자들의 식사 장면을 그렸으니 참 어울리는 발상이라 하겠다. 그런데 하필이면 가장 소름 끼치는 순간을 화폭에 담았을까? 아마도 그림을 통해서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음직하다.
예루살렘에 있는 엔 케렘(Ein Karem) 마을에 바이블 타임스(Bible Times)로 불리는 곳이 있다. 이곳은 타작마당, 우물, 채석장, 올리브 기름틀, 무덤, 양 우리 등 성경 시대의 생활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조그마한 정원이다. 처음 여기를 찾은 이유는 ‘최후의 만찬’을 직접 경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찬을 재현한 곳이 있다기에 호기심으로 찾았는데 성경의 사실에 너무나 무관심하고 무지했다는 자성을 하게 만들었던 곳이다.
최후의 만찬을 생각하면 우리는 아마 가장 먼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된다. 이 그림은 당시 밀라노 대공이었던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의뢰를 받은 다 빈치가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수도원 식당 벽면에 3년 동안 그려 완성한 작품이다. 한때 미국 작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 그림의 유명세와 사람들의 관심은 최고조에 달하기도 했다.
예수님 당시 만찬 테이블을 재현한 모습
천재 화가 다빈치가 수도사들의 식당에 제자들과 예수님의 식사 장면을 그렸으니 참 어울리는 발상이라 하겠다. 그런데 예수님의 만찬 가운데 여러 장면을 생각할 수 있다. ‘축사하시는 모습’, ‘떡(히브리어로 마짜)을 떼는 순간’, 또는 ‘포도주를 나누는 장면’ 등, 이런 장면 가운데 하나를 그렸다면 수도원의 식당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었을 텐데, 하필이면 이 천재 화가는 수도원 식당 벽면에 가장 소름 끼치는 순간을 화폭에 담았을까? 아마도 그림을 통해서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음 직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이 그림에서 예수님은 직사각형의 긴 테이블 중앙에 앉아 계신다. 그리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양옆에 12명의 제자들이 배치되어 있다. 예수님의 그 한마디에 서로 다른 반응과 표정을 하는 제자들이 묘사되어 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요한에게 달려간 베드로의 손에는 벌써 칼이 들려 있고, 베드로가 밀치는 그 순간에도 가룟 유다의 손은 돈주머니를 놓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최후의 만찬 장면을 묘사한 다 빈치의 그림은 2000년 전, 예루살렘에 있었던 예수님과 제자들의 유월절 만찬 모습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예루살렘 엔 케렘에 있는 바이블 타임스에서 그 진실을 처음 접했을 때 자못 놀랐다.
그러면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 사용했던 테이블은 과연 어떠한 모양이었을까? 우리가 그림을 통해서 알고 있는 것처럼 직사각형의 긴 테이블이었을까? 고대 문서들과 고고학적 자료들을 통해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ㄷ’자 모양의 테이블에 비스듬히 누워 앉아 식사했다. 이런 테이블은 고대 로마 시대의 연회용 트라이클리니엄(triclinium)이라고 불렸다. 다 빈치의 그림에 나타난 직사각형 긴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다음은 다 빈치의 그림처럼 예수님은 테이블의 중앙에 앉으셨을까? 예수님을 중심에 두고 왼편에 요한과 유다를 배치한 그림이 사실을 어느 정도 재구성했던 것일까? 우리는 예수님 그리고 12명의 제자들이 앉았던 모든 자리의 위치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예수님과 더불어 요한, 유다, 베드로의 자리는 명확히 재구성할 수 있다. 로마 시대 ㄷ자 모양의 연회석 테이블에는 중요한 기능이 있었다. 그것은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을 사회적 신분과 서열에 따라 구분하여 앉히는 것이다. 공회원, 귀족,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구분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시대에 연회석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예상되는 자리가 있었다.
ㄷ자 모양의 연회석에서 왼쪽 테이블이 상석이었다. 그리고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점점 낮아지는데, 오른쪽 테이블 가장 끝자리가 말석이 된다. 그중 연회장에서 가장 중요한 손님은 왼쪽 테이블 두 번째① 자리에 앉게 되고, 그 사람 오른편②에 연회장의 주인이, 그리고 왼편③에는 두 번째 귀빈을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적 관습이었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제자들 사이에 마지막 만찬 자리를 두고 적잖은 신경전이 오갔던 것으로 보인다(눅22:24, 막10:37).
그렇다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어떠한 모양으로 앉아서 최후의 만찬을 행하셨을까? 다 빈치의 그림에 묘사된 것처럼 의자에 반드시 앉아서 만찬을 하셨을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로마 시대 ㄷ자 모양의 연회석 테이블은 매트 위에 앉아 왼쪽 팔꿈치를 쿠션에 대고 비스듬히 누워 식사하는 형태였다. 특별히 사복음서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은 유월절 식사였다고 증거하고 있다(눅22:14-17).
유대인들에게 유월절 식사는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한 종교적 의식을 담고 있었다. 성경은 유월절 식사를 서서 급하게 먹도록 규정하고 있으나(출12:11), 당대의 랍비들은 세데르(Seder)라고 불리는 유월절 식사 규정 통해서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유월절 식사의식을 행하도록 했다. 왜냐면 출애굽을 통해서 자유를 얻었다는 유월절 절기의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최후의 만찬을 나누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1세기 팔레스타인에 사는 독자였다면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①자리에 예수님을,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던 요한(요13:23)은 ②에, 그리고 예수님과 동일한 음식 용기를 사용했던 가룟 유다(마26:23)는 ③자리에, 그리고 예수님 맞은편 가장 말석 ④자리에서 요한에게 눈짓을 보내는 베드로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바이블 타임스의 어두컴컴한 타임캡슐에서 경험한 예수님의 만찬 현장의 모습은 머릿속에 남아있던 다 빈치의 그림과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수도원 식당에 그려진 천재 화가의 도발적인 순간 포착은 어쩌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경계의 말씀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너희들도 언제든지 가룟 유다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