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19회
“고 3막 올라가서였어요. 고 2 가을에 우리 학교에 전근 온 신참 선생님이 있었지요.
내가 알기로는 다른 학교에 이 년을 근무하고 두 번째 근무지가 우리 학교였는데, 당
시 그 선생님은 국어를 가르쳤어요. 나이는 삼십이 안 돼 보이는. 그러니까 스물여덟
정도였을 거예요. 우리 친구들은 전부 그 선생님을 좋아했지요. 그 선생님은 공부 시
작하기 전에 꼭 시를 한 편 암송해 주었거든요. 우리가 잘 하는 시인들의 시 중에 그
선생님의 입을 통해서 암송되지 않은 시는 없을 정도였어요.”
그는 여자의 말 속에서 여자와 그 선생과의 관계를 어림 짐작해본다. 분명 삼류
소설에나 나오는 그런 내용일 것이다. 여자는 선생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리고 어느
순간 어떤 상황에서 선생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리고 선생은 다른 곳으로 가
고 등등 말이다.
“그런데 일 학기가 끝날 무렵이었어요. 어느 날, 그 날 우리는 과학을 배우는 시간이
었고 그 선생님은 남자 반에서 가르치셨는데 그 시간에 한 학생이 선생님께 무례하게
했던가 봐요. 그래서 화가 많이 난 선생님은 그 학생을 훈육실로 데리고 가서 학생을
구타한 거예요. 물론 학교에서는 훈육 과정에서 몇 차례 매를 사용했다고 했지만 그
학생은 그 후로 이 주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요. 친구들 말로는 병원에 입원을 했
다고……. 그 학생은 이 학기 때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지요. 나는 그 소문을 들으면서
아버지를 떠올렸어요. 남자들은 아버지든 선생님이든 이유나 핑계가 있으면 그렇게 아
랫사람을 때리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 후로 나는 어떤 남자든 내
게 어떻게 잘 하는 남자이든 나는 남자를 믿지 않게 되었어요.”
“잠깐만요!”
그는 그녀의 말을 중단 시키고 일어섰다. 맥주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왜요? 실증 나세요?”
“아니요. 아무래도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할 것 같고, 그러려면 술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네요.”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여자도 따라서 일어선다.
“그럼 우리 다른 데 가서 한 잔해요.”
“어디?”
“저를 따라오세요.”
여자가 앞장서서 몇 걸음 걷더니 그가 곁에 갈 때까지 서 있다가 그가 곁으로 다가가자 팔
짱을 낀다.
“누가 오해하지는 않겠지요?”
여자가 소리 없이 웃는다.
“들어오세요.”
여자가 앞서서 들어간 곳은 식당을 겸한 포장마차였다. 여자 주인이 무료하게 앉아 있다가
그녀를 보더니 반색을 한다.
“앉으세요. 여기 사장님은 제 언니예요. 친 언니는 아니고요. 저와 비슷한 이유로 혼자 사
는 언니예요. 그래서 가끔 놀러 와서 언니와 한 잔 하곤 하지요.”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는 여주인은 뚱뚱한 몸이었다. 작은 키가 더 뚱뚱하게 보이는, 하지만
웃는 모습은 무척이나 편안한 모습이다.
그녀와 인사를 나눈 주인은 그에게 눈인사를 하곤 그녀가 주문도 하기 전에 주방으로 들어
가 안주를 만든다. 안주는 금방 그들 앞에 놓인다. 두부김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