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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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모든 감정적 문제에 대한 해명에 나선다. 연애, 결혼, 그리고 그 후의 일상 속 우리가 대부분의 상황에서 정서적으로 겪는 일들에 대해 글로 풀어놓은 이 책은 우리가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왔던 욕망에 대한 오명을 벗긴다. 하지만 저자는 러브스토리 전체를 아우르는 순간의 감정들과 욕망이 두 사람의 관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역설하며, 사랑은 일종의 이성적 기술임을 밝히고자 한다.
1부│낭만주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산할 만큼 감동적인 최초의 순간들에 잠식당하고 기만당해왔다.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 27p.
고전적인 동화 속의 주인공은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라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여러 낭만적인 과정을 거친 끝에 결혼하게 된다. 그 뒤의 과정은 대체로 한 마디로 요약된다.
"그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생은 그 뒤로도 고단한 여정을 거쳐 이어진다. 이를 아는 우리에게는 동화 속 저 한마디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하게 들린다. 사랑은 누군가와 연애를 할 때만 제한되는 감정이 아니다. 태어나서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그 후의 결혼 생활을 하면서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감정이 사랑이다. 어느 곳에 있든, 누구와 어느 관계에 있든 우리는 평생토록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쁨도 슬픔도 사랑에 기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주체적으로는 연애부터 결혼 후의 일상까지가 모두 러브스토리의 영역이다.
사람들은 대개 결혼 후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싶어 한다. 어디서 처음 만났고, 어디서 어떻게 청혼했으며, 서로의 어떤 면이 마음에 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부분은 비낭만적이고, 러브스토리의 영역이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자석의 양극처럼 나에게 딱 맞는 짝, 서로의 아픈 과거를 보듬어줄 운명적인 사랑과의 결혼. 동화에서는 마지막 부분이었을 이 달콤하고 낭만적인 대목은 1부로 끝이 난다.
2부│그 후로 오래오래 & 3부│아이들
우리는 다른 커플들에 비해 우리 커플이 훨씬 나쁜 일들을 겪는다고 상상한다. 불행할 뿐 아니라 우리의 불행이 대단히 드물고 기형적인 것이라 착각한다. 더 나아가 종국에는 우리의 싸움들이 기본적으로 전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결혼 생활의 증거라기보다는, 우리가 뭔가 드물고 근본적인 실수를 범한 징표라고 믿게 된다. - 81p.
결혼 후 한 번도 싸우지 않는 부부가 있을까. 모든 사람은 그 배경과 성격이 다른데 어떻게 '꼭 맞는 짝'이 있을 수가 있을까. 운명의 짝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에게도 '결혼은 무덤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시간이 다가온다. 부부는 사소한 일상적 문제로 다투지만, 이것은 사실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부부의 연을 맺음으로써 가장 가까운 관계가 된 그들은 점차 사랑을 주기보다는 받기를 바라게 되고, 이해하기보다는 이해받기를 바라게 된다. 이 과정은 서로를 지치게 만든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나의 모든 면을 이해해주기를 바라게 되고, 그럴 수 없다면 그렇게 되도록 고쳐지길 바란다.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고, 부부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사랑의 가치에 대해 알게 된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있어 한없이 관대해진다. 하지만 부부는 아이들에게서 얻은 피로를, 외부로부터 얻은 피로를 서로에게 화와 짜증으로 표출하게 된다. 그들은 상대에게 관대한 부모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부부는 서로의 낡은 도피처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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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외도
또 다른 사람에게 가끔 욕망을 느끼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있을까? 쾌락과 자유가 넘치는 환경에서 자라고, 나이트클럽과 여름철 공원의 땀과 흥분을 경험하고, 갈망과 욕망으로 가득찬 음악을 들으며 살던 사람이 종이 한 장에 서명을 하는 즉시 외부로 향한 성적 관심을 모두 포기할 거라고 어느 누가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 217p.
외도하는 남자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지금까지의 가정생활을 포기하고 새로운 둥지로 옮기고 싶은 것도 아니다. 불륜을 저지른 남성, 혹은 여성은 어떻게든 자신의 일탈 행위를 논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 그러나 외도가 나쁜 것은 단순히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쾌락을 즐겨서가 아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맺어진 관계는 가볍지 않다. 낭만적인 연애 시절처럼 순간순간의 감정만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결혼은 한 가정의 평화적인 지속을 위해 욕구, 불만, 분노, 쾌락, 갈망과 같은 순간의 감정들을 자제력으로 이겨내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만드는 제도 중 하나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규칙을 만들고, 이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개인과, 가정과 사회를 지키기 위한 매일의 노력은 위대하다. 새로운 과학 기술을 발명하고, 위대한 업적을 세우고,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일상의 노력은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런 의미에서 외도란 가정을 파괴하고 배우자와 자식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만드는 상호 서약 배반이다.
5부│낭만주의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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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부부는 곧 결혼이 낭만주의적 태도로는 지속될 수 없으며, 완벽한 배우자가 되기란 불가능함을 깨닫고 서로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단념한다. 부부간의 조화는 처음부터 전제된 것이 아닌, 서로 맞춰가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에서 낭만주의적 사고가 얼마나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지, 결혼에 가져가기에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에게 딱 맞는, 운명적인 결혼 상대가 있다.'라거나, '나는 상대의, 상대는 나의 약한 모습을 이해해줄 수 있다'는 낭만주의적 기대를 갖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며, 결혼 후의 일상을 겪으면서 이를 단념해나가는 것이 불행한 일은 아닌 듯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그 사람에 대해, 그 사람과의 일상에 대해 낭만적인 기대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느 정도는 서로의 기대가 두 사람으로 하여금 최대한 이상적으로 행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조차 없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삭막해질 것이다. 사랑에 있어 서로에 대한 기대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런 맥락에서 낭만주의는 실수가 아닌 과정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평생 사랑을 주고받으며 사랑과 사람과 인생을 배워간다. 사랑을 받는 데에만 익숙하던 우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낯선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낭만적 연애 후 둘은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이게 되면서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책임을 떠안고, 서로의 단점을 알게 되면서 타협하고, 인내하고, 조화를 찾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우리의 부모가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거나 어릴 적 그들에게 내건 기대에 대해 후회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배우자의 결함을 발견했거나 오랜 부조화로 인해 지쳤다고 해도 우리의 러브스토리는 끝나지 않는다. 일상에서의 여러 흠집과 불협화음들은 우리를 성숙하게 해주는 훈장이다. 지치고 힘들 때, 우리는 한없이 낭만적이었던, 상대가 한없이 완벽하게 보였던 그 시절을 꺼내어 보기도 한다.
우리는 그 사람과의 운명적인, 완벽한 짝이다. 고난과 역경이 있을 테고, 검은 머리는 파 뿌리가 될 테지만,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때로는 한 발 물러나는 방법을, 때로는 자신의 흠을 드러내는 방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점차 상대와의 완전한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사랑은 없다고 알랭 드 보통이 말했다.
인생을 살면서 평생 아무한테도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없듯이,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는 반드시 상처를 주고받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는 그 어떤 흠집도 남기지 않는 '완벽한' 사랑은 없다. 그러나 상처와 인내, 상대와의 조화를 위한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모든 러브스토리는 완벽하다.
주유신 에디터, ⓒ ZUM 허브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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