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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외연도(外煙島)
여행일 : ‘20. 9. 26(토)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리
트레킹 코스 : 외연도선착장→서쪽 방파제→일출전망대→망재산→고래조지→고라금→내연발전소→누적금→돌삭금→작은명금→큰명금→약수터→노랑배→봉화산→헬기장→당산→외연초교→외연도선착장(소요시간 : 4시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바다 안개로 인해 섬의 형태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외연도는 대천항에서 뱃길로 두 시간을 달려가야 만날 수 있는 서해의 고도(孤島)이다. 보령시에 속한 70여개 섬 가운데 육지와 가장 멀리 떨어진 섬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섬 주민들은 고요한 새벽, 잔바람에 실려 온 닭 울음소리를 중국에서 들려오는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 그만큼 섬사람들의 심리적 거리가 까마득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섬의 넓이는 대략 20만 평. 크지는 않지만 바다에서 곧바로 솟아오른 세 개의 산봉우리와 바다가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보여준다. 이름도 참 예쁘다. '연기에 가린 듯 아득하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래선지 지난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관광 활성화를 위해 '가고 싶은 섬'으로 뽑기도 했다. 우리나라 수많은 섬 가운데 '가고 싶은 섬'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곳은 지금까지 외연도를 포함해 4곳(완도의 청산도, 신안의 홍도, 통영의 매물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외연도는 낯설다. 그래서 외연도는 덜 붐빈다. 그나마 낚시꾼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정도다.
▼ 찾아오는 방법
외연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대천항(보령시 신흑동)’으로 와야만 한다. 외연도를 왕복하는 여객선이 이곳 대천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6~9월 기준으로 하루에 2번(08:00. 14:00) 운항한다. 비수기는 평일에 한해 1회(10:00)만 운행되기도 하니 배편을 미리 확인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참고로 기착지인 외연도에서는 승객의 승하선을 위해 10분간 멈추었다가 되돌아온다.
▼ 우리가 타고 갈 ‘웨스트 프론티어호’이다. 쾌속선으로 215명의 승객을 실을 수 있으며, 선박의 톤수는 140톤. 썩 크지는 않지만 선내에 매점까지 갖추고 있다. 중간에 호도와 녹도를 거쳐 외연도로 들어가는데, 외연도까지의 배 삯은 성인 기준으로 1만6500원이다.
▼ ‘대천항’을 출발한지 1시간 40분 만에 ‘외연도’에 도착했다. 섬으로 접어들자 바다로부터 솟아오른 세 개의 산이 보인다. 동쪽 끝에 위치한 것이 봉화산(아래 사진, 279m)이다. 중간이 당산(73m)이고, 서쪽 끝에 망재산(171m)이 있는데 오늘 트레킹은 이 산들을 모두 올라보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다. 세 개의 산에 둘러싸인 섬 한가운데는 아주 낮은 지대를 이루고 있어 마을이 형성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그곳에 외연도 마을이 들어앉았다. 섬은 큰 편이지만 마을은 단 하나. 보이는 것이 전부다.
▼ 크고 기다란 방파제에 안전하게 둘러싸인 항구는 잘 축조된 계단식 선착장과 물양장을 갖추고 있다. 포구에는 꽤 많은 고깃배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출어를 위해 쉬는 시간인 듯 외연도는 전체적으로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저 배들은 주로 야간에 조업을 나간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끝내주게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수많은 어선들이 대낮처럼 불을 밝히며 고기를 잡는 풍경을 '외연도 어화'라고 하면서 '보령 8경'의 하나로 꼽는 걸 보면 말이다.
▼ 선착장에는 ‘외연도 나들터’라는 방문자센터가 지어져 있었다. 여객선터미널을 겸하는데 꾸며놓은 뽄새는 대천항보다 오히려 한 수 위이다. 외연도의 바다와 숲속에 사는 동식물들을 입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는가 하면, 외연도초등학교 학생들의 사진과 아이들이 만든 소식지도 전시해 놓았다. 또한 외부 벽면에는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것으로 보이는 손도장과 그들이 남긴 멘트를 벽화처럼 그려 넣었다. 참! 외연도는 무인해설시스템인 RF-ID을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스마트폰에 앱을 다운받은 후 방문자센터에서 빌려주는 목걸이 형태의 RF-ID를 연동하면 안내판이 설치된 곳에서 자동으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 왼편 망재산을 향해 마을 앞길을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골목마다 어촌풍경을 그린 예쁜 벽화들이 눈길을 끈다. 외연도초등학교 학생들이 서울에서 온 작가들과 함께 그린 작품이라는데 시간이 되면 동네 벽화를 따라 골목길을 걸어보는 것도 멋진 산책이 될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자그마한 섬인데도 마을은 번화한 모습이었다. 해양경찰대 및 보령경찰서의 지소, 보건진료소, 우체국 등의 관공서 외에도 민박집과 식당, 가게들이 여럿 보인다.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펜션도 하나 있단다.
▼ 망재산 등산로는 서쪽 방파제의 입구에서 열린다. 들머리에 ‘망재산 등산로’라는 이름표를 단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정표의 망재산 방향은 텅 비어있다. 그러니 산자락으로 파고든다는 생각으로 진행하면 된다. 참! 방파제 근처에 까나리액젓 발효 탱크가 수도 없이 늘어서 있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맞다. 이곳 외연도는 까나리액젓의 생산지로 유명하단다. ‘까나리’라는 멸치 비슷한 생선으로 담는 액젓인데, 이곳 외연도가 가장 유명한 까나리 어획 및 액젓의 제조기지라고 한다.
▼ 터널을 이루고 있는 산죽 숲을 지나자 길이 둘로 나뉜다. 들머리에서 5분 조금 못되는 지점이다. 이정표는 이곳에서 왼쪽으로 170m쯤 떨어진 곳에 ‘일출전망대’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니 어찌 들어가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3분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일출전망대는 그저 바닷가 언덕일 따름이다. 전망대가 아니라 조망터라고 불러야 옳지 않을까 싶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안전시설도 보이지 않는다. 일출을 보지 않으려면 일부러 찾아올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다.
▼ 그렇다고 조망까지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잡목에 살짝 가려있긴 하지만 외연도 마을과 동·서방파제, 그리고 ‘수도(水島)’가 동쪽에서 고개를 내미는가 하면, 서쪽으로는 무마도(貿馬島)와 석도(石島), 오도(梧島), 거기다 당산양도의 일부까지 조망된다.
▼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정상으로 향한다. 산길은 초반부터 가파르다. 아니 정상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가파르다. 거기다 가슴에 담아둘만한 볼거리까지 없으니 힘들기만 할 뿐이다. 그저 동백나무에서 소사나무로 변하는 식생의 변화와 외연도 마을과 주변 섬들이 두어 번 조망되는 것이 전부이다. 그것도 주변의 나무들이 풍경화의 아랫도리와 옆구리를 대부분 갉아먹어 버렸다.
▼ 그렇게 15분 정도 올라서니 드디어 정상이다. 하지만 정상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다. 봉긋하니 솟아오르지도 않았고, 정상석이나 이정표 등 이곳이 망재산의 정상이라는 그 어떤 표식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앞서 다녀간 이들이 매달아놓은 리본이 무당집 처마처럼 덕지덕지 매달려 있을 따름이다. 정상에서의 조망 또한 썩 뛰어나지 않았다. 오르내리는 도중에 만나는 바위지대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정상보다 훨씬 뛰어나다.
▼ 하산은 반대방향이다. 가파르기 짝이 없는데다 안전시설까지 없으니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선지 올라올 때보다 2분을 떠 쓴, 17분이 걸려서야 반대편 해안에 내려설 수 있었다. 그렇게 내려선 바닷가는 굴업도의 개머리언덕을 연상시키는 초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명은 ‘고래조지’. 바다로 튀어나간 곶(串)의 생김새가 고래의 성기를 닮았다하여 그런 난감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름이야 어떻든 이곳 고래조지는 고라금과 함께 횡견도와 대청도 사이로 길게 여운을 남기며 스러져가는 해넘이를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 고래조지는 외연도의 최고 비경을 구경할 수 있는 핫플레이스다. 외연열도(外煙列島)를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섬들이 한눈에 쏙 들어오기 때문이다. 바로 앞의 섬은 당산양도이다. 그 뒤로 보이는 큰 섬은 오도, 왼편의 작은 섬은 무마도이다. 오도의 오른편에는 소횡경도와 횡경도가 있다. 그리고 연이어 나타나는 대청도와 중청도, 소청도가 외연열도라는 풍경화를 완성시킨다.
▼ 이렇게 경치 좋은 곳을 그냥 지나칠 수야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냉큼 바위위로 올라간 집사람이 포즈부터 잡고 본다. 그녀의 뒤로 외연열도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때를 잘 맞춘다면 저 사진의 배경으로 일몰의 장관까지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곳을 ‘처음 와본 사람들은 있어도, 한 번만 와본 사람은 없다’고까지 했다. 외연도에 처음 온 사람들은 대부분 ‘당산 상록수림’이나 ‘누적금에서 노랑배까지의 해안산책로’, ‘봉화산 등산로’ 등을 찾는데, 이곳 고래조지를 한번이라도 와본 사람은 꼭 다시 찾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름답다는 얘기일 것이다.
▼ 아름다운 경관에 취해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다가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망재산의 아랫자락을 헤집으며 난 길은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청도(靑島 : 대청도·중청도·소청도)를 왼편 옆구리에 차고 이어진다. 파란색의 바위가 많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가장 큰 섬인 대청도는 고려 충렬왕 때 최유엄이 바른말을 하다가 귀양 온 섬으로 유명하다. 그는 유배를 온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천하낙원이 따로 없다며 이 섬을 극찬했다고 한다. 참고로 중청도와 매바위 사이에 있는 소청도는 썰물 때만 고개를 내미는 자그마한 바위섬이다. 보통 때는 바다 속에 웅크리고 있으니 섬이라기보다는 암초라고 하는 게 옳다.
▼ 탐방로는 바닷가 바위절벽 위로 아슬아슬하게 나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위구간에 굵직한 밧줄을 매어놓았는가 하면, 비탈진 곳에도 밧줄난간을 둘러쳐 안전을 도모했다. 그렇다고 안전을 무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조심조심 걷는 것은 기본. 그러다 시야가 열리기라도 하면 대청도와 중청도, 사학금이 들어간 멋진 풍경을 눈에 담아보라는 얘기이다.
▼ 그렇게 걷기를 20분, 마을이 살짝 얼굴을 내미는 언덕에 이르고, 여기서 길게 놓인 계단을 이용해 바닷가로 내려서면 ‘고라금’이다. 외연도의 해안은 ‘금’이라 부른다. 오랜 세월, 거센 파도가 다듬어 놓은 몽돌과 바위가 햇살에 반짝이는 것을 보고 그리 불렀단다. 유난히도 크고 둥글게 변한 그것들이 황금색으로 빛나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덕분에 외연도에서는 사학금이나 돌삭금, 누적금, 작은명금, 큰명금 같은 예쁜 이름의 해안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 ‘고라금’은 동글동글한 자갈밭을 가운데에 놓고 크고 투박한 바위들이 양 옆을 감싸고 있는 모양새이다. 해변에 내려서면 대청도와 중청도, 소청도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그 덕분에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은 캠핑족들이 선호하는 곳이라고 한다. 대청도와 중청도 사이로 길게 여운을 남기며 넘어가는 해넘이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란다. 몽돌에 부딪히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동안 쌓였던 온갖 시름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캠핑족들을 위한 데크도 만들어놓았다. 아니 이곳 말고도 외연도 곳곳에 이런 데크가 만들어져 있었다.
▼ 고라금에서 다시 계단을 올라간 후 넓은 흙길을 2~3분 정도 내려가니 한국전력 소속의 내연발전소가 나온다. 철문에는 외연도 해수담수화시설 안내판도 걸려 있다. 외연도의 식수는 샘물을 퍼 올려 저장해놓은 저장탱크의 물을 정수해 사용한다. 그래도 부족한 물은 바닷물을 담수(淡水)로 바꿔 공급한단다.
▼ 한전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잠시 후 연못까지 갖춘 공원에 이른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운동시설과 쉼터 등이 마련되어 있다. 이 공원의 모퉁이에 세워놓은 이정표(망재산 1.7km, 고라금 430m/ 당산 450m, 누적금520m)가 왼편으로 방향을 꺾으라고 일러준다. 당산·누적금 방향이다. 이어서 만나게 되는 또 다른 갈림길(이정표 : 누적금 190m, 돌삭금 460m/ 당산 등산로 520m)에서는 누적금 방향이다. 당산은 맨 마지막에 들러볼 예정이기 때문이다.
▼ 조금 더 걷자 또 다른 삼거리가 나온다. 고라금에서 15분쯤 되는 지점인데 직진하면 ‘누적금’, 오른편은 고개 넘어 ‘돌삭금’으로 가는 길이다. 누적금은 백패커(backpacker)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그래선지 캠핑 사이트처럼 생긴 데크도 만들어 놓았는데 시야가 툭 트이는 게 전망대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예쁜 몽돌이 깔려있는 자그마한 해안에 내려서니 왼쪽으로는 횡견도, 정면에는 대청도와 중청도, 그리고 오른편으로 상투바위가 또렷이 보인다. 참고로 누적금(노적금)이란 지명은 바닷가 바위들의 모양새가 볏단(노적)을 쌓아 놓은 것 같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노적을 쌓아 올린 듯한 바위를 이용해 외연도 주민들을 먹여 살린 전횡장군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 ‘누적금’에서 빠져나와 ‘돌삭금’으로 향한다. 제법 너른 임도를 따라 걷는데 뱀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라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웃자란 저 잡초더미 어디에 뱀이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걸음이 빨라진다. 도망치듯이 작은 고갯마루를 넘자 진행방향 저만큼에서 돌삭금의 대문 겪인 산죽터널이 길손을 맞는다. 누적금에서 10분 조금 못되는 지점이다.
▼ 산죽밭을 지나면 ‘돌삭금’이다. 이곳도 역시 몽돌이 아름다운 해안이다. 아니 조금 전에 지나왔던 두 곳보다 한수 위라고 해야겠다. 큰 바위들이 들어선 양 옆이야 같은 모양새이지만 가운데의 자갈밭에 더 작고 아름다운 자갈들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조망은 고라금만 못한 편이었다. ‘노랑배’까지 이어지는 바닷가와 망망대해가 눈에 들어올 따름이다.
▼ ‘돌삭금’부터는 해외, 그것도 유명 여행지에서나 만날 법한 잘 닦인 탐방로를 따른다. 넓적한 돌을 바닥에 깔았는가 하면, 바닷가 쪽에는 통나무로 난간을 둘러 멋스러움을 더했다. 그게 달력에 넣어도 될 만큼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내는 것이다.
▼ 바닷가로 내려가는 시멘트계단이 놓여있기에 내려가 봤더니 기괴한 문양을 한 바위들이 쪼개져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신기했다.
▼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에 취해 걷다보면 어느덧 ‘작은 명금’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몽돌이 금처럼 보인다는 명금해변은 몽돌의 크기에 따라 큰 명금과 작은 명금으로 나뉜다. 참고로 작은명금은 삼거리이다. 이곳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을로 갈 수 있다.
▼ ‘큰 명금’은 작은 명금에서 지근거리에 있다. 두 해변 모두 외연도의 대표적인 몽돌해안인데 ‘큰’이란 몽돌의 크기가 굵다는 수식어이다. 실제로도 눈에 띄는 몽돌마다 타조알 만큼이나 굵직굵직했다.
▼ ‘명금’을 끝으로 탐방로는 바닷가를 떠난다. 노랑배로 이어지는 이 길은 해안 쪽으로 이어지지 않고 봉화산 허리길로 이어진다. 그래서 큰 명금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잘 닦인 탐방로를 따르다보면 바다와 숲은 걷는 이의 호흡과 시선에 자연스레 일치된다. 해변을 떠나면서 한마디. 외연도는 하도 물이 맑아 어디에 들어가도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다. 그런데도 외연도에는 번듯한 해수욕장이 하나도 없다. 몽돌해변이라고 해도 돌멩이 크기가 커서 해수욕장으로는 맞지 않다.
▼ 약간의 오르막길을 잠시 걷자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는 ‘약수터’가 나온다. 곁의 팽나무 그늘 아래에는 쉼터도 만들어 놓았다. 병도 고친다는 소문에 혹해서 다가가다 그곳에서 새참을 먹고 있던 주민들을 만났다. 그들은 마스크를 끼고 걷는 우리 부부가 보기 좋다며 버터로 구워낸 전복을 권했다. 그것도 이곳 외연도의 해녀(海女)들이 물질로 건져 올린 자연산이란다. 거기다 나는 소주까지 두어 잔, 심심찮게 대작을 즐기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얼큰하게 취해버렸다. 술이 아니라 그네들의 인심에 취했을 것이다.
▼ 우물 부근에서 길은 둘(이정표 : 노랑배 930m/ 명금 220m)로 나뉜다.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오른편은 마을로 연결된다. ‘노랑배’는 물론 산 허릿길을 따라야 한다. 이 길을 걷다가 ‘해막(解幕) 터’를 만났다. 해막은 당제 기간에 예상되는 출산의 ‘피 부정’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마을신의 영역인 마을에서 임신부를 마을 바깥으로 피신시켜 그 기간 동안 생활하며 때로는 출산도 하도록 만든 오두막이다. 때문에 피막(避幕) 또는 산막(産幕)이라고도 불렀는데 지금은 오두막은 없어지고 돌담 만 남아 있다. 해막 아래에는 물이 마르지 않는 ‘해막샘’도 있었다고 하는데 눈에 띄지는 않았다. 칠월칠석날 탯물을 맞으러 간다면서 샘물로 몸을 씻는 세시풍속까지 있었다는데 말이다
▼ 그렇게 20분쯤 걷자 바닷가 방향 길가에 데크가 들어앉았다. 매배와 상투바위, 매바위는 물론이고 대청도와 중청도, 횡경도까지 눈에 들어오는 멋진 전망대이다. 다만 웃자란 잡목들이 그런 풍경화의 아랫도리를 잘라먹어 버리는 것은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그게 아쉬웠던지 전망대에는 주요 포인트의 설명을 곁들인 조망안내도를 세웠다. ‘10가지 보물섬’이란 외연도의 별명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 10가지 보물은 안개, 하늘, 태양, 바다, 몽돌, 바위, 무인도, 상록수림, 풍어당제와 아이들이다.
▼ 몇 걸음 더 걸으니 ‘노랑배’이다. 노랑배는 노란빛을 띠는 암석이 해안절벽을 이룬 곳이다. 이 절벽이 커다란 배의 앞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배’ 자를 첨가했단다. 그렇다면 ‘고깔배’나 ‘마당배’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혹시 ‘바위’를 ‘배’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해답이 보이지 않는 ‘노랑배’의 어원에 대한 의문이었다. 아무튼 이곳 ‘노랑배’에는 해안절벽 위에 2개의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 가운데 왼편의 것은 병풍바위와 돌삭금, 명금 등 외연도의 해안산책길과 매바위, 대청도, 소청도 등이 잘 조망된다.
▼ 가장 눈길을 끄는 풍경은 역시 여인바위와 매바위 등 특이한 모양의 바위섬들이다. 여인바위는 상투를 튼 머리모양이라고 해서 ‘상투바위’, 혹은 중이 바람을 등지고 비는 형상과 닮았다고 해서 ‘중 둥글 빈대기 바위’라고도 부른다. 그 옆에는 여인바위를 보호하듯 매바위가 바닷가에서 웅크리고 금방이라도 날개를 펼치려는 듯 우람하게 솟아있다. 그 뒤로 가까이 보이는 바위섬은 중청도이며, 상투바위 쪽으로 툭 튀어나온 해안절벽은 ‘매배’라고 부른다.
▼ 노랑배의 또 다른 전망대는 외로움이 포인트다. 망망대해에 작은 바위섬 하나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도 멀다보니 관찰용 망원경까지 설치해 놓았다. 지도에는 저 섬을 ‘관장도’라고 표기해 놓았던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게 다는 아니다. 이 전망대가 외연도에서 서해 일몰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 때문이다. 중청도와 대청도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이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것이다.
▼ 노랑배를 빠져나오니 곧이어 삼거리가 나온다. 봉화산 등산로는 이정표가 가리키는 오른편 방향이지만 우리 부부의 당초 계획에는 없었다. ‘마당배’라는 색다른 볼거리를 눈에 담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들머리에 세워놓은 경고판에 발목이 잡혀버렸다. 나무를 해 나르던 ‘지게 길’이라서 길이 좁고 험하니 트레킹에 능숙한 사람만 가라는 것이다. 거기다 웃자란 잡초와 잡목 때문에 통행이 어렵다는 산행대장의 경고까지 있었으니 어찌 모험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다녀온 사람들은 탐방로의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주민들이 조심하라는 의미로 ‘위험’이라는 조금 과장된 경고판을 세워놓은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 억지춘향 격으로 택한 ‘봉화산 등산로’는 썩 좋지 않았다. 경사가 심한데다 대부분의 구간이 ‘너덜길’이기 때문이다. 정상까지 20분이면 충분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 그렇게 올라선 ‘봉화산’은 지명처럼 봉화대가 주인이다. 주인에 대한 예의였는지 정상석은 세워놓지 않았다. 이곳이 정상이라는 것을 알리는 다른 표식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곳이 ‘봉화대터’였음을 알리는 ‘안내판’ 하나가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참고로 외연도 봉화대는 조선전기 왜적을 감시하고 바다건너 중국을 경계하는 역할과 조선후기 자주 출몰했던 이양선에 대응하기 위한 충청수영의 권설봉수(權設烽燧 : 군영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봉수)였다. 어청도 봉수에서 시작된 신호가 외연도, 녹도, 원산도를 거쳐 충청수영성 남쪽 1.2㎞ 지점에 있는 ‘망해정 봉수(보령시 오천면)’로 전달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할 일이 없어져버린 지금은 둘레 24.5m의 원형 석축만 남아있을 따름이다. 아니 봉화대를 감싸고 있던 높이 130~200㎝의 담장만 남았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쏠쏠한 편이다. 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고 외연열도의 일부가 보인다. 외연열도는 외연도를 어미섬으로 하여 인근 10여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멀리 떨어진 황도를 제외하고는 대청도·중청도·소청도·외연도·수도·당산양도·무마도·석도·횡견도·외횡견도·외오도·오도 등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그 가운데 횡견도, 황도, 오도 등에는 지난 1970년대까지도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북한과 대치된 상태에서 간첩들의 해상 침투로 인한 안보 취약지구가 되면서 외연도나 육지로 이주하고 지금은 무인도가 되었다.
▼ 하산을 시작한다. 남쪽해안을 바라보며 외연도 마을로 내려서는 코스인데, 덕분에 무마도와 오도, 횡간도, 석도 등 남서쪽 바다에 떠있는 외연열도의 섬들을 눈에 담아볼 수 있다. 외연도의 자연은 육지와 가까운 섬과는 다른 색을 가지고 있다. 안개가 깊은 섬이라지만 그것이 걷힌 하늘, 태양, 바다는 더욱 진하고 또 선명했다.
▼ 앞서가던 집사람의 엎드리는 빈도가 잦아지는가 싶더니 이윽고 주저앉아 버린다. 그리곤 달래 채취에 여념이 없다. 근처가 아예 달래 밭이었던 것이다. 이 달래는 아까 뜯었던 갓과 함께 김치로 변해, 모래쯤이면 우리 집 밥상에 올라올 것이다. 또한 노릇노릇 구워진 삼겹살에라도 곁들일라치면 술안주로는 이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 정상에서 15분쯤 내려섰을까 안내판 두 개가 세워진 공터가 나온다. 우측으로는 사학금, 상투바위, 매바위, 돌삭금, 작은 명금 등 해안 명소들을 소개하고 좌측으로는 등대섬 수도를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외연도 마을과 망재산의 뒤편바다에 떠있는 섬들이 더 잘 보이는 곳이다. 오도와 횡견도, 대청도, 중청도 등 외연열도의 대부분을 한꺼번에 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잠시 후 널찍한 데크 쉼터에 내려선다. 이정표(봉화산 정상 510m/ 명금 490m, 마을 650m)는 두 곳의 방향만 표시하고 있지만 사실 이곳은 삼거리이다. 외연도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봉화산 마루까지 길이 나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에겐 흥미를 끌지 못했기에 다녀오지 않았다. 대신 이곳에서 반주를 곁들여가며 느긋하게 점심식사를 즐겼다.
▼ 이젠 ‘당산’으로 가볼 차례이다. 명금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 마을 뒤쪽의 식수저장소와 헬기장이 보인다. 그 뒤로 보이는 짙은 숲이 당산이다. 잠시 후 탐방로는 노랑배 갈림길(이정표 : 명금 250m, 노랑배 950m/ 봉화산 정상 800m)에 이르게 되고, 당산은 이정표에 방향표시가 나타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 헬기장과 대기측정소 사잇길을 지나자 외연도의 북쪽 해안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전망데크(캠핑용이라는 사람도 있었다)’가 나오고, 이어서 긴 나무계단 한 가닥이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당산으로 오르는 산책로인데 당산을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내놓았다. 참고로 당산은 마을 풍어제의 ‘주무대’이다.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 주민이 모여 풍어와 안전을 위해 당제를 지내고 띠배를 만들어 마을 앞바다에 띄우는 '풍어당놀이'가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데, 역사가 벌써 400여 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외연도의 당제(堂祭,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54호)는 풍어당제(전횡장군 사당)와 산제(산신당), 용왕제(띄배 퇴송), 안당고사(마을 어귀) 등으로 짜여있다. 당제를 지내는 동안 당주는 일체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당제에서 한복 3벌을 위패에 걸치는 것과 ‘지태’라 불리는 소를 제물로 올리는 것은 다른 당제에서 보기 드문 전통이다.
▼ 산을 반 바퀴쯤 돌자 사당 하나가 나온다. 옛날 중국 제(齊)나라의 무장(武將) 전횡(田橫)을 모시는 사당이다. 전횡은 제나라가 망하고 한(漢)나라가 들어서자 자신을 따르는 500여 명의 군사와 함께 쫓기는 몸이 되어 동쪽으로 도망가다 외연도에 상륙하여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한 고조가 항복하지 않으면 섬을 토벌하겠다며 자신의 신하가 될 것을 요구하자 섬사람 및 군사들의 안전을 위해 낙양으로 건너가 자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이를 계기로 섬사람들은 전횡을 수호신으로 받들어 사당을 짓고 지금까지 풍어당제 기간에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참! 사당 뒤에 있다는 ‘연리지나무’는 눈에 띄지 않았다. 각기 다른 뿌리에서 자란 두 그루의 동백나무가 이어진 틈새 없이 공중에서 맞닿아 하나의 가지로 연결되어 일명 '사랑나무'로 불린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지난 2010년 태풍 '곤파스'로 인해 가지가 부러졌단다.
▼ 당산은 하늘 한 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목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수세기 동안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온 후박나무, 동백나무, 식나무 등의 상록활엽수와 팽나무, 찰피나무 등의 낙엽활엽수가 울창하다. 특히 높이 20m에 줄기 직경이 1m도 넘는 팽나무와 높이가 18m에 이른다는 동백나무들이 섞여 있어 장관이다. 면적은 3만 2,727㎡. 규모는 크지 않지만 외연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남서부 도서지방의 옛 모습을 짐작케 하는 귀중한 자원으로 알려져 있다. 외연도상록수림이 천연기념물(제136호)로까지 지정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 당산에서 내려오면 10가지 보물 중 아이들의 보금자리인 외연도초등학교다. ‘이승복 소년’과 ‘봉화를 든 남자아이('체력은 국력)' 동상으로 대체된 정문으로 들어서면 알록달록한 7칸의 2층짜리 건물이 떡 버티고 있다. 옥상에는 태양열 집열판이 세워져 있고 단상 지붕 위에는 시계가 있다. 학생 수가 6명인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시설이라 하겠다. 다른 한편으론 오른쪽에다 작은 섬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현대적인 건물로 ‘주민복합센터’를 지어놓은 이유도 될 것이고 말이다. 정문 앞은 기준점(외연도의 경도와 위도 표시)과 정자쉼터, ‘책 읽는 소녀상’이 배치된 공원으로 꾸며져 있었다.
♧ 에필로그(epilogue), 외연도 트레킹은 정확히 4시간이 걸렸다. 느긋하게 즐겼던 점심시간까지 합쳐도 5시간을 채 넘기지 못한다. 때문에 1시간이나 되는 자투리시간이 부담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타고나갈 여객선의 1항차와 2항차의 시간차는 6시간. 우리 마음대로 그 시간을 단축시킬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런데 섬이란 게 본디 시간을 때울만한 시설이 빈약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거기다 코로나19라는 작금의 현실은 식당까지도 문을 닫아버렸다. 즐거워야 할 여유시간이 고역으로 바뀐 이유이다. 이 모든 것의 발단은 트레킹의 속도조절을 잘못해서 일어난 결과이지 싶다. 경관 좋기로 유명한 외연도이니 조금 더 꼼꼼히 들여다본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또 하나. 잘못된 정보도 문제가 됐다. 마당배까지의 길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험하다는 멘트만 없었어도 여객선터미널에서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로 동내 개와 놀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너무도 자세히 설명과 함께 수고 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