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와 마음읽기
그리스도를 모셔다 드리게 (애도의 단계)
신경숙 데레사 독서치료전문가
남편을 떠나보낸 크리스토퍼의 엄마는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아이에게 듬직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어느 날 엄마는 크리스토퍼의 아빠가 쓰던 물건을 중고품 가게에 줘 버리지만 며칠 뒤 그 물건들이 하나씩 집안에 다시 놓여 있는 걸 발견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기던 중에, 크리스토퍼가 중고품 가게에서 도로 가져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는 아빠를 생각하고 싶지 않아 물건들을 없애 버렸지만, 크리스토퍼는 오히려 아빠를 생각하려 했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면은 크리스토퍼가 아빠가 쓰던 낡은 모자와 큰 신발을 신고 아빠가 보던 악보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다.
그림책 ‘나에게 소중한 것들’(피터 카나바스 지음, 시공주니어)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그 아픔을 견디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지우려고 애쓰기보다는 충분한 시간 속에서 아픔의 감정을 표현하며 견뎌내야 함을 보여준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면 누구나 분노, 무력감, 억울함 등 다양한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더구나 이런 상실의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일 때는 그 감정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렇게 상실에 대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는 과정을 ‘애도’라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인간 죽음에 대해 일생을 바쳐 연구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경험한 수천 명을 상담한 뒤, 그들이 거치는 심리적 단계를 5단계로 정리했다.
애도의 처음은 ‘그럴 리 없다’라며 상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부인(否認)’ 단계이다.
그러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라며 현실에 분노를 느끼는 ‘분노’의 단계를 거쳐,
‘내가 이렇게 했다면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까?’라며 타협해서 상황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게 되는 ‘협상’의 단계가 온다.
그리고 네 번째는 이 모두가 소용없음을 알고 슬프고 공허한 감정으로 무기력해지는 ‘우울’ 단계가 찾아오고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에 가서야 상실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용’ 단계가 된다.
2023년에는 여기에 한 단계가 더 추가되었는데 바로 ‘의미’ 단계이다.
이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함께 공동 작업으로 ‘인생수업’ ‘상실수업’를 출간했던 데이비드 케슬러가 퀴블러 로스 사후에 단독으로 출간한 ‘의미 수업’에서 주장한 것으로, 의미를 찾는 과정이 상실이 주는 고통을 치유하고 좀 더 성장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움을 준다는 이론이다.
상실에 대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는 과정이 ‘애도’
애도의 방식은 다양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직후에 큰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당시는 실감하지 못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슬픔이 밀려오는 사람도 있다. 거기에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 어떤 이는 크게 울지만 어떤 이는 조용히 눈물을 삼킨다.
이처럼 애도의 단계도 사람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어떤 단계는 뛰어넘거나 혹은 다시 앞 단계로 가는 퇴행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시간이 지나고 수용 단계까지 이르면서 일상을 회복하게 된다. 상실을 상처라고 본다면 애도는 상처가 낫는 과정이라 할 수 있어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평소 무신론자였던 L형제가 신자가 된 사연은 이러하다. 그는 신자인 아내와 결혼하였지만 아내의 신앙뿐 아니라 가정 경제에도 무심한 편으로, 자신만의 인생을 즐기며 살았다. 그러다 결혼 30주년을 맞은 날 아침, 아내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 상황이 실감 나지 않아 무덤덤하게 장례를 치렀지만 아내를 잃은 슬픔과 함께 맞닥트린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과음이 잦아지고, 가족과 이웃에 대한 폭언과 시비는 물론, 물건을 부수는 등의 꽤 공격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때로는 밥도 먹지 않고 두문불출하는 등 그의 불안정한 생활은 주위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다. 이를 보다 못한 딸이 신자인 이모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모는 L형제를 자주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내를 추억할 수 있게 해주면서 생활 속의 문제들을 조언했다. 거기에 죽음이 끝이 아님을 이야기하며 자연스레 신자 생활을 권유하였다. 이모의 정성 어린 돌봄으로 그는 안정을 되찾았고 영세도 하게 되었다.
“사실 아내를 잃은 슬픔은 집안과 아내에게 무심하고 저만 편하게 살았다는 자책이 커지면서 더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슬픔을 어떻게 처리할 수 없어 방황할 때 처제가 한 질문이 저를 살린 셈입니다, ‘죽은 언니가 지금 형부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겠냐?’라고 했고, 그때 제가 신자가 되길 그토록 원했던 아내의 바람이 생각났습니다. 그 소원을 들어주고자 영세하게 되었는데, 지금 보니 세례야말로 아내가 저에게 준 마지막 선물 같아 고마운 마음으로 요즘은 매일 미사를 드리며 아내를 기억합니다.”
나는 신앙의 눈으로 죽음을 넘어선 생명을 보고 있는가?
살아있는 모든 것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그러니 살아있는 존재라면 그 끝인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거나 맞닥트렸을 때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나아가 현재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죽음은 우리들의 삶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픔 중에 있는 그들에게 신앙의 진리, 즉 ‘하느님은 어떤 분이시고, 영혼이란 무엇이며,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지, 죽음 후에 인간은 어떻게 되는지 등’(교본 314쪽)을 전해 주는 일은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효과도 크다. 이때 애도의 단계와 그 과정에 있는 이들에 대한 이해는 필수 불가결하다.
미국의 애도심리상담학자인 알렌 울펠트에 의하면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동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내라”, “잊기 위해 바쁘게 지내라”, “참다 보면 해결된다”라는 등의 섣부른 조언은 조심해야 한다. 오히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상실로 인한 슬픈 상태를 인정해 주는 공감이다.
우리는 영세 때 교회에 신앙을 청하며 신앙이 영원한 생명을 준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렇다면 나는 신앙의 눈으로 죽음을 넘어선 생명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신앙으로 애도의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위로를 건네고 있는가?
나아가 영혼들을 구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어떠한 대가라도 치를 용의가 있는가?
만약 그러하다면 나는 이미 성모님의 군사로서 ‘이 세상과 영혼들에게 그리스도를 모셔다드리게 해’(선서문 중)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땅 위에 영원한 나라를 가지지 못했으며, 장차 올 나라를 기다리고 있음이 사실이다.’(교본 122쪽)
그리스도를 모셔다 드리게 (애도의 단계) > 2025.07 > 성모님의군단
첫댓글 + 찬미예수님 ~♡
"애도" 예전에 그곳에서 교육받은 기억이 남아 있다
부인, 분노, 협상, 우울, 수용까지...
본인의 큰 병과 가족과 절친의 사망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이겨내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의미" 까지 ...
의미를 찿는 과정이 상실이 주는 고통을 치유하고 좀 더 성장한 모습으로 살아갈수 있게 도움을 준다는 이론인데 좀더 공부해야겠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