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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
시 119:64-75
(64)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65)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66)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68)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69)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70)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72)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73)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74)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니이다
(75)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성경말씀을 읽어보면 (하나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편애와 차별을 느낄 정도로)
하나님의 전폭적인 사랑과 자비와 긍휼의 기회를 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차 없이 진노 가운데 버림을 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자비와 은혜들은
지난 8월에 주셨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진심으로 가장 사랑하며, 경외하는 마음을 품은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에 대해 살펴보며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올바르게 잘 성장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으로 여기지 않는 모습으로
(영혼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과는 다른 육신적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에 관해 점검해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으로부터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 자들’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고자 하는 일들이 막힘없이 잘 이루어지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들을만하며,
육신도 건강하고, 부유하게 잘 지내는 사람.’
(하나님의 진리를 바르게 깨달아가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하심과 마음을 알아가면서
자기를 부인함과 순종을 통해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소수의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제외하고)
기독교인이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든, 무신론자든
관계없이 모두가 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합니다.
남들에게 겉으로 보여 지는 ‘육신적으로 좋은 조건이나 환경들’은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부러움을 갖게 하고,
‘나도 하나님을 잘 믿고, 저 사람처럼 잘 되고 싶다...’하는 마음을 품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올린다고 잘못 생각하기 쉽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방식의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있기에
다들 겉으로 보여 지는 외적인 부분에 가장 집중하고 있으며,
남들보다 뛰어나고 특별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거나
남들에게 자랑할 것들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 제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오랜만에 만나게 된 어떤 목사님은 성도들 앞에서
“제 딸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자라서 국제변호사가 되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에게는 두 명의 딸이 있었는데 변호사가 된 한 명에 대해서만 언급했습니다.
또 어떤 권사님은 “제 자녀는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의사고, 배우자도 같은 병원 의사예요.”라며
만족하는 표정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 맞지만 우리가 진짜로 감사해야 할 것은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라는 말에는
어떤 답변도 하지 않고 침묵하다가 이내 대화의 화제를 돌렸습니다.
(그분의 자녀들이 예수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했던 말인데
갑자기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명절에 기독교 집안의 친척들을 만나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들이 한 명이라고 해도 믿어질 만큼
육신적인 자랑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일한 모습입니다.
(‘저 목사한테는 집안의 좋은 얘기도 함부로 못 하겠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제 눈에 어떻게 보이는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갈망하며, 자랑하면서 만족하는 육신적인 자인지,
아니면 이 짧은 인생에서 오로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구원을 향해 가고 있는
영적인 자인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고전 13:4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딤후 3:1-2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에게 자랑거리가 되지 못할 것 같은 얘기는
사람들 앞에서 아예 꺼내지도 않지만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훌륭한 직업을 가졌거나 많은 돈을 가진 육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언제나, 어딜 가든 꼭 얘기를 꺼내며,
특히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받아서
그렇게 잘 됐다면서 얘기를 마무리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받으면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자랑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확실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특히 청년부에서 이런 잘못된 가치관을 마구 주입하고 있습니다.
인천의 모 교회에서 청년부를 담당하던 어떤 목회자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 청년부에서 세상을 호령하는
CEO들이 많이 나오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황당한 기도를 거의 매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청년들은 매우 간절한 목소리로 울먹이듯 “아멘!!!”을 외치는 기이한 모습의 현장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 교회에서 청년부 리더를 하고 있었지만
계속되는 황당한 기도들에 동참할 수가 없어 (젊은 혈기에)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고,
제가 전도사가 되면서 그곳을 떠났습니다.
[한 번은 조별모임을 하는 중에 리더인 제가 청년들에게 올바른 기도에 대한 얘기를 했다가
내용을 알게 된 그 목회자로부터 고압적인 조롱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목회자가 일개 청년을 상대로 유치한 보복(?)을 한 것입니다.
지금 그 목회자는 잠시 교회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그 교회로 돌아오는 편법을 이용하여
담임목사가 되었고, 성도들은 여전히 그 목사를 칭송하고 있습니다.
해당 교단은 교회의 부교역자가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디 알지 못할 이상한 교단에 속한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장자교단이라고 자부하는 교단의 유명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교회의 교인들도 대부분 부유한 상태로
기독교인이면 당연히 세상적으로 잘 나가야 한다는 얘기를 서슴없이 하면서
더욱 부자가 되려고 투자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부디 지금은 잘못 가르친 것들을 회개하고, 잘못된 가르침을 따랐던 것도 회개하여
바로 잡았기를 바랍니다.]
또 제가 전도사로 있던 서울에 있는 어떤 교회의 청년부 목회자는 설교시간에
“자매님들은 지금 여러분들 주변에 있는 직업이 뚜렷하지 않은 남자를 만나지 마세요.
평생 고생할 것이고, 결국 후회하게 될 겁니다.”라는 식의 말을 하여
당시 구직 중인 청년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동시에
“저는 아버지로부터 건물을 물려받았고 나중에 거기서 단독목회를 할 겁니다.
남들과는 달리 돈 걱정 없이 목회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저는 하나님께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내용의 말을 하며 은근히 자신과 결혼을 하면 편하게 잘살 수 있다면서 어필했습니다.
무려 설교 중에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년들에게 잘 전하라고 그 자리에 앉혀 놓았더니
혼자 남자 청년들을 향해 경쟁심을 품고선 구혼을 하던 그 대머리 목사는
결국 담임 목사님으로부터 제명을 당했고,
그 교회의 청년부는 없어질 위기에 놓일 만큼
청년부 회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청년들이 다른 교회로 떠났습니다.
(기복주의와 관련한 문제점들에 대해 언급을 하는 부분이기에 비판적으로 서술을 했지만
아시다시피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조용히 사명을 감당하고 계신
훌륭한 목사님들도 곳곳에 많으십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뿌리를 박고 점점 자라나고 있는
이 기복주의는 정확히 마귀의 올무입니다.
렘 9:23-24
(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마음을 비우고 곰곰이 잘 생각해보십시다.
특별히 사랑하시고 아끼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가장 주고 싶으실까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영원한 생명, 즉 ‘구원’이라는 답변이 나옵니다.
이 땅에서 잠깐 머무는 동안 부유하게 잘 먹고, 잘 입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큰 걱정거리 없이 살다가 자신의 정체를 깨닫지 못한 채,
마음 깊이 숨겨져 있는 죄의 속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교만 가운데 지내다가
지옥에 멸해지는 것을 바라시는 게 아니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어떻게든’ 구원에 합당한 모습으로 이끄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심판을 면하고 천국에 들어오도록 인도해주시어
마지막 날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으로 삼고 싶어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성실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의 정점이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마 19:23-24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그렇다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선
우리가 어떤 모습이 되기를 가장 바라실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를 구원해주실 주님’으로 믿고,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깨달아
자신이 범한 죄들을 진심으로 후회하면서 회개하여
이제는 마음과 행위를 완전히 돌이켜
온전한 순종으로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모습,
거듭나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이제는 하나님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사랑하는 모습,
예수님의 사랑으로서 자신과 이웃도 사랑하는 모습,
자기를 부인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 죄와 싸워 이기는 모습,
하나님의 마음과 합해져서 자신의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살아가는 모습.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성장해야 하나님께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성경말씀 전체가 이것을 가리키고 있기에 이것이 진리입니다.
언젠가 입으로 한 번 “예수님을 영접합니다.”라고 말했다고
구원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변화와 성장 없이 여전히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를 자신은 사랑하고, 또한 죄를 범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죄의 종,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기에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지 않고선 구원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볼 때에 한 구절만 보면서 이단교리에 미혹되지 말고,
늘 전체적으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되기 위해선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바로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는 인생’입니다. 이것 외엔 없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이들 모두가
여러 가지 힘겨운 고난을 통해 성장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단 한 명도 고난 없이 영적성장을 이룬 사람은 없으며,
또한 고난을 겪었다고 해서 모두가 하나님의 권속이 된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 바르게 성장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겪지 않고 싶은 마음,
내 마음대로 이루는 인생, 남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면서도
나는 믿음생활도 훌륭하게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이 영적교만이
기복주의가 되어 기독교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발목 잡힌 그것을 스스로 떨쳐내지 않으면
그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됩니다.
눅 6:26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고전 2:12-14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예나 지금이나 구원에 합당한 믿음의 소유자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사랑과 은혜인 고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먹여주시는 쓴 약과 같은 고난의 허용을 통해
자기가 어떤 존재였는지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알게 되면서
영적으로 점점 성장해가며, 겸손과 사랑으로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에 성실하게 순종하면서 살았거나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크게 힘든 일 없이 부유하고, 건강하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그리스도인, 혹은 모태신앙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라며 사람들 앞에 육신적인 것들을 은근히 자랑하지만
속으로는 교만, 분노, 질투, 미움, 사랑 없음, 이기심, 음란, 돈을 사랑함 등이
마음 깊은 곳에 오래된 뿌리처럼 자리 잡고 있으며,
자신의 심령 깊은 곳에 무엇이 숨어있는지도 모르기에, 드러난 적도 없기에,
또한 드러날 기회가 없었거나, 있었어도 스스로를 속였기에
자신을 꽤나 괜찮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해당 죄와 관련된 귀신들이 그 안에서 굳게 자리 잡은 채
절대 나가려고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설교를 들었을 때
‘나는 아니지. 내 얘긴 아니지.’하거나
자기도 모를 이유로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지다가 결국 화를 내기도 합니다.
이런 내용의 설교는 아예 읽지를 못하거나, 우습게 여기며 무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주시거나 허용하신 여러 종류의 고난들을 많이 겪으며,
하나님의 의도대로 잘 따라가면서 순종해왔기에
이제는 영적으로 많이 성장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신지,
사랑과 겸손이 무엇인지, 참된 순종이란 무엇인지, 하나님의 진리가 무엇인지,
사람의 인생이란 무엇인지 등을 점점 깨달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내용의 설교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지만
아직 교만의 마음이 남은 이들은 절대로 받아들이질 않습니다.
그리곤 마음속에 이런 생각을 품거나 입으로 내뱉습니다.
‘우리 담임목사님이 나한테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는데 넌 뭐 길래
이런 설교를 나한테 들으라고 하니? 예배당도 없는 하찮은 게...쯧쯧‘
눅 9:23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이들은
여러 가지 고난들을 통해 성장하면서
‘고난에 저항하며, 자신을 변호하려는 변명의 모습’을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며,
자신을 부인하면서 낮아져가는 모습으로 십자가를 기쁘게 지는 태도를 통해
점점 예수님을 닮은 사랑이 가득해져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늘날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최우선적 사랑,
이웃을 향한 사랑, 그리고 인생 전반에서 좋은 열매들을 맺으며,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천국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예복의 준비를
잘 마쳐가고 있습니다.
건강을 잃거나, 가난해지거나, 하던 일에 문제가 생기거나,
집안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거나, 심히 외로워지거나 하는 등
인간이 느끼기에 매우 힘든 일들을 여러 모로 통과하면서
심령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것들이 수면위로 드러나듯 나타나며,
“제가 알던 그동안의 저는 저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고,
부끄러운 이 모습이 저의 진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었다면 구제불능인 자,
저의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었던 자라는 사실이
이렇게 또 확실하게 드러났습니다.“라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를 부인하면서 고백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를 부인함과 영적성장을 위한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때로는 연약한 모습이 된 채 낙망하고, 좌절하면서
바닥 밑에는 지하도 있었고, 지하 밑에는 깊은 심연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즉 내가 깨달아야 할 것들, 부서져야 할 것들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실 겸손은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순종은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하심과 그 깊은 뜻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진심으로 깨달아가면서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 되어갑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영적성장이고, 거듭남이며,
이것만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구원의 길입니다.
그렇게 성장하여 장성에 가까운 모습이 된 채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받는 것이
이 땅에 잠시 머무는 동안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인생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최고의 복,
구원입니다.
엡 3:14-19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하나님께선 너무나도 사랑하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고난도 허락해주시는 은혜로운 분이십니다.
잠 13:24
(24)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히 12:7-11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계 3:19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오늘 본문 말씀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원한 자녀로 삼기를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확실한 특징은
‘성실하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고난을 통한 괴로움’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일괄적으로 모두
육신적으로 불행해져야 구원을 받게 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의 커리큘럼에 따라
우리의 영적성장을 위한 여러 가지 일들을 맞이할 때에
그것을 하나님의 복으로 바르게 인지하면서 구원의 길을 걷고 있는지,
아니면 저주로만 여기면서 원망과 불평 가운데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지,
또한 우리는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성실하심에 응답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수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성장의 시작점을 이해하지 못하여,
즉 하나님의 마음과 그 의도하심과 성실하심을 이해하지 못하여
고난 가운데서 더 나아가지 못한 채, 성장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다고 하셨습니다.
눅 13:24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고난이 찾아왔을 때에 오로지 자신을 힘들게 하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만을 찾고,
명쾌하게 해결해줄 수 있을만한 목회자들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며,
그 일들을 통해 내가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어떤 부분이 깨져 나가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성장해야 하는지 등의
정작 중요한 부분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저 하나님께서 육신적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를 기도하기만 하다가
자기 구미에 맞게 해결되지 않으면 끝내 믿음을 버리거나 포기하면서
주변의 부유하고, 건강하게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며 한 없이 부러워하고,
불평과 원망, 우울증 등에 사로잡혀
성장은커녕 날이 갈수록 침체 되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었더니 십일조의 단위가 달라졌다는 식의
기복주의가 가득한 내용의 간증,
기도를 했더니 병이 낫고 이제는 건강해졌다,
또한 여러 가지 조건들이 개선되어 이제는 행복해졌다는 등의
육신적인 간증 등을 즐겨 들으면서 그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는 불만족의 마음을 품은 채
이제는 기도도 멈추고, 신앙을 버리면서 지옥을 향해 갑니다.
구원을 위한 진짜 사랑인 ‘성장을 위한 고난’을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받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이건 사랑이 아니에요. 저도 저 사람들처럼 육신적인 복을 주세요.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요.“하며 하나님의 의도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갈 6:14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간증을 할 때에도 주의해야 합니다.
기복주의를 퍼뜨리는 간증은 ‘마귀의 충직한 사역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기록되어 있듯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이며,
우리 그리스도인이 자랑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짜 간증은 이런 내용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입니다.
만약 제가 이런 일들을 겪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부유하고 건강하게 살면서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죄들을 인정하지 않으며,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거라고 착각하면서 지내다가
결국 무지함 가운데 지옥에 멸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는 사랑해주셔서 구원의 길로 이끌어주시기 위해
저를 부인할 수 있도록 이런 힘겨운 고난들을 풍요롭게 허용해주셨고,
저는 그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잘 통과하여
제가 깨달아야 할 것들, 회개하여 돌이켜야 할 것들을 알게 되었으며,
이제는 저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비로소 예수님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저에게 고난이라는 복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부족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제게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를 사랑해주고 계신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을 겪더라도
저는 끝까지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순종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이런 내용이 진정한 간증이며,
듣는 이들도 이런 간증에 “아멘!”을 해야지
‘십일조의 단위가 달라졌네, 건강을 되찾았네, 세상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네’하는
가짜 간증에 부러워하면서 “아멘!”을 외쳐선 안 되는 것입니다.
후자의 이런 ‘아멘’은 육신적인 기복주의에 사로잡힌 채
육신적 문제해결만을 꿈꾸면서 예수님을 환영하며 외쳤던 그들의
‘헛된 꿈의 호산나’와 완전히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 진정한 인생은 지금의 이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분명하게 기억하십시다.
천국, 혹은 지옥에서 새롭게 시작되어
영원히 지속될 그 인생이 우리의 진짜 인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육신적인 환경과 조건만 보면
한숨이 나오고 힘이 빠집니다.
인간의 욕심은 온 세상의 바다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육신적 만족이라는 것은
원하던 좋은 것을 손에 넣은 그 하루, 이틀에만 유효할 뿐
이 세상엔 우리를 지속적으로 만족시켜줄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가장 좋은 것, 우리가 영원히 감사하면서 지속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손 안에만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이 세상의 정치, 경제, 세계정세, 그리고 건강이나 돈 등의 개인적인 문제 등에만 집중하면
반드시 암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심령에 비춰주시는 하나님의 빛이 점점 희미해지다가(스스로 거부하여)
결국엔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그 날을 바라보며, 사모하면서
새롭게 시작될 진짜 인생을 준비하는 우리는
이제 눈을 들어서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과 천국을 바라봐야 합니다.
시 123:1-2
(1)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여기서 살아봐야 얼마 못삽니다.
언제 갑자기 죽을지도 모릅니다.
죽기 직전에 ‘아, 통장에 얼마가 있었지? 내가 직업이 뭐였지? 내 건강은 어떤 상태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100년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미약한 존재가
마치 이 땅에서 천년 이상이라도 살 것처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고, 염려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육신적인 어리석음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오로지 하나님과 나의 1:1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살아가십시다.
그렇게 성경말씀을 통해 지혜를 품고,
‘매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십시다.
아름다운 천국에서 아무 걱정 없이 예수님과 함께 지내게 될 그 날을
지금 바라보며, 소망을 품고, 서로를 위로하십시다.
우리의 마음전체를 두어야 할 곳은
건강도, 통장잔고도, 안정적인 직업도, 집이나 땅도 아닙니다.
영원히 거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견고한 믿음의 마음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천국으로 향하는 구원의 길을 반드시 걷기 위해
우리는 매일 참된 기도를 이어가며, 하나님과 친밀한 자로 살아가십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저와 여러분들이 마땅히, 반드시 겪어야 할 일들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시기를,
그것이 지나치게 힘든 고난이라 해도 부디 풍성하게 베풀어주시기를,
그 모든 일들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의 의도를 깨달으면서 성장할 힘을
하나님께서 더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십시다.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환경 속에서든 힘들고 지칠 때마다
성경에 등장하는 신앙의 선배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는 믿음의 선배들처럼
항상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며 완벽히 신뢰하고,
하나님께는 오로지 감사만 하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그리고 천국에서 새롭게 시작될 진짜 인생을 소망하면서
잠시 머무는 이 땅에서부터 천국백성으로 살아가십시다.
또한 앞으로도 인생을 살아가다가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것들이 고난을 통해 드러났을 때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지...’하며 넘기지 말고,
그 즉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번 일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깨닫고 성장해야 하는지,
혹 회개할 것들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기도하면서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의도하심에 따라 생명의 길을 걸어 나아가십시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구원받게 될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예전에도 주셨던 내용이지만
‘영원한 생명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에 대해 아직 이해하지 못하여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거듭나지 못하고,
또한 탐스러운 세상의 것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이들,
그리고 ‘나는 왜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힘든 일들이 생기지?’하는 의문을
가진 분들을 위하여 다시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자, 성실하심입니다.
오늘날 여러 종류의 고난을 통해 자기를 온전히 부인하며,
회개와 순종으로서 성장해가고 계신다면 구원의 길로 잘 가고 계신 겁니다.
원래 ‘육신은 날로 쇠하고, 영은 날로 새롭게 되어 성장’해가는 것이
생명의 길 맞습니다.
성경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으니 이것이 진리입니다.
고후 4:16-18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저와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길 작정했다면
부디 천국복음의 새로운 가치관, 올바른 기독교 세계관을 품고,
창조주 하나님께 창조의 보람을 드리는 피조물들이 되십시다.
오늘날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여러 가지로 지치고 힘드실 거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받게 될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아드리며,
인도해주시는 그 길을 잘 따라가시면서 끝까지 힘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저도 마지막까지 힘내겠습니다.
더불어 지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인 여러 종류의 고난들을 통해
구원에 합당한 모습으로 준비되어가고 있는 분들에게
축하를 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얼마 후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지금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해 담소를 나누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각자 즉시 나의 삶에 적용함으로서
오늘의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인 ‘성장과 구원을 위한 고난’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복이 아닌 저주로 여기며, 육신적으로 자랑하는 이들을 부러워만 하면서
하나님의 의도하심에 반대되는 기도만을 이어가고,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거나
오히려 더 침체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이제는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점점 알아가며,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인 ‘영적성장을 위한 고난’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는 사실을 바로 알게 되어
상황이나 환경과는 관계없이 날로 놀랍게 성장해가는 모습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안전하게 구원의 길을 걷고 있는지를 점검하여
부디 늦지 않게 천국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예복을 잘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 22:11-14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6.10.04.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502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1.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2.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의 길 되시고
나에게 밝은 빛이 되시니 길 잃어버릴 염려 없네
3. 광명한 그 빛 마음에 받아 명랑한 천국 바라보고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날마다 빛에 걸어가리
[후렴]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첫댓글 아멘 아멘!! 생명의 말씀 감사합니다.!
주님, 조금만 일이 잘되어도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착각하는 저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세요.. 교만한 마음을 멀리하게 하여 주세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립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실 때에
다 내려놓으시면서 겸손히 복종하는 모습으로
생명의 길 걸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