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수명(山紫水明)한 영월 땅
(2017년 8월 5일)
瓦也 정유순
삼복(三伏)더위가 마지막 절정을 향하는지 새벽부터 매미는 목이 터지라 울어대고, 아침을 밝히는 태양은 ‘호주머니에 넣어둔 감자도 찔 것’처럼 이글거린다. 오늘은 영월고추의 우수성과 마침 진행하고 있는 ‘동강 뗏목 축제’ 현장도 둘러보고 동강의 어라연계곡을 걸어볼 양 길을 나서는데 작열(灼熱)하는 날씨가 심상치 않다.
<영월의 여름하늘>
다행이 길이 막히지 않아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영월군 북면에 있는 영월농협가공사업소인 ‘동강마루’에 도착한다. 이곳은 영월의 수려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석회암지역에서 자라고, 일교차가 커 다른 지역보다 육질이 두껍고 비타민 등 영양소가 풍부한 영월고추를 농가로부터 수매하여 철저한 위생관리를 통해 자연산 태양초 고춧가루를 생산하는 곳이다. 그리고 영월의 콩으로 메주를 쑤어서 고추장과 된장과 간장을 만들며, 영월에서 채취된 각종 꿀도 최고의 품질로 가공하여 제공하는 곳이다.
<영월농협가공사업소 동강마루>
<장독대>
휴일인 관계로 일부 공정들이 휴업을 하여 움직이는 것은 볼 수는 없었지만, 철저하게 위생관리를 하여 모든 제품이 만들어 지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동강 뗏목 축제’가 열리고 있는 영월읍의 동강 둔치로 이동한다. 둔치에는 지금 나올 수 있는 영월의 모든 농산물이 나와 있어 큰 시장(市場)을 형성한다. 동강의 하류에서는 맨손으로 송어잡기가 한창이다. 영월의 진산 봉래산(800m)에서는 축제를 축하하는 행글라이더가 줄을 잇는다.
<영월의봉래산과 행사장>
<행글라이더 비행>
<동강뗏목축제 시장>
<영월의 고추>
<맨손 송어잡기 체험>
동강(東江)은 금대봉 검룡소에서 발원한 물길이 골지천을 따라 흘러 광동댐에서 잠시 머물다가 정선의 북평에서 오대천과 만나 조양강을 만들고 정선읍을 지나며 동강으로 이름이 바뀐다. 동강둔치 하류로 조금 내려가면 서강(西江)과 만나 이름이 남한강으로 바뀌어 단양과 충주호로 흘러 들어간다. 서강은 평창의 평창강과 영월의 주천강이 한반도지형 근처에서 합류하여 단종이 처음 유배 왔던 청령포를 휘감아 흐른 후 영월읍에서 동강과 만난다.
<동강의 하류>
동강 뗏목 축제장에서는 각자 싱싱하고 우수한 영월의 산나물과 농산물들을 필요한 만큼 산 다음, 영월읍내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곤드레 등 여러 가지 산나물로 비벼지는 비빔밥으로 뜨거운 오전을 마무리 한다. 식사 후에 큰길로 걸어 나오면 단종이 마지막 생을 하직한 관풍헌이 나온다. ‘관풍헌(觀風軒)’은 단종이 청령포로 유배를 왔다가 홍수로 두어 달 만에 어가를 옮긴 곳이다.
<점심메뉴-영월의 비빔밥>
<익살스런 간판>
관풍헌은 1392년(태조 1)에 건립된 영월 객사의 동헌 건물로 지방 수령들이 공사(公事)를 처리하던 건물이었다. 청령포에서 이거해 온 단종은 관풍헌에 머물며 인근의 ‘자규루’에 올라 “한번 울면 피를 토하며 운다는 두견”을 빗대어 지은 ‘자규사(子規詞)¹’와 ‘자규시(子規詩)²’를 읊어가며 괴로움을 달랬다고 전해진다. 1457년 10월 24일 단종은 17세의 일기로 관풍헌에서 사약이 당도하기 전에 관오의 손에 화살 줄로 목 졸려 돌아가시었다.
<관풍헌>
단종이 죽자 살아있는 권력이 무서워 아무도 시신을 수습해 주는 사람이 없었으나, 이곳 영월 호장 ‘엄흥도’가 눈 내리는 밤에 몰래 시신을 거두어 가다 보니 ‘노루 앉은 자리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무덤을 만들었는데 그곳이 조선의 제6대 임금 단종(端宗)이 묻혀 있는 ‘장릉’이다. 매년 4월 말이면 단종을 기리는 ‘단종문화제’가 이곳 영월에서 큰 행사로 개최 된다.
<자규루(또는 매죽루)>
오후에는 당초 동강의 어라연계곡 트레킹 할 계획이었으나 그늘이 없는 길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고 하여 그늘 길이 많은 ‘외씨버선 길 12코스’인 ‘김삿갓 길’로 방향을 바꿔 동강과 서강이 합류하여 시작되는 남한강변을 따라 내려가다가 옥동천을 따라 김삿갓면으로 이동한다. 옥동천(玉洞川)은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함백산(咸白山, 1573m)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영월군 김삿갓면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이다.
<난고 김병연 추모시비>
김삿갓면은 원래 영월군 하동면이었으나,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 김삿갓의 거주지와 묘, 문학관 등이 있어 김삿갓마을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영월군은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09년 10월 면의 명칭을 김삿갓면으로 변경하였다. 이때 영월군은 한반도 지형이 있는 서면도 ‘한반도면’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관광객 유치를 위한 발 빠른 포석 같다.
<김삿갓계곡 입구의 돌탑>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金炳淵, 1807∼1863)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난고(蘭皐)이다. 속칭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으로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1811년(순조11) 홍경래 난 때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여 집안이 망하게 되자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내다가 사면을 받고 과거에 응시하여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답을 적어 급제하였다. 후에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안 후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김삿갓 석상과 김삿갓교>
김삿갓묘역 못 미치는 곳에 있는 김삿갓교에서 마포천이 흐르는 숲길로 접어든다. 며칠 전에 내린 비 때문인지 계곡마다 넘쳐흐르는 물소리는 금방 뛰어 들어오라고 재촉한다. 어디 이만한 옥류청수(玉流淸水)가 따로 있던가? 달밤에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는 항아(姮娥)님이 따로 있다던가? 온 몸을 냇물에 풍덩 던지니 등골을 타고 흐르던 땀방울도 시원한 바람이 되어 전신을 휘감는다. 나이도 세월도 잊게 한다.
<옥류청수(玉流淸水)>
<김삿갓계곡>
<김삿갓계곡>
<머루포도>
<풋사과>
붙임1. 2
단종의 자규사(子規詞)¹
달 밝은 밤 두견이 우는데
(月白夜蜀魂湫 월백야촉혼추)
시름 못 잊어 누 머리에 기대어라
(含愁情依樓頭 함수정의루두)
네가 슬피 우니 나는 듣기가 괴롭구나
(爾啼悲我聞苦 이제비아문고)
네 울음소리 없다면 나도 근심이 없으련만
(無爾聲無我愁 무이성무아수)
세상의 근심 많은 사람들이여
(寄語世苦榮人 기어세고영인)
부디 자규루엔 오르지 말게나
(愼莫登子規樓 신막등자규루)
단종의 자규시(子規詩)²
원한 맺힌 새가 한번 제궁을 나온 후
( 一自怨禽 出帝宮 일자원금 출제궁)
외로운 몸의 한 그림자가 푸른 산중에 있네
(孤身雙影 碧山中 고신쌍영 벽산중)
잠깐의 잠조차 밤마다 이룰 수 없고
(暇眠夜夜 眠無假 가면야야 면무가)
깊은 한은 해마다 다하지 않네
(窮限年年 恨不窮 궁한연연 한불금)
소리 그친 새벽 봉우리엔 남은 달빛 밝은데
(聲斷曉岑 殘月白 성단효잠 잔월백)
피 뿌린 봄 골짜기엔 떨어진 꽃잎이 붉네
(血淚春谷 落花紅 혈루춘곡 낙화홍)
하늘은 귀먹어 오히려 슬픈 하소연을 듣지 못하는데
(天聾尙未 聞哀訴 천총상미 문애소)
어찌하여 근심어린 내 귀만 유독 밝은가
(何柰愁人 耳獨聰 하내수인 이독총)